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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지혜] 18세기 조선의 ‘유휴지성’에게 배운다 

백수 시절은 인생역전 절호의 기회! 

길진숙 고전연구가
평생을 일 없이 살면서 평상심 유지했던 18세기 지성들의 내공… ‘백수시대’ 판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 모색해야

▎인공지능 시대에 생활은 편리해지겠지만 일자리는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창조적 활동을 줄어든 근로의 시간과 매칭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다.
내가 공부하는 남산강학원에서는 두 달에 한 번 정화 스님을 초청하여 주제별로 강연을 듣는다. 정화 스님은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를 불교와 과학으로 풀어주신다. 얼마 전 ‘돈 잘 쓰는 법’에 대해 강연을 부탁드렸다. 스님 말씀은 최근 들은 어떤 말보다 충격적이다. “어떻게 해도 돈을 벌 수 없을 터,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이럴 수가. 우리의 기대를 단번에 깨버린다. 다들 경악. 그리고는 살짝 불안하지만 폭소! 돈을 잘 쓰고자 하는 우리의 선한(?) 욕망은 이만하면 거의 핵폭탄급 시대착오였던 것이다.

돈을 벌기 어려운 건 인류 전체가 겪는 저성장·불황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노동을 대신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미 인공지능이 펀드매니저 대신 주식 시세를 예측하고, 의사 대신 수술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감정노동으로 스트레스 지수 최고인 텔레마케터들의 자리를 로봇이 채우고 있지 않는가? 진부하지만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 승부를 펼친 알파고를 보지 않았는가?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을 능가하고, 인간이 세팅하지 않은 경지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로봇은 먼 미래의 산업이 아니다. 당장의 현실이다. 세계의 부자 1% 정도가 인공지능 기술을 독점하여 돈을 벌 것이고, 그 나머지 인류는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굳이 일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니 돈 벌 수 있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굳이 노동을 갈망하지 말고 잘 놀라고 세계의 부자 1%가 기초생계비를 줄 거란다.

노동 불가능 시대? 돈을 벌 수 없는 시대?


▎취업박람회에 참가한 청년의 어깨가 무겁다. 일과 휴식, 놀이와 사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청년 10명 중 4명이 백수라는, 실직의 시대!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청년 백수, 중년 백수, 노년 백수, 가히 백수의 시대 아닌가? 대승적 차원으로 정부와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해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점차 빼앗고 있으니, 비정규직 혹은 백수는 점점 늘어날 추세인 건 명약관화다. 인류 99%가 백수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인류의 대부분이 노동에서 밀려나고, 돈벌이에서 소외된다고? 일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돈을 벌고 싶어도 벌 수 없으면, 인류의 미래는 디스토피아? 전례 없는 실업의 시대에 인류에 드리운 또 하나의 재앙? 인공지능로봇 개발을 제한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머리 속을 스친 건 지극히 통념에 갇힌 문제의식들이었다. 우리 인류의 삶이 대세를 거스른 적이 있는가? 판은 벌어졌고 그 판에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그 이상 생각을 진전시키기 어려웠다. 그런데 스님은 의외의 해석을 내린다. 이제 인류는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상상할 수 없는 방향의 삶을 영위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벌어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일하고 노는 일이 정말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사실 따지면 전 인류가 노동에 매달린 건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에 의하면 생산양식으로서의 인간 노동은 근대의 산물이다. 근대 이전엔 노예가 노동하고 귀족은 유유자적 놀지 않았는가? 이제 노예 대신 기계가 노동하고, 대다수의 인류는 유유자적 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마라’ 식의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바야흐로 목전에 이르는 중이다. 노동을 벗어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노동 아닌 그 어떤 것에 에너지와 지성을 쏟음으로써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하리라.

