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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한반도 위기와 美 군수산업 

무력 충돌은 최대 호황을 부른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한국 수요는 물론 일본의 무기 수입도 기하급수적 증가… 미국 첨단무기는 모든 나라가 원하는 안전보장 상품

▎미국 텍사스 포트워스시 록히드마틴 공장에서 F-35 전투기 조립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 사진제공·록히드마틴
레드 라인은 이미 넘어섰다. 북핵 문제다. 양치기 소년의 비명소리는 1950년 한국전쟁 이래 거의 70여 년간 지속돼 왔다. 산전수전 다 겪은 관록 때문이겠지만, ‘설마’로 받아들이려는 한국인도 적지 않은 듯하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번에는 다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괌 공격 발언, 수소폭탄 실험, 전자기펄스(EMP) 공격 엄포로 이어지는 김정은 북한 노동위원장의 광기는 안보·정치·경제 모든 차원에 걸친 게임 체인저에 해당된다. 한국만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미국, 현해탄 넘어 일본이 한층 더 난리다. 자국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간주한다. 뒤늦게 대응에 나서는 한국 정부지만, 미·일 정상은 이미 북한 공격을 전제로 한 세부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현재 상황이 구한말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2017년 가을의 현실은 ‘훨씬’ 심각하다. 아무리 어두웠던 120년 전 역사지만, 10만~100만 단위 인구가 한순간 사라질 만큼 급박하지는 않았다. 북핵의 살상력 축소해석에 급급한 한국 분위기와 달리, 미국·일본에서 발표되는 한반도 내 핵 피해 추정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2000만 인구의 수도권이 대재앙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준하는 피해, 히로시마 핵 피해의 10배 이상의 파괴력과 같은 ‘최후의 묵시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 해군이 지난 7월 최초로 실전 배치된 레이저무기 시험발사 장면을 공개했다. / 사진· 연합뉴스
세상사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음과 양, 지킬과 하이드는 공존한다. 벼랑끝 상황이지만, 거꾸로 박수를 치면서 한반도 추락을 학수고대하는 곳도 있다. ‘암 인더스트리(Arm Industry)’, 즉 군수산업은 그 같은 영역에 들어가는 대표주자다. 북핵 위기가 가속화할수록 군수산업은 활황세에 들어간다.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질 경우 김정은을 초토화 시킬 엄청난 화력이 필요하다. 한·미 동맹에 의해 미국의 지원이 이뤄지겠지만, 부분적일 뿐이다. 한국 주도로 작전을 수행하자면 독자운용이 가능한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핵에 맞설 만한 첨단무기와 방어망이 필요하다.

한반도 불행이 군수산업의 행복이 되는 것은 김정은의 핵무기 실험 직후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7월 4일 북한 ICBM 실험 이후 미국 주식시장 내 군수산업 주가 대부분이 급등한다. 군수산업 최고봉에 선 록히드마틴은 ICBM 실험 직전인 7월 3일 278.92달러에서 9월 7일 302.35 달러로 치솟는다. 불과 두 달여 만에 10% 가까이 상승했다. 록히드는 10억 달러짜리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제조업체다. 북핵 대응 무기 최첨단에 선 기업이다. 따라서 북핵 위협이 전 세계로 울려 퍼질수록 록히드 주가도 상승한다.

핵실험 이후 사드 제조사 록히드마틴 주가 수직상승


▎고도 40~150㎞에서 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미국의 사드 시험발사 장면. / 사진제공·록히드마틴
군수산업은 음모론에 기초한, 제국주의 논리로 풀이되기 쉽다. 반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한국 외교·안보가 미국 군수산업 수하에 있다고 비난한다. 미국 무기에 의존하는 한, 자주외교는 물론 자주국방, 나아가 북한과의 대립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통일의 적이 미국판 군수산업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군수산업과 정치와의 유착 때문에 언제든지 한반도가 전쟁터로 변할 수 있다는 주장도 편다. 미국의 글로벌 안보정책이 군수산업 이익과 함수관계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황당한 발상만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반미·친미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상식으로 풀이하면 이해될 논리다.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공급이 늘어나면서 수요도 한층 확산될 수 있다. 사실 반미·친미, 나아가 음모론 여부는 수요와 공급 가운데 어디를 먼저 보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닭과 달걀의 문제다. 공급을 주(主)로 하면서 수요를 종(從)으로 할 경우 반미, 음모론에 기초한 분석이 된다. 미국 첨단무기가 한국에 배치되면서 북을 자극하고, 결과적으로 핵을 통한 갈등으로 한반도 전체가 위기라는 식의 판단이다. 반대로 수요에 의해 공급이 결정된다고 풀이한다면 단순한 자유시장 경제논리에 그친다. 북이 핵으로 위협을 하니까 자구책으로 첨단무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위기가 점증한다는 주장이다.

