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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인터뷰] ‘퇴준생 열풍’ 불러온 이나가키 에미코의 ‘무직장 상팔자론’ 

“직업·남편·자식 없는 나, 100% 행복합니다” 

도쿄=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헬조선’이란 말에 쇼크… 자기를 안 바꾸면 모든 곳이 ‘헬’ 아닌가 “냉장고도 세탁기도 없어… 하루 생활비는 600엔이면 충분하다”

‘퇴준생’이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퇴사 준비생’의 줄임말이다. 정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는 게 아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가는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이런 퇴준생이 꾸준히 늘어난다. 서점가엔 ‘퇴사’를 키워드로 한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젊은 직장인들은 퇴근 후 ‘퇴사학교’를 찾아간다. 어렵게 취준생(취업준비생)을 면한 이들이 퇴준생이 되려는 이유는 뭘까. 그렇게 퇴사해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것일까. 일본에 이어 한국에까지 퇴준생 열풍을 몰고 온 베스트셀러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를 도쿄에서 만났다.


▎이나가키 에미코가 자신의 체험을 솔직하게 담아낸 <퇴사하겠습니다>는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일본 도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일개 사회인으로서 쓴 일본인으로서의 경험이 한국에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보기 드물게 한적한 동네, 나카메구로(中目黑)의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프로 헤어(둥글게 부풀린 파마 머리)에 데님 미니스커트ㆍ스니커즈를 매치한 51세 여성이 앉아 있다. 이나가키 에미코(稻垣えみ子)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가 활짝 웃으며 건네는 명함이 왠지 허전하다. 새하얀 종이에 그의 이름 다섯 글자가 정중앙에, 그의 e메일 주소 하단에 작게 박혀 있을 뿐. 무심코 명함을 뒤집어 보았더니 이나가키가 웃으며 말한다.

“다들 ‘명함에 이것만 있을 리 없어’라고 생각하는 듯 꼭 뒤집어 보더라(웃음). (기자의 명함을 보며) 보통의 명함엔 회사 이름이 그 회사원의 이름보다 크게 적혀 있고 각종 정보가 가득하다. 그런데 나는 이것뿐이다. 무직이니 회사 이름도, 직함도 당연히 없다. 나는 그냥 나다.”

무심한 듯 조곤조곤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가 한국에 ‘퇴준생’ 신드롬을 몰고 온 주역이다. 지난해 펴낸 <퇴사하겠습니다>(엘리)의 한국어 번역본이 지난 1월 출간된 뒤 한국엔 ‘퇴사 신드롬’이 일었다. 그의 책은 일본뿐 아니라 한국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고,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는 아예 그의 책 제목을 딴 프로그램을 제작해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엔 <퇴사 준비생의 도쿄>(데퀘스트), <퇴사학교>(알에이치코리아) 등 ‘퇴사’를 키워드로 한 책들이 줄줄이 출판됐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이런 책들의 주요 독자층은 30~40대다.

이나가키는 이런 퇴준생들의 롤모델이다. 그 자신이 10년간 퇴준생이었고, 실제로 스스로 “일본 최고의 직장 중 하나”라고 부른 아사히(朝日)신문사를 퇴사했다. 지난해 1월, 그가 50세 되던 해다. 40세 되던 해 스스로에게 “50세가 되면 회사를 그만두겠어”라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대학 졸업 후 청운의 꿈을 안고 입사했던 첫 직장이자, 28년간 몸담으며 평생 직장일 거라 믿었던 곳에서 제 발로 걸어 나온 것이다.

퇴사 후 전업주부가 된 것도 아니다. 그에겐 남편도, 자식도 없다. 회사를 자의로 퇴직했으니 회사원으로 누릴 수 있는 각종 보험 혜택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표정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가히 ‘무직장 상팔자’라 할 만했다.

한국에서 덕분에 퇴사 신드롬이 불고 있다.

“앗, 그럼 다들 회사를 그만둬 버리는 건가. 그러면 안 되는데.(웃음)”

본인은 정작 그만두지 않았나?

“퇴사를 종용하거나, 퇴사를 하면 장밋빛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로 이 책을 쓴 건 아니니까.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회사 사회’에서는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지탱해준다. 회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구조인 사회에서 회사 밖으로 나오는 것은 충격을 동반하는 일이다. 나 자신도 그랬고.”