정화 스님의 낙관에 어리둥절 당황했지만 삶의 판세가 뒤바뀌고 있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말고도 없는, 우리에게 밀어닥치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돈 벌 수 없고, 노동할 수 없는 세상의 판이 새롭게 짜이고 있는 것이다. 봉건시대 인류가 자신들이 듣도 보도 못한 자본과 화폐, 노동과 소비의 구조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듯, 자본주의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 구체적인 상을 잡을 수 없지만 다른 구조의 삶으로 미끄러져 가고 있는 중임엔 틀림없다. 하여, 핀란드 국민을 부러워하는 이들은 보라! 국민 모두에게 기초생계비를 주는 핀란드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다.

물론 자발적인 결단이라면 모를까 강제적 상황이므로 노동시장에 편입될 수 없는 현실을 긍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안간힘을 다해 구조조정에 항의하며, 백수를 양산하는 시대를 있는 힘껏 개탄해마지 않는 바이다. 손 놓고 넋 놓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황이네, 소비가 위축되었네, 서민 경제가 나아질 전망이 불투명하네, 노동시장의 획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네, 이런저런 진단을 하며 이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성장 시기의 마인드를 가지고 지금의 현실을 타개한다면 아주 미세한 개선에만 그치지 않을까? 사실 세계-국가와 글로벌-기업의 막강한 카르텔은 ‘생산’의 경제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터, 인간의 노동이 불필요해지는 판세를 뒤엎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지나치게 체념적인가? 백수의 수를 줄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자. 백수시대에 저항하는 방법이 일자리를 늘려 달라고 처절하게 요구함으로써 정규직이 되어 뼈 빠지게 일하면서 돈 버는 것일까? 아침부터 밤까지 산업역군이 되어 경제성장의 신화를 다시 쓰는 것일까? 경제성장 혜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것일까?

백수의 시대, 전략을 바꿔봐!


▎볼리비아 안데스 산맥에 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준비하고 있다. 전근대 시기 인디언들의 삶에는 물질에 대한 왜곡된 욕망이 원초적으로 배제됐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암울한 현실에 한탄하지만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물질적 풍요를 구가한 적은 없었다. 눈부신 경제성장 덕에 해외를 가까운 마실 가듯 넘나들고, 미식의 향연은 그칠 줄 모르고, 매미 허물 벗듯 환골탈태할 새로운 의상은 넘치고 넘친다. 불행이라면 큰 평수의 집에 살지 못하고, 큰 차를 소유하지 못하고, 명품과 웰빙 식품을 영접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을 바라 마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에는 만족할 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생활 가운데 행복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고민은 궁핍이나 가난이 아니다. ‘잘 사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것이다. 잘 산다는 기준에 연연하는 한, 기본적인 것을 갖추어도 영원히 결핍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이런 사회에 사실상 승자는 없다. 그렇다면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마츠모토 하지메처럼 ‘경제성장을 한답시고 돈, 돈, 돈 하며 돈귀신을 쫓아왔지만 물질적·금전적으로 이만큼 풍요로운 데도 결국 모든 것에 갈증만 느끼는’ 생활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마츠모토 하지메는 이기는 사람도 없는 경쟁 사회에 휘둘리기는 죽기보다 싫어서 마음대로 살기로 선언한다. 그리고는 진짜 습득해야 하는 건 노예가 되기 위한 가난뱅이 생활의 기술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무기가 되는 기술을 연구! 연구! 한다.

남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적어도 20세기 전까지 추장제 사회로서 권력 없는 사회요,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였다. 이들은 추장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으며 다만 쟁의를 조정하는 권한만 부여했다. 증여하고 답례하는 호수제(互授制)사회로 잉여와 소유를 허용하지 않았다. 어떤 인디언 부족의 남성은 4년 통틀어 두 달 정도만 노동했다. 이들은 아주 짧게 자신을 위해 일하고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놀았다.

그들이 백인의 도끼를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을 탐낸 이유는 ‘꼴랑’ 4년 중 두 달만 일하면서 그 시간을 더 단축하여 더 많이 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애초 그 도끼를 사용하면 수확량이 10배 가까이 늘어난다는 사실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노동시간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꼈다. 그들은 당장 먹을 만큼만 생산하고 잉여생산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긴긴 시간 쓸모없는 놀이가 주는 즐거움에 열중했다. 잉여도 없고 소유도 하지 않는 생활에 불안이나 공포는 전혀 없었다. 물론 백인의 도끼를 선택하면서 이들의 바람은 예상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편리한 도구에 사로잡히면서 생산량이 늘어나는 기쁨, 축적의 욕망에 눈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끼는 대부분의 시간을 노동에 묶어 버리는 아주 낯선(?) 풍경을 연출하고 말았다.

