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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포트] 10년 연속 80만 관중 돌파한 고시엔(甲子園) 야구의 저력 

한국은 ‘이기기 위한 경기’ ... 일본은 ‘지지 않는 경기’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배수진, 결사반대 보다는 생존을 전제로 한 세계관이 日 고교야구에도 투영...승패보다 역사와 전통에 입각한 과정으로서의 이벤트로 국민적 인기 몰이

▎2017년 8월 제51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서울고가 우승을 차지했다.
‘센바즈루(千羽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믿고 따르는 일본 특유의 문화이자, 신앙이다. 종이로 접은 1천 개의 학이다. 보통 100개를 하나의 줄로 엮어서 10열로 옆으로 늘려서 장식한다. 다양한 색상의 종이를 사용해 다채롭게 만든다. 전부 걸어둘 때 특정 단어가 보이도록 입체적으로도 장식한다. 집념, 인내 같은 단어가 1천 개 종이학을 배경으로 새겨진다. 학은 1천 살, 거북이는 1만 살이란 말이 있다. 거북이와 더불어 장수의 상징이 학이다. 짝짓기 상대를 평생 바꾸지 않는 동물이기도 하다. 학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영혼이 맑아진다는 옛말도 있다.

일본인 대부분은 ‘1천 개 종이학=장수·행복·번영’이라 믿는다. 생일이나 어머니날 같은 특별한 행사에 맞춰,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을 한다. 도쿄 야스쿠니신사에서 봤지만, 이미 세상을 뜬 사람에게도 전한다. 보통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함께 만들어 공동으로 전달한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 손으로 만든다. 종이학 하나 접는 데 대략 3분 정도 걸린다. 혼자서 1천 개나 되는 종이학을 만들기도 어렵지만, 모두의 뜻을 담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사람들의 순수한 정리(情理)가 모아지면 어떤 구체적인 행운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센바즈루는 올해 여름 일본 열도의 십대들에게 화제가 된 키워드다. 후쿠시마(福島) 고교야구연맹이 지역 내 고교야구 현장에서 이뤄지는 센바즈루 증정식에 대한 ‘자숙 요청’을 하면서 시작된 논쟁이다. 7월 22일 <요미우리> 신문 보도가 나간 뒤 인터넷에서의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고교야구에서의 센바즈루 세리머니는 패자가 승자에게 안기는 선물이자, 축원에 해당된다.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나서는 승자에게 패자 스스로의 몫까지 합쳐서 이겨달라는 메시지가 1천 개 종이학에 담겨 있다. 증정식은 보통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끼리의 작별인사와 더불어 이뤄진다. 10대 청춘의 고결함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는 행사로, 일본 고교야구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전통이다.

VIP석 입장권은 65만 엔에 팔려


▎고시엔 대회는 진 팀이 이긴 팀에게 1천 개 종이학을 역은 다발을 증정하는 전통을 가졌다. / 사진:유민호
연맹 측의 자숙 요청은 한 번 시합 때마다 1천 개 학을 선물로 떠안아야만 하는 승자의 입장에 선 생각이다. 후쿠시마를 대표하는 최종 승자는 전부 5번에 걸친 토너먼트 예선전을 치른다. 전국 대표가 모이는 본선에 진출하려면 5연승해야 한다. 매번 시합 때 마다 패자로부터 1천 개를 받을 경우, 전부 5천 개 종이학을 갖게 된다. 패자의 염원이 담긴 선물이기에 전국대회에도 들고 가야 한다. 버릴 수도 없고 항상 소중히 다뤄야 한다. 그러나 경기에 몰두해야 할 선수들이 5천 개 종이학에 매달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연맹 측 자숙 요청은 상식적으로 볼 때 합당하다. 그러나 여론은 맹비난으로 돌아선다. 대략 보면 지지가 20%, 반대가 80%다. 이미 100년 가까이 지속된 지역 고교야구의 아름다운 전통을 무너뜨리지 말라는 메시지다.

필자가 접한 세리모니에 대한 인상은 아름답기보다 처절하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지만, 승자에게 1천 개 학을 안기는 순간 패자 모두가 격한 감정 속에 빠져든다. 10대는 사소한 승부에도 전부를 걸, 피 끓는 나이다. 학교와 선배의 명예를 건 시합에서 패했을 때 심정이 어떨까? 젊은 혈기에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것이다. 그러나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극소수다. 욕이나 몸싸움은 아예 없다. 그 같은 자세는 학교와 선배를 욕보이는 ‘마케이누(負け犬)’, 즉 패자의 비겁한 변명으로 해석된다. 특히 눈물은 핑계의 상징이다. 일본인은 눈물을 보이며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한다. 한국은 마음을 행동으로 전부 표현하는 것이 솔직하고 순수하다고 믿는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은 반대다. 속마음을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 한국이고, 겉과 속이 당연히 달라야 한다는 것이 일본 문화다. 사실 진 선수만이 아니라 재학생·가족·동문 모두가 하늘을 응시한 채 눈물을 삼킨다. 뜨거운 여름 날씨와 더불어 진한 눈물과 땀의 채취도 와 닿는다.

