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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 MB-친노 해묵은 ‘원한(怨恨)정치’ 딜레마 

과거 두 정부가 문재인 정부 옭아맨다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노무현 일가 뇌물수수 ‘죄’를 드러낸 이명박 정부의 ‘죄’를 벌하나 책임, 용서, 화해가 연계되는 과거청산이 미래지향적인 해법

▎2008년 2월 25일 국회앞마당에서 열린 제 17대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 이명박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취임식장을 나서고 있다.
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가져온 15대 대통령선거를 두 달 앞둔 1997년 10월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본관 145호실에서는 ‘국민대화합을 위한 [3금법(禁法)] 제정 공청회’가 열렸다. 넉 달 뒤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는 당시 야당의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가 주최했다. ▷정치보복 ▷차별대우 ▷대통령 친족의 부당행위 등 3대 정치 악습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 한국의 정치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취지로 개최한 행사였다. 여기서 새정치국민회의는 가칭 ‘국민대화합을 위한 정치보복 방지와 차별대우금지 등에 관한 법률안’(3금법)을 선보였다. 이때는 대선을 눈앞에 둔 여야의 유력주자들이 치열한 정책 대결을 펼칠 즈음으로 이 법안은 김대중 총재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이날 공청회 주제발표에 나선 천정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정책부의장은 “정치퇴행은 물론이고 국가발전 및 국민통합의 최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후진 정치의 대명사인 ‘정치보복, 차별대우, 대통령 친족의 부당행위’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금지하고자 한다”고 법안 배경을 설명했다. 그중에는 당시 정통성의 한계를 지닌 집권층이 정치보복으로 반대세력을 제압하고 지연, 학연 등에 따라 한정된 인재들만 기회를 독점하도록 차별을 구조화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강화했다는 비판도 포함됐다. 천 부의장은 발제문에서 “이승만 독재,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 김영삼 문민 독재가 정치적 반대자 및 민주인사를 탄압했다”면서 “이런 정치 보복은 민주 정치질서 확립을 가로막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방해했다”고 보수 집권세력에 화살을 날렸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승계자인 문재인 대통령과 새정치국민회의의 적통을 이어받은 더불어민주당이 국정운영의 키를 잡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지만 정치보복 이슈는 여전히 정치권을 활보한다.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최근 내놓은 자료 ‘문재인 정권 13대 정책 실패’ 목록의 첫 사례로 정치보복을 꼽았다. 정부 주요 부처에 이른바 ‘적폐청산 태스크포스’가 설치된 것과 관련해 “적폐청산이 아닌 ‘대한민국 70년을 부정하는 우파 숙청’이며 정치보복과 지방선거 전략”이라고 발끈했다. 예컨대 국정원 대선개입 댓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이른바 4자방(4대강·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 등의 적폐청산을 통해 최종적으로 지방선거 이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MB)을 검찰 수사 포토라인에 세우는 게 여권의 목표라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현 정권은 적폐청산을 국정과제 1호로 선정해 과거 들추기와 국민 편가르기를 자행하는 ‘신(新)적폐정부’”라는 역공을 가하기에 이르렀다.

“진영 간의 큰 전쟁으로 확산될 수도”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적폐청산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야당의 이처럼 날 선 반응은 여권의 적폐청산 공세가 지방선거용으로 악용되리라는 우려와도 맞물려 있다. 여권이 적폐청산을 ‘(여권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유지하고,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심판론 대신 우파 9년 적폐청산론 구도’로 만드는 디딤돌로 활용하리라 본 것이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혁신이란 이름의 칼날이 검찰과 경찰, 국정원등 사정 기관에 의해 제1야당과 전전임 대통령에게만 편향적으로 집중된다”면서 “그건 정치보복이고 표적사정”이라고 못을 박았다. 나아가 “원조 적폐에 대해서도 동일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금품수수 의혹도 함께 수사하자고 나섰다. 보수-진보 양 진영은 상대의 전직 대통령을 정면 겨냥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달리고 있다.

