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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의 일자리정책 고언 

“사회적 비용보다 사회적 편익이 더 커야” 

최중경
임금 오르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경제 원리 존중이 기본… 예산 구조조정, 규제 철폐, 미래산업 투자 등 각론에서 출발하자

▎지난 8월 KDI와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열린 ‘일자리 정부 100일 성과와 향후 과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노동정책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2017년 8월 청년실업률이 1999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인 9.4%를 기록했다. 청년실업으로 대변되는 일자리 부족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모두를 우울하게 만든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는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산업기반이 확충되고 일자리도 크게 늘어났다. 일자리가 늘어나니 고교 이상 졸업자들이 취직할 곳이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시장 개방의 폭이 커짐에 따라 승자독식(winner-take-all)으로 특징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영향권에 들었다. 투자 결정이 신중해지면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졌다. 또 경제의 일자리 창출능력이 줄어드는 데다, IT·로봇 등 기술발전에 따라 사람 손으로 하는 작업이 크게 줄면서 기존의 일자리까지 없어지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1995년 <노동의 종말(The End of Work)>에서 “세계시장과 생산자동화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노동자가 거의 없는 경제로 향하고 있다”고 예언했다. 한국경제도 그가 예언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갈등요인이 축적돼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어렵다. 정치인들과 관료들이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이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일자리 수를 초과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자리의 총량을 끌어올리자면 일자리를 최대한 창출하는 동시에 일자리 감소를 최소화해야 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새 기술 개발로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것이지만, 말이 쉽지 신기술 개발과 상업화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신기술 상업화화로 기업이 발전하는 길이 너무나 험해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지나야 한다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IT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속도가 가히 폭발적이다. 항공기 탑승권을 기계가 자동 발급함으로써 카운터 사무직원의 숫자가 큰 폭으로 줄었고, 탑승객 화물을 취급하는 직원들이 공항 일자리의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북유럽의 한 공항은 화물에 붙이는 인식표(Tag)를 승객이 기계에서 직접 뽑도록 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이 낯설기만 했던 필자는 다른 승객의 도움을 청하는 등 곤혹스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외국의 대형 잡화점의 경우, 무인 계산대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매장 직원 수가 절반 아래로 줄어들기도 했다. 미국 북버지니아의 한 대형 편의점에서는 무인계산대의 출현으로 26명이었던 직원이 11명으로 줄어들었는데 남은 직원 대부분은 물류 담당(짐꾼)이었던 기억이 난다.

사회적 합의로 일자리 급격한 감소 막을 때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참모진에게 일자리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AI(인공지능)의 출현이 인류사회를 파괴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언까지 나타난 지금, 일자리정책의 중심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쪽에서 일자리 감소를 막는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합당하다. AI 규제를 통한 일자리 감소 방지는 일정부분 사회적 합의에 의한 실행이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특히 AI가 적용됨으로써 평범한 서민 계층의 비교적 단순한 일자리가 감소하고, 그 희생 위에 AI를 적용한 회사의 주주들이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면 결코 시장원리, 자유기업 운운하며 방관할 일이 아니다. AI를 적용해 국가 기간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거나, 국군의 전투능력이 향상되거나, 전체 국민의 복지수준이 올라가는 등 공공의 이익에 부합되는 경우는 예외다. 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업무에 적용되는 AI규제는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무슨 망발이냐고 비난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주유 직원의 일자리 확보 차원에서 셀프주유소를 금하는 미국 뉴저지주 사례에 비춰보면 가치 선택의 문제이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극단적으로 볼 때 실업자가 넘치는 환경에서 주유 비용 조금 낮추겠다고 셀프주유하는 것보다는 주유 직원을 두고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인간적이며 동시에 경제효율을 유지하는 길이다.

취약한 노동계층을 보호하고자 최저 임금을 올리고, 통상 임금의 범위를 넓히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인본주의 관점에서 볼 때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경제문제는 나눠가질 파이의 크기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몫을 나눠 갖는 상대방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인본주의적 정책의 효과가 달라진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참여자들의 이기심의 정도에 따라 인본주의적 정책의 효과가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돈을 많이 버는 기업주가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호응해 임금을 올려준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임금을 올리는 대신 고용인원을 줄여 본인의 몫을 지키고자 한다면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기본적으로 한계선상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기업주 입장에선 최저임금을 올리고 고용도 유지하고픈 마음이 있어도 현실적으로는 기업의 생존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고용을 줄여야 한다. 최저임금제도의 정서적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조심성을 발휘해야 한다.

