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동북아 정세] 미·중 북핵 문제 해결 밀약 있다? 

“말 안 통하는 북한 ... 중국, 힘으로 제압할 수도”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미국에 내년 여름까지 북한 공격 자제 시킨 뒤 중국이 직접 해결 모색 … 시진핑이 전쟁을 하게 되는 조건 갖춘 나라가 ‘북한’이라는 관측 나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월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의장대 사열을 받고 있다
‘시진핑의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

10월 18일부터 24일까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이하 전당대회)는 당 규약에 이런 문구를 추가하며 막을 내렸다. 당 규약에 개인 이름이 명기되는 것은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의 ‘마오 사상’과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인 덩샤오핑의 ‘덩샤오핑 이론’ 이후 처음이다.

전당대회 첫날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위대한 사회주의 강국’을 주제로 3시간20분짜리 대연설을 했다. 필자는 중국 <중앙텔레비전(CCTV)>의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이 장면을 시청하면서 그가 ‘사회주의’를 139번, ‘위대하다’를 70번이나 연호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 전당대회 종료 다음날인 25일 열린 제19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는 시진핑 주석의 뜻에 따라 당 상무위원(톱7) 및 당 중앙정치국원(톱25)을 선출했다.

이번 전당대회는 한마디로 ‘시진핑의, 시진핑에 의한, 시진핑을 위한 대회’였다. 이번 대회를 마친 중국은 명실상부한 ‘시진핑 초(超)일강 시대’를 맞이해 중국 전역에서 시진핑 주석에 대한 개인숭배 운동이 시작됐다. 북한 옆에 또 하나의 ‘거대한 북한’이 출현한 것 같은 모양새다.

전당대회가 열린 인민대회당에서 북북동으로 4㎞ 정도 떨어진 중국 외교부 근처에는 ‘쿤타이(昆泰)’라는 쇼핑몰이 있다. 이 오래된 쇼핑몰은 베이징 소재 북한 대사관의 북쪽에 위치한다. 중국에 북한은 과거 소련에 이어 ‘피를 나눈 형제’였던 만큼, 북한은 남북 250m, 동서 150m에 이르는 광대한 부지의 대사관을 가지고 있다. 본관과 영사부 건물 사이에는 북한풍 연못을 배치한 정원까지 있다. 대사관 주인은 장장 7년에 걸쳐서 대사를 지내고 있는 지재룡(75) 주중 북한대사다.

쿤타이 쇼핑몰 내에 북·중 우호의 상징과도 같았던 ‘해당화’라는 북한 음식점이 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본격적으로 외교를 시작한 2000년, 전 조선 인민군 간부인 유재관이 연 중국 최초의 북한 식당이 해당화다. 주방장은 평양 양대 호텔인 고려호텔과 양각도호텔에서 파견하고, 손님 접대와 음악을 연주하는 여성 접대원은 평양산업대나 평양음악대 등에서 파견하고 있다. 파견 기간은 3년이며, 전 종업원은 해당화 뒤편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에서 거주한다. 해당화는 금세기 들어 인기가 높아져 베이징 시내에 4개의 점포를 뒀다. 또 해당화의 성공으로 중국 각 도시에 약 100곳에 이르는 북한 식당이 속속 들어서기도 했다.

해당화는 레스토랑인 동시에 중국 내 북한의 국위 선양을 담당하는 장소였다. 필자는 베이징에 살던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 레스토랑을 찾았다. 이유는 전적으로 식사를 함께하는 중국인들이 좋아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에서 걸어서 올 수 있으며, 종업원은 중국어를 하지 못하는 북한인들이라 대화 내용이 누설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해당화의 이국적인 분위기도 중국인들을 매료시켰다. 한복을 입은 북한 미녀들이 다른 곳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장군님 찬가’등을 연주한다, 손님들이 휴대전화 번호를 물으면, 그녀들은 수줍은 듯 “그런 자본주의의 산물은 없어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북·중 관계의 시금석 ‘해당화’ 식당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을 주도한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는 북한 군중. / 사진·연합뉴스
11월 초 이 북·중 우호의 상징과도 같았던 해당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문을 열고 “어서 오시라요!”라며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아들였다. 메뉴도 그대로였고 폐점 시간도 예전과 같은 밤 9시30분이다. 베이징에 주재하고 있는 서방 측 북한 전문가들은 이 가게가 폐업하면 70년 가까이 계속돼온 북·중 관계가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 때라고 보고 있다.