그럼에도 퇴사 후 삶에서 희망이 가득하다고 책에 썼는데.

“맞다. 저는 어느 때보다도 희망에 가득 차 있고, 또 무척이나 편안한 상태다.”

왜 그런가?

“28년간 다녔던 직장에서 퇴사하는 과정은 마치 강도를 당한 것과 같았다. 내가 그동안 내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옷이며 가방ㆍ휴대전화 등 전부를 도둑맞고 내 몸뚱이 하나만 남는 것 같은 체험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모든 게 다 사라지고 나 자신만 남고 보니 뭐랄까, 굉장히 후련했다. 불안감은 있었지만 그건 한순간일 뿐이었다. 그동안 내가 내 힘으로 해왔다고 여겼던 많은 것이 사실은 내 힘이 아니었다는 것, 회사에 내가 이만큼 기대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나?

“‘제로(0)’다. 한 번도 없다.”

불안하지 않은가?

“물론 불안은 있다. 하지만 회사원이라고 해서 불안이 없나. 회사원의 불안은 욕망에서 기인한다. 사람의 욕망이란 무서운 구석이 있어서 모두가 출세주의자가 되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한다’는 게 어렵다. 예를 들어 인사 이동 때문에 상처 입고 주눅이 들어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되지 않나. 나도 그랬다. 하지만 퇴사 후 나는 진정한 ‘나’라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라는 옵션을 생각하지 않는 건 사실 내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 아닐까.”

“회사는 너무 사랑하지 않는 게 좋다”


▎이나가키가 쓴 책 <퇴사하겠습니다>의 원제는 ‘혼의 퇴사(魂の退社)’다. 일본의 경영학 부문 히트 서적인 ‘혼의 경영’을 비튼 제목이다.
그의 책에서 많은 이들은 다음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퇴사를 결심한 순간, 회사가 재미있어졌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직접 물어보았다. 그는 38세이던 시절, 자신으로선 납득할 수 없었던 인사 발령 얘기를 꺼냈다. 다카마쓰(高松)라는 곳으로 발령받았던 때다. 다카마쓰는 우동의 본고장으로 유명한 가가와(香川)현의 작은 도시다. 그의 후배가 “유배를 가는군요”라고 얘기했을 정도로 좌천으로, 의욕이 충만했던 그에겐 괴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나가키는 새로운 생활의 가능성을 봤다.

그의 말이다.

“돈을 쓸 시간도, 쓸 만한 곳도 없었다. 대도시에서 해왔던 ‘헤픈 생활을 통한 행복의 추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월급은 똑같았지만 소비가 줄어드니 자연스레 월급이 늘어난 셈이었다(웃음). 그러다 보니 회사에 매달리게 되는 느낌이 덜해졌다. 자유를 느끼게 됐다. 월급에 매달리게 되면 회사라는 곳은 무서워진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스스로 찾아 할 수 있게 됐다. ‘상사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또는 ‘회사에 잘 보여야 다음 인사 이동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식의 일에 매달리지 않게 된 거다.”

그 전까지 이나가키는 꽤 화려한 소비생활을 했다고 한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산해진미를 찾아다녔고, 옷가게에선 VIP 대접을 받으며 쇼핑을 했다. 집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옷이 넘쳐났다. 그런 그에게 다카마쓰 생활은 신세계였다.

책에도 이런 심경을 솔직히 썼다. “(다카마쓰 시절) 당시의 나는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에 무척 진지했다. 아마도 나를 ‘유배 보낸’ 인간들에게 ‘날 물 먹였다고 생각하지? 천만의 말씀! 난 재미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쪼잔한 심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런 쪼잔하고 필사적인 마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마트 대신 직거래 농산물 장터를 이용하고 백화점 쇼핑을 하는 대신 뒷산의 복사꽃에 열광하면서 이나가키는 변화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가장 큰 변화는 뭐였나?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상처받지 않게 됐다는 것.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납득할 수 없는 인사 발령을 받기 마련이다. 사실 대부분의 인사 발령은 ‘이게 뭐야’라는 탄식을 유발한다(웃음). 그런데 그런 ‘이게 뭐야’라는 인사 발령 이야말로 성장의 기회이자, 회사에서 일을 하는 ‘다이고미(だいごみㆍ참맛)’다. 그런 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할 수 있으니까. 꾹 참고 안으로 삭이기만 하란 얘기가 아니다. 평가라는 건 결국 남이 하는 것이고 내가 바꿀 수 없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에 매달리면 나만 괴로울 뿐이다.”

