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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文 ‘칼날’ 주시하며 신발끈 죄는 MB 

“앉아서 당하기만 한다면 보수 결집 촉매제가 되겠나”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정부·여당, 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블랙리스트 등 전방위 압박…일각에서는 전·현 정권 사이 ‘정치적 딜’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

이명박(MB) 전 대통령에게 전방위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MB의 소환조사,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이에 구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예상했던 일이라 별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며 “보수의 유일한 구심점이라 할 MB를 욕보임으로써 보수 전체를 궤멸시키려는 비열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정원 TF가 깃발을 들면 여당이 장구를 치고, 검찰이 칼춤을 추는 형국”이라며 “이 모든 것이 내년 지방선거, 나아가 다음 대선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5년 8월 15일 열린 제70주년 광복절 중앙경축식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
지난 4월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대형 국책사업에 대한 사정(司正)을 ‘예고’했다. “대통령이 되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사업, 방위산업, 자원외교 비리 등을 다시 조사하겠다.” 이어 대통령 취임 12일 만인 5월 22일 감사원에 4대강사업의 재감사를 지시하면서 공약이 현실화됐다. 대통령에게 감사 지시권이 없지만, 감사원은 “국민공익감사 청구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감사를 시작했다.

이에 구 여권에서는 “전임 정부에서 세 차례나 감사를 받았는데 또 받아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대해 현 여권은 “MB정부에서는 셀프 감사, 면죄부 논란이 있었고 이후 두 차례 감사에서도 핵심 관계자에 대한 감사는 진행되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쳤다.

MB정부 국가정보원에 대한 조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정원은 6월 1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산하에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사건 의혹을 조사하는 적폐청산 TF(위원장 박범계 민주당 의원)를 설치했다. 서훈 국정원장이 7월 12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조사 대상 사건 13건 가운데 ▷2012년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박원순 제압 문건’ 등 6건이 MB정부 때 있었던 일이다.

국정원은 8월 3일 MB정부 때 원세훈 국정원장 지시로 포털사이트 등에 친정부 성향 글을 올린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다는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어 8월 21일 관련자 30명, 9월 1일에는 팀장급 18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국정원 개혁위가 9월 11일 ‘박원순 제압 문건’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를 발표하자 일주일 사이 관련자들이 검찰에 출석하면서 수사가 급물살을 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같은 날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문성근·김미화 씨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국정원 개혁위는 9월 18일 MB정부 때인 2010년 작성된 KBS·MBC 관련 보고서 두 건의 주요 내용을 공개하며 “(MB)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이 보도자료를 내자 민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진짜 배후’가 누구인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더 이상 원세훈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 일각에서는 2007년 대선 때 논란이 됐던 ‘BBK 사건’도 거론하고 있다. 9월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이 전 대통령의 BBK 사건 연루 부분이 확인되면 재수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자 이 총리는 “사실이라면 좀 더 명확한 규명이 필요한 문제”라고 답했다. 9월 14일에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박상기 법무부 장관에게 “BBK와 관련해 전면 재수사해야 한다”고 요구했고, 박 장관은 “검찰에서 판단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MB 정부 자원외교에 대해서도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홍익표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은 8월 10일 당 회의에서 “해외 자원개발은 무풍지대로 이명박 정부가 수십조 원을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 실패 사업”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 박영준 전 차관 등 모든 분에 대해 철저한 조사와 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선 이후 5개월여 동안 민주당은 당 논평, 각종 회의 등을 통해 거의 매일 MB를 언급하고 있다”며 “당내에 적폐청산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민주당이 국정원과 방송 장악 등을 문제삼아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득세한 이념 지향 세력의 작품”


▎이명박 전 대통령이 9월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여권의 전방위 공세에 MB측은 일제히 발끈하고 있다. 김효재 전 정무수석비서관, 이동관·김두우 전 홍보수석비서관 등은 MB의 ‘입’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 밖에 MB정부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사들도 구체적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MB측 내부적으로는 앉아서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한 관계자는 “그동안에는 국민의 눈에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비칠까 봐 대응을 자제해왔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일전불사(一戰不辭) 가능성까지 비쳤다.