11월 8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다. 베이징 전체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전임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2009년 11월, 나는 당시 베이징에 있었지만 이번 같은 긴장감은 느낄 수 없었다. 중국의 외교 관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오바마 대통령 때는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등이 앞서 방중해 정상회담의 사전 협의를 세밀하게 진행했다. 반면 이번에는 미국 국무부 직원들도 “대통령이 무슨 말을 꺼낼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는 시진핑·트럼프 회담이 잘된다면 전례 없는 대성공을 거두겠지만, 잘못될 경우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는 말이다. 우리 실무자들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가슴이 조마조마한 회담은 없었다.”

같은 말을 도쿄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가을의 교토는 더없이 아름답다고 하던데’라는 말을 흘렸다. 그러자 그 한마디가 도쿄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전달되면서 ‘어쩌면 대통령은 방일 중에 교토를 들르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도쿄에서 500㎞나 떨어진 교토까지 부랴부랴 답사를 다녀왔다. 분명 이런 일은 오바마 정권 시절에는 없었던 일이다.”

확실히 이번 일본·한국·중국 순방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에 일본 정부, 한국 정부, 중국 정부는 물론 정작 미국 정부도 놀아난 셈이었다. 특히 중국은 북한에 대해 무슨 얘기가 튀어나올지 몰라 추이텐카이 주미 중국대사가 트럼프 대통령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을 중심으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 측과 꼼꼼히 사전조율을 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미국 관리가 중국에 대고 북한에 관한 뭔가를 발언할 때는 아주 꺼림칙한 일이 일어나곤 했다.

2013년 12월 4일 바이든 미국 부통령은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5시간30분이나 회담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정은은 내가 책임지고 처리할 테니까 앞으로 북한을 어떻게 할지 미국과 중국이 함께 생각하도록 하자.”

당시 시진핑 주석은 바이든 부통령의 발언 취지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애매하게 말을 흐렸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주일여 만에 북한 정권 ‘부동의 넘버 2’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처형되면서 시진핑 주석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흔들리는 ‘북한 번견론’, 한반도 ‘3원칙’


▎지난 4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시진핑 주석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다.
‘깜짝 놀랐다’는 의미는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이 베이징에서 면담했던 ‘친중파 최고실력자’가 무참하게 처형된 것. 둘째로 국교도 없는 미국이 사전에 그 정보를 포착한 것. 그리고 셋째로 ‘북한의 후견국’임을 자부하는 중국이 노마크였던 것이다. 분노에 가득 찬 시진핑 주석은 외교를 관장하는 간부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이때부터 북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임하게 됐다.

중국에서는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기에 외교 문제에 관한 정보도 내정 문제처럼 모두 중남해의 중앙판공청에 모이고, 거기에서 정밀 검증을 거쳐 시진핑 주석에게 보고된다.

이때 정해진 룰이 있다. 외교 문제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외교부의 정보·의견을 우선시하지만, 북한·베트남·라오스 3개국에 대해서만큼은 중국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중연부)의 의견이나 정보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정부 외교보다는 당 외교 쪽이 파이프가 확실하다는 전통에 근거한다. 예를 들면 왕자루이 전 중앙대외연락부장은 김정일을 7차례나 면회한 바 있는 ‘김정일의 중국 파트너’라고 한다.

그 중연부가 내세운 것은 ‘3원칙’이었다.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 대화와 협상에 의한 문제 해결, 그리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다. 그래서 시진핑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관해서 이 ‘3원칙’을 외교 방침의 기둥으로 정했다.

이 3원칙의 배경에 있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북한 병풍론’이다. 즉, 북한은 미군이 북·중 국경인 압록강까지 진입하는 것을 막아주는 병풍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중국의 일부 외교 관계자는 ‘병풍론’의 연장으로 ‘번견론(番犬論)’이라고도 부른다. 이는 북한은 중국 대신 미국에 향해 짖어대는 번견(집 지키는 개)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충분한 지원을 해주면서 길들여 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모두 마오쩌둥 주석이 한국전쟁 때 말한 “입술이 없으면 치아는 춥다”(순망치한)는 말에서 온 견해다. 입술이 북한이고, 치아가 중국이다.

