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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총성 없는 ‘이미지’ 전투의 전말 

 

박지현 기자

20세기 가장 사랑받은 남자와 가장 미움받은 남자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 둘 다 쇼펜하우어의 애독자이자 예술가를 꿈꿨다. 짧은 콧수염까지 꼭 닮은 이 두 천재는 닮은 듯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찰리 채플린과 아돌프 히틀러. 이 책은 단 한 번 마주친 적 없는 두 사람이 ‘미디어’라는 전쟁터에서 벌인 총성 없는 전투를 다뤘다.

히틀러의 힘을 배가시킨 무기는 미디어다. 히틀러는 가상의 적을 만들어 투쟁을 연출하고 관객을 흥분 속에 가둬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일에 특출했다.

채플린의 영화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 1921년 제작한 첫 장편 반전 영화 <키드>는 미디어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미디어를 통치 시스템의 주요 도구로 삼은 나치는 채플린을 철저히 배제하고 공격했다. 영화 상영금지, 논평 금지, 콧수염 금지, 나아가 웃음까지 통제했다. 부계와 모계 4대가 모두 영국인인 채플린을 ‘유대인 광대’라 몰아세운 나치의 눈에는 평화주의자 월드스타의 콧수염마저 거슬렸다.

1940년 6월 23일, 히틀러가 파리를 점령하며 전 세계가 절망에 빠졌다.

다음 날, 채플린은 반격을 개시한다. <위대한 독재자>의 마지막 신 촬영을 시작한 것이다. 채플린은 히틀러를 패러디해 6분 동안 전 세계에 평화를 호소한다.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응시한 연설 신에서 그는 관객들에게 질문한다. “당신은 이제 어떤 삶을 사시겠습니까?”

히틀러가 영화를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후 연설 횟수는 급감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연설을 하던 히틀러는 영화가 개봉된 이듬해에는 대중 연설에 나선 회수가 불과 7회에 그쳤다.

채플린은 이렇게 말했다. “웃음은 광기에 대항하는 방패다. 모든 영화는 프로파간다다. <위대한 독재자>는 민주주의의 프로파간다다.”

통제를 넘어선 자유가 승리한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 박지현 기자

201710호 (2017.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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