김두우 전 홍보수석은 “적폐청산이 처벌·응징에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치보복의 악순환만 불러올 뿐”이라며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에 지금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못하다. 적폐청산은 과거의 그릇된 관행을 이 순간부터 없애자고 선언하고 실행하는 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 정부의 파상공세를 문재인 정권 내 두 갈래 중심세력 중 이념 지향 세력의 득세로 해석했다. 전문가 집단은 문 대통령이 일하는 대통령으로 남길 바라는 반면, 이념 지향 세력은 노선을 보다 확실히 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치지 않는 청와대 참모 중 상당 수는 운동권 학생회장 출신이다. 대통령의 참모진이 동류(同類) 집단으로 구성된 만큼 집단사고의 오류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MB측은 현 정권이 전 정권도 아닌 전전(前前) 정권을 압박하는 데 대해 “오만으로 가득 찬 정권”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권”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MB측은 9월 국회 표결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내년 9월까지 유지하기로 한 것이 ‘오만 정치’의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MB측 관계자의 말이다. “사실 MB정권 초기에도 ‘오만 기류’는 있었다. 대선에서 530만 표 차 대승에 따른 착시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정권 초기 ‘땅 사랑’ ‘남편의 오피스텔 선물’ 등의 발언이 민심의 분노를 불렀다. 그래서 광우병 파동 때 촛불이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을 보자. 국회에서 낙마한 김이수 대행 체제를 내년 9월까지 유지하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탈원전 등 다른 정책들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한다. 한마디로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한 발상이다. 걸핏하면 촛불 운운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득표율 41%로 당선된 대통령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MB정부 초기 여성부 장관과 환경부 장관에 각각 내정됐던 이춘호·박은경 씨는 “(병원 진단에서) 암이 아닌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사줬다”(이),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박)이라는 ‘어록’을 남기고 물러났다.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과 이봉화 복지부 차관도 도덕성 시비에 휘말려 도중하차했다. 결국 MB정부는 임기 내내 ‘강부자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여당의 파상공세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여론몰이로 규정하고 있는 이동관 전 수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미 탄핵됐으니 일단락됐다고 생각하고, 표적을 MB로 옮긴 것으로 본다”며 “국기문란은 현재 본인들이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DJ정부 시절 대북송금을 비롯한 북한과의 뒷거래는 적폐 아니냐”고 반문했다.

“DJ 끌어들여 노무현 vs MB 구도 희석 의도”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8월 21일 국회의사당 본관 앞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 공식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돌아서고 있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서도 MB 측은 지나치게 악의적이고 저열(低劣)한 공세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실과 너무 다른 억지 주장이라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씨는 김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청원 계획 의혹과 관련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런 어이없는 공작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과 관련해서는 “장례를 국장으로 하는 것도 2~3일 지체하다 마지못해 결정했다. 심지어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모시는 것도 자리가 없다면서 다른 곳을 찾으라고 권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두우 전 수석은 “전직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취소를 생각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국정원 직원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런 언급을 했을지는 몰라도 어떻게 정권 차원에서 그럴 수 있었겠는가. 한마디로 비열하고 악의적인 정치공세”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전 수석은 MB정부 출범과 함께 정무수석실 정무2비서관으로 발탁된 뒤 정무기획비서관 등을 거친 뒤 홍보수석까지 지낸 MB의 복심(腹心)이다.

김 전 수석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 서거(8월 18일) 열흘 전쯤 청와대 연풍문 2층에서 MB와 당시 김두우 정무기획 비서관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MB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김 비서관은 기다렸다는 듯이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문서에는 DJ 서거 시 장례를 국장으로 치러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과 함께 ▷DJ의 민주화 공로 ▷호남의 정서 ▷정치적 당위성 등이 담겨 있었다. 한참 동안 문서를 검토하던 MB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의가 없어.” MB의 재가(裁可)에 앞서 김 전 수석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동의도 얻어냈다. 사전 정지작업을 마친 뒤 MB의 결정만 기다렸던 것이다.