남아메리카 인디언의 이야기는 이상하게 애잔하다. 어떤 인류는 노동의 가치를 다르게 인식했던 것이다. 노동은 최소화하고 취미는 최대화하는 생활이 진정 행복인 사회가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버리니 슬프지 않은가? 인류가 원래부터 노동하는 인간인 듯 착각하게 만든 건 순전히 자본주의사회 때문이다. 이제, 사회가 달라지고 있다. 노동이 아니라 놀기를 권장하는 시대. 물론 이 또한 우리가 원한 바는 아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인류 모두가 원했던 것인가? 우리는 세계의 흐름에 몸을 싣지 않을 수 없다. 이 생존게임은 모든 인류의 숙명과 같다. 피한다고 피할 수는 없는 운명!

그러면 우리의 전략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게임은 바꾸지 못해도 게임판은 흔들 수 있지 않은가? 이 유동하는 사회에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이 현실을 타개할 방법이 없다. 백수의 시대에 휘둘릴 게 아니라 백수시대의 판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를 맹목적으로 노동에 묶어놓거나 아니면 무조건 노동으로부터 소외시키고자 하는 획책에 놀아나지 않는 길이다.

18세기 백수, 무림계의 고수들


▎성호 이익(왼쪽)과 연암 박지원의 영정. 18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두 학자는 놀고먹는 선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했다.
백수로서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무기를 마츠모토 하지메처럼 장착해야 하지 않을까? 백수의 정글을 즐겁게 행복하게 헤쳐 나가려면 ‘백수’의 풍모를 멋지게 가꿔야 하지 않겠는가? 불가피하게 백수가 될지라도 모자란 백수로 사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정규직이 부러워하는 백수, 세상의 1%가 미처 깨닫지 못한 백수의 경지를 창안해야 한다. 이것이 백수가 될 99%의 인류가 살길이다. 주변부로 밀려난 패배자 백수가 아니라 삶의 에너지가 약동하는 백수로 살기!

오래된 과거로 거슬러 가보자. 백수의 한철을 겪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 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으로부터 삶의 지도를 그려보자. 백수지성계가 존경해 마지 않는 선배, 박지원은 이렇게 외쳤다. “성인은 세상을 버리고도 번민이 없었고, 홀로 서 있어도 두려움이 없었다. … 성인과 부처, 현자와 호걸 등은 세상을 노리개 정도로 간주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것과도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았다.”(‘관내정사’ 8월 4일, <열하일기>)

우리에게 백수시대 삶의 좌표를 그려줄 백수무림계의 고수 네 명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17~18세기 노론의 대표적인 1세대 백수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관직에서 잘나가다가 중년에 백수가 된다. 두 번째는 18세기 노론의 대표적인 2세대 백수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1731~1783). 청년 백수다.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청년 시절 천문학 연구와 청나라 여행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세 번째는 18세기 남인의 대표적인 1세대 백수 성호 이익(星湖 李瀷, 1681~1763). 평생 백수로 살았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재야의 경세가다. 네 번째는 18세기 남인의 대표적인 2세대 백수 혜환 이용휴(惠寰 李用休, 1708~1782). 성호 이익의 조카로 평생 백수로 살았다. 세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도 부질없고 벼슬에 목매는 것도 쓸데없는 욕심이라 여기고 붓 한 자루 쥐고 글을 쓰는데 평생을 바쳤다.

