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안보이슈] 못다한 자주국방의 꿈, 핵추진 잠수함 

박정희·노무현은 왜 핵잠수함에 집착했나 

박용한 북한학 박사,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박, 1970년대 잠수정 개발로 수중 무기체계 기반… 안보환경 변화 대응
노, 미국 정부에 알리지 않고 독자 비밀사업으로 추진하다 계획 새나가 실패


▎미 해군 핵추진 잠수함 미시건함이 지난 4월 칼빈슨 항공모함과 함께 한반도 해역으로 전개해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핵무기는 탑재하지 않았지만 특수부대를 침투시키는 장치를 달고 있다. / 사진:미 해군
대한민국 해군 핵잠수함 1호가 은밀하게 항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함장은 출항 전 비밀리에 ‘자폭’ 임무를 받았다. 이를 눈치 챈 부함장이 선상반란을 일으켜 잠수함을 장악한다. 이대로 순항할 수 있을까? 결국 일본 해상자위대가 쏜 어뢰를 맞고 침몰한다. 1999년 개봉한 영화 ‘유령’에 그려진 한국 핵잠수함이다. 한국이 옛 소련에 빌려줬던 차관을 잠수함으로 돌려받아 핵잠수함을 개발한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얘기다. 영화에 비춰진 한국은 핵잠수함 보유를 반대하는 주변국 눈치를 보다가 침몰시키기로 결정한다.

이처럼 극적으로 전개됐던 영화가 현실이 됐다. 2004년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 개발을 준비한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렸다. 결국 군 당국은 핵잠수함 계획을 포기했다. 불과 5년 전에 나왔던 영화 속 결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끝날 것 같았던 핵잠수함 보유 주장이 최근 또다시 나온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경남 진해시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제58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대양해군 건설에 많은 역량과 예산을 투입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속도를 높여 한반도 위기가 커졌기 때문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8월 30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북핵 위협에 대응해 핵잠수함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꺼냈다. 따라서 이번에 재점화된 핵잠수함 도입 논란이 어떤 결과로 끝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한국 최초 잠수함 사업은 1970년대 시동을 걸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1973년 시작한 ‘자주적 군사력 건설’로 속도를 냈다. 박 대통령이 자주국방을 내세우면서 잠수함에 관심을 둔 이유가 있다. 닉슨 독트린 이후 동북아 안보환경이 변했다. 데탕트 분위기가 한·미동맹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했다. 따라서 미군 정보력에만 기대고 있을 수 없었다. 잠수함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이다.

박정희 ‘자주적 군사력 건설’로 건조 시동


▎1975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해군 기동훈련 참관 중 미사일 발사 광경을 망원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박 대통령은 미사일 개발을 비롯한 자주국방 기틀 마련에 힘을 실었다.
당시는 잠수정 시험 운용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한국은 1970년대 초 소형 침투정 ‘비둘기’(배수량, 70t)를 이탈리아에서 들여와 북한 해안 침투작전에 투입했다. 그러나 비둘기는 모함에 실려 깊은 바다로 나간 뒤 북한 해안으로 침투하는 방식이라 한계가 있었다. 작전 성과를 얻기 어려웠다. 지금은 ‘갈매기’로 이름을 바꿔 정보사가 특수첩보활동에 쓰고 있다. 지난해 8월 정비 도중 폭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본격적인 잠수함 도입 사업은 박 대통령이 1974년 잠수함 5척 도입을 지시하면서다. 해군은 같은 해 독일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원 잠수함 과정에 장교 3명을 입학시켰다.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해서다. 여기서 얻은 설계·사업 추진 능력을 바탕으로 1980년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를 시작했다. 비록 잠수함으로 분류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작은 잠수정(150t)이지만 한국이 개발한 첫 수중 무기체계라 의미가 컸다. ‘돌고래’란 이름의 이 잠수정을 운용한 경험 덕분에 이후 도입하는 장보고급 잠수함 실전 배치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핵잠수함 개발을 준비했다. 같은 시기에 디젤 잠수함 도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핵잠수함 건조 계획도 그려볼 수 있었다. 한국이 1992년 독일에서 209급 잠수함을 도입하면서 여건이 마련됐다. 초도함인 장보고함은 독일 업체가 건조했지만 두 번째 이천함부터는 부품을 받아와 국내 제조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이 완성해 기술력을 축적했다.

