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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슈] 노벨문학상 3인 배출한 ‘일본 문학’의 힘 

제1 계율, 매일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다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노동에 임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에 몰두...상상력·창조력이 아니라 노력·인내가 문학의 저력

▎서울 시내 한 서점을 찾은 시민이 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저서를 살펴보고 있다.
“결의라고나 할까, 최후 마지노선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죽음을 앞에 두고 행하는 비장한 약속이나, 모든 것이 전부 무너지기 직전에 해결해야 할 임무나 사명일 수도 있다. 그런 의지를 나타내는 한국인의 이미지로 어떤 것이 있는가? 시나 소설 속의 표현이 아니라, 그림·캐릭터·조각·영상물처럼 비주얼한 것으로?”

한·일 문화를 비교·토론하던 중 던져진, 일본인 친구로부터의 질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포스터에서 보듯, 긴 모자를 쓴 비장한 모습의 양키가 ‘나는 너를 원한다(I want you)’라면서 상대를 쳐다보는 식의 이미지라는 부연 설명이 따라붙었다. 거꾸로 일본의 경우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거론하기 어렵다. 셋 정도 예를 들어보자. 헝클어진 머리에다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사무라이(侍)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부러진 칼과 더불어, 주먹밥을 움켜쥔 채 죽어간다. 몇 날 며칠을 싸우느라 밥도 못 먹었다는 의미다. 적(敵)이라도 죽기 전에 하얀 쌀로 만든 주먹밥 하나를 주는 것이 사무라이에 대한 예의다. 태평양전쟁 당시 가미카제(神風)로 떠나기 직전 축배를 올리는 비행사들의 모습도 있다. 앳된 모습의 청년들과 곧 닥칠 죽음이 극적으로 대비되는 장면이다. 주군(主君)의 복수를 위해 사무라이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채 적의 성(城)으로 돌격하는 추신쿠라(忠臣) 47명의 모습도 있다. 일본인이라면 그 같은 이미지들을 어릴 때부터 보고 또 본다. 생의 마지막 결의, 나아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나 약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통한다.”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봤지만, 당장 떠오지가 않는다. 문장으로 치자면 뭔가 있을 듯한데, 눈으로 표현될 이미지로서는 생각나지 않는다. 비장·장엄·비감과 같은 이미지가 스며든, 생의 마지막 약속이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하나 떠올랐다. 왼손 넷째 손가락 마지막 마디가 없는, 안중근의 수인(手印)이다. 특별한 장면이 아니라, 손가락을 보는 것만으로도 서른두 살 인생의 결연한 의지가 와닿는다. 안중근 얘기를 하면서, 아이폰에서 손가락 수인을 찾아 보여줬다.

“일본인의 경우 얼굴을 직접 드러내면서 결의를 다지는데, 한국인은 몸의 일부를 통해 마음자세를 가다듬는 듯하다.”

일본 친구는 흥미로운 듯, 자신의 손가락을 안중근 수인에 맞추면서 관찰한다.

에도시대의 상식, 부시(武士)·분시(文士) 겸업


▎사무라이는 마지막 주먹밥을 먹은 뒤 패전의 책임을 지고 할복하는 게 관례다. / 사진·유민호
“안중근은 한국판 분시(文士)의 대명사일 듯하다.”

안중근을 대하는 일본인의 소감 중 ‘분시’라는 말이 인상 깊다. 분시는 문장가·소설가·작가를 의미한다. 보통 가난하다는 의미도 들어가 있다. 일본어로 ‘산몬분시(三文文士)’는 팔리지도 않을 소설만 열심히 쓰는, 융통성 없는 가난한 작가를 의미한다. 그러나 돈과 무관하게 학문과 교양을 통해 평생 올곧게 살아가는 딸깍발이형 인간으로도 통한다. 원래 분시는 ‘부시(武士)’ 즉 사무라이에 대응되는 사람을 지칭한다. 흔히 문(文)과 무(武)는 대립관계로 설정된다. 유교국가에서 탄생된 편견일 뿐이다. 문과 무는 조화와 보완 관계에 있다. 신체의 아름다움이 정신적·지적 미(美)로 연결되던 고대 그리스의 세계관이 문·무의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살아가는 수단이 다를 뿐, 삶을 대하는 기본자세는 똑같다.

