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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대화] 도쿄대 강상중 교수의 2017년 한국사회 진단과 처방 

“앞으로의 5년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글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세월호 비극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한 것이 ‘촛불집회’…건강한 사회 만들기 위해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해

“내 (한국) 국적이 지금처럼 자랑스러운 때가 없었다.” 재일 한국인이면서 일본의 대표 지성으로 꼽히는 강상중(67)은 이렇게 말했다. 신간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사계절) 번역본 출간을 계기로 서울을 방문해 10월 1일 월간중앙과 한 인터뷰에서다. 그는 “이 정도로 성숙한 민주주의를 스스로의 힘으로 일군 국가는 아시아에선 없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현재의 한국 사회는 위기 상황이다. 강상중이 인터뷰 도중에 자주 쓴 표현은 ‘렉카(劣化, 열등화)’였다. 한국 사회의 수준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지금이 중요한 기로다. 사회 전체를 다시 강하게 만들 수 있을지 여부는 바로 지금 이 시기에 달렸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로 임용됐던 강상중. 일본 이름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를 버리고 강상중으로 일본 사회에서 정면 승부했다. 두 나라 사이의 경계에 선 지식인이자 오피니언 리더로 꼽힌다. 그가 최신작으로 내놓은 책 제목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다.
폐품 수집상의 아들로 태어나 한국 국적자로는 최초로 도쿄대 정교수가 된 재일동포 2세.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라는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일본 사회에서 정면 승부를 택한 인물. 강상중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져 있다. 도쿄대 교수(1996~2013년)를 거쳐 세이가쿠인(聖學院)대 학장(2013~2015년)을 지낸 뒤 현재는 도쿄대 명예교수와 고향인 구마모토(熊本)현의 현립극장관장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NHK·아사히(朝日)신문 등 각종 매체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회비평가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피를 물려받았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스스로를 두 나라 사이의 경계인으로 본다. 일본어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을 말할 때는 또박또박 “우리나라”라고 했고, 인터뷰 직후에 열린 강연에서는 서툰 한국어로 “반(半) 쪽바리입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한마디로 ‘당신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고, 나의 불행이 당신의 행복인 사회’가 됐다. 사회라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지탱해주는 장소여야 하는데, 그 반대로 간다. 이런 사회는 틀림없이 ‘렉카(열등화)’되고 있다고 본다. 격차사회가 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어느 정도의 학력과 재력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출신지가 서울인지 지방인지, 서울에서도 강북인지 강남인지로 커리어와 인생이 결정돼버린다. 사회 구성원 간의 연대감도 없어지고 있다. 이런 사회는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2012년에 펴낸 <살아야 하는 이유>에서도 한국 사회가 격차로 인한 분노,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과거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썼는데, 그때와 비교한다면?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고 느낀다. 사회가 열등화되면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개인이 희생되더라도 사회 전체를 위한 것이라면 괜찮다는 인식이다. 이게 심해지면 파시즘이 된다. 개인을 희생하고라도 사회를 지켜내야 한다는 전체주의 말이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다른 게 있다. 사회의 열등화 현상이 사건으로 구체화되고 모두의 눈앞에 비극으로 펼쳐졌다.”

세월호 사건 말인가?

“그렇다. 세월호라는 거대한 ‘마이너스 이벤트’, 즉 비극이 매체를 통해 생중계됐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국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자각했다. 한국이 그간 경제협력기구(OECD)에도 가입하고, 경제 발전의 우등생이라고 자부하며 달려왔는데 한 꺼풀 벗겨 보니 아이들 생명도 구해줄 수 없는 나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생명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보면서 이 사회가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달려왔을까?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것일까? 이게 가장 큰 쇼크로 다가왔다.”

아들 자살, 동일본 대지진의 비극에서 배우다


▎강상중은 ‘비극의 힘’을 역설한다. 그 자신도 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그 몇 달 후 다시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다음 그는 책 <살아야 하는 이유>를 펴냈다.
한국인은 그 쇼크를 어떻게 극복했다고 보나?

“사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재건의 방향으로 갔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한국인은 세월호라는 비극을 겪으며 이제 우리 안의 ‘기즈나(絆)’, 즉 연대감을 다시 재건해야 하겠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그런 인식이 행동으로 구체화된 것이 촛불집회라고 본다. 그 후 평화적으로 이뤄진 정권교체 과정은 세계사적으로도 평가받아야 할 전개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내 (한국) 국적이 지금처럼 자랑스러운 때는 없었다. 어느 문인의 말처럼 비극은 희극보다 위대하다. 비극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못 보던 것을 직시하게 된다.”

하지만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로 대변되는 세대 간의 갈등 같은 많은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다.

