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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 크리에이터의 작업실 

‘이완된 몰입’의 공간으로 창조의 빅데이터와 조우하라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원장
자유로운 사고와 잠재된 에너지의 원천은 내면의 무의식…뇌 속에 있는 숨은 정보의 바다와 접속하려면 그에 걸맞은 환경이 필요해

남다른 발상과 아이디어를 원할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 바로 공간을 이동하거나 바꾸는 것이다. 그만큼 창조적인 생각을 할 때 공간이 미치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대표적인 크리에이터 두 명의 작업실을 찾아 그 속에 숨겨진 ‘공간의 기술’을 찾아본다.


▎서울 연희동 정치호 씨 사무실에 들어서면 빈티지 TV 세트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사진기자 출신인 그는 디자이너로 독립에 성공해 디자인그룹을 이끌고 있다. 지난해엔 아날로그TV 재해석한 TV장식장을 선보여 주목받기도 했다.
그의 집은 마치 새하얀 이집트 사원 같았다. 서울 연희동 언덕배기에 걸터앉은 3층집은 군더더기 없는 사각의 입면체다. 겉모습은 단순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실제로 1층 그의 작업실로 들어서면 오래된 보물창고(?)가 펼쳐진다. 옛날 할머니집에 있었을 법한 구식 TV들이 한쪽 벽에 가득 쌓여 있고 싱크대 옆에는 외국에서 가져왔다는 빈티지 자판기가 서 있다. 책상으로 쓰는 널찍한 테이블 위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물건들이 무심히 놓여져 있다.

그 유명한 독일의 산업디자이너 잉고 마우러(Ingo Maurer)의 LED 조명과 이탈리아 디지인계의 거장 알렉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의 스탠드, 국내에는 거의 없다는 Bohm사(社)의 스털링 엔진 세트까지. 그중에서도 내 눈을 잡아 끈 것은 너무나 고급스럽게 ‘잘 생긴’ 연필깎이였다.

“그건 스페인 엘 카스코(El Casco)사가 1976년에 만든 M430시리즈 중의 하나예요. 엘 카스코는 100년 전통의 총기 회사인데 대공황 시대 때 자구책으로 연필깎이를 비롯해 탁상용 소품을 만들기 시작했죠. 제련 기술이 워낙 좋은 회사라서 여기 들어가는 모든 소품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었어요.”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설명하는 순간, 그의 뿔테 안경 너머로 눈이 반짝였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치호다. 내가 아는 한, 그는 자신이 가진 다양한 수집품 만큼이나 수많은 일을 한다. 사진기자 출신으로 본업인 사진 이외에도 <빅이슈>란 잡지를 디자인하고 가구, 조명 등 생활용품을 만드는 디자인그룹 엇모스트(Utmost)를 이끌고 있다. 지난해 ‘리벌스(rebirth·재생)’라는 주제의 전시회에서 아날로그TV를 재해석한 월넛 TV장과 전통 고가구인 반닫이를 재현한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 받기도 했다. 이뿐인가. 기업들의 유명 브랜드도 도맡아 기업 이미지를 통일하는 CI(Corporate Identity)부터 제품 패키지며 공간디자인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무는 ‘크리에이터‘라는 수식어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영감을 주는 물건들로 빼곡한 작업실


▎주목받기도 했다. 정치호 씨의 사무실은 마치 미술관 같은 느낌도 준다 / 사진제공·정치호
그에게 물었다. “수집하는 물건들이 참 다양하네요. 보통의 콜렉터들은 피규어라든지 안경이라든지 한 가지 품목을 정해서 모으기 마련인데요.”

그의 답이다. “일부러 수집하려고 모은 게 아니라 실생활에 필요해서 산 것들이니까요. 연필깎이도 제가 연필을 쓰다 보니 연필깎이가 필요했는데 이왕이면 디자인적으로 괜찮고 스토리가 있는 걸 사고 싶어서 찾게 된 거예요. 여기 있는 조명이나 스피커 같은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모든 디자인에는 원류라는 게 있잖아요. 그 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포인트가 될 만한 물건은 저나 같이 일하는 디자이너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죠.”