209급 잠수함 총 9척을 도입하는 KSS-I 사업은 1990년에 시작해 2000년에 끝났다. 당초에는 209급 18척을 보유할 계획이었지만 9척은 성능을 높여 획득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2003년 제작에 들어간 214급 손원일함(1800t)은 209급 장보고함(1200t)보다 크다. 잠수함 규모가 커진 만큼 무장 능력도 키웠다. 올해 9월 7일 아홉 번째 214급 잠수함 신돌석함 진수식이 열렸다. 이로써 KSS-II 사업을 완료했다. 3000t 규모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KSS-III 사업은 이미 시작돼 첫 번째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다.

214급 잠수함은 공기 불요 추진 체계(AIP) 기관을 달아 스노클을 하지 않고도 2주 동안 수중 잠항이 가능하다. 스노클은 수면 가까이 올라와 디젤엔진을 가동하며 배기가스를 배출하고 해상 공기를 흡입해 축전지에 전기를 충전하는 원리다. 디젤 잠수함은 수중에서는 축전지에 모은 전기로 스크루를 돌려 앞으로 나아간다. 이처럼 214급 잠수함은 부상하지 않고도 작전할 수 있지만 209급은 하루 두 번 이상 스노클이 필요하다. 디젤 잠수함은 스노클 할 때 노출되는 순간이 가장 취약하다. 바다에 떠 있는 수상함이나 비행 중인 초계기가 쉽게 발견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한국 해군은 유사시 10초 만에 물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긴급 잠항 훈련을 반복한다.

참여정부 비밀 핵잠 건조 사업 ‘362’


▎2009년 4월 전략 핵 미사일을 탑재한 중국 핵 잠수함 ‘창정 6호’가 중국 해군 창설 60주년을 맞아 산둥성 칭다오 앞바다에서 열병식에 참여하고 있다.
본격적인 핵잠수함 도입은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됐다. 조영길 국방장관이 2003년 3월 해군참모총장에게 핵잠수함 건조 사업을 지시하면서다. 한국형 핵잠수함 건조 사업은 ‘362사업’으로 불렸다. 동맹국 미국과도 공유하지 않은 비밀사업이다. 국방부는 2003년 6월 2일 디젤 중형 잠수함을 도입한다는 기존 소요 사업을 핵잠수함으로 변경했다. 같은 날 노무현 대통령에게 핵잠수함 건조 계획도 승인받았다. 비밀 핵잠수함 사업 명칭에 ‘362’가 붙은 이유다.

해군은 조함단 아래 핵잠수함 전담부서 ‘362 사업단’을 설치했다. 잠수함 설계·건조·무장 등 관련 현안을 검토하고 작전요구성능(ROC)을 수립하는 조직이다. ‘362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업단장은 209급 잠수함 인수에 실무자로 참여했던 문근식 대령이 맡았다. 2007년부터 건조에 들어가 2012년 배치를 시작해 총 3척을 보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잠수함 설계를 주관하는 ADD 설계팀과 핵추진 기관을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팀도 가세하며 드림팀이 꾸려졌다. 그러나 사업단이 출범하고 불과 반년이 지난 2004년 1월 언론에 보도되자 국방부는 핵잠수함 개발을 부인하고 조직을 해체했다.

참여정부는 왜 핵잠수함 도입에 뛰어들었을까? 당시 화두로 떠오른 국방개혁 추진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의 군사적위협 대비에 기울었던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참여정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방목표에 특정한 세력을 주요한 위협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안보에 차질이 생긴다”며 “우리 군이 어떠한 전략을 갖고 위협에 대비하는지 노출된다”고 말했다. 하루 전인 19일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토론 중 누가 우리 적(敵)이냐를 놓고 당시 문재인·유승민 후보가 벌였던 논쟁을 설명하면서 나온 말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군사 대비태세를 특정 세력, 즉 북한에만 고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2004년 출간된 <국방백서 2004>에 따르면 2005~2009년도 전력투자사업 계획은 해상·상륙 전력 목표를 ‘제한된 연·근해 해상작전 수행’ 수준에서 ‘연·근해, 주요 해상 교통로 보호’로 확대했다.