이 ‘북한 병풍론’ 혹은 ‘북한 번견론’에 근거한 3원칙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난해까지는 그런대로 기능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지난해 중국 외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에 한국군을 적대시하고 결과적으로 북한을 옹호한 셈이 됐다.

올해 들어 3원칙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 최대 요인은 올 1월 트럼프 정권 탄생이다.

“미국 역대 정권은 지난 20년 이상 13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낭비했다. 우리 정권은 그런 실수는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정책을 ‘대화’에서 ‘압박’으로 급히 전환하자면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으로 하여금 방향을 틀게 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4월 6일과 7일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주에 있는 별장 마라라고에서 시진핑 주석과 첫 회담을 했다. 트럼프 외교의 최대 특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통이었던 ‘이념 외교’(자유·민주·인권 등의 보편적 이념을 내건 외교)가 아니라 ‘딜 외교‘(비지니스 같은 실리 외교)를 하는 것이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빅딜’을 시진핑 주석에 제안했다.

“중국의 힘으로 북한을 억눌러주길 바란다. 그 대가로 남중국해를 마음대로 해도 무방하다. 오바마 전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작전’을 펼쳤으나, 중국이 북한 문제에 진심으로 임해준다면 우리 정부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 제국주의에 굴복한 중국’에 대한 북한의 앙갚음


▎1978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이듬해 베트남전쟁을 일으켰다. 중국군 포로들을 감시하는 베트남 여성 민병대원.
이 발언은 시진핑 주석에게 빅 뉴스였다. 앞서의 중국 외교 관계자가 말한다.

“이때 정상회담의 3대 테마는 무역 불균형, 북한, 남중국해 문제였다. 중국은 남중국해 문제는 우리나라의 핵심적 이익이므로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무역 불균형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고 지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대의 체면을 세워준다. 그리고 북한 문제는 3원칙을 핑계로 애매하게 회피한다. 즉 ‘남중국해는 ×, 무역 불균형은 ?, 북한은 △’로 정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북한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를 ‘빅딜’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의가 있을 리 없었다. 원래 중국 외교의 우선순위로 미국이 중요한지 북한이 중요한지를 생각해보면 말할 필요도 없이 전자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가을을 앞두고 5년에 한 번 열리는 중국 공산당대회가 시작될 때까지 북·미 전쟁 발발이라는 ‘악몽’을 피하고자 발벗고 나서기로 한 것이다.

이때 중국이 생각한 것은 4월 15일 북한의 105주년 ‘태양절’(고 김일성 주석 생일) 기념 열병식에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해 김정은의 체면을 살려주는 일이었다. 시진핑 주석의 특사로 지목된 인물은 장더장 전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이었다. 공산당 서열 3위(당시)로, 2년 전 조선 노동당 창건 70주년 때 방북한 류윈산 당 상무위원(당시 서열 5위)보다 고위급이었다. 무엇보다 장 위원장은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김일성종합대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으며,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했을 때에는 직접 통역까지 했을 정도의 북한통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북한 측이 이 거물급 특사 파견을 거부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4월 12일 부랴부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해명했다. 그리고 이 일로 북·중 관계는 한층 악화됐다.

5월 14일 시진핑 주석이 “올해 최대의 외교 이벤트”라고 규정한 ‘일대일로 국제회의 포럼’을 베이징에서 개최하는 날 새벽, 북한은 서해 쪽에서 지대지 미사일 ‘화성 12형’을 동북동 방향으로 발사했다. 북한이 발표한 비거리 787㎞는 그대로 방향을 바꾸면 베이징을 강타할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미 제국주의에 굴복한 중국’에 대한 앙갚음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도 “중국은 진심으로 북한을 억제할 생각이 없다”고 판단했고, 5월 24일 미 해군 구축함을 스프래틀리 제도(중국명 난사 군도) 미스치푸 환초(중국명 메이지자오)의 인공섬 12해리 안에서 ‘항행의 자유작전’을 트럼프 정권 최초로 감행했다. 체면을 구긴 중국 국방부는 회견을 통해 “무력을 과시하는 행태에는 단호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그 뒤로도 7월 2일, 8월 10일, 10월 10일에 ‘항행의 자유작전’을 실시했다.