그가 곁에 두고 쓰는 물건 하나하나에는 역사와 스토리, 디자이너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그중에는 정말 구하기 힘든 희귀한 물건들도 있지만 일부러 진열장을 만들어 따로 전시하진 않는다. 자연스러운 풍경처럼 작업실에 어딘가에 녹아들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다 손님이나 의뢰인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면 대화의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날 내가 ‘꽂힌’ 연필깎이처럼 무수한 소품 중에 한두 개쯤은 외뢰인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니까.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그의 공간에 익숙해질수록 이곳은 정씨의 전장(戰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전투복을 연상케 하는 야상점퍼를 즐겨입는 그는 이곳에서만큼은 뛰어난 공간의 지배자이자 사령관이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물건에 대한 사람의 반응을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할 수 있다. 디자인을 보는 안목, 관심사, 사람에 대한 태도까지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황을 통제하고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업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전에 한번 그가 인물사진을 찍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5분 남짓, 몇 마디 나누면서 ‘인생사진’을 찍어내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상대가 일상적인 대화에 집중하는 사이, 그가 가진 가장 깊은 얼굴을 포착하는 식이다.

크리에이터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보여지는 순간, 뭐든지 금방 카피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원천에서 나오는지 쉽게 노출되는 걸 꺼려한다. 그런 그의 내면이 그의 작품에도, 공간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그 중심에는 공간 곳곳에 놓인 그만의 소장품들이 있다. 그가 소유한 모든 물건은 작가 자신이 불어넣은 의미와 감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 것들이다. 이런 물건들은 마치 제페토 할아버지가 만든 피노키오처럼 언제든지 자신의 소리를 내며 또 다른 스토리를 이어 간다. 때론 물건들의 단순한 배열이 마치 악기의 배열처럼 아름다운 화음을 들려 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만이 느낄 수 있는 이런 공간의 파장은 그곳에서 치열하게 해결책을 찾아나갈 크리에이터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만족감을 선물해 준다. 그리고 그렇게 기분 좋은 이완의 상태에 들어갔을 때 비로소 새로운 문이 열리게 된다.

창조는 ‘무의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는 초당 4000억 비트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그중에서 2000비트 정도의 정보만을 실제로 처리할 뿐이다. 나머지 대다수의 정보는 무의식 속에 저장돼 간다. 이렇게 무의식에 저장된 방대한 빅데이터는 스스로의 편집과정을 거치며 우리에게 쉴새 없이 그 결과물을 전달해준다. 이 결과물들이 바로 영감과 창조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무의식의 답을 의식의 세계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완된 몰입’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의식의 몰입은 집중이라는 긴장된 상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무의식의 몰입은 분산이라는 이완의 상태를 필요로 한다.

수많은 예술가가 꿈속에서 자신이 만들어낼 노래의 선율을 듣거나, 그림의 영감을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00여 년 전 ‘천재 과학자’로 불리던 니콜라 테슬라는 아예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것을 꿈속에 넣어 해답을 찾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욕실이 그런 역할을 해준다. 도저히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머리로 떨어지는 샤워기의 물줄기를 느끼다 보면 갑자기 번쩍하고 새로운 영감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마치 아르키메데스가 욕실에서 유레카를 외쳤듯이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애플의 공통점은 개방형 오피스


▎개방형 사무실이 대세다. 직원들에게 창의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서울 유한킴벌리 사무실도 직원들이 편하게 원하는 자리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실은 그가 편안하게 자신의 무의식과 만날 수 있도록 배치된 최적의 공간인 셈이다. 영감을 주는 수많은 물건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더 새롭고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창조의 공간.

때문에 창조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업실처럼 의미와 이야기를 부여하고 감정을 이입시킨 물건들을 놓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그 물건이 무엇이든 괜찮다. 그렇게 재창조된 물건들은 그 자체로 든든한 우군이 되어 한층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최근 들어 페이스북이나 애플 등 창조와 혁신이 가장 중요한 IT기업들의 공간이 이런 코드로 바뀌고 있는 것도 크리에이티브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IT기업들의 공간도 여타의 회사와 다를 게 없었다. 10여 년 전, 지인이 근무하던 유명한 게임회사에 방문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창문은 모두 검게 선팅이 돼 있었고 책상 한 개당 두 개의 컴퓨터와 12개의 모니터가 성벽처럼 사람들 간에 장벽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 13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니 그 작은 공간에 26개의 컴퓨터와 156개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던 셈이다. 거기다 벽과 창문 컴퓨터 자판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곳에 게임 캐릭터가 그려져 있어 공간은 혼란 그 자체였다. 직원들은 불편한 의자에 앉아 온종일 모니터를 바라보며 새로운 콘텐트와 영감을 떠올려야 했다. 마치 게임을 만드는 사육장 같았다.