예산배분 방식 바꾸면 일자리 는다


▎올 8월 청년실업률이 1999년 8월 이후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9월 대전 여성 취업·창업 박람회에 몰린 구직자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도 결국 임금수준의 차이를 줄이겠다는 목표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정규직 전환은 임금상승을 의미한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하는 고용감소 효과를 피해갈 수 없다. 과거 비정규직 2년 후 정규직으로 의무 전환토록 한 정책은 비정규직이 2년 후 해고돼 여러 직장을 전전해야 하는 정반대의 효과를 냈던 역사가 있다. 이에 비춰볼 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지 궁금한 동시에 걱정이 앞선다.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도 사법부가 내린 결론에 따라 임금수준의 급격한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사회정의 실현이 경제공동체의 붕괴를 감수할 수 있는 정도의 지고지선적 가치인지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예산을 써서 일자리를 늘리는 경우 세금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호응을 얻기도 어렵고, 재정 팽창에 의한 구축(crowding-out)효과로 인해 민간경제의 위축 등 경제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예산 지출 구조를 바꿈으로써 예산 중립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길이 있다. 무슨 요술방망이 얘기인가 의심이 들겠지만 예산비목 중 인건비로 전환이 가능한 예가 여럿 있다.

우선 연구개발(R&D)비를 연구 기자재 구입에 투입하는 비중을 줄이고 인건비 비중을 늘리면 연구개발 부문에 일자리가 생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구인력을 신규 채용하는 대신 연구 기자재를 구입하는 걸 선호하는데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학식으로 무장된 신규 연구인력이 지속적으로 유입돼야 연구개발 능력이 확충된다. 연구인력 노쇠화를 방치하면서 첨단 연구 기자재만 들여오면 무슨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 기자재 도입에 방점을 찍는다면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어떤 고리가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재해관리체계의 변경을 통해서도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먼저 태풍·장마로 인한 자연재해, 구제역, 조류독감(Avian Influenza) 등의 예방활동을 강화해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여지를 통계학적으로 계산한다. 이어 예방체제 강화와 함께 예방인력을 늘리면 전체적으로 비용증가 없이 재해복구비용을 인건비로 전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복지예산의 구조조정을 통해서도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부잣집 자식에게까지 무료급식을 하느라 과다 책정된 급식예산을 대폭 줄여 교사 채용 인건비 예산으로 전환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임용고시에 합격하고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모순과 교육현장의 인력부족 현상을 동시에 해결하면서도 비용증가는 생기지 않는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 밥 한 끼 편하게 먹게 하자는데 왜 쩨쩨하게 구느냐?”고 탓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학생을 매일 밥 한 끼 먹이는 데 결코 쩨쩨한 예산이 드는 게 아니라 연간으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다. 밥 한 끼 편하게 먹이는 다른 방법이 정녕 없지는 않을 것이다. 동사무소가 지급하는 급식바우처를 무상급식 대상 학생의 보호자에게 보내거나, 아예 학교로 직송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규제완화가 아닌 규제철폐의 각오로 임해야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원격 진료와 영리병원 추진 정책은 대한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큰 반발을 샀다.
소득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복지혜택도 적정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꼭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한해 제공하고, 절약된 예산으로는 사회복지사 채용을 늘리거나 사회적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게 낫다. 진짜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도 높이고 일자리도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본다. 왜 부자에게도 복지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진지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처음 규제완화가 논의될 때 여러 가지 변칙적 접근이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허가제도를 신고제도로 바꾸면서도 사실상 행정창구에서는 허가제도와 동일하게 운영하는 것이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제도 변경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오히려 더 불편해지고 행정 만족도는 떨어졌다.