군수산업의 의미를 가늠할 때, 필자는 반미론이나 음모론보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자유시장 경제논리에 더 큰 방점을 두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무기는 원한다고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첨단무기는 전 세계 모두가 원하는 안전보장 상품이다. 당연하지만, 수요가 넘치기에 가격도 높다. 그러나 미국은 무기수출, 특히 첨단무기의 해외수출을 엄격히 제한한다. 정부허가가 필요하다. 이유는 첨단무기를 통해 지역 내 안보구도를 훼손할 수 있고, 나아가 거꾸로 미국을 공격하거나 자유진영의 이익에 반하는 무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군수산업에 전세계가 매달리는 이유


▎주한미군이 한반도 유사시 대북 정밀타격 임무에 동원될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재즘(JASSM)’을 전격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연합뉴스
첨단무기만이 아니라 소총의 총알, 대포의 포탄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갖고 있는 탄약 비축량은 기껏해야 전쟁 1주일치 정도에 그친다고 알려져 있다. 이웃 일본은 3일치다. 한·일 모두 미국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국산도 있지만, 대부분의 탄약은 수입에 의존한다. 탄약을 사고 싶다고 왕창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미동맹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할 부분은 소총의 실탄이다. 미국 첨단기술의 해외유출도 무기 수출 제한의 이유다. 따라서 깊은 신뢰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의 경우 첨단무기를 구입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 두 개의 미국 첨단무기 구입을 줄기차게 요청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다. 지상 이지함에 해당되는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와 지구 전체를 오가며 활용될 수 있는 대형무인정찰기 ‘글로벌 호크(Globalhawk)’가 주인공이다. 북핵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이들 두 무기에 대한 해외 판매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지스 어쇼어는 한기에 8억 달러로 보통 두 개를 한 세트로 해서 판매된다. 글로벌 호크는 1기에 5억 달러로 3대가 기본 편대다. 핵 방어 체계와 관련해 볼 때, 이지스 어쇼어는 일본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요청하는 첨단무기다. 미국 하와이에서 운용되고 있으며, 폴란드와 루마니아가 지난해 자국 내 반입을 ‘허락’ 받은 상태다. 러시아가 핵공격에 나설 경우에 대비한 방어체계다. 폴란드,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어 제공이 결정될 당시 유럽 신문·방송은 긴급 톱뉴스로 다뤘다. 문재인 정부의 중국에 대한 ‘특별한 고려’를 감안할 때 한국정부가 이지스 어쇼어 구입을 요청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분명한 것은 원한다고 해서 바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죽음의 비즈니스 군수산업은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가 판매여부를 결정하는 독과점 상품이기도 하다.

미국 군수산업은 미국이 갖고 있는 글로벌 경쟁력의 최상위 영역에 해당된다. 현재 미국에서 생산되는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티셔츠는 단 한 장도 없다. 의류만이 아니라 신발·장난감·가구·가전제품 대부분이 수입된다. 군수산업은 미국이 가진 글로벌 경쟁력의 간판이자 자랑이다. 20세기말부터 시작된 IT혁명은 군수산업으로 연결돼, 보다 정확하고 빠르며 엄청난 첨단무기로 진화되고 있다. 2012년 전 세계에 수출된 한국 라면 총액은 2억622만 달러다. 신라면으로 대표되는 한국 라면은 한류의 연장선에서 세계에 퍼져가고 있다. 한국은 내년부터 2021년까지 F-35A 40기를 구입할 예정이다. 지원장비를 비롯해 모두 70억 달러가 소요된다고 한다. 대략 한대에 1억 7000만 달러다. F-35A 두 대는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한국 라면 1년3개월간 수출 총액에 해당된다.

