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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종교 이야기(17)(마지막 회)]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 

“우리 무덤을 지상이 아닌 사람의 가슴속에서 찾아라”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kim.whanyung@joongang.co.kr
가수 마돈나 등 수많은 예술·문화인들 영감의 원천…미국·유럽 등과 달리 국내에선 큰 주목 받지 못해

▎루미는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터키 부자(Buca)에 있는 루미의 조형물.
세상에 ‘나’ 아닌 것은 없다. 우주는 ‘거대한 나’다. 종교, 특히 종교 중에서도 신비주의는 ‘작은 나’를 망각하고, 상실하고, 멸살하지 않고서는 ‘큰 나’를 발견할 수 없다고 설파한다.

왜 그럴까. 신(神)을 믿는 신비주의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개된다. 이미 뭔가로 가득 찬 것은 다른 게 들어올 수 없다. 나의 내면이 온갖 욕망에 집착하는 ‘나’로 가득 차 있으면 ‘신’이 들어올 수 없다. ‘나’를 잊고 ‘나’를 비워야 신이 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고 신을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종교는 ‘체계화된 신비’다. 미스터리다. 신비주의가 생성되지 않은 종교는 없다. 신비주의는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신비주의가 정통으로 인정받기 전에는 주류로부터 외면당한다. 어쩌면 신비주의 때문에 일부 비(非)신앙인에게 종교가 ‘거대한 거짓말’의 체계로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종교는 황당한 주장을 한다. 종교는 ‘벌레보다 못한 인간’이 세상의 ‘궁극적인 원인’이나 ‘절대자’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종교는 또 살인자라도 깨달음을 얻어 ‘신(神)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우리 표준국어대사전은 신비주의(神祕主義, mysticism)를 이렇게 정의한다. “우주를 움직이는 신비스러운 힘의 감지자인 신이나 존재의 궁극 원인과의 합일은 합리적 추론이나 정해진 교리 및 의식의 실천을 통해서는 이뤄질 수 없고 초이성적 명상이나 비의(祕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는 종교나 사상.” 이 정의에 따른다면 신비주의는 스스로를 본류로부터 격리시키는 성향이 있다. 신비주의의 성공 여부는 보편성 확보 여부에 있다.

미국 등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 읽혀


▎루미의 대표작 [마스나위]의 1461년 판본.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비주의자는 누구일까? 손을 꼽을 때 잘랄 앗 딘 알 루미(1207년께~1273년)를 빠트릴 수 없다. 영성가 디팍 초프라, 가수 마돈나를 비롯한 문화·예술가들이 그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유네스코는 2007년을 ‘루미의 해’로 선포했다. 루미는 세계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이다. 이란이 포함된 페르시아어 사용권의 7000~8000만 명의 사람이 그를 ‘우리들의 스승(Mowlana)’이라고 부른다. 그의 주저(主著)인 <마스나위>는 ‘페르시아어 <꾸란>’으로 평가된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기원전 550~330년)의 후예 중 하나인 화레즘 제국(1077~1231)에 있는 발흐에서 태어났다. 루미의 신비주의 배경은 수니파 이슬람이다.

루미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다. 한때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한 탈레반 정권은 음악을 금지했다. 세계의 선지자급 종교 지도자들 중에도 음악이나 춤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갈대 피리(reed flute)를 좋아한 루미는 음악과 춤을 신에게 다가가는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빙글빙글 돌면서 추는 춤(whirling dance)’은 루미의 제자들이 창시한 마울라위야 교단의 트레이드마크다. 터키의 세계적인 관광자원이다. 한때 터키 정부는 신비주의를 통제하려고 했지만, 터키의 이슬람 신비주의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루미는 엑스터시 상태에서 시를 썼다. 그가 황홀경에 도달하는 수단은 피리 소리, 북 소리, 대장간에서 망치질 하는 소리, 물레방앗간의 물 흐르는 소리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루미의 연가(戀歌)가 미풍(微風) 수준으로도 알려지지 않았지만, 루미 열풍은 미국 출판계에서 미풍·돌풍을 넘어 ‘붙박이 태풍’ 수준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서 수백만 권이 팔렸다. 스테디 베스트셀러가 됐다.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과 이슬람은 더욱 껄끄러운 관계가 됐다. 어떻게 ‘케케묵은’ 13세기 이슬람 시인이 최고의 아마존·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등극한 것일까. 그야말로 미스터리다.

이슬람 연시(戀詩)의 새로움 선사


▎러시아정교회 성당. 구르지예프는 정교회의 신비주의 전통,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과 동양의 종교 철학을 융합한 체계를 선보였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작용한 요인들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제시하는 게 가능하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루미는 탁월한 ‘사랑의 시인’이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게 ‘사랑해요’라는 그 말 한마디다.