직장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회사와 나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남이 하는 평가에 매달려서 괴로워하느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면 회사와 나의 관계도 건강해진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니까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게 됐다. 좋지 않은 평가를 들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했으니까. 중요한 건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지 여부다.”

여기서 잠깐.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짚고 넘어가자면 이나가키가 말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란 ‘회사가 어찌 되건 말건 자기 멋대로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이나가키가 “남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하고 싶어 했던 일”은 다카마쓰 총국의 마감 일정 개선부터 ‘아사히신문을 개선하는 1인 모임’을 만들어 회사에 이런저런 건의를 했던 프로젝트다.

그도 한때 회사가 전부였지만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회사는 너무 사랑하지 않는 게 좋다. 적당히 좋아하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퇴사하지 않는 선택지도 전혀 나쁘지 않다”


▎현역 기자 시절 이나가키의 모습. 그는 스스로 “특종 한 번 못 잡은 기자”라고 자조하지만 인터뷰 기사 및 칼럼 등으로 큰 공감을 받았다. / 사진 이나가키 에미코
퇴사를 생각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부양할 가족이 없는 이나가키였기에 이런 식의 퇴사가 가능했던 게 아닐까.

비혼 여성이기에 가능한 퇴사 시나리오라는 비판도 있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결혼을 했던 안 했던 회사원은 결국 다 회사원이다. 남성이야말로 이제 더 ‘회사원 인생 외길’이 아닌 옵션을 진지하게 고려해봐야 할 때다. 일본도 한국도 이제 고령화 사회 아닌가. 정년 이후의 삶이 길어지고 있고, 회사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정년 퇴직을 하게 되면 잔혹하게도 비참한 인생이 기다릴 뿐이다. 퇴사는 언젠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머리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 즉 ‘인생이 바뀐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NHK방송에서 이나가키를 소개하며 ‘라이프 체인저’, 즉 ‘인생을 스스로 바꿔낸 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는데.

“이젠 누구에게나 퇴사 후 인생이 긴 시대가 됐다. 자신의 인생 가치관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아마 그런 의미에서 ‘라이프 체인저’라고 불리는 것 같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확실히 최근 몇 년간 주변을 봐도 ‘회사 인간’으로서의 삶에서 탈출한 이가 적지 않다. 유명 방송국의 프로듀서였던 이가 회사를 그만두고 취미였던 사케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뒤 그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광고 제작자였던 친구 한 명도 퇴사를 한 뒤 작은 이자카야를 열었다. 수입은 적어졌지만 더 행복하다고들 한다.”

용기가 있는 일부의 얘기 아닌가.

“맞다. 자신의 인생을 바꾸려면 먼저 생활부터 바꿔야 하는데, 여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돈을 적게 벌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을 바꾼다면 돈을 적게 벌더라도 충분히 행복한 생활이 가능하다. 50세가 되어 보니 나는 솔직히 이제 그렇게까지 사치스러운 일을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게 적어지더라(웃음). 하지만 예전에 100을 벌었으니 퇴사 후에도 80은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꽤 힘들 거다.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그가 이 시점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퇴사하지 않는 선택지도 전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전제 조건이 있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면.” 그는 “제일 나쁜 건 ‘이 회사 못 다니겠어’라고 생각하며 회사 욕만 하고 다니면서 ‘나는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회사가 나쁘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애석한 것은 회사 생활에 매몰되다 보면 이런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이나가키는 퇴사 후 가장 좋은 것이 뭐냐는 질문에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게 된 것”이라고 했다. “직장인이었을 때는 회사나 상사 탓을 하면서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살기 쉽다. 하지만 이젠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탓이고 나를 잘 알게 된다. 사고방식도 생활도 꽤 심플해진다. 남을 원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그게 얼마나 편안한 일인지 퇴사를 하고 깨달았다.”

