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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국채보상운동기록물 유네스코 등재한 대구시 권영진 시장 

“감성과 창의가 우리 시의 랜드마크”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공정식 객원기자
대구는 근대 문화·예술 발상지… 도시에 예술과 문학의 옷을 입힌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자유한국당 출당은 가슴 아픈 고육지책(苦肉之策)


▎권영진 대구시장은 “2014년 취임 후 대구 경제 체질을 개선·강화하는 데 몰입했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지난 10월 말 대구시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키로 결정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일본에 진 나랏빚을 갚고자 전 국민이 참여한 경제주권 회복운동이다. 이 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시민운동으로도 평가된다. 대구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였으며, 국회 토론회를 비롯해 서울·부산·광주 등을 돌며 전국 순회 기록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현재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세계기록유산은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을 비롯한 총 16건이다. 유네스코 등재 결정 직후인 11월 6일 대구시청에서 월간중앙과 만난 권영진 대구시장은 “전 세계인들과 국채보상운동 정신을 함께 공유해 ‘글로벌 문화도시 대구’ 브랜드를 드높이는데 역량을 모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국채보상운동이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에 대응해 나랏빚을 갚으려는 국권수호운동이라 점을 유네스코가 높이 평가한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을 기점으로 중국·멕시코·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도 유사한 외채상환운동이 일어났다는 점도 참작됐으리라는 판단이다. 국가적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기부문화운동이자 여성·학생운동, 언론 캠페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높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전 국민이 참여한 ‘나라 살리기 금 모으기 운동’으로 승화돼 경제난 조기 극복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 사업은 어떤 맥락에서 추진됐나?

“대구는 역사·문화적으로 굉장히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도시다. 3년 전 취임 이래 자랑스러운 대구 현창(顯彰, 밝게 나타냄)사업이라고 4개 과제를 추진했다. 첫째가 국채보상운동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고, 둘째는 2·28민주화운동 국가기념일 지정이다. 독립운동의 성지인 대구 신암선열공원을 국립묘역화하는 사업이 셋째이고, 대구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인정받는 것으로 방점을 찍는다. 시민들이 서명운동을 해주시는 등 역량을 모아준 덕분에 3개 과제는 상당한 진전을 봤다. 대구시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온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결실을 봤다. 또 11월 1일 새벽엔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UNESCO Creative Cities Network)’ 대구시의 가입이 결정됐다. 신암선열공원 국립묘역화도 완성됐다. 나머지 하나가 대구 2·28민주화운동의 국가기념일 지정인데 지난 9월 국회 본회의에서 지정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고, 이제 국무회의 의결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근대 골목’과 ‘김광석 거리’는 감성과 창의의 결실


▎8월 31일 국내 최대 산업용 로봇 생산 기업인 현대로보틱스 대구 본사 출범식에 참석한 권영진 대구시장(앞줄 왼쪽에서 셋째).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의 원동력은 뭔가?

“대구는 근대 문화·예술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외신에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이 들리는 도시’로 묘사될 정도로 음악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은 도시로 유명했다. 전란의 와중에도 예술가와 음악가의 쉼터 역할을 한 곳이 대구다. 그 근대 문화·예술의 발자취가 대구 도심 곳곳을 수놓는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예술과 문학의 옷을 입히고 스토리텔링화함으로써 감성과 창의는 대구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이런 유산을 담은 대구 ‘근대 골목’, 가수 김광석을 추억할 수 있는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 등은 대구의 정서적 숨결을 뿜어낸다. 이같이 뛰어난 창의성을 바탕으로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도시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창의도시 네트워크에 가입했다고 자부한다.”

대구시 현창사업의 성과가 지역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대구 시민들이 역사와 문화에 자긍심을 갖게 되고 미래로 도약하는 에너지가 된다고 본다. 또 이를 통해 대구 브랜드를 세계에 알림으로써 대구의 산업 기반 확충과 관광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취임한 지 3년이 됐다. 역점을 둔 기간산업의 현주소를 짚어달라.