일본 고교야구는 크게 두 개의 전국대회를 갖고 있다. 3월에 열리는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와 8월의 전국고등학교야구 선수권대회다. 센바츠(選拔)로 불리는 3월의 전국대회는 32개 팀이, 고시엔(甲子園)으로 불리는 8월의 대회에는 49개 팀이 참가한다. 일본 고교야구는 전국에 4136개 팀을 갖고 있다. 고등학교 야구인구만도 16만 명에 달한다. 대부분 취미에서 출발하는 클럽 성격의 야구팀이지만, 전국대회 참가에 대한 고교팀의 열정과 열의는 엄청나다. 야구팀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신문·방송의 지원과 관심과 대단하다. 언론사는 아예 고교야구 전문기자를 따로 두고, 대회 시작 전부터 실시간 현장중계에 들어간다. 8월 23일자 <일본경제신문>은 고시엔 입장객이 10년 연속 80만 명을 기록했다고 보도한다.

경기장 입장권은 시합 전 거의 매진된다. 상석(上席)의 경우 한 장에 무려 65만 엔에 팔린다고 한다. 전국적 인기를 기반으로 우승고교나 팀원만이 아니라 대회에 참가한 것 자체만으로도 당대의 스타로 인정된다. 이들 두 전국대회는 효고현 야구 전용 경기장, 한신(阪神) 고시엔에서 열린다. 고교야구를 위한 특별경기장이 고시엔이다.

8월의 고시엔 대회는 고교야구의 하이라이트다. 센바츠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지만, 일단 고교야구의 대명사는 ‘여름의 고시(夏の甲子園)’이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전국 49개 팀이 펼치는 땀에 젖은 경기가 고교야구의 진수다. 올해는 8월 8일 시작해 23일 끝났다. 최종 승리자는 도카이대(東海大) 부속 스가오(菅生) 고등학교다. 고시엔은 내년에 창설 100주년을 맞이한다. 국민적 초대형 이벤트로 벌써부터 들썩인다. 고시엔에 대한 만화·드라마·영화는 매년 8월에 쏟아지는 연례행사이기도 하다. 10대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로, 고교생만이 아니라 10대 추억을 기억하려는 사람들 모두가 주목하는 엔터테인먼트다. 필자 판단이지만, 한국 성인 남성들의 군대 생활에 대한 기억이나 추억에 비견될 만한 것이 고시엔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서다.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의 고시엔에 대한 추억이나 열정도 남다르다. 일본 고등학교 대부분이 남녀공학이기 때문이다. 남학생 전용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아닌, 야구팀을 가진 학교의 남녀 재학생 모두가 나서 응원하고 지원하는 ‘신켄쇼부( 勝負, 진검승부)’가 고시엔이다. 고시엔에 등판한 재학생이라면 여학생들이 흠모하는 ‘영순위 황태자’에 오른다.

한·일 고교야구 전국대회 수 ‘9대 2’


▎매년 8월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는 일본 고교야구의 하이라이트다. / 사진:유민호
일본 고교야구의 대부분은 승자승 원칙인 토너먼트 방식으로 치러진다. 고시엔과 센바츠도 마찬가지다. 패자부활전 없이 한 번 지면 그대로 탈락이다. 유도(柔道)나 스모(相撲)가 그러하듯 ‘니폰쇼부(一本勝負)’가 일본 특유의 문화다. 단 한 번 승부나 기술로 승패를 결정짓는 식이다. 삼세판과 같은, 세 번의 기회를 통해 두 번 이상 이긴 사람을 최종 승자로 여기는 문화는 한국이나 중국에 적용된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미성년자, 고등학생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지역예선에서 이뤄지는 센바즈루 세리모니는 ‘니폰쇼부’에 따른 결과를 무조건 수용한다는 신사도(紳士道) 증명 이벤트일지 모르겠다.

