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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 공부 잘하는 아이 방의 비밀 

다양한 책장 배치해 공간 사이 ‘기류’ 만들고 ‘백색 소음’ 활용하라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운영
제대로 된 인테리어만으로도 아이들 집중력 향상에 도움…공간은 마음의 확장판, 공부방을 바꾸면 공부패턴도 바뀐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공간을 배치하고 꾸밀 때 가장 신경쓰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공부방 인테리어다. 자녀의 집중력과 창의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공간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벽지 색깔이나 책상의 방향 이외에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실용적인 공간의 기술을 소개한다.


▎공부방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책장과 책상·의자다. 이들을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아이들의 집중력도 달라진다. 힌트는 자연에 있다. 다양한 크기와 높이의 산이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듯, 몇 가지 다른 높이와 넓이를 가진 책장들을 배치하면 아이가 집중하기 쉽다. / 사진:아이클릭아트
중학생 아이의 방은 언뜻 평범해 보였다. 굳게 닫힌 창문 앞에 놓인 책상과 그 양 옆에는 거의 천정에 닿을 듯한 책장들이 길게 일렬로 서 있다. 그 뒤에 놓여진 작은 침대. 보통 아이들의 방에 비해 책장이 높고 방을 꽉 채울 정도로 많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넓은 책장에는 빈 틈이 전혀 없을 정도로 책과 참고서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한눈에 보아도 책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고, 안 볼게 뻔한 옛날 책들까지 방치돼 있었다.


“애는 열심히 공부하는데, 원하는 만큼 성적이 안 나와서 고민이에요.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시키고는 있는데 늘 조금씩 모자라요. 그래서 혹시 공간이라도 조금 바꿔주면 도움이 될까 싶어서요.”

아이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간을 직접 살펴보니 뭔가 짚이는 데가 있었다.

“공간을 바꾸기 전에 일단 책장부터 정리해야 될 것 같은 데요. 아이가 초등학생 때 풀었던 문제집과 책까지 그대로 쌓여 있네요.”

“안 그래도 너무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정리를 좀 해보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애가 절대 못 버리게 해요.”

공간은 언제나 사람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방식, 생각을 현실화하는 메커니즘까지 닮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때문에 지금 책장은 아이의 뇌 구조와 닮아있을 지 모른다. 버리지 못하는 옛날 책들은 아이의 머릿속에도 불필요한 지식들이 가득 쌓여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여러 과목의 참고서, 교과서, 심지어 만화책까지 무질서하게 뒤엉킨 책장은 아이가 가진 지식의 시스템을 단면적으로 보여준다. 정보의 옥석을 쉽게 가려내지 못할 정도로 구조와 체계가 잡히지 않은 것이다.

지식의 용량이 매우 큰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필요없는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확실히 안다고 해도 언젠가 잊어버릴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아는 것을 필요 이상으로 반복하는 아이들이 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으로 자존감이 낮아져 있을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고 지식을 통합하는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력하는 만큼 성과가 제대로 안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고 학자라면 오래된 책을 쌓아놓는 게 문제될 리 없다. 그러나 입시공부를 하는 학생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입시의 기본은 기동성이다. 속도와 시간의 싸움에서 지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내 아이의 뇌구조, 아이의 책장이 보여준다