“1990년대까지는 대구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는 도시였다. 이후 섬유산업이 급격히 쇠퇴하고 새 산업은 기반을 갖추지 못해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환경은 열악했다. 경제가 침체하면서 일자리도 달려 청년들이 떠나는 도시로 내몰렸다. 취임 후 대구 경제의 체질을 친환경 첨단산업도시로 바꾸고 미래 산업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대구가 잠재력을 가진 미래형 자동차 산업, 물산업, 의료산업, 로봇산업, 사물인터넷(IoT)산업 등을 미래형 산업으로 규정했다. 투자를 강화하고 기업을 유치하는 노력을 기울여 대한민국 4차산업의 중심은 대구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자부한다.”

괄목할 만한 변화를 이뤘나?

“르노그룹이 아시아·태평양지역 최초로 투자를 결정한 차량 시험센터가 내년 3월 개장을 앞두고 있다. 르노그룹 차량시험센터가 들어서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르노그룹의 차량시험은 물론 지역 협력업체들이 이용할 수 있어 시험장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DIC, 대창모터스 같은 기업들이 대구에서 전기자동차를 생산해낼 것이다. 로봇과 IoT분야의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다. 로봇산업진흥원이 대구에 자리해 있고 세계적 로봇 기업인 일본 야스카와 전기, 독일 쿠카로보틱스가 대구에 진출한 것도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하겠다. 지난 8월엔 국내 최고의 로봇기업이자 산업용 로봇 생산 세계 7위의 위상을 자랑하는 현대로보틱스가 본사를 대구로 이주해왔다. 대기업 하나 없던 도시 대구가 대기업 도시로 발돋움하는 신호탄으로 손색이 없다. 내년 3월 준공을 앞둔 국가물산업클러스터는 롯데케미칼 등 20개 물산업 관련 기업을 품게 된다.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에도 120개 기업과 15개 국책연구기관이 입주하는 등 대구의 의료산업 입지를 다질 전망이다.”

“대구공항 2020년에 이용객 1000만 명 시대 열 것”


▎지난해 2월 제56주년 2·2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대구 두류공원 2·28학생의거기념탑 앞에서 권영진 대구시장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구공항 이용객도 늘었다고 들었다.

“대구는 분지도시다. 밖으로 열린 도시로 가고자 하늘길을 개척했다. 그 첫 작업이 대구국제공항 활성화다. 지난 3년간 대구국제공항은 양과 질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국제노선은 3편에서 15편으로 증가했고 이용객도 100만 명 선에서 올해 350만 명을 돌파할 전망이다. 외국인 이용객도 숙박 기준 2배 이상 늘었다.”

지방공항이 전반적으로 침체와 부진의 늪에 빠진 게 한국의 현실이다. 비결이라도 있나?

“공항의 활성화는 정책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활주로만 닦아 놓는다고 승객이 몰리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새 노선 유치를 위해 현지에서 집요한 마케팅을 펼쳤다. 베트남, 태국을 찾아 유치 협약을 맺고, 관광을 홍보하는 행사를 개최하는 등 기본수요 창출에 전력을 쏟았다. 그 결과 일본 노선 5편을 증설하고, 태국, 홍콩, 베트남에 이어 올 들어서는 방콕 노선을 추가했다. 또 대구국제공항에 취항하는 국내 항공사에게는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그 결과 국제선 여객은 전국 최고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올 4월부터 제주공항의 국제선 실적을 추월하면서 인천-김해-김포에 이은 4위의 국제공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0년 외국 이용객 200만 명, 내국인 이용객 800만 명 등 1000만 관광시대를 연다는 포부를 다지고 있다.”

비즈니스 방문객도 증가했나?