그동안 시진핑 정부는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흔들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중국의 외교 관계자가 계속 설명한다.

“말 그대로 ‘지우제지우제(糾結糾結, 갈팡질팡)’ 상태였다. 6월 30일 중연부가가 주제하는 형식으로 북한 전문가들을 베이징 사범대학으로 초청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가을에 있을 공산당대회까지는 북한이 폭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에 협력하는 쪽으로 압력을 걸어가야 한다’는 식의 결론이라고 할 수 없는 결론을 냈을 뿐 이었다.”

중국 외교 당국자들의 고뇌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시진핑 정부의 특징은 서두에서도 설명했듯이 “모든 것은 시진핑 주석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외교 당국자들은 여러 가지 선택 사항을 중남해에 있는 시진핑 주석의 집무실 테이블에 올려놓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 주석은 문제가 산적한 내정을 우선하기 십상이며, 외교 문제 전문가도 아니기 때문에 북한 대책은 중남해의 테이블 위에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미국과 북한 양측이 날이 갈수록 과격해져 갔고, 중국은 황급히 손을 쓸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년 11월 중간선거 전 외교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


▎10월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장쩌민 전 주석(오른쪽)이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9월이 바로 그랬다. 9월 3일, 북한이 6차 핵 실험(수소폭탄 실험)을 강행했다. 실험 장소인 풍계리에서 국경까지 약 100㎞밖에 떨어지지 않았는데 중국에는 사전통보조차 없었다.

격분한 미국은 ‘북한 조기 폭격’을 준비하는 동시에, 즉각 유엔 안보리에서 사상 최강의 ‘2375호 북한 제재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때 중국이 겨우 할 수 있었던 것은 ‘북·중 수력발전 사업은 제외한다’는 조항을 넣은 것뿐이었다. 제제 결의안은 9월 11일 전격적으로 채택됐다. ‘수력발전 사업’이란 중국에서 북한에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보내는 원유 공급이다. 이를 중단하면 1941년의 일본처럼 북한이 즉각 폭발할 것이라고 중국은 보고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11월 8일부터 트럼프 대통령 방중에 대비, 국경절(10월 1일의 건국 기념일) 직전에 강력한 대북 제제카드 두 장을 내밀었다. 한 장은 9월 22일 상무부가 발부한 ‘제 52호 공고’이다. 내용은 12월 11일부터 북한산 섬유제품 수입 금지, 액화천연가스 등의 대북 수출 금지, 내년의 대북 석유제품 수출을 24만t 이하로 제한하는 것 등이다.

둘째는 9월 28일 상무부가 발표한 ‘제55호 공고’조치였다. 내용은 북한의 기업·개인이 중국 국내외에 설립한 중국과의 합작 기업을 120일 이내에 폐쇄하는 것이다.

이 두 장의 카드는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북한과의 교역을 그만두기로 결단한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10월 공산당대회와 11월 트럼프 대통령 방중에 영향이 없도록 이행 시기는 이 두 행사를 마친 시점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들 조치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가뜩이나 올해 북한은 계속된 가뭄 탓에 가을 수확이 흉작이어서 혹한의 겨울을 넘기기조차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

그런 가운데 9월 중순 베이징 정가에 한 소문이 은밀히 펴져나갔다. 중국과 북한이 하나의 ‘밀약’을 나눴다는 것이다. 그 내용이란 우선 북한은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끝날 때까지 핵·미사일 실험을 삼간다. 그것을 담보로 중국은 미국의 조기 북한 폭격이 없도록 트럼프를 설득한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 소문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즉, 4월의 첫 만남 때와 달리 이번에는 시진핑 집권 측이 트럼프 대통령 측에 ‘빅딜’을 제안한 것이다. 각종 정보를 종합해보면, 먼저 미국은 적어도 내년 여름까지 북한을 공격하는 것을 연기하는 것이다. 왜 내년 여름인가 하면,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해 여름이 인내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중간선거 전까지는 북한을 공격하여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거나 김정은 정권에 핵을 포기시켜 외교 성과를 얻고 싶은 것이다.