▎1993년 실전 배치된 우리 해군 최초 잠수함인 장보고함 209급이 해상에서 이동하고 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한 ‘협력적 자주국방’에 따라 자위적 방위역량 건설이 추진됐다. ‘장기적으로 미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적정 수준의 첨단전력 확보를 추진한다’는 방향이다. 이런 개념은 군 구조 정비계획으로 구체화됐다. ▷독자적 감시·정찰 능력을 확충 ▷정보·조기경보 전력을 확보에 전력 증강 우선순위를 뒀다. 핵잠수함 개발도 자주국방과 맥을 같이 했다. 주변국 해양 전력이 날로 커지는 추세를 간파했던 전략이다.

당시 우려는 지금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중국은 핵잠수함을 개발해 실전 배치했고 핵미사일도 탑재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에서 펴낸 <밀리터리 발란스(Military Balance) 2017>에 따르면 중국은 핵잠수함 12척을 보유하고 있고, 이 중 4척에는 핵무기도 탑재한다. 중국은 여기에 총 6척의 항공모함까지 보유할 계획이다. 일본의 해양 전력도 만만치 않다. 미니 항공모함으로 불리는 대형 수송함을 3척 보유하고 있고 총 16척의 잠수함도 배치했다. 앞으로 잠수함 규모를 늘려 22척 체제를 유지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일본은 핵잠수함은 아니지만 4000t을 넘어서는 대형 디젤 잠수함을 운용한다. 핵잠수함 개발 기술도 이미 확보했다. 일본은 1992년 원자력으로 추진하는 화물선 무츠(MUTSU)를 시험 건조해 운용한 경험이 있다.

한국은 중국과 이어도를 중심으로 서해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두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다. 일본과도 독도를 비롯한 자원 갈등이 잠재한다. 해양 패권을 두고 언제라도 주변국과 마찰이 빗어질 수 있다. 해군 전력 증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나온 배경이다. 주변국에 대한 거부적 억제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세계 추세를 반영해 선제적 대응에 나선다는 전략도 반영됐다. 프랑스는 2009년 이후 모든 디젤 잠수함을 매각했다. 이에 앞서 영국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핵잠수함만 운용하고 있다. 브라질은 2023년까지 핵잠수함을 보유한다는 목표를 갖고 개발 중이다. 참여정부는 이런 조짐을 간파하고 먼저 움직였다.


▎해군의 첫 번째 214급 잠수함 ‘손원일함’이 2007년 진해기지에서 취역식을 하고 해상에서 이동하고 있다.
현재 핵잠수함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 운용하고 있다. 문근식 전 나대용 함장은 “핵잠수함의 소음이 크다는 지적이 있지만 초기 잠수함의 문제일 뿐 이제는 디젤 잠수함과 별 차이 없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물론 핵잠수함 건조 배경에는 북한 위협도 포함됐다. 북한은 2000년대 들어 다양한 비대칭 위협을 키우며 특히 수중 무기체계 규모를 키웠다. 상어급 잠수정만 보더라도 1990년대 중반 10척 수준이었으나 현재 32척에 이른다.

주변국 → 북한, 환경 바뀌었다


▎한국 디젤 잠수함은 공간이 매우 좁아 승조원이 서로 돌아가며 침상을 사용한다. 작전기간 동안 창문 없고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잠수함 근무 지원자가 항상 부족하다.
북한 위협 수준은 2003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때는 잠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잠수함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직접적인 북한 위협을 막는 수단으로 주목 받는다. 북한은 러시아에서 들여온 골프급 잠수함을 역설계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쏠 수 있는 신포급 일명 고래급(2000t) 잠수함을 이미 건조했다. 북한은 앞으로 독자적인 잠수함을 추가로 건조해 배치한다는 전략이다. 고체연료 로켓 실험은 이미 여러 차례 성공했다. 여기에 핵탄두를 탑재할 경우 매우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 북한은 9월 3일 6차 핵실험을 끝낸 뒤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핵폭탄 모형을 공개해 소형화 기술도 과시했다. SLBM에 이런 핵무기를 탑재할 때 기술적 어려움은 별로 없어 보인다. 결국 남은 과제는 미사일과 핵무기 기술이 아니라 이를 운반할 이동발사대(TEL)와 잠수함을 얼마나 만들어 배치하는가다.