하지만 좋은 말도 세 번 이상 들으면 질리는 게 인간 본성이다. 사랑에도 뭔가 신선한 게 필요하다. 이슬람, 그중에서도 수피즘(Sufism)을 배경으로 하는 루미는 미국인들에게 이슬람 연시(戀詩)의 새로움을 선사했다. 대중적인 보편성도 있다. 루미는 신학·철학·천문학·법학 등의 분야에 달통한 학자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는 일상 생활 속에서 사랑과 신앙을 끄집어낸다. 유머도 있지만, 깊이도 있다.

루미가 신봉한 수피즘은 무엇인가?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슬람 신비주의인 수피즘은 유교와 천도교와 마찬가지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추구하는 한 종교적 경향이다. 수피즘은 ‘아슬아슬’하게 이슬람의 사상적·종교적 영역을 넓혔다.

모든 종교에는 정통과 비정통, 다수파와 소수파를 따지는 경향이 있다. 정통·다수파가 보기엔 비정통·소수파는 ‘이단’이다. 억압하려고 한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면 죽이려고 한다. 오늘날 수피즘 교단은 100여 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슬람의 역사에서도 ‘초기 이슬람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인 수피즘은 발생 초기부터 경계의 대상이었다. 순교자도 나왔다. 루미보다 300여 년 전에 태어난 수피의 성자 만수르 알 할라즈(858~922)는 이단으로 몰려 922년 바그다드에서 처참하게 죽었다. 트랜스 상태에서 “내가 진리다”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만수르 알 할라즈의 사상을 일부 수용한 루미는 살아남았다. 시대가 바뀌었고 워낙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피즘에 대한 박해는 주기적으로 재연되고 있다.

이슬람은 유대교·그리스도교와 더불어 대표적인 일신교다. 세 종교는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계승하고 있다. 이 3대 일신교는 굉장히 다르게 보이면서도 관통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사랑이다.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구원의 종교다’라는 말도 있지만, 사도 바울은 신망애(信望愛) 삼덕(三德) 중에 사랑이 최고라고 했다. 그리스도교는 적어도 사랑이 아주 중요한 종교다.

유대교에도 사랑의 전통이 있다. 대표적인 문헌은 <아가(雅歌)>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하는 <아가>는 이렇다. “구약 성경의 한 편. 여덟 장으로 된 문답체의 노래로, 남녀 간의 아름다운 연애를 찬양한 노래다. 저자는 솔로몬으로 추측되기도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19금 수준의 노골적인 낯뜨거운 내용도 많이 나온다.

성경 <아가(雅歌)>의 ‘이슬람 버전’


▎수피즘 전통에 따라 세마 춤을 추는 사람들.
루미의 연시는 <아가>의 이슬람 버전이다. 루미는 이슬람 또한 사랑의 종교라는 것을 논증한다. 루미는 페르시아의 연시 전통을 이슬람 신앙과 결합했다. 유대교·그리스도교 배경의 독자들은 루미를 통해 이슬람 또한 사랑을 중시하는 종교라는 일체감, 호감을 체험한다. 루미가 파악해낸 인간의 영혼은 신으로부터 분리돼 있다. 루미가 쓴 시의 주제는 견우직녀처럼 애달프게 결합을 꿈꾸는 인간과 신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가 아닌, ‘리버럴 아메리카(Liberal America)’는 다원주의·다문화주의를 표방한다. 다원주의·다문화주의는 과격하고 폭력적인 이슬람주의(Islamism)와 이슬람(Islam)을 구분할 것을 요구한다. 이슬람과 관계된 것은 모든 게 나쁘다고 하는 것은 다원주의·다문화주의의 에토스(ethos)와 맞지 않는다. 루미는 이슬람에도 인류 보편의 선함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루미는 포스트모던 시대, 탈종교(post-religion)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성 심리와 찰떡궁합이다.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은 제도화된 종교나 인격적인 신을 믿는 것은 꺼리지만,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갈망이 있다. 루미는 그러한 갈망에 단비 같은 존재다. 선불교와 마찬가지로 루미는 미국·유럽 사회에서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스도교과 무신론 사이에서 영적인 ‘제3의 길’을 놓는다.

이러한 모든 것을 배경으로, 미국 출판업계의 마케팅이 먹혔다. 루미를 일종의 ‘시원적 휴머니스트(proto-humanist)’로 포장했다. 사실 루미는 수피즘 교단 중 하나를 창시한 인물이지만, 수니파 이슬람에 속한다. 그의 시에는 무함마드를 존경하고 알라를 찬양하는 내용도 많이 등장한다.

루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꾸란>의 종이다. 나는 신께서 선택하신 무함마드의 길에 놓인 먼지에 불과하다.” 미국 출판계는 무슬림 루미의 시에서 ‘껄끄러운 부분을 제거한(sanitized)’ 후에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루미를 상품화했다.