“사회 기저에 깔린 문제를 집약해 보여준 것이 세월호 사건이고, 그 흐름에서 변화를 열망하는 바람이 불어 정권교체도 됐지만 이 바람의 종착지가 어디일지는 아직 모른다. 만에 하나 (촛불을 일으킨) 힘이 극단적으로 표출이 되거나, 혹시라도 더 나쁜 방향으로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지금 상당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앞으로의 5년이 중요하다. 열등화된 사회를 다시 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세월호로 비롯된 에너지가 어떻게 귀결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세대 간 갈등이 심하다고 해서 그 갈등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사회 균열이 더 심해질 뿐이다. 우리나라의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굳어진 방식들을 총체적으로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은 그런 사회적 기반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강상중이 ‘비극의 힘’을 강조한 데는 배경이 있다. 그 자신도 비극의 힘에 압도당한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20대 아들이 돌연 자살한 무렵 얘기다. 우울증을 앓던 아들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것, 언제까지고 건강하기를. 안녕”이라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인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다. 재난 현장을 직접 찾은 강상중은 “이런 비참함을 겪고도, 그래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라고 되뇌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다. 몇 개월간의 고뇌 끝에 강상중이 떠올린 건 빅터 프랭클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생활을 견뎌낸 프랭클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려네”라는 문구가 와 닿았다고 한다. 그 문구를 버팀목으로 쓴 책이 <살아야 하는 이유>다.

아들 일로 겪은 개인적인 비극은 어떻게 극복했나?

“극복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순한 극복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식의 모습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비극을 겪기 전의 나의 모습에서 탈각(脫却)하는 과정 말이다. 그 과정에선 겸허한 자세로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다. 세월호 비극을 겪은 한국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빨리빨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두려운 것은 몇 년 뒤 우리가 겪은 이 비극이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잊혀지는 것이다.”

강상중의 지금 고민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시대 고민을 책으로 담아온 강상중이 최근 펴낸 신작의 제목은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다.
강상중은 달변가일 뿐 아니라 달필가이기도 하다. 그의 전공 분야인 정치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 많은 글을 썼다. 때론 소설도 쓴다. 그의 책은 그가 현재 하고 있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고민하는 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같은 책 제목에서도 그런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런 그가 내놓은 신작이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어 원제는 <역경으로부터의 일 철학>인데, 강상중 본인은 한국어 번역 제목이 마음에 든다고 한다.

일본어 원제와 한국어 번역 제목이 한·일 양국 상황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일본의 실업률과 경제 상황은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유명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필설로 다할 수 없을 정도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취직을 하고 난 뒤엔 과로사할 정도로 더 힘든 현실이 닥친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나를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런 걸 고민했다. 나도 젊은 시절, 재일 한국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일반 기업에 취직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용기를 내 소니사에 지원서를 넣었는데, 떨어졌다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을 정도로 무시당했다. 얼마 전 소니 본사에서 강연 요청이 와 임원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소니에서 떨어진 강상중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땐 너무나 힘들었다. 그나마 당시 일본의 대학 졸업자는 전체 인구의 4분의 1 정도였는데 한국은 지금 절반 이상이 대학 졸업자라고 들었다. 취업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힘든 상황이고, 막상 들어가도 혹사를 당한다. 이런 상황이니 한국 독자들에겐 ‘나’를 망가뜨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의 의미가 더 다가올 것 같다.”

책에서 ‘나다움을 찾는 것’을 강조했는데.

“현대 경쟁사회에서 출세의 사다리를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가 피폐해지는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 진정한 나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진정한 나를 찾겠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우다 더 지쳐버리는 게 현대인이 아닌가 싶다. 한국과 같은 학력 중심 사회에선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 사이의 간극이 크다. 내가 취업이 안 돼 유학을 갔던 독일에선 케이크를 굽는 기술자가 돼도 주변의 존경을 받으며 살 수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삼성에 들어가 높은 월급을 받아야만 인정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나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건 중요하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선택지가 굉장히 협소하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진정한 ‘나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자연스러운 과정이 중요하다. 무리해서 나를 찾겠다고 덤비면 오히려 내가 누군지 모르게 된다. ‘자아 찾기의 딜레마’라고 할까. 나를 찾겠다는 데 혈안이 돼 내 안으로만 침잠하면 오히려 나만의 색깔을 찾기 어렵다. 나의 색깔은 역설적으로 남을 통해 알 수 있다. 남들과의 만남을 통해, 세상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를 알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보자’ ‘한번 만나보자’는 열린 태도로 산다면 예전에는 몰랐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연스러운,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한 가지 일에 전부를 쏟아 붓지 않는 것, 스스로를 궁지로 내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앨프레드 테니슨(1809~1892)이 쓴 시구처럼 ‘나는 내가 만나온 것들의 일부(I am part of all that I have met)’일 뿐이다.”

- 글 전수진 월간중앙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1711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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