그 대신 중국은 북한 문제와 함께 또 다른 미·중 간 현안인 무역 불균형 문제에서 미국 측에 대폭 양보한다. 지난해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미국의 전체 무역 적자의 47%인 3470억 달러에 달했다. 그중 약 40%는 중국에 공장을 둔 미국 기업의 적자이기 때문에, 나머지 60%인 2000억 달러어치를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보증’하겠다는 제안이다. 보증이란 20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해 대미 투자 및 미국 제품 구입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즉 “돈으로 평화를 산다”는 빅딜을 중국 측이 미국에 제의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답은 “OK!”였다.

이렇게 북한과의 ‘교섭권’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은 5년에 한 번 공산당대회를 마치면 같은 사회주의 국가 ‘동지’인 북한·베트남·라오스 등 3개국에 전당대회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공산당 총서기의 ‘특사’를 파견하는 관례가 있다. 2012년에는 리젠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부위원장(국회 부의장)이 특사로 갔지만, 이번에는 아마도 더 고위급 특사가 임명될 것으로 추정된다.

시진핑, 인민해방군 수장 경질한 배경


▎2012년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평양을 방문한 리젠궈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 겸 전국인민대표대회 부위원장과 만나 중국 측이 보낸 선물을 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에 준 ‘협상 시한’은 내년 여름까지다. 중국은 협상의 첫걸음으로서 북한에 3명의 미국인 인질을 석방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약 1년6개월 동안 북한에 억류됐다가 지난 6월 풀려난 미국인 학생 오토 웜비어는 귀국 직후 사망했다. 그 뒤 북한은 8월에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를 석방했으나, 나머지 3명의 미국인은 석방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향후 북·중 협상에서 북한이 중국에 강경하게 나올 경우엔 어떻게 될까? 그것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올 8월 15일 중국을 방문한 조지프 던포드 미 합참의장은 중국 국방부의 총본산인 8·1청사(八一大樓)에서 오후 늦게까지 중국 인민해방군의 팡펑후이 총참모장과 북한 문제를 놓고 깊게 논의했다.

팡 총참모장은 앞서의 ‘3원칙’이나 ‘북한 병풍론’을 지지하는 군부 내 온건파다. 그래서 트럼프 정부의 대북 공격 자체에 반대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군 통수권자)을 겸직하는 시진핑은 이 회담 직후 팡 총참모장을 전격 해임했다. 후임으로 임명된 인물은 리쭤청 육군사령원(상장)이었다.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에서 수많은 베트콩을 죽이고 수훈을 세워 ‘베트남의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전투 영웅 훈장’을 받은 군의 최강 강경파다. 리 총참모장은 취임 이후 시진핑 주석과 함께 “군인에게는 전쟁 중과 전쟁 준비 중의 두 가지 상태밖에 없다!”고 200만 인민해방군에게 일갈했다.

모두(冒頭)에서 언급했듯이 이번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헌법’인 당 규약을 개정하여 ‘시진핑의 강군 사상의 관철’을 명기했다. 시진핑 주석이 구체적인 군사행동을 고려하고 있는지, 혹은 일반론을 펴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전자의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1949년 권력을 장악한 마오쩌둥은 이듬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마찬가지로 1978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이듬해 베트남전쟁을 일으켰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내년 중국은 대단히 위험하다. 중국 외교 관계자에 따르면 ‘시진핑의 중국’이 전쟁을 하게 되는 대상은 다음의 5조건을 충족하는 국가 혹은 지역이라고 한다.

①중국 인근에 있고 ②미군이 상대편으로 가세하지 않고 ③중국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④중국 국민의 혐오감이 강하고 ⑤전쟁 명분이 서는 나라다.

이 5조건을 충족하는 국가 혹은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일찍이 한국전쟁에서 외치던 ‘항미원조(抗美援朝)’ 구호가 ‘항조원미(抗朝援美)’로 바뀔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즉 ‘미·중 vs 북한’이라는 구도다. 중국으로서는 그렇게 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 의견에 따르도록 북한을 설득해나갈 것이다. 핵·미사일 강국이냐, 경제 발전이냐를 김정은 위원장이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원

201712호 (2017.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