귀인을 만나면 우리 인생이 바뀐다. 루미에게 샴스앗 딘이 귀인이었다. 1244년에 만났다. 샴스 앗 딘은 까다롭고 어떤 때는 잔인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루미가 만난 최고의 스승이었다. 루미는 그에게서 무엇을 배웠을까.

샴스 앗 딘은 루미에게 뻔한 미래로부터 도망가라고 설득했다. 루미는 이미 24세 때부터 웬만큼 사회적으로 자리 잡았다. 미래가 보장된 종교지도자였다. 그런 그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가르쳤다. 언어와 논리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음악과 시와 춤으로 신에게 다가가라고 일러줬다.

“논리 대신 음악과 시로 신에게 다가가라”


▎기독교·유대교· 이슬람교의 공동 성지인 이스라엘 파트리아크 동굴(이브라힘 모스크).
루미를 둘러싼 주요 논란 중 하나는 그가 샴스 앗딘과 호모에로틱(homoerotic)한 관계였느냐 아니였느냐다. 이 문제에 대해 펄쩍 뛰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모른다’는 식으로 봉합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논란은 사실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의 산물이기도 하다. 당시 이슬람 사회는 남자들 간의 우정을 매우 중시하는 사회였다. 13세기 아나톨리아를 21세기의 시각으로 보면 이상한 주장이 나올 수도 있다.

1248년 샴스 앗 딘이 사라졌다. 둘의 사이를 질투한 루미의 아들이 그를 암살했다는 게 정설이다. 샴스 앗 딘을 향한 그리움과 상실감은 루미를 시인으로 만들어줬다.

루미는 관용의 사상가다. 무식한 사람, 유식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어울리고 대화했다. 그리스도교인과 유대인들과도 친교를 맺었다. 루미의 장례식에는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참석했다.

루미가 살았던 시대의 이슬람 세계는 ‘잘나갔다’. 이슬람권과 그리스도교권은 스승-제자 관계였다. 어떤 문명이나 공통체, 조직·국가·종교가 ‘잘나갈 때’는 포용력이나 개방성이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 ‘밀리기 시작할 때’부터는 편협하게 되고 폐쇄적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21세기에 우리가 목도하는 이슬람주의의 폭력성·편협성은 어쩌면 이슬람권의 피포위심리(siege mentality) 때문이다.

루미는 다섯 살 때 천사들을 봤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슬람 지도자였다. 루미가 6세였던 1218년께 그의 식구들은 고향을 떠나 4000㎞에 달하는 대장정을 시작했다. 몽골의 침입(1215~1220)을 피해서다. 실크로드를 따라 바그다드·다마스쿠스·메카 등지를 거쳐 셀주크 투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코니아에 정착했다.

오늘날의 터키에 있는 코니아는 셀주크 투르크 왕조의 수도였다. 루미의 어원은 로마다. 루미는 ‘로마인’이라는 뜻이다. 그의 식구들이 정착한 아나톨리아 반도는 이슬람 입장에서는 옛 로마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루미는 두 번 결혼했는데, 첫째 부인과 2남, 둘째 부인과 1남1녀를 뒀다. 그의 대표작은 2만6000구로 된 6권이 대서사시 <마스나위>다. 그의 묘소는 오늘날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묘비명은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무덤을 지상에서가 아니라 사람의 가슴속에서 찾아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루미의 우화 모음집> <루미평전: 나는 바람 그대는 불> <나는 다른 대륙에서 온 작은 새: 잘랄 앗 딘 루미 우화잠언집> 등 루미 관련 서적이 몇 권 출간됐다. 아직은 큰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게 아쉽다.

[박스기사] “인내의 칼로 분노의 목을 베었노라” - 페르시아어 사용권 8000만 인구의 스승 루미 가라사대

● 하늘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하늘은 그토록 청명하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 어떤 빛도 내지 않을 것이다. 강물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강물은 소리도 내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을 것이다. 산과 땅이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을 것이다.
● 여러분이 할 일은 사랑을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사랑에 반대해 쌓은 장벽을 여러분 안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이 여러분의 행동까지 아름답게 만들도록 내버려둬라.
● 나는 인내의 칼로 분노의 목을 베었다.
● 아름다움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 때야 온 세상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 상실감으로 슬퍼하지 말라.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 우리를 낳게 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의 어머니다.
● 거짓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만, 진리는 우리에게 즐거운 평온함을 가져다 준다.
● 당신이 우울한 이유는 당신이 건방지기 때문이요, 당신이 남을 칭찬하길 꺼리기 때문이다.
● 당신이 모든 재물의 가치를 하나하나 알면서도 정작 당신 영혼의 가치를 모른다면, 당신은 바보다.
● 사랑은 쓴 것을 달콤하게, 구리를 황금으로, 쓰레기를 와인으로, 모든 고통을 명약으로 만들어준다.

※ 김환영 - 중앙일보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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