북한 위협을 막고 도발을 억제하는 데 핵잠수함이 필요한 이유는 디젤 잠수함 한계 때문이다. 214급 잠수함은 AIP 덕분에 2주간 충전을 위해 스노클을 하지 않고도 작전할 수 있다. 그러나 저속으로 움직이거나 멈춰 있을 때만 가능하다. 적 잠수함이 시속 6노트(11㎞)로 이동하면 축전지 전기만으로 쫓아갈 수 없다. 문 전 함장은 “잠수함은 적 탐지를 피해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며 “음파 탐지를 피해 멈췄다가 고속으로 추적하는 임무를 반복하면 10시간 만에 축전지 전기를 모두 쓴다”고 말했다. 이때부터는 하루 두 번 이상 스노클 하며 움직여야 한다. 신포 앞바다 깊은 곳에 멈춰있다가는 북한 잠수함을 놓칠 수 있다. 북한이 핵잠수함을 개발하면 이런 추적 임무는 시도조차 할 수 없다. 핵잠수함은 디젤 잠수함보다 두 배 빠른 속도(시속 40노트·74㎞/h)로 계속 움직일 수 있다.

핵잠수함으로 북핵 위협에 대응해 ‘공포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 핵잠수함은 부상하지 않고도 수중 작전을 이어갈 수 있어서다. 식량 등 보급 물자가 떨어져 기지로 돌아올 때까지 수면 위로 올라올 필요가 없다.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핵잠수함이 바다에 숨어 있으면 북한은 쉽게 핵무기를 쓸 수 없다. 보복 공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록 북한이 핵공격에 성공해 한국 주요 군사기지에 큰 피해를 입혀도 핵잠수함이 올라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냉전 시기에 미·소 간 핵무기 경쟁이 치열했지만 쉽게 상대를 공격하지 못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2차 공격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누구도 선제 공격을 못한다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 의혹, 이지스함 선호


▎문재인 대통령은 휴가 중이던 지난 8월 3일 경남 진해 잠수함사령부를 찾아 214급 안중근함에도 승선했다.
한국은 오래전 잠수함 발사 순항미사일(SLCM) 개발을 시작했다. ‘천룡’(현무3-C)은 국내에서 개발한 SLCM이다. 미군이 운용하는 토마호크 미사일과 비슷하다. 잠수함에서 발사돼 1000㎞를 비행한 뒤 정확하게 목표물을 타격한다. 탄도미사일처럼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장점도 많다. 초저공으로 비행하면서 레이더 탐지를 피하고 지형 입체사진도 분석하며 날아가 정확도를 높인다. 북한이 핵공격을 시작하더라도 핵잠수함에서 김정은 집무실로 천룡을 쏠 수 있다. 규모를 키운 잠수함에 탄두 무게를 늘린 탄도미사일(SLBM)까지 탑재하면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과거 핵잠수함 사업이 실패한 원인부터 돌아봐야 한다. 2004년 핵잠수함 계획이 드러나자 군 당국은 원자로를 연구하던 기초 응용연구 조직도 문을 닫았다. 한국은 과거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기 때문에 북한 못지않은 사찰 대상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같은 해 9월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찾았다. 당시 사찰은 핵잠수함 때문에 이루어지진 않았다. 2002년 한국이 우라늄 0.2g축출 실험했던 데 대한 사찰이었다. 군 당국이 핵잠수함 개발을 부인했음에도 국제사회는 의심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한국이 핵물질을 전용해 핵잠수함뿐 아니라 핵무기도 만들까 봐 의심했다.

핵잠수함 개발이 드러난 뒤 주변국 인식에도 온도차가 있었다. 미국이 정부와 군으로 비공식적으로 전달한 의견은 “한국은 이런 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거나 “북한 위협을 막지 않고 주변국 위협을 신경 쓸 정도로 한가롭냐”며 질책하기도 했다. 결국 미국 입장은 “주변국 둘러보지 말고 대북 전력에 집중하고, 전략적 임무는 미군에 맡겨두라”는 말로 풀이된다. 사실 미국이 한국 핵잠수함을 반대했던 입장은 낯설지 않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잠수함 도입에 나섰던 그때도 미국은 반대했다. 한국이 독일 잠수함을 들여온 것도 미국이 반대해서 찾은 대안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핵잠수함을 도입하지 못한 이유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희상 전 대통령 국방보좌관은 “한국 정부가 의지만 가지고 추진했으면 가능했다”면서도 “2004년 1월 청와대를 나올 때까지 핵잠수함 개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했다. 청와대 국방보좌관도 모를 정도로 비밀스럽게 사업이 진행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정책을 결정해야 할 핵심 당국자들 간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는 말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대형 사업을 해군에만 맡겨뒀기 때문이다.

