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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제재·압박에도 北 버티기, 그 원동력은? 

제재에 내성 생기고 경제성장도 버팀목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2006년 첫 핵실험 때만 최대 14억 달러 투입 추산…압박 강도 높지만 北 자체의 경제 내구력 무시 못 해…식량 상황 악화가 변수 될 수도

대북제재의 효용성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압박 공세가 과연 약발을 발휘하고 있는지, 핵 포기 등 태도 변화를 이끌게 작용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오랜 제재 국면과 궁핍으로 내구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란 무용론과 제대로 된 대북제재를 가하면 북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란 낙관적 해석이 맞선다. 최근 평양 내부의 분위기와 그동안의 시대적 흐름을 통해 대북제재의 명과 암을 짚어본다


▎지난 9월 1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경 발언을 쏟은 나흘 후인 23일 평양에서는 ‘반미 대결전 군중집회’가 열렸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0만 명의 각계각층의 군중이 감가한 가운데 미국을 규탄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성명을 지지하는 군중집회가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대북제재란 멍에는 북한의 숙명이자 오랜 고민거리였다. 소련을 등에 업은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은 미국과의 대립을 불렀고, 노동당 70여 년 집권사는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은 ‘철천지원수’ 미국을 향한 저주와 독설을 끊임없이 퍼부었고 군사적 도발 행위로 앙갚음을 꾀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북한 체제를 고통과 파국으로 모는 압박의 고삐는 더욱 죄어졌다.

이 같은 제재는 북한 최고통치자들에게 엄청난 두통거리기도 했다. 국가주석 김일성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기 이틀 전에 고위 간부들과 가진 ‘경제 부문 책임일꾼협의회’ 발언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1994년 7월 6일 회의에서 김일성은 북한 핵 위기 중재차 당시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카터가 북핵과 관련한 유엔의 대북 문제를 언급했다며 “우리는 제재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며 살아왔지 제재를 받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지금까지 제재를 받으면서도 우리가 별일 없이 살아왔는데 이제 제재를 더 받는다고 하여 못 살아갈 줄 아는가라고 말해줬다”고 강조했다. 김일성은 “당신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자꾸 못살게 노는데 아무리 압력을 가하고 못살게 놀아도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나갈 수 있다고 했다”(<김일성 저작집 44>, 1996년 노동당 출판사)고 덧붙였다.


▎지난 9월 11일(현지시간)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대북제재 결의 2375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안보리는 대북 정유제품 수출을 연 200만 배럴로 제한하고, 북한산 섬유 수입을 금지했다. / 사진ㆍ연합뉴스
카터와의 대좌를 통해 미국의 대북제재 부당성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는 점을 노동당 간부들에게 부각시키려는 김일성의 의도가 드러나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김일성이 미국의 대북제재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도 읽힌다. 특히 김일성이 주재한 이 회의가 북한이 당면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전력 생산이나 화학 공업, 선박 건조 등의 과업을 제시하고 간부들을 질책하는 자리였다는 점은 눈길을 끈다. 파국에 이른 북한 경제의 문제점이 상당 부분 대북제재 때문이란 인식을 김일성과 당 간부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BDA 계좌 동결 땐 궁지에 몰리기도