김 전 수석은 “DJ 쪽에서도 처음에는 국장이 아닌 국민장을 염두에 뒀던 것이 사실 아닌가”라며 “MB는 DJ 서거 열흘 전쯤 이미 국장을 결정했다. 그런데 마치 MB가 줄곧 반대하다 마지못해 허락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너무 악의적인 공세다. 이희호 여사도 MB의 국장 결정에 감사했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여당이 DJ 노벨평화상과 국장 문제를 들고나온데 대해 MB측은 현재의 싸움이 노무현 대(對) 이명박으로 비치는 데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정치적 공세로 규정하고 있다. 김 전 수석은 “호남과 DJ를 끌어들임으로써 전선을 확대시키고, 국민의당의 ‘참전(參戰)’을 유도하려는 작업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10월 11일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벨상 관련 부분은 사실로 밝혀진다면 세계가 웃을 일”이라며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질 사람이 있으면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MB측 관계자는 “안보·경제·외교 등 대한민국을 둘러싼 모든 현실이 어려운 이때, 현 정권과 전전 정권이 이전투구를 벌인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라며 “우리가 참았던 것은 최소한 그런 모습은 비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와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모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보수 통합으로 국회 제1당이 바뀐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6월 21일 대구시 달성군 강정고령보를 방문해 플라스틱 용기에 담은 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 총리의 왼쪽은 권영진 대구시장, 그 옆은 배재정 국무총리 비서실장. / 사진·연합뉴스
MB측은 현 정권의 파상공세가 부담스럽지만 결국엔 보수 결집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MB측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과 대선 패배로 보수는 가만둬도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나뉘어 있는 데다 보수를 대표할 만한 인물도 마땅치 않다. 한마디로 지리멸렬이다.

그런데 외부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공격이 들어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 싸움이 펼쳐지면 보수 내부의 갈등은 수그러들면서 자연스레 통합이 추진된다는 논리다. 그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MB가 직접 나서서 통합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란 예상도 나온다.

MB가 추석연휴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때가 되면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것도 여권의 공세가 수위를 넘었다고 판단되면 직접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여러 참모의 의견이 반영되긴 했으나, 최종적인 ‘감수’는 MB가 직접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8년 2월 18일 이명박 당선인을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비서실장과 유우익 비서실장 내정자가 배석했다.
이런 가운데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움직임을 경계하고 나섰다. 박 전 대표는 10월 12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절반 이상, 15명 정도의 바른정당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갈 것으로 본다”며 “그렇게 되면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선진화법에 이어 국회 제1당 지위를 잃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박 전 대표는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협치와 연정을 통해 국민의당(40석)·민주당(121석)·바른정당(20석)·정의당(6석)·무소속(2석) 등 국회에서 190석의 개혁 벨트를 확보해서 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는 두 개의 복병과 암초를 만나게 됐다”고 경고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MB가 결국 기댈 곳은 보수 정당인데 지금은 둘로 나뉘어 있는 데다 통합 명분도 약하다”면서 “하지만 앞으로 정부·여당의 공세가 더 거세진다면 결국엔 통합하게 될 것이고, 그럴 경우 MB측에도 힘이 실리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수면 위에서는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듯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정치적 타협 가능성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도 대화 통로를 열어 놓은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자유한국당 한 소식통의 진단이다. “공격하고 있는 쪽(여권)이나 방어하는 쪽(MB측) 각자의 입장에서 보면 서로 억울하고 (상대의 공세나 반응이) 과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제3자의 관점에서 보면 권력을 가진 쪽이 압도적인 화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도 “이 문제를 적폐청산이든 정치보복이든 뭐라 규정하든 판세를 결정하지는 못한다. 다수의 관중(국민)은 현 집권세력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간동아가 9월 25~26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5명(응답률 3.2%)을 대상으로 조사한 여론 조사(95%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에 따르면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사회 정의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응답이 69.7%였던 데 반해 ‘정치보복이 가미된 무리한 정책’이라고 응답은 24.7%에 그쳤다.

