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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위원회·TF로 ‘무장하는’ 문재인 정부 

코드 맞추기 논란 속 실세들에게만 힘 쏠릴라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6월 말 기준 총 556개, 참여정부 시절의 579개 넘어설 듯…마구잡이식 신설 자제하고 기존 기구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지난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 대통령 업무 지시 1호로 설치된 일자리위원회를 신호탄으로 각종 위원회가 우후죽순 만들어지고 있다. 온갖 위원회가 난립했던 참여정부의 재판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종 위원회로 ‘무장하고’ 있다. 위원회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적폐 청산이다. 잇단 위원회 신설은 약일까, 독일까.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일자리위원 위촉장 수여식에서 위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위원회 공화국 맞습니다. 일만 잘하면 되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한 방송사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 내 위원회가 너무 많지 않으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위원회 공화국’은 참여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어느 정부도 피해 가지 못했다. “포장지 바꾼다고 달라지느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정권 입장에서 위원회 신설은 참기 힘든 유혹이었다. 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보여주는 데 위원회 신설만 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위원회를 둘러싼 논란이 가장 거셌던 정부는 참여정부였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위원회 설치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던 2003년 초 12대 국정과제를 정한 뒤 과제별로 팀을 꾸렸다. 이들 12개 팀은 참여정부 출범 후 예외 없이 위원회로 격상됐다.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자 위원회는 일선 부처들보다 도드라졌다. 장관들이 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김대중 정부 말(2002년)에 364개이던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는 노무현 정부 말 579개로 60%가량 늘었다.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위원회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2010년에는 431개까지 줄었다. 그러다 녹색성장위원회·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국가브랜드위원회 등이 설치되면서 정권 말에는 다시 505개로 늘어났다. 참여정부 못지않게 위원회 욕심이 많았던 박근혜 정부 때는 2016년 6월 말 기준 554개로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한술 더 뜨고 있다. 자고 나면 위원회가 생겨날 정도다. 6월 말 기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는 556개(행정위원회 38개, 자문위원회 518개)다. 국무총리실이 59개로 가장 많고 국토교통부(55개), 보건복지부(42개) 순으로 나타났다. 경우에 따라 참여정부 시절 최대치였던 579개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7월 20일 법무부를 제외한 16개 부처와 국가보훈처 등 19개 정부기관에 ‘적폐 청산을 위한 부처별 TF 구성 현황과 향후 운용 계획’을 7월 24일까지 회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각 부처는 TF 신설 계획을 청와대에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부처가 적폐 청산과 개혁을 앞세워 각종 위원회 등의 구성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권과 코드 맞추기 논란이 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위원회를 통해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한 성과를 빨리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부 위원회가 많아지는 것이 좋은 현상은 아니다”며 “위원회 총량제를 도입해 새로운 위원회를 도입할 경우 기존의 유사한 위원회는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세히 보면 정부 지향점이 보인다


위원회 가운데서도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경우 정부의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자리위원회·4차산업혁명위원회·북방경제협력위원회·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 등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신설된 기구다. 이름만 봐도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을 알 수 있다. 대신 박근혜 정부 때 만들어진 국민대통합위원회·청년위원회·문화융성위원회·통일준비위원회, 총리실 소속의 정부3.0추진위원회는 폐지됐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하고 있는 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일자리위원장을 맡았다. 위원장인 대통령과 이용섭 부위원장을 비롯해 기획재정부 장관, 교육부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고용노동부 장관, 여성가족부 장관, 국무조정실장, 공정거래위원장, 중소기업청장, 한국개발연구원장, 한국노동연구원장,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 등 주요 부처 수장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내각 안의 내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위원장 장병규 블루홀 의장)는 10월 11일 출범 후 첫 회의를 여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사람 중심의 정책으로 새로운 산업 육성과 신규 일자리 창출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함으로써 2030년 460조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둔다는 목표를 세웠다.

북방경제협력위원회는 동북아·유라시아 국가와 교통·물류·에너지 연계성 강화를 목표로 한 대통령 직속기구다. 북방경제 협력정책의 기본 방향과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위한 부처별 실행 계획 및 추진 성과 등을 점검한다.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러시아 특사로 임명됐던 송영길 민주당 의원이 위원장을 맡았다. 송 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선거대책총괄본부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전반을 총괄하게 될 국가교육회의(의장 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는 10월부터 본격 가동됐다. 교육 혁신, 교육 복지 등 다뤄야 할 과제들 모두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난제들이어서 험난한 행로가 예상된다. 일각에선 교육부 업무와의 중복을 이유로 들어 “옥상옥(屋上屋)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노태우 전 대통령 때 설치)를 가진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관한 정책자문 역할을 수행하는 기구다. 정해구 위원장은 6월 출범한 국가정보원 개혁 발전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은 일자리위원회 등과 관련해 “각 부처의 관련 업무를 조정·조율해 효율적으로 하도록 하는 것으로 옥상옥의 새로운 부처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사그라지지 않는 ‘옥상옥’ 논란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왼쪽 둘째), 4대강 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인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가운데) 등이 9월 2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대강사업 반대자에 대한 국정원의 탄압 등과 관련해 엄정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정권에서 위원회 수를 늘려온 것은 그만큼 정부 위원회제도에 매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정부 위원회제도는 정부의 정책 관련 의사결정 과정에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 따라서 합리적 의사결정과 함께 공정성·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 부처별로 영역이 겹치는 사안의 경우 해당 부처 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반면 위원회가 난립할 경우 장관들의 정책입안 의지와 부처 장악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 위원회가 정부 내 옥상옥 조직이 되면서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들에게만 힘이 쏠리게 될 수 있다. 위원회 규모가 클수록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지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위원회가 난립하면서 유명무실화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정책 기조에 따라 관련 위원회가 다수 등장했다. 미래창조 과학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 산하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운영위원회가 설치됐다. 정부·지방자치단체·민간의 협력을 통해 창조경제를 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미래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산업부 장관과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경제수석·미래전략수석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2016년 한 해 동안 단 한 차례 회의를 열었을 뿐이다. 그나마 2015년에는 한 차례도 없었다.