중앙정부의 허가권을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 것도 눈에 띈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중앙정부의 허가를 받으나,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으나 허가절차를 거치기는 마찬가지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1개 중앙부처가 담당하던 업무가 여러 지방자치단체로 나눠지다 보니 절차가 더 복잡해지고 까다로워질 소지가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별로 상이한 잣대를 들이댈 수 있어 오히려 더 불편해진 측면도 없지 않았다. 정부의 인가권을 감독원 등 중간 감독기관에 위임한 경우도 비슷한 결과를 냈다. 어떤 경우에는 사무관 1인이 담당하던 업무를 10명 정원의 1개과가 담당함으로써 더 세세한 자료를 요구하고 허가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는 예도 목격됐다.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이러한 변칙을 허용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 규제강화로 둔갑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규제는 그대로 두든지 없애든지 해야 하며, 중간 지대를 허용하면 ‘거짓 규제완화(pseudo-deregulation)’로 귀결된다. 미국이 농업국가로 출발한지 불과 70여 년 만에 세계 제일의 산업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기업제도(Free Enterprise)를 국시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동업자 조합, 왕실의 기술규제가 엄격했던 유럽을 떠나 많은 기술이민이 미국으로 유입되고, 기술이민이 새로운 사업을 일궈낸 것이다. 규제완화를 통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면 일자리가 생겨나게 돼 있다. 규제철폐의 각오로 규제체계 전반을 면밀히 검토해 꼭 필요한 규제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목록(Negative List)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규제를 보면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 돌보듯 하는 경우가 많다. 친절이 지나치면 오히려 불편하고 부담이 되듯 국민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을 정부가 나서서 일일이 지도하고 간섭하면 불편만 가중된다.

발생 가능성이 낮고 파급효과가 작은 오차 때문에 규제체계를 복잡하게 운용하면 사회적 비용은 더 커지게 된다. 일부 잘못된 상황은 제도운영을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일부 잘못된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광범위한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을 때는 규제해야 하겠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가부장적 규제체계를 자기책임의 원칙이 존중되는 규제체계로 바꿔야 한다.

대한민국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다. 특히 수술 분야는 독보적이다. 한국의 의료수준이 아직 낮았던 시절에도 한국 부자가 미국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다가 암 부위를 발견하면 수술은 한국 의사에게 맡기라고 할 정도였다. 우리나라 성형외과에 외국인 고객이 많이 찾아오는 이유다.

최근 싱가포르, 방콕이 중동, 중국의 의료관광객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규제도 적고 편하기 때문이다. 의료수준으로 보면 한국이 한수 위라고 할 수 있는데도 서울이 싱가포르, 방콕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위에 있는 이유는 불합리한 규제 때문이다. 병원·호텔·관광회사·공연단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여서 외국인 환자들을 편안하게 수용하고 한국 문화도 즐길 수 있는 체제를 만들면 많은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

일이 지금까지 잘 풀리지 않은 이유는 경제관료들이 프레임 설정을 잘못한 데 기인하는 바도 있다. 의료민영화, 영리의료법인 등으로 포장된 정책이 발표되자 진보진영에서 ‘가난하면 병원에도 가지 말라는 것이냐’고 반발하면서 일이 꼬였고 대치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의료복합산업의 수출산업화’라는 프레임으로 접근하고 국민개보험제도에 입각한 의료서비스가 계속 유지된다는 확신을 주었으면 이미 서울은 의료관광객이 넘쳐나고 많은 젊은이에게 그럴 듯한 일자리를 주었을 것이다. 실로 아쉽다. 경제 관료들이 미국식 의료시스템을 염두에 둔 것 같은데 미국의 의료보험은 민영화돼 있고 우리는 공영방식의 국민개보험제도여서 미국시스템을 이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다. 안 맞는 옷을 입으려 하다 보니 불필요한 저항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경제정책 담당자가 논리뿐 아니라 감성도 잘 다루어야 하고 정치적 감각도 필요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싱크탱크 활성화로 인문계 일자리 창출


▎보호안경을 쓰고 개기 일식을 관측하는 인도의 승려들. 인도는 화성탐사선을 발사한 우주기술 강국이다.
우리는 그동안 외교는 외교관들이 알아서 잘하고 국방은 군인들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그러나 외교관 순혈주의와 군인 순혈주의가 적잖은 왜곡을 낳고 있고 외교정책과 국방정책이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 한·일, 한·중, 한·미 관계가 모두 삐걱거리는 전대미문의 상황과 만천하에 드러난 초라한 군사역량의 현주소는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 계기가 됐다.

