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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물건(2)] 스타셰프 정호영의 츠지요리학교 졸업장 

“성실이 가장 큰 힘… 유학시절 수업노트가 보물1호”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등록금 벌기 위해 자청한 고깃집·수산시장 알바 뛰면서 자기계발…시간 부족해 맨 먼저 등교해 수업 준비하던 빡빡머리 유학생의 옹골찬 요리철학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스타셰프 정호영(41) 씨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은 종이 한 장이다. 물론, 그냥 종이가 아니다. 그의 모교인 일본 오사카의 츠지(Tsuji)요리학교에서 받은 예스러운 붓글씨로 그의 이름 석 자가 적혀 있는 졸업증서다. 그는 서울 연희동에 문을 연 이자카야 ‘카덴(花)’의 입구에 이 졸업장을 소중히 걸어두었다. 한때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하마터면 물거품이 될 뻔했던 소중한 자산이다.


▎학교를 가지 않는 시간은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등록금을 버는 데 투자했다. 그렇게 손에 쥔 세계 3대 요리학교인 츠지의 졸업장.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이자카야 입구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에 이 졸업장을 걸어뒀다.
정 셰프의 일본행은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다. 일본어도 못했다. 알파벳에 해당하는 히라가나(平假名)도 잘 모를 정도였으니깐. 유학 자금도 부족했다. 가진 거라곤 일본요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정뿐. 한식당을 운영했던 어머니 덕분에 요리를 평생 업으로 삼기로 마음먹었는데, 그중에서도 일식에 끌렸던 그다. 고교 졸업 후 서울의 일식집과 이자카야에서 일하다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학을 결심했다. 본토에 가서 제대로 승부를 봐야겠다!

문제는 돈이었다. 처음에 도쿄(東京)로 가려 했다가 오사카(大阪)로 행선지를 바꾼 것도 돈 때문이다. “어학교를 먼저 다녀야 했는데, 물가가 더 싸다고 해서 오사카로 갔어요. 거기서 츠지를 알게 됐고요.”

오사카행은 그에게 여러 가지 행운을 가져다줬다. 츠지는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프랑스의 르꼬르동블루(Le Cordon Bleu)와 함께 세계 3대 요리학교로 손꼽힌다. 오사카 어학교에서 한국인 동급생 여성을 만나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 세 살 연상의 아내는 지금도 그에게 가장 든든한 동반자다.

일본으로 간지 2년 뒤인 2004년, 그가 드디어 츠지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고생문이 열렸다. 츠지는 명성도 높았지만 등록금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1년치 학비가 210만 엔(한화 약 2200만원)에 달했다. 기본 과정을 마친 뒤에 밟게 되는 심화코스인 일본요리기술연구소의 1년치 학비는 270만 엔이나 됐다. 학교 측의 특별 배려로 등록금을 분할 납부하긴 했지만 마지막 학기엔 그마저 변통이 어려워 졸업장을 못 받을 뻔했다.

“내 월급보다도 비쌌던 생산 한 마리”


▎정호영은 하루아침에 스타 셰프가 된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그를 더 단단하게 한 건 학교에서 배운 기본이다. 일본 츠지요리학교의 2년은 그의 학습노트 4권으로 남았다. 학교 졸업장과 함께 그의 보물 1호다.
츠지 재학 시절 그는 빡빡머리를 하고 공부했다. 그만큼 각오를 단단히 했다. 학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시간당 급료가 높은 곳을 골라서 취업했다. 재일동포가 운영하는 ‘파고다’라는 이름의 야키니쿠야(고깃집)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그는 곧바로 아르바이트 장소로 달려갔다. 수업 후에 교수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자리를 갖기가 힘들었다. 그는 고민 끝에 아침에 학교를 먼저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9시에 수업이 시작되는데 미리 나가서 도마도 닦고 행주도 빨고 식재료도 정리해뒀죠. 어느 때부터 교수님들도 저를 ‘항상 미리 와서 준비하는 학생’으로 인식하시더라고요.” 미리 나와서 준비한 만큼 8인 1조로 진행되는 수업에서도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같은 수업료를 내고 이왕이면 더 많이 배우고 얻어가고 싶었어요. 교수님도 늘 말씀하셨죠. ‘같은 버스비를 내더라도 일찍 타는 사람은 앉아 간다’고요. 요리사에게는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지만 아르바이트도 기왕이면 요리 기술을 연마하는 데 활용했다. 야키니쿠야 사장도 그에게 메뉴 구성 등 전권을 일임해주었다. 김치 담그는 것부터 고기 등 재료 구입까지 도맡아 했다. 이런 경험이 훗날 ‘나만의 가게’를 열 때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이다.