지난 20년간, 아니 더 오랜 기간 한국 정치권은 정치보복 논란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적폐청산위를 만들어 과거사 관련 각종 의혹규명 활동에 돌입하자,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특위’를 전면에 내세워 맞불을 놓았다. 미래를 위해 과거의 잘못된 정치관행을 뜯어 고친다는 적폐청산의 본질은 오간 데 없고 적폐청산이냐 정치 보복이냐 하는 프레임만 충돌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해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지금의 여와 야는 마치 상대 진영을 박멸이라도 할 기세로 서로에게 원한과 적개심을 표출한다”면서 “반복되는 정치공방 속에 개혁의지는 무디어지고 사회는 정체돼온 게 한국의 과거사“라고 돌이켰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미래지향적인 적폐청산은 바람직하지만 과거에 머무는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을 부르게 마련”이라고 우려했다. 나아가 적폐청산도 청산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재발을 막는 제도 개혁으로 이어질 때 설득력을 갖는다는 게 김 부소장의 관전 포인트다. “처벌 운운하며 잘못을 파헤치고 특정인을 일방적으로 공격할 경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보복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예컨대 MB도 노 전 대통령 부분에 대해 죽기살기로 나설 것이다. 어차피 관련 자료는 있을 테니까 진영 간의 큰 전쟁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적폐청산이 정치보복 공방으로 비화하는 발단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박 시장은 9월 20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내가 아는 최대의 정치보복은 (이명박 정부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이 불행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고 MB를 정조준했다. 하루 전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 관련 조사가)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하는데 내가 아는 정치보복은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게 가했던 것이 바로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했다.

그간 여권의 전직 대통령 때리기에 무대응으로 일관해오던 MB측도 응사에 나섰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9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말은 또 무슨 궤변인가”라며 “노무현을 이명박이 죽였단 말인가. 노무현의 자살이 이명박 때문이란 말인가”라고 박 시장의 발언을 맞받아쳤다.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씨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의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권씨는 가출하고, 그날 밤 혼자 남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라고 직설적 발언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낸 이재오 전 의원도 9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명박 정권이 잘못됐다면 책임을 지고 감옥이라도 가겠다”고 가세했다. MB의 측근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일전불사의 의지를 내비쳤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여권은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격렬하게 반응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형언할 수 없는 최악의 막말”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격분했다. 현 여권의 실세이자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불리는 김경수 의원은 “이번에는 어떤 타협도 없을 것”이라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김 의원은 “MB 정부 국정원의 불법적 대선 개입과 민간인 사찰 문제를 물타기하고 싶은 것 같은데, 우리 국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면서 “허위 사실로 고인과 유족을 욕보이셨으면 그에 따른 응분의 법적 책임을 지시면 된다”고 결기를 세웠다.

“MB 때리기는 친노(親盧) 지지층의 성화 때문”


▎2011년 11월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 조사를 앞두고 김해시 봉하마을 주민들이 검찰과 이명박 정부 규탄집회를 하고 있다.
이를 받아 자유한국당이 응전에 나서면서 여야가 한데 뒤엉키는 난타전 양상으로 번졌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권양숙 여사와 아들이 박연차 씨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은 것이 허위사실인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허위사실인가. 또 부부싸움이란 부분만 허위사실인가”라고 쏘아붙였다. 정치적 공방은 검찰 고발로 이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이 9월 25일 정진석 의원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자, 자유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위’도 10월 13일 노 전 대통령 유족을 뇌물공모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적폐청산 여론이 비등하다 보니 한동안 MB 진영도 여권의 과거사 파헤치기 행보를 한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정치보복이라는 심증은 가지면서 딱 부러지는 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정치보복’이라는 단어를 거론하면 사정이 급변했다. 박 시장의 발언을 고리로 해서 MB 진영은 일제히 정치보복 프레임을 들이민 것이다. 정치보복이 되풀이된다는 식의 역공이다.

익명을 원한 이명박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MB에게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는 양상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책임을 간접적으로라도 물어야 한다는 친노(親盧) 지지층 성화도 한 배경으로 이해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뇌물 수수 의혹) 죄를 드러낸 (이명박 정부의) 죄를 벌하려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나”며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그렇게 되면 다음 보수 정권에서 반드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 지금의 정권 담당자들은 자기들은 깨끗해서 죄짓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적폐청산도 사안의 경중을 가려야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 박범계 위원장이 10월 11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김두우 전 수석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사감(私感)에 따른 정치 보복이라고 규정했다. 김 전 수석은 9월 29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첫 번째 목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감정적인 앙금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또 “보수세력의 대통령 두 분 중 한 분은 탄핵되고 수감되고. 또 이제는 남은 대통령이 한 분이다. 이거 흠집만 내면 보수는 끝장난다 이렇게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 정치사에서 이런 시도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며 국민들도 다 눈치를 채고 있다”고 되받았다.

