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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토로] ‘원조 대쪽’ 김호 前 축구대표팀 감독의 苦言 

“협회는 군림하려 들고 회장 주변엔 예스맨뿐” 

글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대표팀의 ‘모래알 조직력’ 전락은 감독의 컬러 부재 탓…축구협회는 대표팀 스폰서, 각종 A매치 통해 배만 불려

▎‘원조 대쪽’ 김호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0월 10일 용인시축구센터에서 월간중앙과 만나 한국 축구에 대한 고언을 하고 있다. 김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와 정몽규 회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축구계 만년 야당’, ‘원조 대쪽’ 김호(73)는 축구를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도 쓴소리를 하는 원로다. 그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대표팀을 이끌었고, 프로축구 수원 삼성의 초대 감독으로 ‘수원 왕조’를 구축했다. 지금은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으로 꿈나무들을 키워내고 있다.

한국 축구가 조롱거리로 전락한 2017년 가을, 김 감독을 만나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용인시축구센터로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시아의 호랑이’ 한국 축구대표팀은 오합지졸이 됐고, 축구인을 하나로 모아야 할 대한축구협회는 분란을 자초하는 ‘사고단체’로 전락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한 수 아래로 여겨지던 중국·카타르에도 졸전 끝에 패했다. 최종예선 두 경기를 남기고 슈틸리케(독일) 감독이 사퇴하고, 신태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이란·우즈베키스탄과 비기며 간신히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땄다. 이 와중에 ‘히딩크 감독 복귀론’이 터져 나와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궁지에 몰린 신 감독은 유럽 원정 평가전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러시아에 2-4, 모로코에 1-3으로 참패했다. 대표선수들은 ‘국민 밉상’, 축구협회는 ‘비리 온상’으로 낙인찍혔다. 사면초가 한국 축구에 돌파구는 없는가? 노(老)감독에게 길을 물었다.

축구 대표팀이 국민의 혈압을 끝없이 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십니까?

“급변하는 세계 축구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다는 게 문제지요. 저는 매일 밤 TV로 전 세계 대표팀의 경기나 유럽리그 경기를 봅니다. 세계 축구는 갈수록 섬세해지고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요. 슈팅과 패스의 정확성이 높아지다 보니 골이 많이 납니다. 그런데 우리 대표팀은 이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요.”

무엇보다 수비 불안이 심각한데요

“즉각적인 수비가 이뤄지지 않아요. 공을 뺏겼을 때 우리는 자기 문전으로 돌아와 진영을 짜려고 합니다. 위험지역까지 스스로 물러나다 보니 상대가 쉽게 문전까지 치고 올라와서 정교한 패스 한두 개와 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버리는 거죠. 공을 뺏기는 순간 바로 수비로 전환해 정확한 패스가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합니다. 파울을 해도 골문에서 먼 쪽에서 해야 위협적인 프리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변화를 빨리 따라잡지 못하는 거죠.”

“인조잔디가 좋은 수비수 성장 가로막아”


▎2008년 5월 18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프로축구 K리그 대전 대 서울의 경기 하프타임 때 통산 200승을 달성한 김호 감독에 대한 축하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수비수들의 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어릴 적부터 인조잔디에서 연습과 경기를 하다 보니 태클이나 방어하는 기술이 둔탁해지고 있어요. 인조잔디에서 태클을 하다가 화상을 입거나 제대로 슬라이딩이 안 돼 발목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몸을 사리게 되고, 지도자들도 적당한 선에서 봐주는 경향이 있어요. 인터셉트(가로채기)를 하라, 상대가 돌아서지 못하게 하라, 몸싸움을 하라. 이게 수비의 기본인데 그걸 제대로 해내는 선수를 찾기가 힘듭니다.”

대표급 수비수들의 ‘중국화(중국 클럽으로 이적하면 기량이 떨어지는 현상)’ 논란도 있는데요.

“선수는 중국을 가든 남미를 가든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어디서든 열심히 안 하면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중요한 건 자기 가치를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거죠. 우리 선수들은 기량에 비해 과도한 돈을 받으면 해이해지고 나약해집니다. 메시(아르헨티나)나 호날두(포르투갈)가 1년에 수천억 원대의 수입을 올리면서도 더 나은 선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철두철미하게 자기관리 하는 걸 보세요. 그게 가치라는 겁니다.”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25·토트넘)이 A매치 9경기 만에, 페널티킥으로 1년 만에 골을 넣었습니다.