가난한 유학생에겐 주말도 사치였다. 학교가 쉬는 날에는 수산시장을 찾아가 생선 다듬는 아르바이트를 자청했다. 미식 평가 권위지인 미쉐린(Michelin·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받은 셰프들이 단골로 드나드는 가게였다. 처지를 한탄만 한 게 아니라 자기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아나선 것이다.

“한 마리 가격이 제 월급과 맞먹을 정도로 고급 가게였어요. 그런 생선을 망치면 안 되니까 첫 석 달은 비늘만 쳤죠.” 그의 꾸준함을 높이 산 사장은 점점 그에게 생선 손질도 맡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가 오사카에 갈 때 찾아가서 인사하는 곳이다. 가게 사장은 “우리 문하생이 대성공을 해서 돌아왔다”며 반갑게 맞아 준단다.

하지만 그가 가장 집중한 것은 역시, 학교 수업이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그가 들고 온 애장품 중엔 츠지 학습 노트도 있었다. 두툼하고 묵직한 파일이 네 권이다. 각 파일마다 A4용지 120장에 그의 필기며 사진 등 시각 자료가 빼곡했다. 츠지의 수업은 세심함으로 가득하다. 칼질을 할 때 양 발을 어떤 각도로 놓고 서있어야 효율적인지까지 삽화로 알려줄 정도였다. 정 셰프도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메모를 해놓았다. 일본인 교수진도 정 셰프의 성실함과 재능을 인정해주었다. 졸업식 때 그는 유학생으로는 유일하게 성적우수상을 받았다.

초심 다지려 지금도 읽고 또 읽는 ‘츠지 노트’


▎요리한지 19년째이지만 정 셰프는 여전히 츠지 시럴 학습 노트를 보며 초심을 다진다.
츠지의 교장인 츠지 요시키(53· 芳樹)에게 e메일로 한국 학생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그는 “정호영 씨를 비롯한 한국 학생들에겐 특유의 열정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놀랄 정도로 강력하게 동기부여가 되어 있고 요리 기술의 습득 속도도 매우 빠릅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개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토론도 두려워하지 않아 수업 분위기 조성에도 도움이 됩니다.”

츠지는 정 셰프에게 각별하다. 서울로 돌아온 그가 곡절 끝에 차린 이자카야 이름도 츠지의 실습실 이름에서 따온 ‘카덴’이다. 그의 뿌리인 츠지 시절을 잊지 않겠다는 각오에서 출발했다. 귀국 후에 곧바로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연희동에 뿌리 내리기 전까지 시행착오를 수없이 겪었다. 하지만 어려울 때마다 츠지에서 단련된 그는 인내심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장안의 화제였던 스시효 주방에 취업했다. 일본의 유명 요리 만화인 <미스터 초밥왕>에도 등장했던 안효주 셰프의 업장이다. 그러다 2009년 독립을 했다. 당시 전 재산은 전세금 5000만원.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보증금 3000만원을 빼서, 동료들 몇 명과 창업했어요. 부인이 ‘지금 독립하지 않으면 안 돼. 포장마차라도 좋으니 같이하자’며 용기를 줬죠. 그 뒤, 저는 따로 독립해 ‘카덴’을 차렸습니다.”

독립한 뒤로 처음엔 직원들 월급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 날도 같은 날 점심식사 영업을 할 정도였다. 피곤함에 절어 생선 손질을 하다 칼을 놓치는 바람에 손을 다치는 일도 있었다. 2011년엔 동일본 대지진이란 악재를 만났다. 방사능 우려로 사시미·스시 매출이 뚝 떨어졌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의 이자카야엔 입소문이 나면서 외려 손님이 늘었다. “야키니쿠야 알바도 했고, 츠지에서 다양한 요리를 다 배웠잖아요. 스지(힘줄) 조림부터 심지어 피자까지 메뉴를 다양화하면서 살아남았죠.” 위기는 그렇게 기회가 됐다.

지금도 매일 츠지 졸업장을 걸어둔 입구를 지나며 초심을 다진다는 정 셰프.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요즘 셰프가 대세라고 하잖아요. ‘스타셰프과(科)’ 같은 것도 생겨나고요. 솔직히 걱정스러워요. 스타가 되고 싶어서 요리를 하면 안 돼요. 요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기초부터 탄탄해야 해요. 올해로 요리 19년차이지만 저도 츠지 시절 노트와 졸업장을 보며 마음을 다잡거든요.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습니다.”

-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전민규 기자 jun.minkyu@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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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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