고시엔 야구는 한·일 고교야구, 나아가 한·일 청년과 두 나라 국민이 갖고 있는 캐릭터를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최적의 본보기다. 특히 한국에서 이뤄지는 고교야구 전국대회와 비교해 보면 두 나라가 근본적으로 추구하고 믿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이해할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일 비교론에 임하는 필자의 평소 지론이다. 시중에 나오는 한·일 비교론의 대부분은 ‘일본이 있다, 없다’와 같은 양극화된 논리·주장에 머문다. 시선을 아래로 깔면서 ‘없다’에만 주목하는 한국 우위론이나, 시선을 위로 올리면서 ‘있다’만 찾는 데 혈안이 된 일본 찬미론이 그것이다. 세상사가 그러하듯 보는 각도에 따라 장단점이 달라진다. 단기·장기와 같은 시점에 따라 우열도 달라진다. 없다, 있다로 흑백 바둑에 몰두하기보다, ‘없지 않다’ ‘어떤 점에서 왜 다른가’라는 문화인류학적 관점에 주목하려 한다.

한국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일본 고시엔을 얘기할 때 기본적 비교 대상이다. 한국 고교야구 전국대회는 무려 9개에 달한다. 9개 전국대회는 대한야구협회장기를 제외할 경우 전부 신문사가 주관한다. 일본 역시 고시엔은 <아사히신문>, 센바츠는 <마이니치신문>이 주관한다. 일본은 3월과 8월 두 차례, 한국은 거의 사시사철 고교야구 전국대회를 만날 수 있다.

양으로 볼 때 한국은 일본보다 유리한 듯하다. 자신의 실력을 전국에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무려 9번이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양을 뒷받침할 자원이다. 놀랍게도 한국의 고교야구 팀 수는 74개다(2017년 3월 기준). 4136팀에다 16만 인구를 자랑하는 일본 고교야구에 비할 때 ‘새 발의 피’ 수준에 그친다. 지역 예선에 참가하는 수준의 규모를 가진 곳이 한국이다. 전국 대회 9개는 이들 74개 팀이 나눠가지면서 행한다. 9개 전국대회에 전부 참가할 수는 없겠지만, 보통 3~4개 전국대회를 노린다. 따라서 선수들의 육체적 부담이 상당하다. 2011년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시작되면서 지역별 예선 우승팀에만 전국대회 참가자격을 주지만, 그래도 선수들의 부담이 상당하다. 물론 좋게 말하면, 고교시절부터 수많은 게임을 경험하면서 야구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

일본은 74개 팀이 행하는 9개 전국대회에 대해 부정적이다. 일단 선수생명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뛰어난 선수일 경우 이미 고교 때부터 부상으로 중도하차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고시엔은 무승부도 이긴 것과 마찬가지


▎올 9월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18세 이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야구대표팀은 일본팀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한·일 고교야구가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결과와 과정 가운데 어떤 부분에 방점을 두는가로 집약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한국은 결과이고, 일본은 과정이다. 물론 결과라고 해서 과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결과에 올인하면서 과정을 챙기는 것이 한국 입장이라고 할 때, 과정을 하나씩 쌓아가면서 그 수확물로서의 결과에 주목하는 것이 일본 입장이라고나 할까? ‘이기기 위한 경기’와 ‘지지 않는 경기’는 고교야구만이 아니라, 한·일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말이다. 이기기 위한 경기는 한국 측 가치다. 지지 않는 경기는 일본측 입장이다. 둘 다 비슷한 말장난인 듯하지만,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상대를 이기는 데 주목할 경우 나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 데 주력한다. 스스로의 실력을 기르는 식이다. 지지 않는 경기는 나의 실력도 길러야겠지만, 상대가 가진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면서 대응하는 데 주목한다. 상대를 읽으면서 나를 가다듬는다. 상대의 강점에 준비하고, 약점을 파고드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승리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무승부가 됐다고 해도 이긴 것과 마찬가지다. 적어도 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이기는 데 주력하는 경기는 말 그대로 상대를 굴복시키지 못할 경우 패배다. 엄밀히 말해 무승부도 패배다.

배수진, 결사반대는 사극이나 정치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한국적 정서의 본보기다. 간단히 말해 ‘All or Nothing’, 즉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다. 실패와 성공, 흑과 백으로 나눈 제로섬게임에 입각한 발상이다. 절벽 뒤 물을 등 뒤에 두면서 싸우고, 죽어도 반대한다는 발상은 일본인에게 없다. 배수진, 결사반대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타협점을 거부하는 자세로 평가한다. 살기 위해, 살아갈 것을 전제로 한 세계관이 일본의 주류다.