한국에도 분시와 비슷한 의미의 사람들이 있다. 서생(書生)이나 화이트칼라 나아가 비속어로 먹물 정도가 해당될듯하다. 그러나 일본과 비교해볼 때 조금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살상용 칼이 아닌 붓과 펜을 통해 살아가는 부분은 비슷하지만, 사무라이가 갖는 부시로서의 사생관(死生觀)이 없다는 점에서 일본과 다른 개념이다.

한국의 서생·화이트칼라·먹물은 철저히 무(武)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문(文)에 해당된다. 문·무의 확실한 구별, 나아가 차별 속에서 탄생된 상위 지배계급으로서의 문이다. 무가 이류 하층계급인 데 비해 문은 일류 상위계급에 들어간다. 자식을 군(軍)과 무관하게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것이 세도가 권력가의 일상적 행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 면제자가 그렇게도 많다. 승자로서의 문, 패자로서의 무다. 일본의 분시는 그 같은 개념에서 벗어나 있다. 이유는 문·무 일체이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를 정점으로 한 지배구도가 19세기 말 에도(江) 시대 때까지의 권력체계다. 에도를 차지한 도쿠가와 막부(幕府) 자체가 바로 사무라이다. 형식적으로 천황이 있지만, 칼을 앞세운 사무라이가 입법·사법·행정 모두를 총괄한다. 300개가 넘는 에도시대 다이묘(大名) 수장(首長)들은 머릿속 지식만이 아니라, 사무라이로서의 무에도 충실했다. 사무라이와 분시로 이분화된 조직이 아닌, 문·무일체가 에도시대의 상식이다.

사무라이 출신이지만, 배우고 익히면서 분시로서의 역할도 겸한다. 칼과 더불어, 학문과 교양을 통해 통치에 필요한 각종 업무와 기술을 배운다. 부시·분시 겸업인 셈이다. 메이지(明治)시대 말기 등장한 근대예술가 중 상당수가 사무라이 출신이다. 평소 외부 사조를 접하는 과정에서 근대예술에 심취해 아예 직업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출발점은 사무라이다. 따라서 문·무유별(有別), 문·무 차별이 아니라 문·무 일체가 일본의 상식이다.

초등학생 일과표 같은 시오노 나나미의 생활

1900년 농학자 니토베 이나조(新渡造)는 <부시도:일본의 혼(Bushido: The Soul of Japan)>이란 책을 펴낸다. 미국에서 발간된 영어로 된 책이다. 사무라이 존재를 세계에 알린 고전(古典)으로 지금도 베스트셀러다. 니토베는 책에서 사무라이의 제1 계율을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는 것(武士道と云うは死ぬことを見付けたり)’이라 단언한다. 주군을 위해 항상 죽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부시도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분시는 어떨까? 니토베는 분시도(文士道)에 관한 글을 따로 남기진 않았다. 문·무 일체에서 보듯, 부시도 안에 분시도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시도 역시 부시도처럼 매일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는 인생을 제1 계율로 여겼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볼 때,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는 분시의 삶은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마치 노동을 하듯, 열심히 쓰는 것이 분시의 기본자세다. 문장력·상상력·창조력에 기초해 평생을 통틀어 역작 하나 만들기에 최선을 다 하는 천재 작가가 아니다. 매일 꾸준히 열심히 쓰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역작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펜에 매달리는 삶이 작가·소설가·문장가의 출발점이자 제1 계율이다. 따라서 다작이 기본이다. 현재 한국에서 유행 중인 대하소설은 일본 분시가 만들어낸 역사소설이다. ‘큰 물이 흐르는’이란 의미의 ‘대하(大河)’라는 말 자체가 일본어다. 예외도 있겠지만, 사실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의 대하소설은 단편소설에 가깝다. 시간·노력·인내 나아가 건강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 대하소설이다.