결과적으로 게임은 성공했지만 젊은 사원의 대부분이 불임판정을 받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후유증이 발생했다. 잘못된 공간에서의 무리한 생산이 그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요즘 IT업계의 많은 회사가 개방형 오피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사옥을 만드는 것도 그 한계에 대한 나름의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개방형 오피스의 대명사인 ‘페이스북’의 사옥은 천정고 7m에 1만2000평의 개방형 원룸처럼 만들어졌다. 대표는 자신의 사무실조차 없으며 사원들은 막힘 없는 이곳에서 퀵보드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마치 SNS처럼 각자의 의견과 결정은 빠르게 공유되고 전달된다. 새롭게 완공된 애플 본사의 이름은 아예 애플파크(Apple Park)다. 고리모양의 뻥 둘린 사옥의 안쪽으로 거대한 숲이 조성돼 있고 외관은 세상에서 가장 긴 유리패널로 둘러싸여 있다. 어느 곳에서든 고개만 돌리면 하늘과 나무를 볼 수 있는 개방된 연결성이 이 건물의 핵심이다.

국내에서는 배달의 민족 어플로 알려진 ‘우아한 형제들’의 사옥이 유명하다. 보안이 필요한 콘텐트를 다루거나 차단된 환경을 필요로 하는 업무공간을 제외한 사옥의 절반은 떠들고 쉴 수 있는 협업의 공간으로 만들어 졌다. 이곳에서는 업무시간에도 푹신한 쿠션에 누워 올림픽공원을 내려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길 수도 있다.

이들이 이런 개방형 오피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천정이 높은 확장된 공간에서 창조적 사고가 활발해 진다거나 녹지가 많을수록 학습력이 높아진다는 환경심리학의 이론들을 현장에서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들판에 누워 높은 하늘을 보거나 먼 산을 보면 마음의 긴장이 풀리듯 개방된 공간이 주는 이완은 사고를 좀 더 개방적이고 여유롭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자유로움은 내면의 무의식과 접속하는 데 좀 더 수월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두 번째 방문한 크리에이터의 공간은 베스트셀러 작가 김수영 씨의 집이다. ‘중학교 중퇴, 검정고시로 들어간 상고에서 골든벨을 울리고 세계적인 투자회사 골드먼삭스에 들어갔던 그.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암 투병 이후 73개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이뤄간 여정을 기록한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라는 책은 청년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안겨줬다. 꿈을 찾아가는 자신의 여정을 수많은 책과 영상, 강연으로 만들면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삶의 희망과 감동을 주는 멘토로 성장한 김수영 작가. 자신의 삶 자체가 콘텐트이자 창작물인 그의 공간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면벽 수행 같은 김수영의 글쓰기 공간


▎음식 배달 서비스 ‘배달의민족’ 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부분적으로 모바일 오피스를 도입했다. 사무실의 약 20% 공간을 개방형으로 꾸며 창의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개방형으로 설계했다.
서울의 중심지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 들어선 순간, 첫눈에 들어온 거실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80개국 이상을 여행한 그의 집안에는 그 어떤 여행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방문한 나라의 특산품이나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주고받았을 이국적 물건들, 심지어 작년에 결혼한 신혼임에도 결혼사진 한 장 보이지 않았다. TV가 있어야 할 곳에는 작은 소파가 놓여 있었고 소파가 놓여야 할 곳에는 큰 테이블과 라탄 의자가 두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기분에 따라 달리 피운다는 향초가 전부였다.

그가 집필할 때 머무는 서재도 단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출판한 책과 참고용 도서들이 놓인 작은 책장, 큰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전부였다. 마치 아직도 여행중인 것처럼 언제라도 캐리어에 짐을 싣고 떠날 수 있도록 만든 공간 같았다. 사는 집에 작업실을 만들어 놓은 작가들은 대부분 집 어딘가에는 영감의 원천이 될 만한 장치를 마련해놓기 마련이다. 그런데 김 작가의 집에서는 특별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작가님의 방을 보니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 글이 잘 쓰여졌는지 궁금한데요?”