▎서울 강남 코엑스의 명소가 된 별마당 도서관. 약 5만 권의 도서를 2800㎡의 공간에 담아냈다. 특이한 건 공간의 구성이다. 13m 높이의 탁 트인 층고를 자랑하는 이 공간은 복층으로 꾸민 대형 서재와도 같다. 타인이 모여 각자의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계산된 설계다. / 사진:신기율
그러나 오랫동안 만들어온 지식의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이럴 때는 내 머릿속을 거울처럼 보여주는 공부방을 바꾸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버릴 건 버리고 모을 건 모으면서 정리하다 보면 복잡한 지식들도 머릿속에서 정리되기 시작한다. 언젠가 도움될 거라며 버리지 못했던 필기 노트들을 깔끔하게 치우자고 마음먹으면 아이의 두뇌도 그에 맞게 자신의 시스템을 바꾼다. 카테고리를 만들고 구조화 시켜서 생각의 틀 속에 끼워 맞추는 습관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필요할 때 빨리 꺼내 쓸 수 있도록 책장을 일목요연하게바꾸면 내 머릿속도 그에 따라 함께 편집될 수 있다. 이처럼 지식이 빠르게 순환되도록 공간을 바꿨을 때 가시적인 효과가 있다면 방향을 제대로 짚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아이에게는 이 방법이 통했다. 어지럽던 책장을 절반 가까이 비우고 과목별로 책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연습을 하면서 오랜 슬럼프에서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우리 내면의 실사 버전이자 확장판이다. 언제나 공간은 거울처럼 가감 없이 나를 비춰준다. 때문에 내 패턴을 직접 바꾸기 어렵다면 마음의 확장판인 공간을 살피고, 작은 변화를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전통 풍수에서 공부에 영향을 미치는 공간은 공부하는 방이 아니라 집이 지어진 ‘터’였다. 과거 학문의 요람이었던 서원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산의 혈처에 자리를 잡았고 뱀처럼 구불거리는 문곡성(文曲星)이나 붓을 닮은 탐랑성(貪狼星)의 기세를 받는 곳을 공부의 명당으로 여기기도 했다. 공부란 나 홀로 머리를 굴리는 일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과 공명하며 하늘의 뜻을 알아가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즘은 과거의 자연 합일적 공간이 아닌 기능적 공간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인체공학적인 의자와 책상, 뇌의 알파파를 유도하는 조명이나 음악, 환경심리학에 근거한 인테리어 등을 이용해 얼마나 최적화된 기능적 공간을 만들어 내는가가 학습공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창의성은 뇌의 DMN(Default Mode Network)이라는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 뇌의 안쪽 전전두엽과 바깥쪽 측두엽, 그리고 두정엽에 있는 DMN은 생각 없이 멍하게 있거나 잠들었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그래서 독창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경우에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 책상을 두는 것이 좋다. 창이 없다면 방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책상을 둬 최대한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반대로 내가 방어할 수 없는 등 뒤의 공간이 너무 넓거나 등이 출입문을 향해 있다면 본능적인 불안감을 느껴 학습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단순한 반복이나 순간적인 집중이 필요한 공부는 책상과 벽이 붙어 있거나 사방에 칸막이가 있어 최대한 시야를 좁게 하는 것이 좋다. 요즘 유행하는 파티션이 없거나 정해진 자리가 없는 회사의 책상이나 카페 같은 도서실은 집중도가 높아야 하는 업무나 공부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 지나친 공간의 노출이 집중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렇듯 책상의 위치에서 의외로 중요한 것이 개방성이다. 공간이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범위와 대상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뇌의 반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이가 집중 잘되는 공간 찾아 공부방에 적용하라


▎우리 아이가 유독 더 편안함을 느끼고 집중을 잘하는 공간이 있는지 평소에 잘 살펴보자. 그런 공간을 떠올리며 공부방 인테리어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사진:신기율
물론, 사람마다 공부 스타일이 다르고 좋아하는 과목이 다르듯 자신에게 맞는 집중의 공간은 다를 수 있다. 그럴 때는 밖에서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해보는 것이 좋다. 도서관이나 카페, 혹은 지인의 집 등 다양한 곳에서 아이에게 공부를 시켜보는 것이다. 그랬을 때 만약 집중이 잘되는 장소가 있다면 그 구조를 아이의 공부방에 그대로 적용시키면 된다.

예를 들어 나는 도서관에 갈 일이 있으면 칸막이 책상이 아닌 커다란 개방형 책상에 앉는다. 그것도 여기저기 의자를 옮겨가면서. 새로운 의자에 앉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그대로 내 집필실로 가져왔다. 책상을 꼭 공부방이나 서재에만 둬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문제다. 집안 곳곳에 의자나 작은 책상을 두고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읽는 책, 베란다의 간이 책상에서 보는 책을 정해 두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자극 속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자극은 공부의 내용과 공간의 특이점을 결합시켜 기억의 지속성을 높여준다.