이기고 지는, 결과로서의 엔터테인먼트 야구경기가 아니다. 역사와 전통에 입각한 과정으로서의 이벤트라는 점이 고시엔에 열광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의 과정일까? 고시엔은 물론 일본 고교야구를 통한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필자는 크게 네 가지 측면에 주목한다.

1. 고시엔 나아가 고교야구 전국대회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우즈(坊主)’, 즉 ‘빡빡머리’다. 스포츠형 스타일이 아니라, 길어도 길이 1㎝ 정도의 빡빡머리다. 선후배 관계없이 등판하는 모든 선수가 빡빡머리다. 머리카락이 길 경우 씻고 다듬을 시간이 필요하다. 군인들처럼 아예 밀어서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고교야구의 기본이다. 빡빡머리는 따로 개성 없이 모두 조직 속의 일원으로 움직인다는 의미도 있다. 외모로 보자면 전부 똑같다. 백인백색으로, 톡톡 튀는 개성을 찬미하는 한국적 정서와 크게 다르다.

2. 경기장에서 결코 걷지 않는다. 고시엔 경기를 한 번이라고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걸어서 등판하거나 수비로 전환할 때 천천히 대응하지 않는다. 뛴다. 삼진 아웃을 당한 뒤 곧바로 튕겨나가듯 돌아간다. 뛰듯 빨리 대응하는 문화는 일본 정치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비상시 수상관저에 몰리는 일본 정치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차에서 내리는 즉시 속보로 회의실로 들어간다.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일본 언론계 인터뷰 방식 중 하나로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란 것이 있다. ‘걸려 있다’ ‘둘러싸여 있다’는 의미의 단어로, 기자들이 속보로 걸어가는 정치인을 따라가면서 인터뷰를 하는 취재방식이다. 연단에 서서 기다리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 쫓기는 정치인을 따라 가면서 묻고 답하는 이동형 인터뷰다. 고시엔에 참가하는 고고생은 속보로 뛰어가면서 행하는 부라사가리 정치스타일의 출발점이자, 압축판에 해당된다.

3. 야구선수만이 아니라, 출신학교 학생과 학부모, 지역주민 모두가 참가자다. 운동장에 나서는 것은 야구선수지만,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음지의 힘이 대단하다. 선수들을 위한 식사·식수·의복은 물론 이동·건강·비상상황에 관련된 후방지원이 빈틈없다. 개인적 경험이지만, 일본에서 공부할 때 학교가 주관한 100㎞ 완보(完步)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매년 12월에 행해지는 행사로, 기록에 관계없이 100㎞를 전부 마쳐야 하는, 일종의 극기 훈련이다. 잠을 안자고 밤 12시에 출발한다. 당시 참가자는 모두 10여 명이었다.

필자의 경우, 너무도 부끄러운 결과로 끝났다. 최고기록을 내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도중에 기권을 했다. 발이 부르트고 심야의 추위로 인해 40㎞ 지점에서부터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시 얻은 실패의 교훈은 5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도 소중하다. 더불어 일본이란 나라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생생한 경험도 체득하게 된다. 100㎞ 심야완보 참가자를 지원하는 도우미가 주인공이다. 이들 도우미의 역할과 기능이 엄청나다. 10㎞마다 설치된 이동 휴게소,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보행자 개개인의 상황을 살피는 도우미, 출발점에 설치된 비상구급 도우미, 중간에 위로차 찾아온 참가자의 가족과 운영팀, 길을 헤맬 것을 염려해 특별히 만들어진 지도, 따뜻한 음식과 음료 준비….

마을 주민의 공동체의식이 고교야구와 결합


▎긴 행렬은 일본 식당 앞의 일상적 풍경이다. 맛이나 가격만이 아니라 친절, 청결 등 수업(修業)에 관한 스토리텔링이 인기의 비결이다. / 사진:유민호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도우미의 준비와 현장에서의 활동에 대해 감탄했다. 일단 참가자 10여 명인데 비해 도우미는 50여 명 정도다. 심야에 잠도 안 자고 참가자 모두를 지원한다. 필자의 경우 무리하게 걷다가 35㎞ 지점부터 혼수상태로 들어갔다. 유격 도우미는 사정을 아는 듯, 차로 따라 붙으면서 무리하지 말라고 ‘계속’ 충고했다. 40㎞ 지점 휴식소에서 쉰 즉시 거짓말처럼 거동을 할 수 없게 됐다. 근육 경련도 일어났다. 곧바로 구급차가 오고 난리가 났다. 필자 주변에 도우미 20여 명이 몰려들어 함께 근처 병원으로 달려갔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던 창피한 기억이지만, 참가자보다 지원·지지에 주목하는 일본 조직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후 보행자가 아닌 도우미 자격으로 100㎞ 완주 심야대회에 참가했다. 잠도 안 자면서 도우미 업무에 매달려보니 전쟁에 나서는 전투원보다 후방지원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경험이었다.