이들이 백수가 된 이유는 이때의 정치 상황과 관련이 깊다. 조금 지루하겠지만 당파 싸움의 역사적 과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약간의 고통을 참고 읽어주시라. 조선 숙종 때를 환국(換局)의 시대라 부른다. 민비와 장희빈의 암투로 유명한 바로 그 사건들과 관계되어 환국이 일어났다. 이 시기는 서인과 남인이 서로 정국을 장악하느라 엎치락뒤치락 대결하던 때다. 양쪽 당파 중 한쪽이 국정을 장악하면 시국이 바뀐다는 의미로 환국이라 부르는 것이다.

1680년 경신환국은 그 이전 정계에서 밀려났던 서인이 남인을 몰아내고 다시 정권을 잡았던 사건이다. 경신환국으로 남인의 윤휴·허적 등이 죽임을 당하고, 이익의 아버지 이하진은 유배를 가고 둘째형 이잠은 방외인을 자처하며 유랑생활을 한다. 1689년의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다시 정국을 장악한다. 1688년 장희빈이 아들 윤을 낳자 숙종이 기뻐해 원자로 책봉하려고 했다. 송시열 등의 노론이 반대 상소를 올리자 숙종이 분노한다. 1년여에 걸쳐 전·현직 관료, 재야 유림 등 100여 명의 노론이 처벌을 받는다.

이때 노론의 지도자 송시열과 김창협의 아버지 김수항이 사약을 받고 죽는다. 김창협의 작은아버지 김수흥도 유배 가서 죽게 된다. 이 시련의 시기에 김창협은 39세였다. 1694년 갑술환국에서는 민비가 복위되고 다시 노론이 정국을 주도한다. 장희빈을 옹호하던 남인들은 대대적으로 제거되고, 이후 남인들은 정계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때 이익의 둘째형 이잠이 김춘택의 처벌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국문을 당하다가 죽는다.

녹봉이 많은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향해 부지런히 달려온 현대인. 노동의 필요에서 해방됐을 때 과연 어떤 정체성을 유지해야 할지 아직 그 방향을 찾아내지 못했다.
“죽을 자리에 서야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위기에 봉착해야 사람을 알아본다.” 어려운 경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이런 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인다. 진부하지만 살아보니 고비 때마다 과연 맞는 말이구나 한다. 큰 사건이 흔히 나를 바꾼다. 세상사 이치에 눈을 뜨게 되어 그런 것일 게다. 늘 무방비 상태에서 갑작스런 사건이 닥쳐오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 사건이 다르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행과 불행은 사건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모든 사건은 기회다.

노론과 남인 가릴 것 없이 관직의 길은 위태롭다. 전쟁에서 죽고 다치고 고생하는 건 아군이나 적군이나 똑같다. 정치적 이전투구에서 노론이라고 멀쩡하고 남인이라고 멀쩡할 수는 없다. 둘 다 희생된다. 관직에 진출한 숫자와 정치적 파워로 당파 간 최후의 승자를 가리지만 개인의 삶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이건 당쟁으로 백수가 될 수밖에 없었던 농암과 성호, 혜환과 담헌의 삶이 웅변해주고 있다.

농암과 성호, 혜환과 담헌은 관직이 목숨까지 앗아갈 정도로 무서운 자리라는 것을 목격했고 그 위험한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안전지대로 탈주했다. 관직이 목숨보다 소중하지는 않고, 또 그럴 정도로 매력적인 자리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관직에 일말의 미련도 보이지 않고 돌아섰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명령에 따라 움직이느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의 삶을 가꾸는 게 훨씬 낫다는 결단에 의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이름 석 자와 사유의 흔적을 사라지지 않게 한 공신은 백수 선비로 살았던 시간이다.

이들에게 관직은 개인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장이 되지 못했다. 관직 자체가 나빠서라기보다 관직에 투사되는 욕망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관직은 생계를 해결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한다. 담헌이 중년 이후 음서로 관직에 오른 것은 사실 벼슬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생계를 꾸릴 정도의 녹봉이면 충분했지 자리를 탐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담헌도 연암도 이덕무도 모두 가족을 봉양할 최소한의 의무는 저버릴 수 없었으므로 지방으로 전전했다. 하급 말단 관리에 이들은 만족했다. 번다하고 바쁘고 녹봉이 많은 자리를 탐내지 않았다. 이들은 자리를 원한 게 아니라 최소한 굶주림을 면하고 살 정도만 받기를 원했다.