2016년 한국의 미국에 대한 상품교역은 281억 달러 흑자다. 대미수출이 705억 달러, 수입이 424억 달러다. 트럼프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난하는 근거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281억 달러 흑자는 엄청난 규모다. 그러나 미국이 갖고 있는 군수산업 경쟁력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게 큰 것도 아니다. 사드 배치는 원래 주한미군 안전을 고려해 미국이 제공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앞으로 한국인을 위해 한국정부 주도로 배치할 경우 공짜와 무관해질 가능성이 높다. 북핵이 안보의 상수로 자리 잡을 경우 10억 달러짜리 사드 방어체계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몇 십억, 아니 몇 백억 달러도 순식간이다. 물론 한국정부가 원한다고 즉각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신형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인 이지스 어소어. / 사진캡처·록히드마틴
러시아, 프랑스 나아가 저가 중국 제품으로 바꾸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 가지 이유에서 어렵다. 첫째 성능이 미국 무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기술력 0.1% 차이가 전쟁의 향방을 가늠한다. 아무리 싸다 해도 미국 첨단무기에 견주면 오합지졸이다. 둘째 한·미 동맹이다. 사실상 한미연 합사가 한반도 작전의 총사령탑인 상태에서 러시아제 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다. 동맹은 피와 땀만이 아닌, 비즈니스 관계이기도 하다. 미국은 전 세계 90여 나라와 군사관계를 맺은 나라다. 비즈니스 관계이기도 하다. 셋째 경제적 관점이다. 서울 2017년 강남 아파트 매매가는 보통 10억 정도에서 시작할 것이다. 달러로 대략 한 채에 100만 달러 정도다. 아파트 1000채 가격이 사드 1개 단위 비용이다. 무력충돌이 벌어질 경우 한국 내 모든 부동산 시장이 그대로 추락한다. 달러에 대한 환율도 수직상승할 것이다. 사드가 만능일 수는 없겠지만, 경제적 심리적 관점에서 볼 때 10억 달러가 비싸다고 볼 수 있을까?

무기 수출은 크게 다섯 나라가 좌우한다. 미국·러시아·중국·독일·프랑스다. 2017년 미국의 국방예산은 6112억 달러다. 2위인 중국 2157억 달러, 3위 러시아 692억 달러, 4위 사우디아라비아 637억 달러, 5위 인디아 559억 달러를 포함해, 2위부터 10위까지 9개 나라의 총액보다 많다. 전 세계 국방예산의 30% 정도가 미국의 국방예산이다. 압도적인 수준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기수출 금액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해외 수출 1위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액은 471억 달러에 불과하다. 2위인 러시아의 해외수출 금액 331억 달러에 비해 130억 달러 정도 많다. 미국의 해외 무기 수출액이 적은 것은 스스로가 제한한 데 따른 결과다. 러시아나 중국처럼 상대국이 원하는 대로 판매할 경우 고수입이 보장될 분야가 미국 무기다.