사태를 보는 여야의 시각은 현격한 차이를 나타낸다. 여권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와 같은 민주주의를 병들게 만드는 행위는 진영 간의 불협화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나라의 기강이 선다고 확신한다. 유인태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가정보원이 댓글공작으로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것이나 국가안보를 책임진 군이 민간인 사찰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며 “이를 방치하거나 망각하면 다음 정권의 운영자에 따라서는 같은 일이 재발할 수도 있다”고 단죄를 강조했다. 그는 연장선상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정부가 왜 그렇게 무리하게 강행했는가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고 방위산업 비리는 반드시 털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사안의 경중은 가려 적폐청산에 임해야 한다고 유 전 수석은 덧붙였다. 가령 대한민국 건국일을 언제로 볼 것인가와 같은 쟁점으로 보수와 진보가 마찰을 빚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1948년 나라를 세웠다고 보는 합리적 보수층도 많다”면서 “합리적 보수층이 갸웃하는 문제로까지 여야가 충돌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 전 수석에게 자유한국당은 합리적 보수와 거리가 먼 정치세력이다. 적폐청산 전체를 싸잡아 정치보복이라 치부하는 것부터가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워낙 바닥을 기다 보니 소수의 골수 친박 지지층이라도 확보하려고 생떼를 부리는 것 같다. 자유한국당 스스로의 힘으로 정당 지지도를 끌어 올릴 수 있거나 정상궤도에 있다면 자발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원래 보수주의는 고유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다. ‘국가를 위한 헌신’ ‘공동체를 위한 봉사’ ‘가족의 중요성’등이 대표적인 지향점이다.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국가 시스템이 왜곡되면서 한국의 보수는 가치에 입각한 정치를 해오지 못했다. 그 결과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는 지리멸렬한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만큼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했다. 통치기구 내의 왜곡을 바로잡고 청와대·검찰·국정원·국세청·공정위 등 주요 국가 기관들이 권력에 악용당하지 않도록 개혁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다수 국민도 제도적 개혁에 입각한 적폐청산을 바란다. 유인태 전 수석은 “과거청산 작업은 힘이 있는 정권 초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타이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현실은 이와 다르게 돌아간다. 적폐청산 프레임과 정치보복 프레임이 충돌하면서 정치권이 과거 회귀적인 공방으로 퇴행하는 양상마저 보인다. 정치권 중간 지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제 3당인 국민의당은 양대 정당 간의 격돌이 결과적으로 적대적 기득권 공생관계를 강화하리라 우려한다.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은 “국민들의 눈에는 정쟁으로 인한 싸움판 정치로 비칠 뿐”이라며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과거로 회귀하는 구태정치를 중단해야 한다”고 양비론을 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은 “ 아무리 과거 일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는 게 맞다”고 언급했다. 다만 유 의원은 과거에만 매달리다 보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말 것이라고 경계한다. 그는 “여야가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으로 갈려 다투면 안보와 경제는 누가 책임을 지는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 정치적 공방은 문재인 정부가 자초한 것이다. 움직일 수 없는 물증이 있으면 바로잡는 게 맞다. 지금 (적폐라고) 나오는 걸 보면 뭐 대단한 게 있는 듯하지만 국민들이 ‘저건 진짜 잘못’이라고 느낄까. 불법 댓글을 단 국정원, 사이버사령부는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적폐청산한다고 사회의 모든 이슈를 과거로 가져가면 당면한 문제는 언제 해결할 수 있나?” 이와 관련해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국정운영의 책임을 진 이들은 파헤쳐진 많은 적폐를 나중에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여권도 내부에 이와 관련한 요령과 전략이 있는지, 내부 제동장치도 가동하는지 살펴봐야 한다”이라고 권고했다.

여권은 믿는 구석이 있다. 여전히 견고한 국정 지지율과 네티즌들의 일방적 성원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가졌다. 10월 10~12일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답한 응답자 비중은 73%에 달했다. 정부 출범 후 최저치로 떨어졌던 65%에 견줘 8%포인트 반등했다. 청와대 초청 인사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문 대통령 서명이 들어간 손목시계는 없어서 못 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원가 4만원 정도인 ‘문재인 시계’가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에서 100만원대를 훌쩍 넘겨 거래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문 대통령의 대중적 이미지는 양호한 편이다. 또 국정감사장에서 야당의원들의 홀대를 받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격려하는 글이 일부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친여 성향 네티즌들의 막강한 인터넷 여론 형성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손색이 없다.