무소유의 행복… 돈이 부리는 흑마술에서 벗어나야


▎퇴사를 고민하는 젊은 직장인이 늘어나는 추세다. 퇴사를 고민하는 모임도 생겨났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에서 ‘2030 퇴사 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한 세미나 현장.
하지만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이나가키는 정기적인 수입 없이 도쿄에서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고 있을까. 어떻게 그렇게 편안하고 즐거워 보일까. 그의 나카메구로 집은 33㎡에 냉장고도 세탁기도 옷장도 없다. 그는 “나는 돈을 지배하며 살고 있다”며 오히려 의기양양했다.

고정수입 없는 생활이 어떻게 가능한가?

“퇴사했다고 일을 안 하는 게 아니다. 많이들 일=회사=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출판사의 제의도 계속 들어와 글도 쓰면서 살고, 무엇보다 급료를 받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일이 세상엔 존재한다. 일=돈벌이라는 등식은 너무도 좁은 개념이다. 일을 해서 돌려받는 게 돈만 있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각자 잘하는 것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살아나가는 방법도 충분히 존재한다. 나도 이 카페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내 건강 유지법인 요가를 무료로 강의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손님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받는다. 어떤 분들은 ‘난 필요 없어’라며 야채를 잔뜩 나눠 주시기도 하고. 이런 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동네 공동체의 삶의 방식이다.”


▎‘자유인’으로 이나가키의 면모는 그의 복장에서도 드러난다. 아프로 헤어에 미니스커트·스니커즈를 입은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50대 여성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쉬 납득하기 어렵다.

“그게, 사실 의외로 꽤 아무렇지도 않다. 회사 안 다니면 고정수입이 없어져서 어떡하냐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어떻게든 된다(웃음). 돈은 모든 것을 숫자로 치환시켜 버리기에 무섭다. 돈을 벌어 자유롭게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 반대가 되어 돈에 매달리게 되고 돈을 신으로 섬기게 되는 거 아닌가.”

돈에 대한 걱정이 정말로 전혀 없나?

“그렇다. 오히려 난 돈을 지배하며 살고 있다(웃음). 잃을게 없는, 즉 ‘Nothing to lose’의 삶이어서 그럴까. 내게는 ‘nothing’ 즉 ‘없는 것’이 ‘everything’, 즉 모든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나는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냉장고도 없는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나?

“우린 다들 ‘있어야 좋다. 뭐든지 많을수록 좋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며 사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없는 상태에서 재미있는 일이 잔뜩 있다. 냉장고가 없으니 특히 주의해서 장을 보게 되고, 양이 적어지니 돈도 적게 든다. 동네의 작은 가게들을 애용하다 보니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는 의미도 생긴다. 예전엔 ‘소비’를 했다면 지금은 ‘공유’하는 느낌이다. 하루에 술 한 잔 값까지 포함해 600엔(약 6000원)이면 충분하다.”

노후 걱정은?

“없다. 퇴사 후 단순해진 삶에선 스트레스도 적게 받는다(웃음). 무엇보다 정기적 수입이 없으니 노후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도 회사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개념이다. 왜 다들 그렇게 노후에 집착하는가. 결국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돈만 있으면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욕망이 잔뜩 생기니 노후가 불안한 건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 돈을 벌 수 없게 되는 때에 대한 불안은 돈과 나의 관계를 재설정하면 없어진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고 자신의 인생을 다시 보면 앞의 일이 단순해지고 오히려 잘 보인다.”

인생의 목표는 뭔가?

“없는데(웃음).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아, 하나 있다. ‘직함’이라는 것을 갖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다 죽는 것.”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이나가키지만 한국에서도 자신의 책이 열풍을 일으킬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가 꼭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다.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헬조선’이란 말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헬조선’이라는 말 역시 결국 돈에 가치를 두었기에 생겨난 말 아닐까. 내 가치관이 돈에 지배당하게 되면 결국 어디에서 살든 ‘헬’이다. 결국 간단하다. 남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나는 내가 바꿀 수 있다. 이런 생각으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다시 용기를 가지기 바란다.”

- 도쿄=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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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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