장기화되는 분쟁과 무기수요 급증


한국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질 경우 미국 군수산업 역사상 최대의 호황이 될 것은 분명하다. 한국 내 수요가 엄청 늘어날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무기 수입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50년 한국전쟁은 패전국 일본을 회생시켜준 일등공신이다. 당시 한국이나 일본은 미국 무기를 구입할 만한 처지가 못 됐다. 자유세계의 대표격인 미국이 투자하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 한국전쟁이다. 일본은 그 같은 상황 하에서 자국의 이익을 철저히 챙긴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38선을 넘었을 당시 일본경제는 급추락한다. 주식시장이 얼어붙고 엔화도 떨어진다. 그러나 7월 들어 경제가 상승한다. 전쟁이 일본까지 밀어닥치지 않는다는 점과, 일본 방어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 알려지면서 주식시장도 활황세로 돌아선다. 결국 전쟁이 끝나던 1953년 여름 일본 주식시장은 한국전쟁 발발 당시와 견줘 무려 4배의 폭등세를 기록한다. 한국전쟁 덕분에 불과 3년 만에 일본 경제 전체가 4배로 확장된 셈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난해 11월초, 맨해튼 월스트리트를 장식한 최대의 블루칩은 군수산업 주식이다. 이란·북한·아프가니스탄에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트럼프를 상징하는 말이다. 국제 문제에 무관심하게 대응할 것으로 보이는 슬로건이지만, 자세히 보면 다르다. 인권이나 지역 내 평화를 책임지는 국제경찰 역할은 피하지만, 미국 이익이 걸린 국제 문제는 결코 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북핵을 그냥 둘 경우 미국의 안보에 직결된다. 아메리카 퍼스트 슬로건에 따라 그 어떤 군사행동도 마다하지 않을 인물이 트럼프다. 한국의 피해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챙긴 뒤의 변수일 뿐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군수산업은 가장 먼저 혜택을 입을 분야다. 트럼프 집권과 더불어 국방 예산도 증액된다. 트럼프 주변이 국방부 출신 인물로 채워지는 것도 군수산업에 대한 낭보다.

미국 내에서의 군수산업의 의미는 한국 내 이미지와 크게 다르다. 한국의 군수산업, 즉 방위산업은 뭔가 특별하고 예외적인 업종으로 와 닿는다. 탱크를 만드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특별한 출입증이나 신원조회가 필요할 듯하다. 미국은 다르다. 필자가 본 미국 군수산업은 애플이나 아마존닷컴 같은 비즈니스의 한 영역일 뿐이다. 차이는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중후장대형 산업이란 점이다. 국가안보는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영역인 만큼 소요비용이 엄청나다.

이민대국과 군수산업의 함수관계


▎2011년 철군 방침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북쪽 바그람 기지에서 귀국하는 병사들이 미군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필자는 가끔씩 이베이(Ebay.com)에 들어가 미국 군용장비를 구입한다. 미군의 이라크 전쟁 당시 신었던 군화 같은 것들이다. 싸고 튼튼하다. 그러나 기술이 들어간 고부가 장비로 들어가면 가격이 엄청 나다. 야간촬영이 가능한 야간 조명 장비의 경우 이베이에서 조차 1만 달러가 넘어선다. 국방성 납품 가격은 하나에 2만 달러 정도다. 민간용이라면 많아야 2000~3000달러에 그칠 가격이지만, 군용으로 전환되면 10배는 간단히 뛰어넘는다. 조건이 조금 까다롭지만 같은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고부가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 비즈니스가 군수산업이다.

미국 군수산업은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되는 전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기점으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매년 ‘전쟁’으로 생존해온 나라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전쟁은 독립 후 250여 년에 걸친 미국의 역사이자 운명이다. 따라서 전쟁에 나선 군인들이 항상 넘친다. 이들은 제대 후에도 군 경력을 앞세우며 각 분야에서 활동한다. 사후(死後) 묘비명에서의 군 경력은 보통 미국인이 반드시 표기하는 개인사다. 사회에서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는가라는 사실보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라는 글귀가 묘비명 서두에 들어간다. 군의 의미와 가치가 남다른 곳이 미국이다.

더불어 미국은 이민대국이다. 많은 이민자는 시민권을 얻고자 군대에 들어간다. 대략 5년 근무하면 시민권이 나온다. 미군 출신 시민권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청춘을 바쳤던 전쟁터로 다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인 출신 이민자가 카불에서 군대생활을 끝낸 뒤 민간인으로 퇴역했다고 치자. 시민권을 얻은 뒤 다시 미국 대학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거나,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이들은 자신의 장기를 되살려 줄 고부가가치 직업으로 전환하려 한다. 민간인 자격으로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다시 돌아가는 방식이다. 언어도 가능하고 군 경험도 있다는 장점 아래 카불이나 바그다드로 되돌아간다. 월급은 군에 있을 때에 비해 적어도 10배, 아니 100배가 오른다. 대부분은 과거 경험을 되살려 군수산업이나 군 관련 어드바이저 자격으로 현지에 간다.

