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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10) 蕭瑟] 시령(時令) 못 끌어안는다면 모진 추위에 시달릴 수밖에 

맑음·성김을 나타내는 蕭, 쓸쓸함을 뜻하는 瑟… 경제 회복 기미 없는데 북핵은 머리까지 짓눌러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이 가을은 우리에게 험상궂기만 하다. 가을의 문턱에서 절실한 시령을 끌어안지 못한다면 곧 닥칠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알몸을 드러낸 채 모진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소리도 가을을 알린다. 우선 나뭇가지다. 여름의 무성했던 잎사귀가 시들고 나무의 가지에 차가운 바람이 닿으면서 들리는 소리는 ‘서걱’이다. 그런 모습과 소리를 한자로 표현한 게 蕭瑟(소슬)이다. 우리가 흔히 ‘소슬바람’이라고 할 때의 경우다. 메마른 바람, 작아지고 움츠러든 식생(植生)에서 우리는 가을이 다가옴, 그 가을의 깊어짐을 다 느낀다.

蕭(소)라는 글자는 원래 대쑥의 지칭이다. 쑥의 한 종류다. 다른 쑥에 비해 뒷면에 자라는 수염이 적다. 따라서 ‘맑은 모습’을 상징한다. 이로써 글자는 ‘쓸쓸함’ ‘성김’의 새김을 얻었다고 한다. 아무튼 蕭(소)는 사물의 무성한 기운이 잦아 든 모습을 가리키는 글자로 일찌감치 등장한다.

다음 글자 瑟(슬)은 거문고나 비파 등 현악기의 뜻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소리에 관한 형용이다. 서걱거리는 소리를 표현한 글자라고 본다. 이 글자 둘을 그대로 적으면 瑟瑟(슬슬)이다. 우리말 ‘쓸쓸하다’의 어원이다. 그러니 소슬바람이라고 하면, 무성한 여름을 보낸 나무의 가지들이 메마른 잎사귀를 달고 있는 상태에서 맞는 바람이다. 그 바람은 대개 초록의 풍성함을 밀어내고 대신 자리를 잡은 가을의 일반 식생으로부터 메마른 소리를 자아낸다.

蕭瑟(소슬)과 비슷한 단어는 여럿이다. 蕭索(소삭), 蕭颯(소삽), 소조(蕭條) 등이 우선 눈에 띈다. 처음의 蕭索(소삭)은 구조가 소슬과 비슷하다. 뒤 글자 索(삭, 또는 색)은 ‘외롭다’거나 ‘홀로 있어 고독하다’는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蕭瑟(소슬)의 瑟(슬)이라는 글자와 같이 소리에 관한 형용이라고 보인다.

점차 흩어져 없어지는 상황을 蕭散(소산)으로 적으며, 직접 ‘차갑다’는 글자를 붙여 蕭冷(소랭)이라고 적는 경우도 있다. 아예 글자 두 개를 나열해 蕭蕭(소소)라고 적기도 한다. 蕭寂(소적)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쓸쓸함에 조용함까지 얹었으니 이 가을의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지기도 한다.

가을의 소리를 일컬을 때 빠지지 않는 곤충이 있다. 바로 매미다. 우선 쓰르라미라고 부르는 매미의 한 종류가 있다. 정식 명칭은 쓰름매미다. 일반 매미보다 몸집이 좀 작다. 이 쓰름매미의 한자 호칭은 寒蟬(한선)이다. 이슬 내리는 가을에 우는 매미라서 아마 ‘춥다’는 뜻의 寒(한)이라는 글자에 매미(蟬)를 갖다 붙인 듯하다.

이 ‘한선’은 일반 매미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날씨가 차가워진 무렵 매미의 울음소리는 현저하게 줄어든다. 가을의 쌀쌀함이 매미의 울음소리를 줄어들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그래서 날씨 차가워진 뒤 울음 멈추는 매미를 통틀어 寒蟬(한선)이라고도 부른다.