실제로 현재 서울고에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이모 군의 특별한 공부법이 중앙일보에 소개된 적이 있다. 이 학생의 집에는 방과 거실에 총 6개의 책상이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야 할 때는 방에 있는 컴퓨터 책상을 쓰고 잠이 올 때는 스탠드 책상 앞에 선다. 이 군이 책상을 바꿔가면서 공부하는 이유는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한자리에서 공부하기 힘들 때 책상을 바꾸면 기분전환이 돼 집중력이 생겨요. 책상을 바꾸는 것만으로 자세가 달라지고 환기되는 효과가 큽니다.”

이 군이 스탠드 책상을 쓰는 것처럼 ‘책상 자체의 기능성’ 역시 중요하다.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에서는 착석과 입식이 가능한 ‘높낮이 조절 책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장시간 앉아 있는 것이 뇌와 심장, 척추에 무리를 줘 집중력과 사고력을 떨어뜨린다는 연구결과가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기능성 책상은 몸의 무리를 덜어줘 공부의 효율을 높여준다.

공부방에서 책장은 자연에 비유하면 ‘산’의 역할을 한다. 너무 높은 산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과 고립감을 느끼게 하듯이 너무 높거나 빽빽한 책장은 심리적 압박감을 줄 수 있다. 처음에는 책으로 꽉 차 있는 방의 모습에 안락함과 뿌듯함을 느낄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그곳에 머무를수록 내가 선택해놓은 책들에 압도돼 자신만의 생각에 매몰되고 편협해지기 쉽다.

그래서 공부방에 두는 책장은 다양한 높이와 넓이를 가진 것이 좋다. 명당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의 지형을 보면 같은 높이의 산들로 둘러싸인 곳보다 서로 높낮이가 다른 산들이 부드럽게 에워싸거나 마주보고 있는 곳이 많다. 높이의 다름이 그곳만의 독특한 바람을 만들고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작은 방안에서 부피가 큰 책장은 내 방만의 독특한 기류를 만들어주는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몇 밀리도 안 되는 길이와 두께의 차이로 다른 소리를 내는 악기들처럼 전혀 다른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책상에 앉았을 때 가까운 정면이나 바로 옆에 두는 책장은 내 키를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모든 물체는 각자의 에너지 장(場)을 가지고 있다. 그 장의 크기는 대부분 자신의 키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이는 그 공간에 들어와 있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크기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사람이 유독 불편한 이유는 좁고 폐쇄된 공간에서 두 에너지가 서로 간섭하며 충돌하기 때문이다.

어떤 물건이 나보다 크다는 것은 그 물건이 나보다 큰 에너지 장을 갖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럴 땐 내가 그 대상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어당하고 영향을 받기 쉽다. 그래서 나보다 높고 큰 책장은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두는 것이 좋다. 방 구조상 한쪽 벽을 똑같은 높이의 책장들로 채웠다면 중간중간 책을 넣지 않고 빈 여지를 두는 것이 좋다.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구조를 가진 다른 책장으로 변모할 수 있다. 여건이 된다면 낮은 책장을 두어 균형을 맞추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서로 높낮이가 다른 책장이 공부방에 기류를 만든다