필자는 그 같은 상황을 10여 년 전에 경험했다. 미국인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이라크에서 막 돌아온 중위급 퇴역자를 만났다. 원래 레바논 출신 이민자다. 놀랍게도 퇴역 한 달 뒤 바로 바그다드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연봉 50만 달러 계약의 군사컨설턴트다. 아랍어가 가능하고, 무슬림이다. 이라크 정부를 위한 무기 수입 관련 컨설팅을 통해 연봉을 배로 늘릴 생각이란 계획도 들었다. 자신을 비롯한 무슬림 퇴역군인 대부분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라크 자유와 평화를 위해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고액 연봉을 노리며 바그다드행에 나선다. 위험하기는 하지만, 미국 내에서 연봉 50만 달러를 보장하는 직업은 없다. 현지로 돌아간 이들이 무기 수입에 보다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중동 미군 병력과 장비의 다음 행선지는?


▎북한 미사일 요격 무인기 체계의 핵심 전력의 하나인 고고도 정찰 무인기 글로벌 호크.
국방성에서 일하다가 퇴역한 미국인들의 군수산업 취업도 활발하다. 적어도 사령관이나 펜타곤 국장급 정도 인사라면 퇴역 후 군수산업 중역으로 픽업된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 지역이나 분야를 중심으로 한 세일즈맨으로 변신한다. 태평양함대 사령관이 퇴역 후 구축함 미사일 세일즈맨으로 한국군 장성과 만나는 식이다. 수출이 제한된 첨단무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워싱턴 외곽 펜타곤 바로 옆에 붙은 로슬린(Rosslyn)은 퇴역군인 군수산업 컨설턴트의 총본부에 해당된다. 원래 헬리콥터 조종사 출신으로, 이후 국무성 부장관도 역임한 리처드 아미티지는 미국 첨단무기로 연결시켜주는 로슬린 내 군사 컨설턴트의 대명사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미중앙정보국(CIA)나 미제국주의와 같은 음모론에 기초한 국가적 차원의 전쟁이 아니다. 개개인의 이해관계에 기초해 자본주의 수요·공급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게 군수산업의 실상 중 하나다. 미국은 자본주의의 맏형이자 이민대국, 나아가 전쟁으로 자신의 위상을 가다듬어 온 나라다. 그런 곳에서 볼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 ‘미국=군수산업 대국’으로 연결시켜주는 이유 중 하나다.

김정은이 북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크든 작든 무력 충돌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북핵만이 아닌, 또 다른 이유에서도 충돌 불가피설이 제기될 수 있다.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활용된 미군과 장비 활용터로서의 한반도다. 두 나라에 투입됐던 엄청난 인적·물적 자원은 현재 거의 방치된 상태다. 이라크의 경우 2003년 3월 이래 무려 19만2000명의 미군이 참전해 8000억 달러의 전비(戰費)를 쏟아 부었다. 상식적이지만, 한번 증액된 예산은 내려가기 어렵다. 인력과 돈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전쟁터가 필요하다. 시리아·아프가니스탄도 있지만, 규모면에서 큰 건수가 되기 어렵다. 부연하지만, ‘전쟁=돈, 파워’다. 20만 명의 미군과 1조 달러 가까운 돈이 한꺼번에 투입될 새로운 전쟁터 찾기가 트럼프의 사명 중 하나다. 중국·일본·러시아 모두가 주목하는 한반도는 최적의 장소일지 모르겠다. 장사꾼 출신 트럼프와 미국 군수산업계는 그 같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토마호크(Tomahawk) 미사일 판매가 확실시된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순항미사일로 한 기에 130만 달러다. 관련 장비를 포함할 경우 한 기에 평균 200만 달러로, 보통 100기를 기본으로 한다. 당장 구입할 경우 2억 달러, 즉 2200억원이 필요하다. 한국 라면 1년 수출총액과 맞먹는다. 북핵은 엄청난 사상자나 방사능 오염에 국한되지 않는다. 돈이다. 북핵 위기가 끝날 때, 아니 끝난 뒤에도 돈 냄새를 맡은 첨단무기가 한반도로 밀려들 것이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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