고시엔의 열기가 뜨거운 이유는 야구선수만이 아닌 주변 모두가 함께 치르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선수만의 특별한 기억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는 추억이기에 한층 더 빛을 발한다. 그 같은 모두의 추억으로서의 참가는 지역 내 고등학교가 어느 날 갑자기 본선에 나가면서 급조된 것이 아니다. 매주 열리는 중고품 거래 개미시장, 초등학교 운동회, 마을 내 향토문화제와 같은 작은 행사를 통해 다져진 공동체의식이 고교야구라는 무대로 옮겨져 갔을 뿐이다. 일본 공동체의식의 출발점에 해당되는, 이른바 ‘무라사카이(村社)’를 기반으로 한 고교야구다. 1954년 개봉된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에서 볼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의 일치단결된 모습이다.

4. 야구를 수업의 연장선으로 이해한다. 한국에서의 수업은 교실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시간을 의미한다. 한자로 풀이하자면 수업(授業)이다. 공부라는 업(業)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업이다. 일본 고교야구 현장에서 접하는 수업은 ‘修業’이란 한자로 풀이될 수 있다. 자신을 닦고 가다듬는 절차탁마(切磋琢磨)로서의 수업이다. 누구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나 스스로를 참고 노력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식의 ‘修業’이다. 한국의 수업이 남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때, 일본의 수업은 자신과의 싸움에 주목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무명의 야구전담 교사가 만드는 서로간의 수업(修業)


▎[아사히신문]은 고시엔 역사의 중심이다. 고교야구에 관한 모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다. / 사진:유민호
한국에서 프로야구 선수 출신자가 고교야구팀을 지도하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당연하다. 프로의 기량을 어린 선수에게 가르쳐, 게임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고 수준의 역량을 알려주는 너무도 이상적인 교육이라 볼 수 있지만, 일본인들은 달리 본다. 아마추어 고교야구에 대한 믿음 때문만이 아니다. 프로로부터 배워 실력을 늘리기보다, 고교선수 스스로가 배우고 익히면서 기량을 터득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일본 고교야구의 대부분은 야구에 관심을 가진 일반 교사 주도 아래 이뤄진다. 예외도 간혹 있지만, 프로와 무관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고시엔의 진가는 취미로 야구를 시작하는 고고생들과 지방에 거주하는 무명의 야구전담 교사가 만들어내는 서로간의 수업(修業)에서 탄생된다. 지도교사라 해도 가르치면서 배운다. 참고로 전국 16만 명에 이르는 고교야구선수들은 1학년 때 클럽에 들어간 이래 90% 이상이 3년 내내 참가한다고 한다. 재능이 없거나 흥미가 사라진다고 적당히 빠지지 않는다. 프로선수 목표도 아니지만, ‘修業’으로서의 야구라는 점에 주목하면서 3년 내내 참가한다.

지난 9월 11일 캐나다발(發) 낭보가 들려왔다.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U-18 BWP)에서 한국팀이 준우승을 했다는 소식이다. 결승에서 미국에 8대 0으로 패했지만,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6대 4로 눌러 아시아 최고임을 입증했다. 74개 야구팀에 불과한 한국 고교생이 4136개 일본 고교 야구팀을 누른 것이다. 거의 60배 큰 상대를 무너뜨렸다. 경기 결과가 증명하듯, 한국에는 일본 고교야구를 한 수 아래로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자랑하고 자부심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과정으로서의 야구, ‘修業’으로서의 스포츠가 일본인의 가치다. 이기기를 원하겠지만, 패하는 것도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필수과정으로 해석한다. 사실, 세계야구 준우승에 빛나는 한국 고고생이지만, 고교야구 전국대회 운동장에서의 열기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물론, 관객이 많다고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실력도 좋고 이기기는 했는데 관심도 줄고 주변이 텅 비어 가는 것과, 지면서도 서로 격려하면서 사람들이 넘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결과만을 중시할 경우, 평생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가 일본이다. 일발장타 홈런에다 삼진 스트라이크아웃 스타일이 한국야구다. 안타와 도루를 통해 점수를 쌓아가는, 기록경신을 통한 스토리텔링이 일본 야구의 맛이자 진수다. 한·일 야구, 나아가 양국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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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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