사람들은 추위에 소리 멈추는 매미를 그냥 두지 않는다. 대상을 비꼴 때 결국 이 단어를 등장시킨다. 겁을 집어먹고 움츠러드는 사람, 환경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지 못하는 이, 제 소신이 부족해 뒤로 물러서는 자를 이 寒蟬(한선)에 비유한다. 噤若寒蟬(금약한선)이라는 성어다. ‘꿀 먹은 벙어리’와 흡사한 맥락이다.

가을의 소리라는 말을 한자로 적는다면 秋聲(추성)이다. 북송의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가을의 소리를 묘사한 글이 있다. ‘추성부(秋聲賦)’다. 문장이 아름답고 표현이 그윽해 후대에 비슷한 감회를 적은 글들이 적잖게 뒤를 따랐다. 가을 밤, 책을 읽다가 문득 들은 소리를 묘사하는 그의 문필이 날카롭다.

“사물에 닿는구나, 쟁그렁 쟁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듯. 적진을 향해 다가서는 병사들처럼, 입에는 자갈 문 채 빨리 달리는데, 호령소리는 오간 데 없고, 그저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뿐(其觸于物也,鏦鏦錚錚, 金鐵皆鳴. 又如赴敵之兵,銜枚疾走,不聞號令,但聞人馬之行聲).”

귀로 들은 가을바람, 나뭇가지와 숲을 스치며 나가는 그 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깊어가는 가을밤의 스산한 정경이 그대로 묻어난다. 구양수의 귀에도 들렸듯이 가을은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그런 소리에 가깝다.

추위가 닥치면 더위는 자리를 내주고 물러서는 법이다. 지구의 북반구에 있는 땅은 대개 이런 계절의 변환을 느낀다. 그를 성어로 적으면 ‘寒來暑往(한래서왕)’이다. 추위 오니 더위 가신다는 의미다. 부지런하며 변함없는 계절의 갈마듦을 표현하는 말이다. 이때는 초록이 자리를 내주고 갈색과 붉은색의 가을 잎사귀들이 산야를 장식한다. 때가 바뀌니 모습도 바뀌는 게 옳다.

이래저래 험상궂기만 한 이 가을


이 가을은 우리에게 험상궂다. 북한의 핵이 머리를 짓누르고, 움츠리며 줄어드는 나라 경제는 좀체 회복의 기미가 없다. 우리를 둘러싼 국제적인 정세도 얄궂다. 그럼에도 국내의 소란과 정쟁은 그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 요소가 사방을 둘러섰는 데도 그에 관한 각성과 대응의 사고 및 자세는 드러나지 않는다.

먹고사는 일을 비롯해 모든 환경이 소슬(蕭瑟)함에 소삽(蕭颯)함,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조(蕭條)함의 분위기를 다 안고 있어서 그렇다. 이렇게 잦아들다가 생기가 모두 흩어지고 마는 소산(蕭散), 그로써 더욱 차가워지는 소랭(蕭冷)함으로 이어지면 어쩔까. 앞으로 닥칠 겨울이 더 스산하게만 느껴진다.

가을은 봄에 견줘 늘 春花秋實(춘화추실)이라는 성어로 적는다. 봄에 피운 꽃, 가을에 거둬들이는 열매라는 맥락이다. 봄에 움을 틔운 식생이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고, 가을은 그를 열매로 알차게 내려 앉혀야 하는 시간이다. 그러니 가을은 숙성(熟成)의 계절이다.

아울러 가을은 열매를 알차게 익도록 숙성시킨 뒤 그를 잘 거둬야 하는 때다. 그래서 秋收(추수)는 가을의 ‘행동 준칙’이랄 수 있다. 겨울에는 그를 잘 쌓아야 한다. 그런 가을과 겨울의 행위는 秋收冬藏(추수동장)이다.

이 가을에 우리는 그 점을 생각해야 한다. 나라의 위기 요소가 번질 조짐이 한둘이 아니다. 메마름과 소멸(消滅)을 알리는 가을의 문턱에서 내렴(內斂)과 성찰(省察)이라는 절실한 시령(時令)을 끌어안지 못한다면 우리는 곧 닥칠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 알몸을 드러낸 채 아주 모진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광종 -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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