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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연구] 김정은의 核 vs 김정일의 核 

선대보다 집요하고, 빠른 폭주(暴走)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너나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
김일성, 대미 자위권 차원에서 핵 야욕 꿈꿔… 김정일, 핵 개발과 동시에 협상카드로 활용

북한 김정은의 핵(核)무장 고도화를 향한 폭주가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7월 두 차례에 걸친 장거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에 이어 8월에는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리고, 마침내 9월에는 여섯 번째 핵실험을 단행해 국제사회를 향한 정면도전을 감행했다. 통제 불능의 상태다. 한반도의 안보 위기감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격동의 동북아 정세에서 마음껏 웃는 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유일하다. 남측의 문재인 대통령, 태평양 건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부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고민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 7월 20%대로 추락했다가 북핵 효과로 반등했지만 속으로만 웃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동안 북한이 실시한 6차례의 핵실험은 그들이 목표했던 ‘핵능력의 고도화’를 이루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핵무기 개발 과정은 핵 기폭 실험→핵탄두 제조 실험→핵탄두 전력화 실험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는데, 북한은 이러한 과정을 충실히 따르면서 핵무기 개발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6차 핵실험은 폭발력이 50~100kt으로 추정되는 등 그동안 실시된 핵실험 중에서 폭발력이 가장 큰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6차 핵실험의 가장 큰 특징은 ‘대륙간탄도미사일용 수소탄’ 폭발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6차 핵실험 직후 ‘핵무기연구소’ 명의의 성명에서 “조선노동당의 전략적 핵무기 건설 구상에 따라 우리의 과학자들은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동 연구소의 성명에서는 “대륙간탄도로케트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서의 완전 성공은 우리의 핵탄들이 고도로 정밀화됐을 뿐 아니라 핵무기 설계 및 제작 기술이 핵탄의 위력을 타격 대상과 목적에 따라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은 이미 장거리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탄두 제조에 성공했다는 것이고, 이제 규격화된 핵탄두를 모든 미사일에 탑재하는 일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대륙간탄도미사일 장착용 핵탄두의 무게는 대략 500㎏ 정도로 북한이 이 정도의 탄두 경량화와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그보다 무게가 더 큰 단거리·중거리용 핵탄두 개발을 이미 완료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북한은 사실상 핵탄두를 탑재 수단에 결합하는 핵무기 개발의 완성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아울러 이는 북한의 핵 개발 저지를 목표로 했던 우리 정부의 북핵 정책 기조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김정은의 핵 폭주는 다층적 노림수


김정은이 최근 들어 ICBM을 비롯한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연이어 감행하며 전례 없는 도발을 지속하는 의도는 뭘까.

첫째, 강력한 대북제재와 북·미 간에 벌어지는 ‘강대강’ 대립국면에서 수동적으로 대응할 경우 북한의 대내외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는 전략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핵실험에 따른 대북제재가 장기화될수록 자신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 아래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한 것이다. 북한 지도부는 조기에 핵 능력을 집중 시현하고 국제사회가 부정할 수 없는 수준으로 핵무기 능력을 고도화해 미국 등 국제사회의 양보를 유도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에 대한 강력한 맞대응 의지를 내보임과 동시에 대북제재의 비실효성을 과시해 이를 무력화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6차 핵실험은 핵 개발 능력의 고도화를 이루기 위한 의도뿐 아니라 국제사회를 향한 다중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북한은 6차 핵실험을 통해 문재인 정부에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운전석을 김정은이 장악하고 있으며, 핵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은 북한의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김정은은 미국에 대해서도 결코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며, 북·미 대화에 머뭇거리다가는 재앙을 부를 수 있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추동하기 위한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 대해서도 핵 개발에 관한 한 누구도 북한을 설득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단지 북한을 지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점을 알리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북한은 6차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다지고 한국 사회에 대해선 안보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고도의 심리전을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 핵실험을 실시한 9월 3일은 북한 정권 창건일인 이른바 ‘9·9절’을 코앞에 둔 시점으로 ‘병진노선’의 성과를 과시하고 김정은 리더십을 부각함으로써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한 의도가 내포돼 있었다. 특히 갈수록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강도가 거세지자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와 정권의 내구성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체제 결속을 다지기 위한 핵실험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자, 남한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시현함으로써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을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핵 무력 확보를 위한 김정은의 폭주는 마치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기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은 ‘핵 동결→대화→핵 포기’로 요약되는 단계적 접근법에 기초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동결이 대화의 입구이고, 핵 시설과 핵 물질의 점진적 폐기에 이어 보유 중인 핵무기의 완전 폐기가 대화의 출구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이에 응할 경우 입구에서 출구로 빠져나갈 때까지의 과정마다 ‘보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에게 핵과 전쟁 위협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동참하라고 촉구해왔다. 지난 7월 초 문재인 대통령이 독일에서 발표한 이른바 ‘신(新)베를린 선언’에서는 그동안 북한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평화협정 체결까지 언급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성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의에 대해 김정은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응답해왔다. 김정은에게 핵 포기를 기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지 의문이 드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 이르는 김씨 왕조 3대에 걸친 핵 고집은 요지부동이다. 김일성이 생존한 당시인 1992년 처음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2002년 김정일 시대의 제2차 북핵 위기를 거쳐 현재의 김정은 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25년간이나 우여곡절을 경험했지만 김씨 왕조는 핵 무력 강화를 위해 일관되게 달려왔다. 반면 한국과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는 대화와 압박 전략을 다양하게 구사하며 북한의 핵 포기를 이끌어내고자 했지만 결국 북한의 핵 야욕을 꺾는 데 실패했다.