미래부에는 국가초고성능컴퓨팅 위원회라는 위원회도 있었다. 미래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 제2차관, 교육부 차관, 미래부 제1차관, 국방부 차관, 산업부 제1차관, 보건복지부 차관, 환경부 차관, 해양수산부 차관, 중소기업청 차장, 기상청 차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덩치 큰 위원회였다. 하지만 위원들이 모여 회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총 두 차례 회의가 열렸지만 모두 서면으로 대체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전체 554개 위원회 가운데 20%에 가까운 106개가 1년간(2015년 7월~2016년 6월) 단 한 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분기에 한 번 이상 회의를 한 위원회(246개)도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상당수 위원회는 ‘있으나 마나’였다.

그럼에도 새 정부 들어 중앙부처가 위원회 구성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을 두고 대통령과 ‘코드 맞추기’ 성격이 강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사례를 보면 문제는 위원회 구성까지는 ‘급행열차’를 타다가 막상 출범하고 나면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현안에 밀리거나 정권이 바뀌면서 위원회 자체가 아예 폐지됐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시도했던 검찰 개혁이 대표적인 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 검찰은 검찰 개혁을 위해 자문 위원회를 구성했다. 자문위는 검찰권 행사의 기본 방향을 재정립하고 검찰 수사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방안 마련을 목표로 출범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때 신설된 검찰 개혁을 위한 위원회·기획단·추진단은 정권이 바뀌면서 대부분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공정위와 역할 중첩, 역할 애매한 을지로위원회


▎송두환 검찰개혁위원장이 9월 1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찰개혁위원회 출범식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송 위원장의 오른쪽은 문무일 검찰총장. / 사진·연합뉴스
정부 위원회제도의 도입 목적은 시민과 전문가,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함으로써 정부 관료의 독단적 결정에 따른 폐해를 막고 설득·조정 기능을 강화하자는 데 있다. 정부 위원회제도는 자유주의 정신에 입각해 19세기 미국에서 시작됐다. 정치적 중립으로 정파성을 띠지 않는다.

미국의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위원회(Fed)는 정부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 기구다. 시장경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시장 참여자들이 해결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이처럼 미국의 위원회는 정치적 목적과 거리가 멀다.

반면 한국의 위원회는 행정부의 기능에 치중돼 있다 보니 관료들의 의사결정을 대리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중앙행정 기관의 성격을 띠는 행정위원회는 정부 규모의 비대 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위원회 설치와 관련해 일관된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정당 내 기구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탈바꿈한 경우도 있다. 갑을 문제 개선을 위해 여당 내에 만들어진 ‘을(乙)지로위원회’(위원장 이학영 민주당 의원)는 지난 7월 대통령 직속기구로 격상됐다. 국가 차원에서 갑질 문제를 해소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역할이 중첩되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 옥상옥 위원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는 을지로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등은 명시되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 공약대로라면 을지로위원회는 검찰·경찰·공정위·국세청·감사원 등 범정부 차원의 위원회로 꾸려져야 했다. 대기업들의 갑질 횡포를 적발·처벌하기 위해 조사권도 부여하는 등 막강한 기구가 될 전망이었다. 그러나 경제적 약자 보호라는 원래 취지를 넘어 기업 옥죄기 비판이 일자 그 위상이 축소됐다.

또 을지로위원회를 출범시키려 했던 것은 공정위와 검찰 등이 대기업 불공정 행위 등에 대한 감시와 조사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권교체 후 공정위 등이 어느 정도 움직이면서 을지로위원회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여당 내에서조차 “비슷한 기능을 가진 부처가 있는데 굳이 을지로위원회를 만드는 게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우후죽순식 위원회 신설은 비용 부담으로도 이어진다. 위원회 1개당 필요한 예산(2016년 기준)은 위원들의 각종 수당과 사무국 운영 경비 등만 해도 평균 1억6000만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위원회들의 덩치는 커지고 개수가 늘어난 만큼 비용 부담 또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위원회의 신설·증설에 따른 생산성과 효율성을 잘 따져봐야 한다. 위원회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일이 잘되는 건 아닌 만큼 반드시 고비용·저효율 구조는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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