▎일부 서방 언론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이후 북한이 3%대 이상의 경제 성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2016년 2월부터 5월까지 경제 분야의 성과 창출 프로젝트인 ‘70일 전투’를 진행해 큰 성과를 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평양 소재 건재공장 내부 전경.
보다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대북제재 국면은 1990년대 들어 본격화했다. 당초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이른바 대량살상무기(WMD)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를 포기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제기된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이탈해 핵 프로그램에 몰두하는 북한을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컨트롤 박스에 넣으려는 의도다. 유엔은 2006년 10월 북한의 첫 핵실험 도발에 대응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를 내놓았다. 북한의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을 금지하고 북한에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국가의 자금이나 기타 금융자산·경제적 자원 동결이 핵심이다. 이후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지면서 대북제재도 강도를 올려가며 더 촘촘하고 효과적인 방안으로 제재 구도가 짜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시기에도 대북제재의 압박은 북한 경제·외교를 비롯한 정권 전반에 걸쳐 그림자를 드리웠다. 국제사회를 기만하고 핵 개발과 미사일 도발에 매달리는 북한 체제에 대한 경고와 제재 조치들이 이어진 것이다. 김정일이 미국·일본과의 정상급 외교나 특사 교환 등을 통해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유럽연합(EU) 국가와의 수교를 통해 개방 제스처를 보냈지만 진정성 없는 조치는 공감을 사지 못했다.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의혹을 갖고 추적하던 미국은 결국 2005년 9월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 계좌를 동결하고 2500만 달러의 자금을 압류했다. 북한은 이 자금을 되찾으려고 외교라인은 물론 군부까지 나서 계좌동결 해제를 시도했다. 북한의 집요한 노력이 이어지자 외교가에서는 ‘동결된 계좌가 김정일의 것이기 때문에 이토록 관심을 보이는 것’이란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미 국무부 관리는 “살짝 팔만 비틀어주려 했는데 북한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우리도 놀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대북제재가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김일성·김정일 집권 시기의 이 같은 움직임은 김정은 정권 들어 미국과 국제사회가 이행하고 있는 강도 높은 대북제재의 전주곡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올 1월 신년사를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마감 단계’를 언급한 이후 탄도미사일 발사에 집착했다. 9월 초 6차 핵실험까지 강행하자 미국과 유엔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까지도 강도 높은 제재에 공감대를 이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2375호가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을 30%가량 차단하고 북한산 섬유제품 수입 금지를 규정한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북한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에는 허술하다는 지적이 쏟아졌던 점을 고려해 더욱 촘촘한 그물망식 제재 리스트가 동원된 것이다.

미국은 여기에 더해 독자적인 대북 압박 드라이브를 거세게 걸고 있다. 안보리 대북제재 2375호 발표 직후 미 국무부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있었던 제재의 가장 강력한 집합”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더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봉에 서서 국제사회가 유엔과 미국 등의 대북제재에 동참할 것을 압박하는 모습을 취한다. 특히 중국 당국과 은행·기업에 대해 ‘미국과 거래할지, 북한과 거래할지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쏟아내 눈길을 끈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등 제3국의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을 시행하고 북한을 국제금융망에서 완전 퇴출시키는 걸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지난 9월 뉴욕에서 미국의 새 대북제재 내용을 설명하면서 “어떤 나라의 어떠한 은행도 김정은의 파괴적 행동이 가능토록 이용돼서는 안 될 것”이라며 “외국의 금융기관은 미국과 거래할지, 북한과 거래할지 선택할 수 있겠지만 둘 다는 안 된다”는 경고장을 날렸다.

군사행동과 대화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습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김정은 다루기’가 어디에 방점을 두고 있는지 명확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 수위가 한계 수준을 넘어서면서 워싱턴의 분위기가 점점 강경해지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보이는 건 사실이다. 이번에야말로 김정은 체제를 고사(枯死)시킬 수 있는 초강경 대북제재를 이행함으로써 미 본토 타격까지 위협하고 있는 북한의 도발적 행보를 억제하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B1-B 전폭기와 항공모함을 비롯한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출동시키거나 순환 배치하는 형태를 통해 김정은에게 강력한 군사적 경고를 보내고 있다. 유사시 압도적 전력으로 김정은 체제를 제압하고 힘의 투사를 통한 미국의 대(對)한반도 영향력 과시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북한 김정은의 도발이나 오판이 현실화할 경우 참수작전 같은 극단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도 감추지 않는다.

北, 경제난에도 핵 개발에 수억 달러 투입


▎9월 3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장 위원장이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수소탄 탄두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미국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북한도 강도 높은 비난전을 펼치는 등 대처에 나선 모습이다. 일단 강력한 반발과 불만 표시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제기하는 방식을 앞세운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노동당 창건 72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0월 9일 논평에서 “주권국가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완전히 말살하려는 정치·경제적 제재와 압박 책동은 공화국 절멸을 부르짖는 미국 집권자의 야만적이고 반인륜적인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실행으로 군사적 침략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또 “가만히 앉아서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란 말도 덧붙였다. 앞서 9월 28일자 보도에서는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의 입장을 빌려 “정치·경제적 제재·압박 책동은 그 위험성에 있어 군사적 침략전쟁 행위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논리도 들고 나왔다.