백수가 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발적으로 백수가 된다 해도 좋아서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백수가 되었을 때 농암·성호·혜환·담헌처럼 살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백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이 비록 넉넉지는 않았지만 이들에게는 함께할 친구들이 있었고, 자신들을 단련하고 깨우칠 자기들만의 의미 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백수의 시간을 불행하게 느끼지 않았다. 삶을 연마하고 바꾸는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꽃피웠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간 시대까지 풍요롭게 만들었다.

세상이 놀란 독보적인 세계 구축


▎서울 시내 한 백화점에서 4차산업혁명 시대 기술의 총아 중 하나인 VR 기기를 시험해보고 있는 젊은이들.
백수 선비로 살지 않았다면 농암은 성리학의 대가 주자만큼 공부하지도 못하고 독창적이며 살아있는 문장 쓰기를 촉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과거시험이나 관직만이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 아니라는, 이 중대한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아마 18세기 노론 지성의 멘토가 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성호는 선비라는 존재를 그토록 뼈아프게 성찰하지 못했을 것이고, 제도개혁에 대한 아이디어를 창안하지 못했을 것이다. 혜환은 세상 욕망에 시달리는 자신을 비우지 못했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위대한 삶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에 있어서 자기만의 독창적 스타일을 개척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담헌은 천체를 관찰하지도 못하고 청나라에 가서 천애지기(天涯知己)를 만나는 행운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며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잘나갔을 때, 풍요로웠을 때 빛났던 게 아니라 백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곤궁한 순간에 빛을 발했다. 주류의 궤도에서 이탈하자 이들은 세상의 척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부귀와 권세와 명예에 대한 욕심에서 벗어나자 오롯이 자신을 닦고 증명하는 일에 생의 전부를 쏟아낼 수 있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고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함으로써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오히려 세상을 놀라게 하고 말았다.

이들이 백수의 시간 동안 관직을 욕망하며 불안해하고 초조해했다면 결코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관직에 대한 욕망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이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다른 데 쓸 수 있었다. 인생의 길은 꼭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므로, 관직 욕심만 내지 않는다면 갈 길은 무궁무진하다. 그리하여 이들은 백수 시절을 인생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 수 있었다.

18세기 지성사의 별이 된 이 사인방이 정쟁의 소용돌이에서 모두 백수의 길을 선택한 건 우연 치고는 희한하다. 우리는 업적만 보기 때문에 이들이 엄청 다르다고 느낀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태도에서는 서로 통하는 게 있다. 극과 극은 통한다. 노론과 남인의 학맥을 각기 대표하는 주자들이라 그런지 궁극의 지점에서는 똑같이 대응했다. 노론과 남인의 차이만큼 결과도 각각이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모색한 것은 같았다. 근본적으로 이들 사인방은 백수의 길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매력적일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백수의 시간이 찌질하고 불안하고 위태롭다고 여기는 우리에게 역동적인 생성의 순간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떠났다. 그리고는 백수의 길이 얼마나 다르게 전개될 수 있는지 그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젖혔다.

농암은 정치에 대해 발언하지 않았다. 학문과 문장의 세계에서 유영하며 우리의 투식(套式: 굳어진 틀로 된 법식)을 깨뜨렸다. 제도 개선이나 정치적 개혁보다 인식 혁명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시공간에 맞게 사유하고 그 상황에 맞게 언어를 사용하고 글을 쓰라고 강변했다. 학문과 언어와 문장에 생기를 찾게 하는 방법은 남을 따라 하지 않고 때에 딱 맞게 시중(時中)하는 것이다. 나와 시대가 함께 호흡해야지 어느 한때의 고정관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반대로 성호는 관직에서는 멀어졌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더 날카롭게 칼을 벼렸다. 좀벌레와 같은, 놀고먹는 선비가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았다. 자신의 상황을 넘어서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가난하고 무능한 선비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최선을 다해 궁구했다. 피땀 흘려 일하는 백성에게 해가 되지 않게 사는 게 최선이었다. 절용의 방법과 실용의 대책을 궁구하고 실현하는 게 그 시대 백수선비가 사는 법이라 진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절약하고 검소하게 살며 사회와 정치를 개선할 방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성실히 기록했다. 정치·행정·경제 등 다방면에 걸친 성호의 개혁안이 현실에서 쓰일 수는 없지만, 성호는 대책을 마련하고 그 방법을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백수선비의 꿈은 사라지지 않고 남았다. 그 결과 성호는 경세치용과 이용후생의 대가가 됐다.

