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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김동영 팀코리아 대표의 ‘요트 강국론’ 

“마리나 성공의 비결 뉴질랜드에서 찾는다”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160년 전통 ‘아메리카스컵’ 우승 후 수퍼요트 제작 선진국으로 변신…제작에서 판매, 유지·보수, 금융, 레저·관광까지 유기적인 시스템화

“많은 사람이 뉴질랜드를 관광산업이 발달한 나라, 쇠고기·치즈·우유 등이 유명한 대표적 낙농국가로 기억해요. 하지만 뉴질랜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요트산업을 빼놓지 않습니다.”

요트 선수이자 대한요트협회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25년 동안 요트 인생을 걸어온 김동영(46) 팀코리아 대표의 말이다. 그가 뉴질랜드 얘기를 꺼내놓은 데는 이유가 있다. 부산 동아대 체육학과에 다닐 때 선배의 권유로 요트 선수가 된 김 대표는 졸업 후 뉴질랜드로 건너갔다. 한 요트전문학교에서 유학한 뒤 현지 공장에서 요트 제작과 디자인을 맡는 요트빌더로 5년 동안 일했다. 그러던 그가 요트산업에 눈을 뜬 것은 2000년 뉴질랜드에서 열린 ‘아메리카스컵’ 대회를 보고 나서다. 아메리카스컵은 국가 대항전 성격의 요트 대회로 ‘바다 위의 포뮬러1(F1)’으로 불린다. 1851년 시작돼 16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이 대회는 근대올림픽(1896년), 월드컵 축구대회(1930년)보다 훨씬 역사가 깊다. 뉴질랜드는 이 대회에서 두 차례나 우승(1995, 2000년)했다. 아메리카스컵 우승은 뉴질랜드를 요트 강국, 해양산업 강국으로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참가국이 자체 제작한 요트로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에 뉴질랜드는 이 대회 우승을 통해 요트 제작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기술력을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김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자.

“뉴질랜드가 대회에서 우승을 한 뒤 국가 산업 자체가 바뀌었어요. 이전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뉴질랜드의 요트 제작 기술을 전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뉴질랜드 공산품 중 요트는 수출 1, 2위를 다투고 있을 정도고요.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경제 파급효과가 대단했습니다.”

요트 제작에 필요한 관련 부품산업이 호황을 맞았다. 요트 제조뿐 아니라 개장, 유지보수 산업도 함께 경쟁력을 갖게 됐다. 길이 24m 이상의 ‘슈퍼요트’ 오너들이 너도나도 뉴질랜드를 찾게 되면서 관광과 더불어 다양한 편의·오락 등 다른 기반 산업들이 덩달아 발전했다. 김 대표는 뉴질랜드가 아메리카스컵을 계기로 요트 산업의 중심국이자 마리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그리고 김 대표 자신도 2011년 한국인 최초로 아메리카스컵에 선수로 참가했다. 요트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김 대표는 팀코리아를 이끌고 대회에 참가한 사실 자체로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현재도 팀코리아를 이끌며 각종 국제대회 유치 등 요트 매니지먼트 일을 하고 있는 김 대표는 “한국은 현재 마리나 강국, 해양 강국으로 갈 수 있느냐 여부를 가늠할 갈림길에 서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국내 마리나 산업 발전을 위해 6개 거점 마리나 항만을 선정하고 전국 58개소에 마리나 항만 기본계획을 수립해 관련 사업 추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대표는 한국의 마리나 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뉴질랜드 사례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요트대회 우승이 국가산업을 바꾸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서울마리나 전경. 최근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내수면 중심 마리나 활성화를 강조했다.
뉴질랜드는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관광과 낙농이 국가 대표 먹거리 산업이었다. 하지만 아메리카스컵 대회를 계기로 미국, 호주와 함께 ‘슈퍼요트’ 3대 생산국이 됐다. 뉴질랜드의 소형 선박 수출은 연간 17억 달러(한화 2조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했다. 자연스레 고용도 늘어 소형 선박 제조업에만 1만 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또 연관 산업 종사자 규모는 이를 훨씬 웃돈다. 요트가 가져온 경제적 파급 효과는 단순히 숫자만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가이미지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마리나 산업을 단순히 요트나 보트 등 선박이 계류하는 항만과 주변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수준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마리나 산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요트 제조·판매, 유지·보수, 관광·레저, 금융·보험까지 관련 산업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함께 돌아갈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마리나가 들어선다고 저절로 경제가 활성화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마리나에서 일하는 사람은 관리직 등 소수일 뿐이죠. 마리나에서 창출되는 경제 효과는 30% 정도고 70% 이상이 부대시설과 연계 산업에서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실제 세계해양산업협회(ICOMIA)에 따르면 마리나를 이용하는 선주들은 하루 75유로(약 9만 7000원)를 지출하는데, 이 중 선박 관련 지출은 3분의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외식 등 부대서비스 산업 부문에 사용된다. 김 대표는 현재 국내 요트의 상당부분이 일본에서 중고로 들여오는 문제를 예로 들며 설명을 이어갔다.

“국내 요트의 적어도 80% 정도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중고를 들여와 판매하는 것으로 압니다. 일본에서는 큰 비용을 들여 폐선시켜야 할 요트를 우리는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마구잡이로 들여와 팔고 있는 거죠. 사용 연한이 지난 요트의 안전성 문제뿐 아니라 제조기술 개발을 통한 산업화로 연결될 수도 없는 상황인 거죠.”

마리나 산업은 단순히 계류 시설 자체와 그 주변을 그럴듯하게 조성하는 것만 가지고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는 게 김 대표 생각이다. 다양한 관련 산업 분야와 연계해 경제적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리나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과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인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중 하나로 국내 요트 대회 활성화와 아메리카스컵과 같은 해외 유명 대회에 계속 도전하는 것을 꼽는다.

“우리나라 골프 선수들이 LPGA에서 우승을 휩쓰는 등 좋은 성적을 내다 보니 이들이 쓰는 골프채 브랜드가 주목받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한국이 만든 요트로 아메리카스컵 같은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세계 요트인들은 한국의 요트 제작기술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한국산 요트가 국내외로 팔려나가면 마리나 산업은 물론이고 여러 관련 산업 분야까지 성장할 기회가 만들어지는 거죠.”

김 대표가 이끄는 팀코리아는 아메리카스컵 같은 주요 대회에 계속 도전할 계획이다. 대회 참가를 위해 요트 제작 비용 등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스폰서를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무모하게 보일 수 있는 이 도전이 언젠가는 한국이 마리나 강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으로 김 대표는 믿는다.

-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kr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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