▎고요한 도서관보다 소란스러운 카페에서 집중이 잘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소리와 잘 융화돼 거슬리지 않게 느껴지는 일명 ‘백색 소음’ 때문이다. 적막함을 달래주면서 집중력 등 학습력을 높여주는 백색 소음을 활용할 필요도 있다. / 사진:아이클릭아트
또한 책장에 꽂아두는 책들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게 좋다. 우리가 성경이나 불경 같은 종교서적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은 그 책들의 내용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글 속에 성인들의 기운과 체취가 담겨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범인(凡人)이 쓴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편집과 인쇄의 과정을 거친 책일지라도 글자 한 자 한 자에 녹아 들어간 작가의 사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우리가 책을 읽지 않아도 책에 담긴 문자의 힘이 계속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서권기(書卷氣)’는 그런 보이지 않는 힘까지 내포하는 말이다. 그래서 책장에는 부정적이거나 잔인한 내용보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내용의 책들을 꽂아두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이고 어두운 기운에 노출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공부방에는 공부만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간에 여유가 없어 공부방과 침실을 함께 쓰는 경우가 많다. 어쩔 수 없이 공부방에 침대를 놓는다면 침대를 하나의 책상처럼 사용하는 것이 좋다. 생각보다 많은 학자나 작가들이 침대나 소파베드에서 비스듬히 기댄 채 작업을 하고 공부를 한다. 척추의 긴장이 풀리고 이완된 상태에서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학부모가 아이방을 꾸밀 때 침대를 과연 어느 방향으로 해야 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방향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수면의 질이 달라지고 공부의 효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북쪽을 향해 머리를 두지 말라는 속설이나 반안(攀鞍)살 방향으로 머리를 두라는 사주의 이론이 가정에서도 많이 적용되고 있다. 문을 열었을 때 머리부터 보이는 위치는 안 좋고 거울이 몸을 비추는 위치도 안 좋다는 말도 있다. 이들 이론은 모두 공간에 흐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방향’에 내 몸을 어떤 식으로 둘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온갖 종류의 전자기파가 난무하고 무질서하게 세워진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에서는 예상치 못한 에너지의 흐름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내 동선(動線)과는 상관없이 구획된 획일화된 공간구조에서 특정한 방향을 고집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론은 하나의 예제나 샘플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대신 내 몸을 통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위를 찾는 것이 좀 더 실증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갓난아이들이 자는 것을 보면 제자리에서 얌전히 자는 게 아니라 빙글빙글 몸을 움직이며 자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주위환경에 민감한 유아들이 자신에게 가장 편한 위치를 찾기 위한 탐색과정이기도 하다. 두침(頭枕) 방향을 정하기 전에는 이런 탐색과정이 필요하다. 일단 아이를 잠자리의 가운데 눕히고 ‘네 몸이 네가 가장 편한 곳을 향해 움직여 갈 거라는 사실’을 주지시킨 뒤 잠든 아이의 몸이 어느 방향을 향해 움직이는지를 살펴야 한다. 뒤척임에도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목적을 품고 이완된 몸은 나침반처럼 스스로 가장 편한 방향을 찾아 움직여 갈 것이다. 그곳이 바로 아이가 머리를 둘 방향이다.

공부방 침대, 어느 방향으로 두는 게 정답일까


▎몸이 편안하다고 느끼는 위치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의 방에 침대 위치를 정할 때에 특정한 이론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 사진:아이클릭아트
마지막으로 학습의 공간에서는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들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소리를 공부의 적으로 여기지만 소란스러운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잠깐의 공부가 효과적이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는 동안 지하철의 큰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았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소음을 ‘백색소음’이라고 한다.

백색소음은 비바람이 불거나 물이 흐르는 소리처럼 많은 소리를 담고 있지만 마치 하나의 소리처럼 잘 융화되어 거슬리지 않게 들리는 소리를 말한다. 백색소음은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적막함과 지루함을 달래줘 집중력과 기억력 등의 학습력을 높여준다고 알려져 있다.

자연의 백색소음과 함께 공부하던 최적의 장소는 과거의 교육 장소였던 서원(書院)이었다. 서원의 강학(講學)은 밖으로는 새소리와 물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던 대청마루에서 이루어졌다. 사방이 트여 산만해 보이는 이곳에서 강학이 가능했던 건 멀리 보이는 주위의 풍경이 뇌의 DMN을 활성화하고 백색소음이 오히려 학습력을 키워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적 사색과 낭독이 공부였던 과거에는 최적의 공간이었던 셈이다.

요즘 쉽게 접할 수 있는 백색소음은 자연의 소리가 아닌 기계의 소리다. 냉장고나 공기청정기, 컴퓨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들이 바람과 물소리를 대신하게 됐다. 이런 도시의 백색소음이 가장 잘 구비된 곳이 바로 ‘카페’다. 다양한 기계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사람들이 드나들며 남기는 속삭임이 풀벌레 소리처럼 가득한 곳. 그리고 이는 내가 내는 적당한 소음과 움직임 역시 허용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숨막히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기보다 카페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게 된 것도 백색소음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 때문일 것이다.