“공주 마곡사나 김천의 수도암에서 글을 썼을 때였던 것 같아요. 멀리는 태국의 코팡안이나 마추픽추의 뜨거운 태양 아래를 여행했을 때, 혹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감동적인 풍경 속에서도 새로운 영감이 떠오르죠. 물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의 작업환경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에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서재 책상의 위치가 새삼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에서 구해온 여러 가지 자료와 기록이 모여 작품으로 승화되는 작가의 책상은 창작의 단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작가는 본능적으로 벽을 등지고 방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위치나 창가 근처에 책상을 둔다. 책상에 앉아서 볼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서도 창작의 단서를 찾아야 하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시시각각 변하는 창 밖의 풍경이나 빛의 느낌, 소품 하나로 분위기가 바뀌는 방의 모습은 좋은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기 드물게 그처럼 면벽을 하며 작업하는 이들도 있다. 김 작가의 작업용 책상은 밖이 내다보이는 커다란 베란다 창을 뒤로 한 채 방의 가장 그늘진 벽에 붙어 있었다. 벽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벽에게 연주하는 음악가를 떠올리기 힘든 것처럼 벽을 바라보며 영감을 떠올리는 작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는 아니다.

‘이런 식으로 집필실을 만들었던 작가가 있었나?’ 한참 생각해 보니 주홍글씨를 쓴 너대니얼 호손이 떠올랐다. 그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창가가 있는 곳에 서재를 뒀다. 하지만 글을 썼던 책상은 창가와 멀리 떨어진 꽉 막힌 벽 앞에 두었다. 그는 쉬는 시간엔 채소가 자라는 것을 보며 묵상을 했던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는 이문열 씨의 책상이 그랬다. 일부러 채광이 덜한 서북향 방에 서재를 두고 풍경과 상관없이 벽을 향해 책상을 뒀다. 그곳에서 그는 시험공부 하듯 작품을 쓴다고 했다.

단순한 공간 만들어 내면으로 들어가라


▎김수영 작가는 면벽 수행하듯 글을 쓴다. 그의 사무실은 단출한 편. 벽을 마주한 컴퓨터에서 작업을 하고 때로는 악기를 연주하며 영감을 얻는다. / 사진·신기율
이들이 작품을 위해 영감을 얻는 방식은 고행하는 순례자의 수행과 닮았다. 종교적 공간에서 종교인들은 한결같이 벽을 향해 기도한다. 그 벽에는 십자가나 불상 같은 종교적 상징이 걸려있다. 선(禪) 수행자들은 벽에 조그만 점 하나를 찍어놓고 그 점에 집중하거나 촛불을 보며 깊은 명상에 들기도 한다. 벽에 십자가가 걸리거나 점 하나가 찍히는 순간, 그 벽은 더 이상 단순한 벽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 신성한 상징들을 통해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들어 있던 기쁨과 슬픔의 감정, 기억과 경험의 편린을 만나게 된다.

살아서 고통과 상처를 깊게 받은 사람일수록 그 경험들은 서로 충돌하고 부딪치며 마그마 같은 뜨거운 에너지로 응축돼 간다. 기도와 명상은 우리에게 이 에너지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준다. 그리고 이는 내 무의식 속의 정보를 스스로 편집해내는 특별한 능력이 돼주기도 한다.


호손과 이문열에게는 젊은 시절 ‘가족이라는 핏줄을 타고 온 원죄’를 감내하며 살아야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호손의 고조부는 실제 화형식이 이루어지던 마녀 재판의 재판관이었고 이문열의 부친은 월북한 빨치산이었다. 이런 이력은 그들에게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됐다. 그리고 그들을 족쇄를 풀 열쇠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순례자로 만들어줬다. 호손의 주홍글씨나 이문열의 초기 작품들은 그런 갈등의 에너지를 어떻게 창작의 에너지로 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본과도 같다. 김수영 작가에게도 자신을 순례자로 만들 수밖에 없는 유년시절이 있었다. 어렸을 때 따돌림을 당하고 중학교를 중퇴하고 다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입학해 대학에 진학하기까지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했던 갈등과 방황의 시절. 이때의 경험들이 아마도 평생을 꺼내 쓸 수 있는 내면의 응축된 에너지가 되지 않았을까.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정치가나 연예인, 강사들 중에는 유독 대중의 관심이 집중될수록 놀라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에는 말이 없고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무대에 서는 순간 말문이 트이고 대본에도 없던 말로 관객을 열광시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관객의 시선을 자신의 무의식의 문을 여는 에너지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관객의 에너지를 이용해 자신의 잠재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수행자들도 이와 비슷한 기제를 갖는다. 다만 내 무의식의 문을 두드리는 시선이 관객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내가 나에게 집중할수록 잠들어 있던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이다. 이럴 땐 오히려 집중을 방해하고 주위를 분산시키는 물건들은 방해가 될 뿐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혹은 벽 위의 점이나 성물, 책상처럼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한 장치만 있으면 된다.