1937년생 팔순 노작가 시오노 나나미( 野七生)는 필자가 생각하는 일본 분시의 전형(典型)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로마인 이야기>가 분시 시오노가 만들어낸 결과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1권씩, 15년 동안 15권을 펴낸다. 이탈리아어, 라틴어, 고대 토스카나어에 관한 언어능력을 통해 이탈리아인조차 손대기 어려운 대하소설을 만들어낸다. 1년에 하나의 작품을 남기는 작가로, 1년 365일을 1권의 작품에 맞춰 생활하면서 15권을 완결한다. 아침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글을 쓰고 산보를 한 뒤 역사서 저술에 열중하는, 초등학생의 하루 생활 시간표같이, 기계적으로 살아온 분시다.

한순간 창작욕이 발동해 몇 날 밤을 지새우며 쓰는 폭풍형(型) 작가가 아니다. 하루하루 똑같은 일정표 속에서 쌓아간 365일×15년의 완성품이 로마사 15권이다. 분시 시오노는 지난 9월 20일 <역습당한 문명―일본인에게(逆襲される文明:日本人へ)>를 펴낸다. 1년 만에 발간한 수필집 시리즈 4권째 작품이다. 출판 즉시 문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를 유지하고 있다(10월 14일 기준). 80세, 아니 100세를 넘기더라도 마치 노동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이 분시의 기본자세다.

안중근이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의 분시라고 할 때, 일본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의 분시가 과연 누구인지 일본인에게 물어봤다.

“여러 명이 있겠지만, 일단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에 관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훈도시(남성 하의) 하나만 입고 일본도(日本刀)를 들고 서 있는 미시마의 모습이라고 할까?”

일본 문화가 노벨문학상을 타다


▎일본에서 태어난 작가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 <로마인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왼쪽부터).
잘 알려져 있듯 미시마는 천황제 중심 군국주의를 외치며 할복한 인물이다. 1968년 <설국(雪國)>의 작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탄생한다. 당시 대다수 일본인은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일본인에게는 미시마가 당초 예상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0순위였다.

“아마 외국에서는 미시마를 분시가 아닌, 부시로서의 이미지로 받아들일 듯하다. 우익 군국주의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피를 부르는 광기의 사무라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일본인 대부분은 그를 부시가 아닌 분시의 대명사로 해석한다. 글을 쓰되, 세상을 보는 눈은 부시 이상으로 비장하고 엄격했다. 그의 수많은 글이 아직도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부시 이상의 비장한 삶을 분시로서 마감했기 때문이다. 강조하건대 그는 분시다.”

시오노에서 보듯, 미시마는 다작의 작가다. 세상을 떠난 지 47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미시마의 미발표 유작(遺作)이 이어지고 있다. 1964년 도쿄올림픽 당시 신문 리포터 자격으로 쓴 개회식과 각종 경기에 관한 글들이 지난해 발견돼 화제가 됐다. 보도용 기사가 아닌, 문학적으로 표현된 관전기다.

‘20세기 페루에서 일본계 대통령을 만들어내더니, 21세기에는 문학에서도 일본계 노벨수상자를!’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kuro)에 관한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다. 일본계 영국인이기 때문이다. 다섯 살까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살다 런던으로 건너가 영국으로 귀화한 일본계다. 초기 작품의 대부분은 일본에 관한 기억이나 스토리로 압축된다.

일본 미디어는 가즈오 이시구로를 가타카나(カタカナ)를 사용한, 가즈오 이시구로(カズオイシクロ)로 부른다. 한자식 일본 이름인 ‘石一雄’이 아닌, 영어발음을 음역한 표현이다. 한국에서는 일본명 마사요시 손(孫正義)을 한국식 발음인 손정의로 표현한다. 한국계라면 외국 국적이라도 그냥 한국식 이름으로 표현한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계라도, 국적이 다를 경우 원래 한자이름이 아닌 가타카나 표기로 쓴다. 국적이 다르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리는 셈이다.