공부는 언뜻 눈과 귀로만 하는 것 같지만 오감이 충분히 자극될수록 더 높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공부하는 공간에 어떤 소리가 나느냐에 따라 공부의 결과물이 달라질 수도 있다. 혀로만 느껴질 것 같은 음식의 맛도 후각과 청각 시각에 영향을 받는다. 음식 자체에 첨가된 향이나 색뿐만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공간의 향과 소리에 따라 음식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심산유곡에서 구워 먹는 고기의 맛이 남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몸이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멈춤이다. 수백 개의 관절,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쉬지 않는 심장과 혈류, 언제나 뚫려 있는 코와 귀의 구멍은 우리의 몸이 자극에 반응하고 움직이게 만들어진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공부 역시 이런 몸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온갖 자극에 반응하며 시끄럽고 산만하게 공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숨막히게 고요한 학습 환경만이 최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부에서 공간의 기술은 꽤나 중요하다. 그러나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듯이 기능적 공간자체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게끔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탐랑성’이다.

옛사람들은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에도 학문과 지식을 관장하는 특별한 별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곧 탐랑성(貪狼星)이다. 탐랑성은 언제나 북극성을 향하고 있는 두 개의 지극성(指極星) 중 하나로 북두칠성의 머리에 해당하는 별이다.

옛날 어머니들은 과거를 앞둔 아들이나 남편을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그 물위에 지극성을 띄우며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렸다. 거기에서 지극정성이라는 말도 유래됐다. 또한 탐랑성의 기운을 받은 산은 봉우리가 붓의 끝처럼 뾰족한 모양의 산이 되는데 이를 문필봉(文筆峰)이라 하여 학문과 관련된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눈에 띄는 문필봉 중의 하나가 바로 북악산으로 이런 필봉들은 우리나라 곳곳에 수없이 많다. 옛날에는 이런 문필봉의 기운이 서린 곳에서 뛰어난 학자가 나온다고 믿었다. 탐랑성이라는 우주적 장치가 인간의 마음에 지적인 공명을 일으킨다고 본 것이다.

부모여, 아이의 ‘탐랑성(貪狼星)’이 되어라


▎공부방 인테리어에서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는 책장이다. 어떤 책장을 고르는지, 그 책장들을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공부방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장 사이사이 숨통을 틔워 방 안의 독특한 기류가 생기도록 하는 것이 인테리어의 열쇠다. / 사진:신기율
정화수와 문필봉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해진 요즘에도 나는 가끔 탐랑성을 만나곤 한다. 아이에게 학문의 별이 되어주는 사람,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말이다. 얼마 전, TV에서 본 한 아버지는 부모님이 한글도 몰랐을 정도로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 먹고 살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던 그는 가난한 삶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1년마다 한번씩 이사를 해야만 했는데 그때마다 늘 도서관 옆으로 집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도서관 앞 마당에서 아이와 신나게 놀았고 도서관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책을 골라주거나 읽어보라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도서관이 재미있고 즐거운 곳, 공부가 흥미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또한 공부하라는 잔소리 대신 아버지 스스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아버지 옆에서 늘 함께 책을 펼쳤고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덕분에 첫째 아들은 그 어떤 사교육이나 학습지 한 번 없이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 합격했다. 스페인어와 영어로 원어민과 자유자재로 대화하고 시사 문제에도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등 공부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말할 때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이사시킨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거기서 맹자의 어머니가 한 일은 이사한 그곳에서 맹자와 함께 ‘대화’를 한 것이었다. 맹자가 어떤 것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가에 대해 이야기할 소재를 찾아 옮겨 다닌 것이다. 많은 부모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 환경을 조성해놓는 데만 집중한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방안 가득히 단어표와 동물그림을 붙여놓고 아이들 책과 교구들로 방과 거실을 가득 채워놓는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가지고 아이들의 호기심이나 질문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자세히, 끈질기게 설명해주는 부모는 드물다. 아이 옆에서 함께 책을 펼치며 공부하는 부모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의 탐랑성은 책으로 가득한 책장도, 학원가도 아니다. 칠흑 같은 밤을 밝혀주는 별. 따뜻한 사랑으로 나를 지켜봐 주는 부모의 지극정성이다. 그 탐랑성이 아이의 마음에 내려왔을 때 아이 스스로가 문필봉이 되어 공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내 아이의 방을 따로 만들어 줄 공간이 없거나 기능적 공간으로 꾸며 줄 여력이 없어도 괜찮다. 북극성이 길 잃은 나그네의 지표가 되어주듯 아이는 그 탐랑성이 가리키는 북극성을 따라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남다른 혜안으로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한 결과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현재 직관과 마음 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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