“손흥민이 올해 리그에서는 골을 많이 넣었죠. 소속팀 멤버가 보강돼서 그런 거지 자기 능력이 좋아진 건 아닙니다. 유럽에서 그 정도 뛰었다면 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여유 있게 해야 되거든요. 결국 자기관리를 잘 못하고, 멘탈에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승리를 위해, 골을 넣기 위해 욕심을 부릴 때 부려야 하지만 그 정도 클래스(수준)라면 전체적인 게임을 읽고 완급을 조절하면서 동료를 리드해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좋은 동료 있는 팀에서 골 많이 넣는 선수’에 그치고 말겠죠.”

“김남일 ‘빠따 발언’은 석기시대 얘기”


▎2014년 5월 20일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축구협회 주최로 열린 ‘역대 월드컵 대표팀 감독 초청 오찬’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허정무·김호·홍명보· 이회택 감독, 정몽규 회장, 김정남·조광래 감독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기력도 문제지만 팬들을 더 화나게 하는 건 대표선수들이 예전만큼 열심히 뛰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표팀 소집 기간에 선수들끼리 모여 포커를 쳤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지난 7월 대표팀 코치로 합류한 ‘진공청소기’ 김남일(40)은 “생각 같아서는 후배들 ‘빠따’라도 치고 싶다”고 말해 팬들로부터 “역시 김남일이다. 사이다 발언에 속이 다 시원하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열심히 뛰지 않는 걸까?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들이 많습니다.

“대표팀에 들어온 선수에게 뭘 가르치고 바꾸려 하면 안 됩니다. 이미 교육을 통해 국가관과 책임감이 형성돼 있어야죠. 대표선수들 멘털이 왜 나빠집니까?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의 수준이 안 되니까 그런 거죠. 대표팀에는 선수와 소통하고 정신적인 긴장을 늘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련한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김남일 코치의 ‘빠따 이야기’는 심정적으론 이해합니다만 석기시대 얘기죠.”

안정환 MBC 해설위원이 “게임 끝나고 탈진할 정도로 뛰어야 한다”고 말해 큰 공감을 얻었는데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죠. 운동할 때 맥박수가 230에 도달하면 초주검이 되고 그 다음날 운동을 못합니다. 왜 유럽 사람들이 180에 맞추겠어요? 정신력이란 건 우리 운동할 때 말하던 식으로 ‘똥물 나올 때까지 뛰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관리로 90분 동안 전력을 다해 뛸 수 있게 준비하는 겁니다. 경기를 하러 모인 선수는 경기 외 어떤 것에도 눈길조차 주면 안 되는 이유가 그겁니다.”

대표팀의 조직력이 떨어지고 모래알 같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그건 감독의 컬러가 없다는 거죠. 축구는 11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공간을 만들어내고 그 공간을 활용해 공을 운반하고 골을 만들어내는 작업이거든요. 한순간의 기가 막힌 스루패스로 골 찬스를 만든다고 했을 때 그 패스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그걸 만드는 움직임이 있어야 해요. 그 과정을 아는 사람이 좋은 감독이죠. 왜 유럽 사람들이 기술고문을 둘까요. 그런 부분들이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고 토론하기 위해서라는 거죠.”

‘히딩크 감독 복귀론’이 오랜 기간 축구계를 흔들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 성적을 위해 프로팀들이 많은 희생을 했어요. 1년 반 동안 선수를 내줬습니다. 월드컵 4강하고 남은 게 뭡니까. 눈만 높아졌잖아요. 제가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반대한 사람입니다. ‘우리 축구의 질·수준을 높이지 않고 월드컵을 치르면 그 후에 관중도 줄어들고 다 망할 거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이 돼 가고 있잖아요. 히딩크가 아니라 어떤 세계적인 명장을 모셔와도 좋습니다. 다만 당장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축구의 수준이 높아지고, 그 과실을 모든 축구인이 누릴 수 있게 돼야죠.”

히딩크는 결국 안 오는 걸로 됐지만 그 후유증이 큽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안이한 대처가 일을 키웠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뭘 많이 모르는 것 같아요. 현장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정 회장 주위에 예스맨이 너무 많아요. 말 잘 듣고 자기한테 잘하는 사람만 쓰면 됩니까? 반대파도 있어야 하고, 왜 반대를 하는지도 생각해야죠. 축구협회는 군림해서는 안 됩니다. 축구인을 위한 봉사단체잖아요. 그런데 수십 년째 군림하고 있어요.”

축구협회의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까?

“우리는 늘 대표단(김 감독은 대표팀을 옛날식으로 ‘대표단’이라고 지칭했다)을 갖고 얘기하고, 결과만 가지고 말합니다. 그런데 선수는 대표단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각 소속 팀에서 만들어진 선수가 모인 곳이 대표단이죠. 그러니까 축구협회는 대표단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프로구단을 포함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수만 개의 팀과 거기 소속돼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축구협회는 대표단 스폰서와 월드컵 예선·본선을 포함한 A매치 수입으로 배를 불려왔다는 겁니다.”