“도덕적, 이념적 우월감만으론 큰코다친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품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뒤 부부싸움 끝에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사물에 음양이 있듯이 여권도 잃는 게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원내 제휴가 가능한 교섭단체와의 협치가 무뎌진 현실을 들 수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 대통령이 지지율만 믿다가 바른정당을 포용하지 않음으로써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이 물건너갈 것”이라고 타박했다. 유인태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문 대통령이 정권 출범 이후 높은 국민적 지지를 얻으면 협치는 따라 이뤄지리라 생각한 것 같다”면서 “높은 국정 지지도가 정권에 상당한 동력을 제공하는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협치까지 주어지는 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도 집권여당이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이행에 필수적인 야당과의 협치를 간과한 사실을 지목한다. 그는 “100대 과제 대부분 예산과 입법을 수반한다”면서 “처음부터 ‘개혁 협치’ 구상을 갖고 국정에 임했어야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국정지지도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국정운영 방식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국정지지도 고공 행진과 인터넷 공간에서의 우위가 집권세력으로 하여금 일을 그르치게 할 수도 있다. 여당이 적폐청산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과거사 청산의 초점을 흐리고 정치 공방의 빌미를 제공한 것부터가 그렇다. 서양호 소장은 “검찰, 경찰 등 제도적 권한을 가진 국가 기관보다 민주당 내 적폐청산위의 목청이 더 높아지면서 정치권 공방을 자초했다”면서 “적폐청산은 정당이 아닌 정부 주도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정부여당은 실기(失機)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진보 학계의 경제학자인 고(故)김기원 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생전에 현 집권세력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예언이라도 하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보수파는 인간의 탐욕이라든가 악한 본성을 잘 이해하고 따라서 우월감이 덜한 반면, 진보파는 우월감에 기인한 배려 부족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김 전 교수에 따르면 이념에서 출발한 진보파는 자기 확신이 넘친다. 그에 비례해 대화하는 상대편을 비롯한 대중의 마음을 읽으려는 노력은 미흡한 게 문제다. 그는 “도덕적 우월감, 이념적 우월감만으로 사람을 대하고 나라를 꾸려나가려고 하다간 큰코다친다”고 다잡아 말했다. 세상사에는 이성적 논리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데다 예의마저 결여되면 감성적으로 대중의 거부반응을 불러오기 십상이다. 그래서는 부동층을 자기편으로 끌어올 수 없다.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진보파가 많다는 게 그의 진보 비평이다.

“옳은 일과 선거 승리 함께 고민?”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열린 정치보복대책특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김성태 특위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 연합뉴스
김 전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진보진영의 특징을 고찰한 글도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대중의 삶과 정서에 대한 이해 부족, 시장의 의의와 한계에 대한 인식 부족,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 전술의 결핍 등으로 노무현 정부가 곤욕을 치렀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정치의 오류가 경제의 질곡으로 이어졌다. 그는 “정치적 과오로 지지 세력을 확보하지 못해 바람직한 경제정책을 밀고 나가지 못했다”면서 “그런 경제 정책을 보여주지 못하니 정치 지지는 더 약화되는 악순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래서일까?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창작과비평> 2017년 가을호 대담에서 한 언급을 보면 집권세력 심리의 일단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는 우선순위나 성과를 판별하는 기준을 ‘지지기반을 흩뜨리지 않는 것’으로 규정했다. “개혁이라는 건 찬반이 있기 마련이고 반대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기 쉽다. 어떤 사람에 반대가 많아지면 성과를 내기 어렵고 결국은 전체적인 개혁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 정권의 지속가능함이라고 할까. 문재인 정부를 넘어 그 이후까지 진보정권을 유지하려면 지지 세력을 약화시키는 선택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그는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정부라도 입법에 실패하거나 선거에서 지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옳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 때문에 선거에서 지는 모습을 많이 본 터라 겁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옳은 일을 하는 것과 입법 성공, 선거 승리는 함께 고민돼야 한다.”

MB진영도 같은 맥락에서 현정국을 바라본다. 이 전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근무한 한 인사는 적폐청산 과제가 문재인 정부를 있게 한 ‘친노세력’ 등 핵심 지지층의 요구사안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여권이 개혁의 우선순위를 ‘지지기반 유지’에 둔다면 적폐청산은 적당히 접거나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이 되는 게 맞다. 이 인사는 “현 집권세력이 친노·친문이라는 말 등에 오른 형국이라 과거청산 이슈는 여권의 통제를 벗어나 폭주로 치닫는 수도 있다”며 다음과 같은 전망도 했다. “지방선거는 다가오는데 경제 성적표가 초라하거나 국정의 성과가 미진할 경우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 MB를 물고 늘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피아를 확실히 구분하는 적폐청산 드라이브는 지지층 규합에도 제격이다. 정치적 악용이 우려되는 이유다.”

과거청산에 대한 독특한 성찰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책임, 용서, 화해가 연계될 때 과거청산은 미래 지향적 행위가 된다”고 했다. 한국에서 진행되는 적폐청산은 이 세 가지 요소를 어느 정도 투영하고 있을까? 지금의 정치권은 답을 내놓기 어려울 듯하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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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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