필자는 작가 가즈오를 분시라는 관점으로 평가한다. 사무라이에 버금가는 분시라는 독특한 일본문화의 결과로서 노벨상까지 획득했다고 판단한다. 매일 죽음을 각오하며 살아가는, 분시 제1 계율이 작가 가즈오의 마음자세일 것이라, 필자는 확신한다. 영어야말로 죽음을 각오하듯, 매일 싸워 해결해 나가야만 했던 목표이자 대상이었을 것이다. 가즈오에게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다. 해외로 입양돼 영국인 부모에게서 자란 인물도 아니다. 유아기 때 외국어를 배우면 거의 현지인 수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문학은 다르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문학은 문화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가즈오의 부모는 일본인이다. 물리학자 아버지를 따라 런던에서 공부하던 중 20세 때 영국으로 귀화했다. 영국보다는 일본에 기초한 문화와 언어가 가정교육의 주류였다. 가즈오는 기본적인 일본어 대화가 가능하다. 부모가 외국인이라도 노력해서 99% 영국인과 비슷해질 수는 있지만, 나머지 1%가 다르다. 문명대국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가라면 100%만이 아닌, 120% 수준의 문화와 언어감각을 숙지해야 한다. 가즈오는 그 같은 상황을 실현·실천한 작가다. 동시에 노벨상 수상으로 글로벌 차원의 새로운 세계와 가치를 심어준 작가로 통한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가즈오를 영국인으로 규정해 설명하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국적과 현재 거주지, 작품의 수단인 언어도 영어로 표현된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영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물건을 수입해 영국에서 가공해 만들어낸 영국발 상품(Product of UK)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100% 영국 안에서 해결한 영국제 상품(Made in UK)은 ‘결코’ 아니다.

가즈오 스스로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학 근저에 일본과 일본인의 정서가 녹아 있다고 밝혔다. 태어나서 불과 5년간 살았던 곳이지만 원자폭탄 피폭지(被爆地) 나가사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가즈오 소설의 원천이 된다. 영국인이지만 노력하고 열심히 쓰는 분시를 원형으로 한 작가가 가즈오다.

왜 무라카미 하루키는 빠진 걸까

“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아니고?”

가즈오 이시구로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됐을 당시 일본인들의 반응이다. 사실 가즈오는 무라카미와 접점이 많은 작가다. 문체나 표현방식, 글의 주제도 무라카미와 비슷하다. 두 사람이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은 물론 20대 무라카미가 재즈에 빠졌듯 가즈오도 한때 재즈 뮤지션으로 살 생각을 했다고 한다. 두 사람 작품이 비교되는 부분은 양이다. 가즈오의 경우 단편·장편·수필을 전부 합쳐도 20권이 채 안 된다. 무라카미의 작품은 장편·단편·수필 심지어 대담집을 포함하면 100권이 넘는다. 가즈오가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될 당시 일본 문학가들의 초미 관심사는 ‘장편 7권만으로도 런던에서의 생활이 가능한가?’라는 부분이다. 미시마가 그러했듯이 무라카미도 올림픽 취재 관전기를 남긴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이 무대다. 당시 매일 400자 원고지 30매씩, 23일간 써내려 간다. 무라카미는 매년 책을 두세 권씩 써내는 기계적 작가다. 2015년에는 무려 3권의 책을 냈다.

일본 문시의 전통과 의미를 한국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문학은 각자의 문화에 기초한, 극히 주관적이고도 개별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배경이 다르더라도 기본적으로 통하는 부분은 있다. 양적인 부분은 그중 하나다. 양적으로 넘치고 넘칠 때 질적 수준의 진화·발전이 가능하다. 하루아침에 탄생된 스타는 태양이 뜨는 순간 사라진다. 출간되는 책도, 등단 작가의 수도 넘치는 나라가 일본이다. 상상력·창조력이 아니라, 변함없는 노력·인내가 노벨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문학의 저력은 바로 거기에 있다.

-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21’ 디렉터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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