“2002년 월드컵 탓에 축구 수준 저하돼”


▎94년 미국월드컵 대표팀 소집훈련 도중 선수들에게 전술을 지시하고 있는 김호 감독.
그러면 축구협회가 뭘 해야 합니까?

“팀들이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 육성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유럽의 경우는 축구협회가 최신 트렌드와 전술 등을 자료로 만들어 구단들에 보내주면서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우리는 지금도 대표단을 위해 프로리그와 팀들이 희생하도록 강요합니다. 각 클럽이 플랜을 갖고 경기를 준비하고 선수를 육성하도록 도와주지를 않아요. 클럽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K리그에 관중이 안 오고 리그 자체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어요.”

축구협회가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제가 예전부터 한 얘기가 ‘기술·심판·경기·상벌 분야는 축구협회에서 떼 나와서 축구인들이 맡아서 하고 축구협회는 지원만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지원하는 사람들이 군림하면 안 됩니다. 축구 선진국을 가면 축구인을 전문인으로 인정하고, 지원하고, 안 되면 토론하고 하는 게 자리 잡았어요.”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한 역대 축구협회장이 있었습니까?

“축구인을 앞에 세우고 도와준 분으로는 고(故) 장덕진 회장(1970∼73년 재임)이 유일했던 것 같아요. 그분이 계시는 동안 10개가 넘는 금융단 축구팀이 만들어졌고 한국 축구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죠. 축구협회장은 아니지만 고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도 사심 없이 축구를 도와준 분입니다. 포항과 광양에 아름다운 축구전용구장을 지어줬고, 포항제철 산하 두 개 프로구단(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이 운영되도록 힘을 실어줬죠.”

김 감독은 1994년 미국월드컵 당시 ‘게토레이 사건’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게토레이(스포츠음료)가 대표단을 후원하면서 선수단 얼굴 사진을 음료 캔에 넣었어요. 초상권 사용 차원에서 감독인 나는 1500만원, 선수들은 등급에 따라 5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기로 했죠. 그런데 축구협회가 나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에게 200만원씩만 일괄 지급했어요. 나머지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죠.”

미국월드컵에서 대표팀은 2무1패로 예선 탈락했지만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스페인전은 서정원의 막판 동점골로 2-2로 비겼다. 볼리비아와의 2차전에선 숱한 골 찬스를 날리고 0-0으로 비겼다. 댈러스의 불볕 아래서 열린 독일과의 최종전에서는 전반에만 0-3으로 뒤졌다. 후반 황선홍·홍명보가 골을 터뜨리며 2-3까지 추격했지만 동점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김 감독은 “그 팀은 아직까지 공식 해단식도 못했어요. 공항에서 간단한 인사만 하고 해산시켰어요. 당시 미국에서 정몽준 축구협회장과 내가 언쟁을 좀 했거든. 훈련시키느라 정신 없는데 ‘회장님 도착하시니까 공항으로 나오라’고 해서 나갔더니 인사도 제대로 안 받고 그냥 가요. 나도 정 회장이 훈련장에 왔을 때 똑같이 해줬죠. 허허.”

심판이 휘슬 거꾸로 불면 그게 바로 승부조작


▎1995년 프로축구 삼성의 창단 발표식에서 김호 감독과 박성인 삼성스포츠단 전무가 악수하고 있다.
김 감독은 프로축구 K리그 수원 삼성 창단(1995년) 감독을 맡아 2003년까지 재임했다. 그가 사령탑에 있는 동안 수원은 ‘고·데·로(고종수·데니스·산드로) 트리오’로 대표되는 맹렬한 공격축구로 K리그를 평정했고, 아시아챔피언스리그 2연패(2001, 2002)를 달성했다. 수원 서포터스 부르는 “우리는 아시아의 챔피언” 응원가도 이때 나왔다.

지금은 K리그가 활기를 잃었다. 경기장에 관중은 줄고, TV로 프로축구 중계를 보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와중에 심판 매수 시도와 판정 시비 등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심판에게 돈을 준 혐의로 실형을 받은 전북 현대 스카우트가 자살하기도 했다.