이렇게 벽을 보며 작품을 완성해가는 작가들은 마치 심산유곡의 수행자처럼 나에게 집중하는 에너지를 통해 무의식의 문을 열어가는 사람이다. 김 작가에게도 여행이나 암자, 고요함, 명상 이라는 단어가 만들어 내는 공간이 자신의 무의식을 여는 통로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처럼 자신의 삶 자체가 영감을 불러오는 에너지가 되는 작가들은 이 집을 참고해봐도 좋을 것 같다. 오롯이 나의 내면에 집중하게 만드는 한적한 암자 같은 방. 단순한 여백의 공간 속에서 창조의 에너지가 샘솟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금 같은 의미의 크리에이티브가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0년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통적 공간에서도 창조적 공간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당시 창작에 대한 인식은 공자의 술이부작(述而不作: 선인의 가르침을 그대로 기술하지만 창작하지는 않는다)으로 정의된다. 기존의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적 행위는 자기합리화에 빠진 삿된 편견이나 위험한 도발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왕권을 통해 창작된 한글조차도 국문으로 인정되기까지 450년의 시간이 걸려야 했다.

창조=기존의 것을 부정=패륜으로 보았던 동양


▎정치호의 사무실은 그에게 영감을 주는 물건들로 빼곡하다. 그러나 허투루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은 없다. 연필깎기부터 스탠드까지, 그가 “이왕이면 디자인적 요소를 갖춘 필수품”을 찾아서 직접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이다. / 사진:신기율
이런 부정적 뉘앙스는 동양의 운명학에서도 드러난다. 명리학에서 창조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편인(偏人)이란 용어는 다른 말로 효신(梟神)이라 불린다. 효신은 올빼미를 말한다. 올빼미는 고대 중국에서 자신의 어미를 잡아먹는 새로 알려져 있다. 결국 창조란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패륜과도 동일시됐다는 말이다. 그렇게 부정한 에너지를 주는 공간을 굳이 찾을 필요도, 공론화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효신의 올빼미는 로마시대로 넘어오면 환영받는 지혜의 동물이 된다. 지혜의 신 미네르바는 황혼녘 산책을 갈 때 마다 올빼미를 데리고 나갔다고 한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눈을 밝혀 먹이를 찾아내는 올빼미의 습성을 지혜의 한 부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동양에서 효신의 올빼미가 패륜의 아이콘으로 처단되고 있을 때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끊임없이 비행해 나갔다. 그 결과물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시기가 18세기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18세기는 서양 점성학에서 창조를 상징하는 별, 천왕성이 처음으로 발견된 때이기도 하다. 새로운 별의 발견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인간 의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점성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별을 찾아낸 인간의 의식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삶의 가치들을 각성시켰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때 그 별이 상징하는 의미는 시대의 가치를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 이 시기에는 자유와 독립, 창조와 같은 전에 없던 새로운 관념들이 퍼져가기 시작했다.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이라는 큰 변화의 물결이 출렁이기도 했다. 크리에이티브의 개념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독립적이면서 창조적인 관념이 불러온 공간의 변화가 가장 먼저 ‘화장실’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수세식 변기는 이전부터 드물게 사용돼 왔지만 대중적 공감대를 전혀 형성하지 못했던 물건 중 하나였다. 생리현상 자체가 사적인 행위로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상방뇨나 대화를 하며 함께 볼일을 보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람들은 생리현상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수치스러울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칸막이가 설치된 수세식 공중화장실이 늘어갔다. 수많은 역병에도 큰 변화를 보이지 않던 화장실 문화가 확장된 의식의 변화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아이의 성장단계에서도 볼 수 있다. 아이에게 ‘나’ 라는 자아의 관념이 뚜렷해지기 시작하는 서너 살이 되면 가장 먼저 보이는 행동의 변화가 화장실의 문을 닫는 것이다. 집단적 사고가 개인적 사유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공간 역시 점점 사적인 영역으로 미분화되는 것이다.

크리에이터에게 사적인 공간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창의적 발상은 스스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의식의 성장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의식의 성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사적인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다. 그 소소한 공간을 무의식으로 가는 대기실로 만들 때, 어느새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내 어깨 위에 앉아 있을 것이다.

※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자유롭게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남다른 혜안으로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한 결과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현재 직관과 마음 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2015년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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