당시 사업단장을 맡았던 문근식 예비역 대령은 “해군 자체 예산으로 핵잠수함 개발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핵 잠수함은 건조비가 척당 1조2000억원 이상 소요되는 대규모 사업이다. 처음부터 해군이 기존 예산을 쪼개서 사업을 진행하기에는 무리였다. 해군 안에서도 불만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이지스함과 같은 수상함을 선호했던 세력과 충돌이 불가피했다. 해군 입장에서는 제살을 깎는 고충이라 타협점을 찾기 어려웠다. 해군 출신 장관이 들어서자 더 큰 어려움이 있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윤광웅 국방보좌관이 2004년 7월 국방부 장관에 취임했지만 “핵잠수함 왜 만들려고 하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고 군 관계자는 말했다. 당시 합동참모 본부에서 군사력 건설 사업을 담당했던 고위 관계자도 “핵잠수함 사업이 좌초된 것은 이지스함을 선호했던 해군 선택”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 최대 걸림돌은 국방예산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2016년 4월 전략잠수함 탄도탄 수중시험발사를 참관했다. 북한 SLBM 발사관 2∼3기를 갖추고 장시간 잠행이 가능한 신형 잠수함 개발 완성단계라고 <도쿄신문>이 9월 14일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핵잠수함 도입에 나설 경우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한국은 핵잠수함 건조 능력은 이미 갖춰 기술적 문제는 없다. 잠수함 건조 능력은 두 번의 잠수함 사업을 하면서 터득했다. 독자 기술로 3000t급 잠수함을 건조하고 있다. 여기서 규모를 더 키울 때 큰 어려움은 없다. 핵심은 잠수함에 탑재하는 원자로다. 여기에는 ▷소형 원자로 개발 능력 ▷한미 원자력협정 위반 여부 등 두 가지 쟁점이 남는다.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모 대학 연구팀과 한국원자력 연구원이 옛 소련에서 입수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일체식 스마트(SMART) 원자로 개발을 시작했다. 한국은 바닷물을 식수로 바꾸는 해수담수화 기술을 갖고 있는데 원자로 개발에서 파생된 일부분이다. 한 관계자는 “핵잠수함용 원자로 기본설계는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핵연료 문제는 다소 논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핵잠수함 핵연료는 한·미 원자력협정 위배”라며 “미국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라늄 농축을 20% 수준 이하로 낮추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럴 경우 8년마다 연료를 교체하고 출력이 줄어드는 한계는 있다.

주변국은 한국 핵잠수함 도입을 어떻게 볼까. 미국은 핵잠수함이 필요한 임무는 미군 전략 자산으로 해결하라며 동맹군 역할 분담을 강조한다. 반면 “한국이 결정할 사항이고 일본이 딱히 뭐라고 말할 것은 아니다.”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 전 일본 방위성 대신은 9월 6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실 핵잠수함 도입 걸림돌은 내부에 있다. 바로 핵무기만큼 무서운 돈이다.

국방부 국방개혁실장을 지낸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핵잠수함 도입이 필요하다”면서도 “예산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 탄도미사일을 막아 낼 해군 SM-3 예산이 더 급하다”고 했다.

사실 한국 이지스함은 미사일 없는 빈 깡통이다. 예산이 부족해 일단 군함만 도입했다. 첨단 레이더를 달아 잘 보지만 정작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할 무기가 없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해군 예산으로 추진하면 다른 해군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제로섬게임이다. 예산 우선 순위를 정할 때 핵잠수함이 밀릴 수 있다. 국방예산이 필요한 분야는 군 전체를 보더라도 정찰위성 도입부터 병사 월급까지 다양하다. 마침 문 대통령은 8월 28일 군 구조개혁을 강조하며 막대한 국방비를 투입하고도 효율적인 군대를 갖추지 못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군사력 건설계획을 재검토하고 국방예산을 뜯어 고쳐보자는 얘기다. 군 관계자는 “육군에 현대화된 전차 1600대가 있지만 100대를 추가 도입하려 1조 원을 투입한다”며 “국방개혁과 소요사업 재검토를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핵잠수함 도입 성패는 군 구조 및 예산 개혁을 통한 소위 말하는 ‘적폐청산’에 달렸다.

- 박용한 북한학 박사, 중앙일보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park.yonghan@joongang.co.kr

201710호 (2017.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