北 김씨 왕조의 핵 야욕 히스토리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위성사진. 왼쪽은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직후 사진이며 오른쪽은 올해 9월3일 6차 핵실험 직후다.
그렇다면 북한 김씨 왕조의 핵에 대한 야욕은 어떤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 왔을까. 우선 김일성이 한국전쟁 전후부터 사망하기 전까지 핵 개발과 관련해 언급했던 바를 살펴보면 미국의 핵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자위권으로서의 핵 개발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으로부터 핵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을 갖고 있던 김일성은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끝장이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에 최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김일성이 미국의 원자폭탄 사용에 대해 갖고 있던 위협감은 실로 대단했다. 1963년 10월 5일 김일성 군사대학 제7기 졸업식에서 그는 “우리에게는 원자폭탄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땅을 파고 들어가면 원자탄을 능히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전체 인민을 무장시키고 전국을 요새화해 놓으면 아무리 강대한 적(미국)이라도 함부로 접어들지 못한다”고 말할 정도로 핵무기 위협 대응책 마련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북한이 1955년 3월 내각 과학원 총회에서 ‘원자및핵 물리학연구소’ 설립을 결정하는 등 초기부터 원자력 개발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일부의 시각처럼 전후 경제 복구를 위해 필요한 과학기술 발전을 의도했다기보다 처음부터 군사적 대응을 위한 목적에서 원자력 개발에 착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김정일은 김일성과 마찬가지로 핵 개발에 대한 야욕을 지니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표명하곤 했다. 일례로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한반도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고 다만 자위적 차원에서 미국에 맞서야겠다는 것이며, 핵 문제가 해결되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도 허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미 같은 해 2월 10일 ‘핵보유 선언’을 한 상태라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유효하다고 말한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결국 1차 핵 위기가 최고조에 오른 1994년, 김일성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를 원한다”고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김정일이 집권하는 동안 두 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하면서도 계속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을 흘린 것은 이를 빌미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경제 원조를 얻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6자회담의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핵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의 핵에 대한 야욕과 집착은 아버지나 할아버지 때와 달리 더욱 집요한 가운데 가속화되고 있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 김정일의 뒤를 이어 집권하자마자 2012년 5월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면서 전문에 ‘핵보유국’을 못 박았고 국제사회를 향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도록 요구했다. 김정은은 집권 후 현재까지 네 차례의 추가 핵실험을 단행했으며, 단거리와 중거리 미사일 개발은 물론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에도 전력하고 있다. 한편 김정은은 2016년 3월 군부대 현지지도에서 “국가방위를 위해 실전 배비한(배치한) 핵탄두를 임의의 순간에 쏴버릴 수 있게 항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며 “이제는 적들에 대한 우리의 군사적 대응 방식을 선제공격적인 방식으로 모두 전환시킬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핵에 대한 김정은의 집착은 훨씬 강하며, 김정일·김일성 시대와 달리 고도화된 핵·미사일 확보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안보 위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반도의 안보 정세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향후 북핵 문제가 어떤 결말에 이르게 될지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역내 갈등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어서다. 북핵 문제에 대한 관련 국들의 접근법이나 입장에서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도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북핵 문제는 단기간 내 대타결 등의 해결점에 도달하지 못할 전망이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낮지만 현재의 북·미 간 대립이 지속, 악화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꾸준히 증대될 것이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대내외적으로 뚜렷한 반면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고,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 핵·미사일 능력은 체제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므로 체제 보장이 담보되지 않는 한 이를 지속적으로 고도화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결국 북핵 문제는 북한의 도발로 인한 역내 긴장 고조, 북한의 협상 제의, 이후 대화 국면에서 협상 결렬, 다시 북한의 도발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북핵 해결법은 복잡한 고차방정식