민생개혁법안 놓고 물밑 타협 이뤄질까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이 2007년 12월 21일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 난을 들고 이명박 당선인의 서울 종로구 안국포럼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 여권 일각에서는 “이 상황은 결국 수비수(구 여권)가 타개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돌아서지 않을 여론에 기대면서 자극적인 정치공방을 벌이다 보면 되레 궁지에 몰릴 거란 설명이 곁들여진다. 한 관계자는 “구 여권으로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 다수는 현재 권력이 법적 절차에 따라 국정원 문제 등을 처리하고 있으며, 결과에 대해 구 여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정치적 해결만이 유일한 열쇠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치적 해결이란 자유한국당 쪽에서 국회 정상화, 민생개혁법안 처리 등 포괄적 딜(deal)을 제안하고 정부·여당이 ‘핀셋 수술’을 통해 최소한의 환부만 도려내는 것으로 적폐청산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청와대도 고민은 크다. 자신들이 지적하는 적폐를 양산해온 구조 자체를 바꾸려면 제도개혁이 필수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90개 이상은 국회 입법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10월 9일 국회에서 열린 추석 민심 최고위원회의에서 “(보수 야당은)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씌우려 하고 있지만 국가 운영과 통치 행위에서 상실된 공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적폐청산의 목표”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우원식 원내대표.
현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법무부 개혁위원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만 해도 그렇다. 자유한국당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을 만들자는 거냐”며 반대하고 있다. 1998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공론화하며 촉발된 공수처 설치 법안은 20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보수 야당이 개혁위 안에 반대하면서 올해 정기국회에서 공수처 설치 법안 처리는 불투명해졌다. 이 법안을 담당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부터 강경하게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해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는 국민의당과 정의당 의원 등을 모두 끌어 모아도 170석에 불과하다. 법안 처리에 필요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가능 의석수(180석)에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결국 현 정권이 4대강사업, 국정원, BBK, 자원 외교 등을 문제삼아 MB를 소환조사해서 사법처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물론 이는 메가톤급 새로운 ‘팩트’가 추가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만일 문재인 정부가 MB를 사법처리한다면 국정운영에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되며, 나아가 한국 정치는 파탄에 이르게 된다”며 “전임 대통령은 옥중에, 전전임 대통령은 검찰에 불려 다니는 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다면 정치 자체가 실종되는 셈이다. 모든 일을 법적 판단에만 의존해서 처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구 여권 관계자도 비슷한 견해를 비쳤다. “설령 그만한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MB를 검찰에서 소환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사회적 이익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처리해야 한다. 만에 하나 MB 소환이 도화선이 돼 양쪽이 서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상호주의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자유한국당 쪽에서 정치적 해법을 제시했는데도 여당에서 끝내 죽이겠다고 덤벼든다면, 그때는 한국 정치의 종말이 온다.”

[박스기사] 문재인 정부의 MB정부 관련 사정 작업

국정원
• 검찰 수사

대선 개입
• 국정원 TF 조사

문화계
• 국정원 TF 문화·연예계 명단 공개

블랙리스트
• 검찰, 문성근·김미화씨 소환 등 수사 착수 / • 박원순 서울시장, 검찰에 MB 고소

4대강
• 감사원 재감사 중

공영방송
• 국정원 “MB정부 공영방송 장악 문건”이라며 공개

자원외교
• 민주당, 진상규명 촉구

방산비리
• 검찰,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수사

BBK 사건
• 민주당 의혹 제기→이낙연 국무총리 “새로운 사실 드러나면 재조사”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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