주목되는 건 북한 권력의 핵심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긴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까지 나서 사태 수습을 위한 행보를 보인다. 지난 10월 7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 7기 2차 전원회의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당 7차 대회 이후의 북한 권력 내부 조직·인사와 정책 노선 등을 점검하는 행사에서 김정은은 20여 개의 보고 문장 가운데 5개를 ‘제재’와 관련한 내용으로 채웠다. 전원회의 첫 번째 의제가 ‘조성된 정세에 대응한 당면과제’였다는 점도 북한과 김정은이 핵·미사일 도발로 초래된 대북제재 국면에 얼마나 전전긍긍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 산하 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비상 시국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회의 성격으로, 중국의 대북제재 적극 참여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도가 최고조에 달한 상황에서 체제 정비를 통한 대응 차원에서 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단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 드라이브가 벼랑 끝으로 치달으면서 제재 불가피론에 무게가 실린 분위기다. 지난 9년간 집권한 보수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대화와 교류·협력 쪽에 방점을 뒀던 문재인 정부도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통한 북한 변화 쪽으로 노선을 수정했다. 국민들의 대북 비판 여론 속에서 기존의 정책 구상을 그대로 밀어붙였다간 북핵 위기관리와 대북 국제 공조는 물론 지지율 하락 같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을 문재인 대통령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후견국가를 자처해 온 중국과 러시아도 초강경 수위의 유엔 대북제재 방안과 이행에 찬성표를 던지는 건 물론이고 적극적인 이행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 구도가 형성됐다.

물론 대북제재의 효과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막무가내식으로 이어지는 김정은의 도발 폭주에 매번 ‘최고 강도’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북 압박책이 등장했지만 핵 포기나 태도 변화를 이끄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된다는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일 돈줄을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제재가 효과를 거뒀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북한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했을 때 우리 정부는 한 발의 핵탄두 개발에 2억9000만~7억6400만 달러의 직접 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 추가로 생산한 플루토늄까지 포함하면 북한의 총 핵 개발비는 5억600만~14억21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또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1979년 평안북도 영변에 발전출력 5㎿e급의 제1원자로를 착공해 1986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정부는 북한이 이 원자로 건설에 5700만~1억7000만 달러를 썼다고 본다. 또 사용후핵연료를 방사화학실험실에서 재처리해 한 발 분량(6~8㎏)의 플루토늄(Pu-239)을 생산하는 데는 2400만~7300만 달러가 소요됐을 것으로 판단한다. 북한의 경제난을 고려하면 엄청난 돈이다.

김정은 체제 후 ‘경제성장’도 버팀목 된 듯


▎9월 29일 김정은 노동장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제810 군부대 산하 1116호 농장을 현지 지도했다. 김 위원장은 전방위로 전개되는 제제와 압박을 견디기 위해서 농업 분야에서 획기적 식량 증산 등을 강하게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 사진ㆍ연합뉴스
북한 핵 개발의 돈줄과 관련해서는 우선 북한이 중동국가에 미사일 본체와 기술을 팔아 달러를 챙기는 등 불법 무기거래를 통한 외화벌이가 지적된다. 위폐와 마약 거래, 가짜 담배 생산 등도 자금원이 될 수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북한이 연간 10억 달러 규모의 위폐·마약 등 범죄적 거래로 5억 달러의 수익을 얻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금은 중단된 개성공단 북한 근로자의 임금이나 금강산 관광 대가도 한몫했을 것이란 견해를 제시한다.

