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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사드 1년, 中 진출 기업들의 ‘아우성’ 

“이대로 가다간 붕괴는 시간문제”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자동차·유통·화장품 등 직격탄 맞고 ‘비틀’…‘눈덩이 적자’ 롯데마트, 전격 매각 작업 착수

지난해 7월 우리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발표 후 중국의 경제 보복은 노골적이면서도 전방위적이었다. 한-중 항공 여객은 반토막이 났고, 유통업계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가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중국 내 모든 공장의 가동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게임업계는 가장 큰 시장인 중국에서 신작 출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사드 보복 피해액은 연간 8조5000억~22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기업들의 아우성에도 우리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이 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현대기아차의 올해 자동차 판매량이 6년 전 수 준으로 뒷걸음질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신호등에 들어온 빨간불이 현대기아차의 현재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 사진·연합뉴스
중국정부의 노골적인 사드 보복으로 롯데 등 유통기업을 비롯해 중국 현지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이대로가면 중국에서 사업 자체를 철수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현재 중국 내 롯데마트 112개(슈퍼마켓 13개 포함) 점포 가운데 87곳의 영업이 중단됐다. 중국당국은 소방과 안전 등을 문제삼으며 롯데를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중국인들의 불매운동까지 더해지면서 그나마 영업 중인 점포들의 매출도 80%가량 줄어들었다. 사드 피해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피해액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결국 견디다 못한 롯데는 중국 내 롯데마트 매각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9월 14일 밝혔다. 줄곧 매각설을 부인하던 롯데마트는 글로벌 투자은행 겸 증권회사인 골드먼삭스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다. 매각 범위까지 정해진 상태는 아니지만 매장 전체를 파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모레퍼시픽 화장품의 경우 최근 5년 동안 매년 20% 이상 성장했지만,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同期) 대비 57.9% 감소한 1304억원에 머물렀다. 제과업체인 오리온의 중국법인 상반기 매출액은 30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4%가 감소했고, 영업손실액은 221억원에 이르렀다. 오리온은 최근 14년 만에 중국 법인장을 교체한 데 이어 중국법인 인력 1만3000명 가운데 20%가량을 감원했다. 농심 중국 법인의 경우 2분기 적자로 돌아섰으며, 상반기 영업손실은 28억3478억원을 기록했다.

게임업계도 올해 3월 이후 중국에서 신규 서비스 허가권을 한 건도 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 게임 신작 출시도 묶여 있는 상태다. 지난해 글로벌 게임 시장 규모는 총 996억 달러(약 112조1695억원)로 중국은 244억 달러(약 27조4792억원)에 이르는 최대 시장이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마켓 전략을 전면 수정할 수밖에 없다.

전기차 배터리도 사드 보복으로 휘청거리는 분야 중 하나다. 중국은 LG화학·삼성SDS 등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신에너지 자동차 보조금 지급’ 201개 차종 목록에서 제외했다. 중국에서 전기차 보조금은 차량 가격의 최대 절반에 달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면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의 판매가 급감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전기차 생산량은 지난해 약 52만 대 등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산 배터리 수입액은 지난해 10억191만 달러로 되레 감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사드 보복으로 베이징 배터리 공장을 대체할 나라를 물색 중이다. LG전자는 중국인들의 불매운동으로 점유율이 급락하자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한 뒤 온라인으로 중저가 제품만 판매하고 있다.

中 언론 “현대차와 합작 파기도 고려해야”


▎사드 배치 발표 이후 중국정부는 사실상 한국 단체관광 금지조치를 내렸다. 올해 3월 중순 서울 명동에 관광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오른쪽 사진) 왼쪽 사진은 지난해 10월 국경절 연휴 때 중국인 관광객으로 크게 붐비는 명동의 모습.
항공사들은 중국발(發) 노선 운항편을 줄이고 기종도 중형기에서 소형기로 바꾸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3월 12개 노선 운항편을 감편(減編)한 데 이어 동계 스케줄의 경우 일부 노선의 기종을 축소하기로 했다.

대한항공도 사드 사태가 본격화된 3월 중국발 8개 노선 운항편을 줄이는 등 중국 노선을 지속으로 축소하고 있다. 제주항공·진에어 등 중국 노선의 비중이 높았던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사드 보복 직격탄을 피해 일본·동남아 등지로 방향을 틀고 있다.

자동차 업계의 피해도 이만저만 아니다. 현대기아차는 당초 올해 목표였던 195만 대에 크게 못 미치는 130만 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실적 부진으로 현대기아차의 올해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 825만 대에서 100만 대 이상 부족한 700만 대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700만 대 이하라면 2011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현대차는 올해 1~2월 중국에서 14만93대를 판매하며 지난해 동기 12만8462대 대비 9% 상회하는 실적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3월 사드 사태 본격화 이후 곤두박질쳤다.

해당기간 동안 판매실적은 ▷3월 5만6026대(-44.3%) ▷4월 3만5009대(-63.6%) ▷5월 3만5100대(-65.0%) ▷6월 3만5049대(-63.9%) ▷7월 5만15대(-8.6%) ▷8월 5만3008대(-35.4%) 로 총 26만4207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이는 54만6348대를 기록한 작년 동기 대비 51.6% 급감한 수치다.

기아차의 경우 지난해 36만8686대를 판매했으나 올해는 ▷3월 1만6006대(-68.0%) ▷4월 1만6050대(-68.0%) ▷5월 1만7385대(-65.3%) ▷6월 1만9003대(-57.8%) ▷7월 2만2대(-51.2%) ▷8월 2만3002대(-45.4%) 등 총 11만1448대에 머물렀다. 27만8419대를 기록한 작년 동기 대비 59.9% 하락한 것이다.