▎북한이 지난 9월3일 강행한 6차 핵실험은 남측이 외교안보 관료들을 당혹케 했다. 왼쪽부터 국회 긴급 현안 보고 및 질의, 또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 참석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명균 통일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서호 국가정보원장.
적어도 올해 말 또는 내년 초를 시점으로 한반도 상황을 전망하는 데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북한의 도발 양상이 점점 다양화되고 공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물론이고 SLBM 발사, 6차 핵실험에 이은 또 다른 형태의 핵실험 같은 다양한 카드를 상황에 따라 활용할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본과 미국 영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모험적 행동을 취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으로선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핵·미사일 관련 완성도를 제고하기 위한 의도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북한의 지속적 도발은 트럼프 행정부의 인내심을 시험하게 될 것이고, 결국 대북 압박의 강화와 더불어 대화로의 전환이든 아니면 군사적 옵션의 가시화 등 무언가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속도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점은 미국 정부의 ‘레드라인’에 근접하고 있을 뿐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로 하여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아울러 김정은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실전배치의 시점에 다가설수록 북·미 간의 ‘강대강’ 대립이 고조되고 한반도에서의 위기감 역시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북·미 관계의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다면 북한은 조만간 핵탄두 탑재 미사일 시험 발사와 함께 ICBM 실전배치를 완료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경우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강경 대응에 나서게 될 것이며, 미 행정부에서 ‘선제타격론’에 대한 검토를 본격화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한편 중국은 관련 당사국의 냉정을 강조하면서 안정적 ‘현상 관리’에 주력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대북정책 및 대한반도 정책의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미국의 무력충돌에 따른 연루 부담을 회피하고 싶고, 한반도에서의 무력충돌이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러나 한반도 상황이 악화되면서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적절한 역할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했다. 북한이 중국의 말을 예전처럼 잘 듣지 않고 있는데다 미국으로부터 북한 문제로 인한 일방적 압력을 받는 것이 달갑지 않고, 북핵 해결을 위해 ‘해결사’로 나섰을 때 감수해야만 하는 위험(risk)을 감당하기에도 결단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을 압박해 원유공급 중단 등 결정적인 대북제재에 동참시키려 하지만 중국은 절대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북핵 해결 등 한반도 문제를 두고 ‘대 타협’이나 ‘빅딜’ 가능성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등 강력한 무역제재로 위협과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6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중국이 찬성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대북제재는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 이익을 고려하면 “북한 정권의 안정이 비핵화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중국 지도부의 변함없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도발이 강화되더라도 중국은 북한에 얼굴을 붉힐 수 있지만 등을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김정은의 플랜A와 플랜B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9월4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 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한 긴급회의에서 니키 헤일리 주 유엔 미국대사(오른쪽)가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대사(왼쪽), 류제이 중국 대사(가운데)와 논의하고 있다.
북핵 문제의 결말을 예측하는 데 있어 북한은 미국이나 중국보다 더 중요한 변수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 대응해야 하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능력 확보에 따라 상황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도적 도발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적 선택과 정책은 우리의 의지와 크게 상관없이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이 가속화되고 도발행위가 고조될수록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강경하고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국 현 국면을 유지하는 가운데 대북 압박정책을 더 강하게 이어가면서(플랜A) 정세 판단에 따라 ‘선제타격’과 ‘대화전환’ 중에서 과감한 대북정책을 선택하는 경우(플랜B)로 상정 가능할 것이다. 플랜A의 길을 걷게 된다면 우리 정부도 기존의 대북 압박 기조에서 큰 변화 없이 공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가능성의 크고 적음을 떠나 북·미 관계 변화에 따라 시도될 미국의 ‘선제타격’과 ‘대화전환’ 가능성에 대해선 밀도 있는 분석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전략적 입장을 선제적으로 수립하고 국가 이익에 가장 근접한 방향으로 대응책을 준비할 수 있어서다.

우리에게 다가올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정말로 대북 군사적 옵션을 실행에 옮길 경우 과연 한국 정부에 사전동의를 구하거나 또는 논의의 과정을 거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우리 정부는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도 객관적이고 정확히 판단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및 군사적 옵션 사용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선제적 대응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따른 우리의 안보 환경은 10년 전과 너무나 다르게 변했다. 북한은 노무현 정부 때 1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당시 북한의 핵무장화는 오늘날과 다른 미완 상태였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선 지금,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됐고 핵을 탑재한 미사일의 실전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문재인 대통령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화보다 압박에 치중할 때다. 한반도의 안정과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김정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북한이 아파할 만한 새로운 강경책을 이끌어내야만 대북정책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

아울러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수단으로 전술핵 재배치와 같은 사안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면 마치 ‘꼴통 보수’처럼 비춰지거나 현실성 없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이제 한반도 안보 상황이 직면한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해졌고, 그만큼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절실해져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논의가 대내외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국가안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오래전에 사문화된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에 발목 잡히기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옵션과 대응 방안을 보다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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