“취임 후 3년간 152개 기업과 2조원 가까운 투자를 유치했다. 내년 문을 여는 참단의료복합단지, 수상알파시티를 중심으로 기업과 제조라인이 포진할 것이다. 대구시는 기업 친화적인 환경 조성 차원에서 원스톱기업지원과를 두고 인·허가에서부터 공장 신설, 가동, 증설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지원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제품의 구매와 판로 개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외부의 기업들이 대구를 찾는 주된 요인이다. 나아가 대구는 노사 평화 도시이자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양성 시스템도 잘 갖춰진 매력적인 개방 도시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전남 여수에서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와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 등에서 지방분권형 개헌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강력한 지방분권 공화국’을 국정목표로 삼겠다고도 했다. 현장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면서 어떤 느낌을 가졌나?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의지의 실천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헌법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지방 분권이나 기본권보다 권력구조 개편에 집중하고 있어 합의가 가능할까 굉장히 우려되는 게 사실이다. 제 생각에는 합의가 되는 분야에 한해서라도 개헌을 했으면 한다. 지방분권은 대한민국이 통일 한국으로 가자면 반드시 반영해야 할 시대정신이다. 1차적으로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지방 분권은 꼭 개헌이나 법률을 바꿔야만 가능한가?

“분권에도 종류가 많다. 재정 분권도 있고, 조직과 인사와 관련된 분권도 있다. 입법권에 대한 분권도 물론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재정권은 법률 개정만으로 가능하고 자치 조직과 인사권은 법률 개정이 아니라 대통령이 결심하면 대통령령만 바꿔도 분권을 실현할 수 있다. 개헌은 개헌대로 추진하되 대통령령으로 가능한 것과 법령 개정으로 가능한 것은 그것대로 실천해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정부가 12월 말까지 분권 로드맵을 만든다고 한다. 분권 문제는 중앙부처에 일임할 게 아니라 문 대통령이 일정과 내용을 직접 챙겼으면 좋겠다. 거기에 정말 실천적인 분권 개혁의 내용과 일정이 반드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비민주성 극복하지 않으면 보수 되살리기 어려워”


11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에서 출당됐다. 20년 간 보수당의 간판이던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 볼 때 보수를 재건하고 보수당을 튼튼히 해야 한다. 정말 가슴 아프지만 고육지책(苦肉之策)이라고 본다.”

기성정당 밖에서 박 전 대통령을 앞세우는 이들이 대구·경북에서 표를 얻어 정치적 입지를 도모할 가능성은?

“과거에 매달려서 정치적 이득을 보거나 정치 수명을 연장하려는 이들은 더 이상 시대가 용납하지 않으리라 본다. 이제는 미래로 가는 열차에 보수 정치인 모두가 함께 동승해야 때다. 대구·경북이라고 해서 이런 시대정신, 시대 흐름과 동떨어져 따로 가는 지역이 아니다. 지난 대선 결과를 갖고 대구·경북을 이상한 고장으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구·경북만큼 각 정당이 골고루 지지를 받은 지역은 없다. 자유한국당의 지지도가 높은 건 사실이지만 정치적 다양성이 선거를 통해 표출된 곳이 대구·경북이다. 대구·경북도 이미 다양성과 변화와 혁신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예외 없이 함께하고 있다. 이런 시민 정서를 미래로 나아가는 에너지로 삼기는커녕 과거로 돌려 개인의 정치적 영달을 꾀하는 정치 세력은 대구·경북에서도 동의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권 시장은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박 전 대통령을 내보낸 자유한국당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오만했다. 권위주의 문화에 젖어 새 시대, 새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소홀했다. 우리는 분열했다. 그 위에 총선 패배, 대통령 탄핵, 국정농단 세력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이 역사 앞에서 겸허하고 철저하게 반성하고 우리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대한민국의 보수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의 오만, 비민주적인 당 운영, 국정운영, 그리고 분열을 청산하는 작업이 바로 혁신이다.”

혁신의 방향 더 세부적으로 설명한다면.

“혁신은 진정성을 갖고 국민의 삶에 관한 문제를 챙기는 정당의 모습을 갖추는 일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막지 못한 것도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정운영과 당내 문화 때문이다. 역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순실 문제가 제기됐을 때 청와대 오더를 받은 국회의원들이 바람막이 역할을 하다가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상황으로 사태를 키웠지 않나. 이런 비민주성을 극복하지 않으면 보수는 되살아나기 어렵다. 당내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당내 문화를 민주적으로 바꿔나가는 게 혁신의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 사진 공정식 객원기자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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