중국에서 현대차 실적 폭락은 생산 차질로도 이어졌다. 최근 베이징현대기차의 납품 대금 미납으로 현대차의 1~4공장의 생산이 며칠 동안 중단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플라스틱 연료탱크 등을 공급하는 부품업체가 납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장 중단으로까지 이어진 미납금은 189억원 수준이다. 아무리 판매가 급감했다 하더라도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인 현대차가 참여하고 있는 베이징현대기차가 공장을 세울 정도의 금액이라고 보긴 어렵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50대 50 합자 기업으로 현대자동차만의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며 “더구나 생산 쪽은 현대차가, 재무 등 부문은 베이징기차 공업투자 유한공사가 주도권을 갖고 있어 납품 대금 지급 등과 관련한 파트너(북경기차)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현대차와 함께 중국에서 합자법인 베이징현대기차를 운영하는 베이징기차는 현대차가 한국 업체 위주로 부품을 납품받는 등 이익 중 상당부분을 빼돌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는 현대차의 주요 부품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위아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어 베이징기차는 현대차가 주요 부품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은 부품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이익을 빼돌린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부품업체를 중국 현지 업체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중국 관영언론은 “베이징기차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현대차와 베이징기차와의 합작 파기도 고려해야 한다”고 보도했다.

현대차 등에 따르면 현대차가 계열사 등 공급라인 덕에 이익을 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사드 문제 이후 현대기아차의 협력업체들과 계열사들도 큰 손실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현대모비스 중국법인은 사드 문제가 본격화된 2분기에 1분기 순익 이상의 손실을 입으며 적자 전환됐고, 현대위아 중국법인 또한 2분기에 1분기 순익의 6배가량의 손실을 입으며 적자를 기록했다.

“정부 차원 지원방안·대책 마련 절실”


▎올해 3월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의 한산한 모습. 롯데그룹의 사드 부지 제공과 관련해 중국 내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등 롯데에 대한 보복조치가 잇따랐다. / 사진·연합뉴스
이런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현대기아차는 100여 명 규모의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운영하는 한편 8월 ‘중국 시장 상품 차별화’와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중국제품 개발본부’를 신설하고 중국 상품전략과 연구개발(R&D) 업무를 유기적으로 통합했다. 또한 신차 출시와 함께 차량에 포함되는 옵션이나 차량 자체의 스펙 등을 중국 완성차 브랜드에 맞춰 가격 경쟁력까지 갖출 예정이다.

또 현대기아차는 협력업체를 위해 2500억원 규모의 국내 부품업체 금형설비 투자비를 일괄 선지급하는 방안을 전격 발표하는 등 상황 복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차는 이러한 핍박 속에서도 최근 중국 충칭 현대자동차 5공장 완공을 마치고 현재 양산(量産)을 위한 운영에 들어갔다.

완성차 업체의 위기는 고스란히 부품사에 이어졌다.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가 최대 50% 규모의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생산설비의 절반 이상이 가동을 멈추면서 더 이상 현재 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에 나가 있는 차량 부품 관련 기업 수는 145개(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소속 기준)다. 이 가운데 현대기아차에 납품하는 1차 협력업체 수는 130곳 정도다. 이들 기업이 베이징과 허베이 등에 지은 공장은 290곳이다.


▎중국정부가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조치로 올해 3월 자국민에게 금한령(禁韓令, 한국 단체관광 금지)을 암묵적으로 지시했다. 9월 14일 인천공항 출국장 중국 국적항공사 카운터가 한산하기만 하다.
그나마 중견업체(1차 협력사)는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 등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일부 2·3차 협력업체는 도산한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현지 관계자는 “몇몇 업체는 산업은행 등 금융권의 자금 지원을 기다리다 결국 공장 문을 닫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처럼 중국에서 우리 기업이 극심한 피해에 시달리는 가운데 국내에 등록된 중국 브랜드 자동차는 1년 새 5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7월 기준으로 국내에 등록된 중국 브랜드 자동차는 총 1723대로 지난해 7월 335대 대비 무려 5배 성장했다.

재계의 위기감이 고조되자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9월 11일 세종시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우리 기업들이 겪는 피해를 굉장히 중하게 느끼고 있고, 정치·외교적으로 잘 풀어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중국 상공부 부장(장관)을 만나 이 문제를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성천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최근 동북아 박람회를 다녀왔고 양자·다자채널을 통해 강력하게 (사드 보복과 관련해) 문제제기를 했다”며 “통상당국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재계 관계자는 “중국 현지 기업들에는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정부당국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잘하겠다’ ‘열심히 하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이 아닌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신용등급 더 오르긴 어려워”


‘제조업의 총아(寵兒)’로도 불리는 자동차 산업은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현대기아차가 최대 시장인 중국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 쌓아온 공든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 모두 힘들게 버티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고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발 리스크로 우리 기업들의 신용등급 추가 상향은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사드 보복은 물론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 심화 등이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신용등급 상향이 어렵다면 향후 국가 신용등급도 더 이상 오르기 힘들 가능성이 있다.

9월 14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국제금융센터 주최로 열린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속 한국 신용도 개선은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 같은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박준홍 스탠더드앤푸어스(S&P) 한국기업 신용평가팀장은 ‘한국 기업 신용 전망’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하면서 “현재 한국 기업의 86%가 안정적 등급을 유지 중”이라면서도 “증가하는 중국 위험과 공급 증가로 인한 경쟁심화 등을 감안할 때 한국 기업들의 추가적인 신용도 향상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진단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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