▎김호 감독이 94년 미국월드컵을 앞둔 대표팀 훈련 도중 황선홍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K리그 침체기가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프로축구연맹이 제대로 못하는 거죠. 구단들에도 책임이 있어요. 축구를 제대로 아는 단장이 없어요. 가장 큰 문제는 심판입니다. 휘슬 하나로 자신이 경기를 좌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일납니다. (파울을) 불 거 안 불고, 안 불 거 불면 그게 승부조작이죠. 그런 사람들은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전북 현대의 심판 매수 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사건 당사자인 스카우트가 불행한 일을 당했죠. 그런데 정작 구단은 승점 9점 삭감당하고 끝났습니다. 굳이 유벤투스(이탈리아 명문 구단. 2006년 승부조작 사건으로 2부 리그 강등) 예를 들지 않더라도 축구 선진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내가 만일 현대 입장이라면 2부로 내려가서 감독을 좀 쉬게 하고 시간을 뒀다가 1부로 다시 올라갈 겁니다. 그러면 그 기업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좋게 생각할까요. 그런 게 스포츠 정신과 가치를 지키는 겁니다.”

K리그가 다시 살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인,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와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죠. 경기의 질을 높이는 게 마케팅의 기본입니다. 무조건 돈 아끼고 쓰임새 줄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질 좋고 몸값 싼 선수를 영입해 활용하고 비싼 값에 되파는 ‘축구경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팀 수준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무조건 웃통 벗고 ‘우승하겠다’고 덤빕니다. 우승만이 가치는 아니죠. 그 도시 아이들한테 꿈을 꾸게 하는 것이 축구단의 역할입니다. 이기기 위해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도 교육입니다.”

용인시축구센터는 6면의 축구장과 기숙사 시설을 갖추고 축구 꿈나무들을 키워낸다. 이곳에서 숙식하고 훈련을 받는 학생들은 중학교 2팀(원삼중·백암중)과 고교(신갈고)에 적을 두고 경기에 출전한다. 올해 8월 신갈고가 문체부장관기 전국 고교대회 우승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김 감독 부임 이래 2년4개월 동안 전국대회 4회, 지역대회 포함 10회 우승했다. 김 감독은 “훈련 계획과 프로그램에 대해 연령별 담당 지도자들과 토론하면서 더 좋은 방향을 모색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늘 ‘기술축구’를 강조하는 김 감독에게 왜 우리 대표선수들이 상대 한 명을 제치는 개인기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지도자들이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는 거죠. 개인기를 키워주기보다는 조직력으로, 이기는 축구를 하려고 하니까요”라며 “드리블을 할 수 있는 데와 없는 데를 구분해주고, 왜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면 됩니다. 연결하는 드리블, 찬스 만드는 드리블, 결정짓는 드리블이 있어요. 그걸 하려면 특징 있는 선수, 순발력과 센스로 상대 진영을 파괴할 수 있는 선수가 돼야 합니다. 그런 잠재력이 보이는 애들을 연습시키고 크는 걸 보는 게 낙이지요”라며 웃었다.

“신태용 체제로 가되 기술고문 영입해야”


▎1999년 1월 열린 98 한국프로축구 K-리그 시상식. 수원 삼성을 우승으로 이끈 김호 감독과 최우수선수(MVP) 고종수가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시 대표팀 얘기로 돌아왔다. 신태용 감독 체제로 계속 가는 게 맞는지 물었다. 그는 “월드컵이 8개월 남았는데 냉정하게 봐서 신 감독을 대체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믿고 가는 수밖에 없죠. 대신 공격과 수비 전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전문가를 ‘기술고문’ 형식으로 영입해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게 대안이 될 수 있겠죠”라고 제안했다.

신 감독에 대해서도 “비판을 수용하되 비판받는 걸 두려워해서도 안 됩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흔들어도 자신이 가는 길이 맞다면 밀고 나가야죠”라고 격려한 뒤 특유의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신 감독이 말은 잘하는 것 같은데 말과 실제는 달라요. 우리 선수들이 가장 안 되는 게 패스입니다. 한 번에 가는 패스도 있고, 둘러서 가는 패스도 있는데 다이렉트로 스루패스만 하려고 하니 자꾸 끊기고 역습을 당하는 겁니다. 경기 운영법을 연구해야죠. 이건 기술과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11명의 선수가 경기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개념을 공유하고 나가야 됩니다.”

김 감독은 “그런 연결고리를 만드는 방법을 지도자가 가르쳐야 합니다. ‘내가 이런 걸 요구하는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서로 생각을 모으는 과정이 필요해요. 공이 없을 때 움직임, 오프사이드에 안 걸리는 시스템, 공이 끊겼을 때 즉각적인 수비를 누가 어떻게 어디서부터 할 것이냐, 이런 포인트를 두고 연구해야죠”라고 조언했다.

노(老)지도자의 경륜에서 나온 말들은 모두 ‘가치’라는 단어로 수렴됐다. 축구의 가치, 대표팀의 가치, 축구선수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 뭔가를 고민하는 데서 한국축구의 부활이 시작된다. 그게 ‘축구계 야당 원로’ 김호가 제시한 길이었다.

- 글 정영재 중앙일보 스포츠 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사진 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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