대북제재와 관련 북한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또 하나는 김정은 체제 들어 나타나고 있는 ‘경제 호전’ 현상을 둘러싼 논란이다. 평양에서는 지금 스카이라인이 바뀌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아파트와 주상복합 고층빌딩이 촘촘히 들어서고 있고, 대형 위락시설 신축이나 각종 리모델링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만만치 않은 자금이 들어가는 건설사업이란 점에서 대북제재가 제대로 약발을 발휘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란 진단이다. 서방 유력 언론들도 평양발 보도 등을 통해 제재 속에서 버텨나가거나 오히려 경제성장을 이루는 듯한 북한의 모습에 관심을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9월 15일 보도에서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추진해 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 북한의 경제 발전을 꼽았다. 이 통신은 ‘북한의 비밀 병기는 경제성장(North Korea’s Secret Weapon? Economic Growth)’이란 사설에서 지난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 17년 만에 최고치인 3.9%를 기록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정은이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이 보여줬듯이 ‘철권 경제 개혁가(an iron-fisted economic reformist)’로서 북한 경제를 이끌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근거로 대북제재 무용론도 제기된다. 핵 개발이나 탄도미사일 도발 움직임이 가속화하는 걸 보면 제재 약발이 먹히지 않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제재 무용론을 주장하는 측은 미국과 유엔 등의 대북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미사일 프로그램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속도를 늦추는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폐쇄적인 북한 경제의 특성상 외부에서의 자금이나 물자 유입 차단에도 북한 경제나 군수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자연스레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싣자는 입장 쪽으로 귀결된다. 압박보다는 협상과 대화를 통해 핵 포기를 유도하고 북한의 변화를 꾀하자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후 평양 여명 거리를 중심으로 고층 빌딩과 고급아파트 등 대대적인 건설 공사를 벌이고 있다. 여명 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경제나 민생 전반이 좋아진 게 아니라 평양 등 일부 특권층에 한해 벌어지는 일종의 ‘쇼윈도’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평양의 도심부와 일부 특권층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이란 것이다. 대형 쇼핑몰 같은 전시성 시설을 이용하고 소비생활을 즐길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란 것이다. 이처럼 특권층만을 위한 체제 운영을 하다 보니 평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체제인 북한이 ‘1% 공화국’이 돼버리는 것이란 평가도 제기된다. 소위 균빈(均貧)의 붕괴다. 2500만 명의 인구 중 극히 일부만이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 당국의 판단이다. 북한 핵심층 6만 명과 가족(한 가구당 4인 기준)을 포함하는 24만 명이 북한에서 특권층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방의 경우 이런 혜택과 거리가 있고 식량난도 여전하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할아버지 김일성의 100회 생일을 맞아 첫 공개연설을 한 자리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5년 넘도록 손에 잡히는 성과는 보여주지 못하고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난 심화와 고립만을 자초했다.

북한 내 식량 상황 점점 더 악화될 듯


▎6월 28일 북한 노동신문은 평양시 연못동 지역에 어린이 교통공원을 새로 건설했다고 보도했다. / 사진ㆍ연합뉴스
이러 맥락에서 제재론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북한의 정치적 상황이나 경제 실태가 사실상 파국이 이르렀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압박의 강도를 높여 김정은 체제의 핵 포기와 개혁·개방을 이끌자는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북한이 셈법을 바꿔 태도 변화를 선택하도록 유도할 유일한 길은 강도 높은 봉쇄를 통해 자금줄을 차단하고 최고지도부에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안겨주는 방법이란 것이다. 대북제재 무용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북제재를 해본 적이나 있는가”라며 반론을 제기한다. 그동안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약효가 없었던 것처럼 비친 건 중국과 러시아의 이율배반적 태도와 북한의 교묘한 대외 밀거래 루트 때문이란 얘기다. 원유공급 중단 같은 핵심적인 압박 수단을 사용하는 데 있어 중국과 러시아가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론이나 유화적 주장을 하는 건 북한의 내성을 키워줄 뿐이란 지적도 나온다.

더욱 강력해진 대북제재 국면 속에서 김정은은 엄청난 고립과 압박에 직면해 있다. 자칫 헛발을 디뎠다가는 제재의 칼끝에 정권이 몰락을 맞을 수도 있는 위기상황이다. 달러 벌이의 효자 노릇을 해온 중국에 대한 광물 수출이나 수산물 판매 등이 막혔고 인력 송출도 큰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지난 9월 중국이 북한에서 수입한 물량은 전년 같은 달보다 37.9%나 줄어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는 게 중국 해관 총서의 발표 내용이다. 9월 중국의 대북 수출액도 6.7% 줄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북제재와 작황 부진으로 북한의 식량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북한은 국제 무대에 대북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10월 11일 유엔에서 “악랄한 제재와 봉쇄로 아동권리 보호사업의 순조로운 진행은 물론 어린이들의 생존에까지 막대한 지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핵·미사일 도발로 제재를 자초한 북한 정권이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려는 태도를 보이면서 국제사회는 싸늘한 시선을 던지고 있다.


▎북한 평양시 보통강변에 3 최근 새로 건설된 체육촌의 전경.
대북제재 정책과 국제공조에 관여하고 있는 정부 대북부처의 핵심 당국자는 “북한에 대한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며 “구멍이 없는 완벽한 정책 수단은 대북정책이나 국제 외교무대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리와 국제사회가 가진 정책 수단은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국면에서 대북제재는 국제사회가 공감대를 이뤄 추진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란 게 이 당국자의 말이다.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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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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