상식과 에고와 욕심을 내려놓다


▎인간의 대부분이 노동에서 밀려나고, 돈벌이에서 소외됐을 때, 인류의 미래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해방의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남인 백수 2세대 혜환과 노론 백수 2세대 담헌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살았다. 혜환은 몸을 온전히 지켜내는 걸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 세상이 정한 시시비비의 기준을 버리고 자신을 근거로 신선처럼 살았다. 신선은 목전의 이익과 근시안적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존재다. 혜환은 상식과 에고와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이 승인한 가치들에 휘둘리지 않고 시공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했다. 행복과 불행은 나에게 달린 것이라, 어떤 운명이 닥쳐도 휘둘리지 않았다.

인생은 다양한 사건의 연속이다. 이 사건의 길목에서 정작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다. 생각이 바뀌면 내가 바뀌고 세상이 바뀐다. 평생을 백수로 살면서 그렇게 평상심을 유지했다. 그래서 언제나 즐거웠다. 좁은 방에 있어도 우주를 호흡하는 경지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러한 경지를 글을 통해 실현했다. 혜환은 글쓰기로 수련했다. 그리고 글쓰기로 주변의 한 미한 존재들과 소통했다. 혜환은 문장에 침잠했지만 정치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자기 식으로 정치를 실현했다. 지방 수령으로 떠나는 친구들에게 목민의 도를 정성껏 알려줌으로써 자신이 할 수 있을 만큼의 정치를 행했다. 이것이 일상의 정치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노론 백수 2세대 담헌은 지극히 자발적으로 백수의 길을 걸었다. 농암 집안의 영향을 받았던 담헌은 일찌감치 관직의 장을 탈주했다. 18세기 지식인들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백수의 자유를 구가했다. 관직의 자리에서는 누릴 수 없는 꿈의 길을 백수로서 보여주었다. 우주를 관찰하고 중원 땅을 가로질렀다. 백수였던 그는 매인 것도 없고 사회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었던 터라 누구와도 어떤 것과도 접속했다. 국경도 신분도 이념도 그의 무장 해제된 태도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래서 국경 너머에서 천애지기를 얻었고 이런 그의 행보는 조선을 흔들었다.

18세기 지성사의 선구자들은 백수라는 공통의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행하고 말하고 글을 썼다. 각각의 이 훌륭한 결과는 백수라는 상황을 능동적으로 헤쳐 나갔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들의 업적도 업적이지만 왜 백수가 되었는지, 백수로서 어떻게 살았는지 이들의 백수 생태학을 주시한 건 아마도 시대 때문일 것이다. 때에 따라 사람도 책도 다르게 감지된다. 백수의 시대, 백수들 이 사는 법이 더 많이 창안돼야 할 것이다. 18세기 지식인들의 백수 생태학은 또 다른 삶의 기술로서 우리의 불안에 응답해준다. 백수는 위기나 좌초가 아니라 인생역전의 기회다!

길진숙 - ‘남산강학원’에서 밥과 책과 글을 나누며, ‘지천명(知天命)’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연암·붓다·장자·루쉰 등 멋진 스승들을 만나 이 고단하고 번뇌 가득한 사바세계를 즐겁게 헤쳐나가고 있다. 저서로 <18세기 조선의 백수지성 탐사>(북드라망), <루쉰, 길 없는 대지>(공저·북드라망), <세계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공역·북드라망), <고전톡톡>(공저·북드라망) 등이 있다.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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