외교관 순혈주의와 군인 순혈주의를 타파하자는 것은 아니다. 아직 이들을 대체할 만한 민간인 전문인력이 양성돼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견제와 균형을 통한 정상화를 위해 안보 전문 싱크탱크를 많이 만들어 차분하게 외교전략, 국방전략 그리고 둘을 모두 아우르는 국가대전략(Grand strategy)을 연구하고 안보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집단을 만들어야 한다. 싱크탱크가 활성화돼 전략토론이 활발히 이뤄지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설프게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느라 판을 망가뜨리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인문학을 전공한 젊은이들에게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다.

지난 역사의 굴곡을 분석해 인과관계를 정립하고 교훈을 도출하는 토론도 활성화돼야 한다. 19세기 조선 붕괴의 역사를 선악논리로 설명하려 들지 말고 인과관계로 분석해야 후세에게 전달할 교훈이 생긴다. ‘잔악한 일본이 선량한 조선을 짓밟았다’는 설명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일본이 어떻게 강해졌는지? 일본이 강해지는 동안 조선을 무엇을 했는지? 왜 그랬는지? 치열하게 토론해야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는다. 역사 연구를 위한 싱크탱크도 필요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경제제도, 사회제도, 군사제도, 외교제도를 철저히 연구해야 한다. 15세기 세계 최선진국 반열에 있던 조선이 400년 만에 세계 최빈국으로, 식민지로 몰락한 이유를 철저히 분석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 싱크탱크는 민간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의 경우 65만 명의 기부자가 내는 9000만 달러 내외의 연간 예산을 가지고 운영된다. 기부문화가 활성화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민간기부금이 활성화될 때까지 정부예산에서 싱크탱크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

1961년 러시아 유인 우주선의 성공적 비행을 본 마오쩌둥 당시 중국 주석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우리는 개념도 모르는 우주선이 존재한다면 언제 다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우주선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갈하곤 중국 전역의 과학영재를 모아 우주선 부대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42년 후 중국은 자체기술로 신저우 유인우주선 발사에 성공했다. 인도도 2014년 중국보다 앞서 화성탐사선 망갈리안을 쏘아 올리는 쾌거를 거뒀다.

1960년대에는 한국·중국·인도 모두 비슷한 수준에 있었는데 이제 두 나라는 격이 다른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 것이다. 길게 보지 못한 과거의 리더십을 탓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본격적으로 우주산업에 진출해야 한다.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다. 연구인력, 실행인력 등 당장에는 국가예산이 투입돼야 하겠지만 우주선 제작 성공의 긴 여정에서 많은 관련 기술들이 산업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우주선 기술이 첨단 군사기술과 맥이 닿아 있기 때문에 군사대국으로의 길도 활짝 열리게 될 것이다.

길게 보고 우주산업 진출해야

우주선 프로젝트는 적어도 30년 이상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정권교체에 관계없이 정진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제도적 틀과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필수적이다. 대한민국이 우주산업에서 뒤쳐지는 한 영원히 2류 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젠가 지구에 큰 재앙이 닥쳐왔을 때 우주선 기술이 없는 민족은 지구와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우주선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는 과업은 결코 쉽지 않다. 냉정하게 보면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일자리를 늘리고 또 지키기 위해서는 쉬운 길을 선택해선 안 된다. 포퓰리즘식 접근은 더더욱 곤란하다. 치열한 고민을 해야 하고 미래의 대한민국 모습을 설계하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일자리를 늘려주겠다는 약속은 귀중한 약속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일인데 하지 않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왜 못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모든 작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독도문제 연구, 중국의 고구려역사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고대사 연구는 국가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반드시 활성화돼야 한다. 민간이 주도하는 관련 연구가 미흡해 국가 예산을 들인다면 모든 국민이 박수를 치고 기꺼이 세금을 더 낼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산업인데, 아직 시작도 못하거나 발전 속도가 느리다면 국가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시작해야 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보다 사회적 편익이 더 커야 한다는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 또 가급적 세금을 쓰지 않으면서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차근차근 늘려나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 국민도 인내심을 갖고 호응하며 종국적으로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 최중경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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