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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벅시 사건’ 통해 돌아본 비뚤어진 애견 문화 

반려견 혐오보다 올바른 견주 교육이 우선 

한경심 자유기고가 icecreamhan@empal.com
“반려동물 관련법 너무 무거워 현실적으로 바꿔야… 넘쳐나는 미움과 혐오에 개 혐오까지 더해져선 안 돼”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인 최시원 씨 집의 개가 이웃 주민을 문 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다. 잘못된 반려동물 관리에 대한 비난과 함께 최씨 가족과 유족양쪽에 온갖 인신공격과 억측이 난무했다. 그 사건은 그동안 무지하거나 무례하게 반려견을 키워온 보호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고, 성숙한 반려동물 문화를 가꾸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반려견은 인간과 행복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공존할 수 있는 대상이다. 반려견의 공격 성향은 견종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체의 성향이므로 견주가 제대로 교육받아야 사고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지난 몇 주 우리 사회는 연예인 최시원 씨 가족이 키우는 반려견 ‘벅시’(프렌치불도그)를 둘러싼 논란으로 떠들썩했다. 개에 물린 후 예기치 않게 사람이 죽은 사실도 충격적이지만, 이 사건은 개에 물린 여느 사고와는 사뭇 달랐고 이후 파장도 매우 컸다. 벅시에게 물린 피해자 김씨(53·한식당 한일관 대표)가 사망한 10월 6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에서 한 살배기 아이가 집에서 키우던 진돗개에게 목 부위를 물려 나흘 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개에 물려 죽은 전형적인 사건이었다. 뒤늦게 벅시 사건이 보도되기 전인 10월 10일 이 사건이 발표됐을 때 아마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무섭고 놀랍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지난 7월엔 나이든 할머니가 풍산개에게 물려 죽은 일이 있었고, 두 해 전엔 두 살짜리 아이가 맹견인 핏불테리어에게 물려 죽은 일도 있었다. 진돗개나 풍산개, 핏불테리어 같이 무서운 개에게 노약자나 어린아이가 물려 죽은 것은 끔찍하고 슬픈 소식이었지만 이 사건처럼 이슈가 되지 않았다.

작은 개에 물려도 순식간에 죽을 수 있다는 공포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귀농해 농사짓는 노 부부. 너른 마당을 갖게 된 이 부부에게 두 마리의 진돗개는 더 없이 소중한 여생의 반려자다.
그런데 벅시는 애완견인 프렌치불도그에 속하는 개로 몸집은 옹골차지만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개다. 이미 언론에 영상이 공개된 것과 같이 9월 30일 최씨 집의 현관문이 열린 사이 집을 빠져나온 벅시는 마침 열린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타고 있던 김씨의 정강이를 물었다. 당시 엘리베이터에는 김씨와 아들이 타고 있었고, 김씨의 형부는 이들을 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지에 피가 묻어 집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김씨는 당일 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일상생활을 하며 10월 2일 한 차례 더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사흘 뒤인 10월 5일 몸살 기운으로 조퇴해야 했고 이튿 날 숨 쉬기 힘들 만큼 많이 아파 오전 8시 응급실을 찾았지만 검사를 받다가 각혈하며 의식을 잃어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오후에 사망했다. 원인은 세균 감염에 의한 패혈증이었다.

이 사건이 개에 물린 여느 사건보다 일반인에게 충격적으로 와 닿는 것은 작은 개에 물려도 (그것이 직접 사인이든 아니든 간에) 이렇게 순식간에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물린 당시 피해자도 가해자도 이런 결과를 예상이나 했을까. 더구나 김씨는 의사인 형부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제대로 된 처치와 약 처방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파국적인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인 김씨의 형부조차 사망 후 나흘 뒤에 나온 소견서에서 녹농균이 원인이라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급속도로 악화되는 병세에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닌지 의심했다고 한다.

물론 최씨 측 역시 김씨의 죽음을 짐작하지도 못했다. 김씨가 사망한 날 짐을 가지러 온 유족과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최씨의 여동생은 김씨 아들에게 “어머니는 괜찮으시냐”고 물었고 “오늘 돌아가셨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문상도 갔고, 드라마 촬영 중이었던 최시원 씨는 나중에 따로 집을 찾아와 사과했다고 김씨의 형부가 밝혔다.

여기까지가 벅시로 인한 사건의 전모이지만, 이 사건은 약 열흘 뒤 뒤늦게 보도되면서 큰 파장을 불러왔다. 마침 벅시가 연예인 최시원 씨 가족이 키우는 개였고, 물린 피해자가 유명한 음식점 대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는데 김씨 사망 소식을 알기 전 최씨의 여동생이 SNS에 벅시의 생일잔치 사진을 올리고 평소에도 벅시가 목줄 없이 다녔다는 것, 사람을 문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낱낱이 밝혀져 비난을 사게 됐다.

이 놀라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충격과 함께 피해자 가족이 “용서한다”고 한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라면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정말이지 보기 드문 숭고한 마음 아닌가. 그런데 곧 개의 생일잔치를 비롯한 목줄도 채우지 않은 벅시의 과거 사진이 올라오면서 비난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최씨 부친이 사과문을 올리면서 직접 사인이 2차 감염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가자 논란은 더욱 커졌다. 아마 따가운 비난 때문에 썼을 사과문일 텐데 결과적으로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고 말았다. 그런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법정에서나 할 일이지, 어찌 됐건 벅시가 문 것이 발단이 돼 죽음에 이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한동안 김씨의 혈액에서 검출된 녹농균이 병원에서 감염된 것인가, 개에게서 옮은 것인가 하는 문제로 여러 보도가 나오고 의사들의 소견이 나왔지만, 그리고 최씨 측에서는 벅시의 입에는 녹농균이 없다는 진단서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부검과 철저한 감염 경로 추적이 이뤄지지 않은 이상 정확한 감염 출처를 알 수 없게 됐다. 최씨 측은 강남구에서 광견병 예방접종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벅시의 이빨과 혈액, 피부 등에서 채취한 시료와 미생물 배양 결과까지 같이 보냈다고 한다. 비록 녹농균이 어디에서 왔는지 정확히 확인할 순 없어도 벅시가 문 것이 계기가 돼 감염됐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김 씨의 형부는 사고 당시 개의 입속에서 채취한 것이 아니라면 녹농균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며 깊이 물린 상처로 인한 감염이 맞다고 주장했다.

최씨 측에 비난이 쏟아졌다면, 유족 측은 억측과 오해, 갖가지 소문으로 시달려야 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용서하느냐, 고인이 암이나 다른 지병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 심지어 유산 문제를 암시하는 듯한 언급도 있었다.

최시원 씨 가족과 유족 사이가 용서로 마무리됐는지, 아니면 대립과 갈등이 깊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근 김씨의 아들은 자신은 성인군자가 아니라며 ‘사과를 받았던 것이지 용서한 것은 아니다’고 했고, 벅시를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여론에 대해 김씨의 형부는 “당연히 조치가 있어야겠지만 안락사는 최씨 쪽에서 선택할 문제다. 생명을 죽이는 걸 함부로 논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리고 최씨 쪽도 이미 고통을 받고 있고 이해가 된다고도 했다. 현재 최씨 쪽은 벅시를 시골로 보냈고, 유족에게 합의를 제안했다고 한다.

가해자와 유족 양쪽 모두 괴롭힌 비난과 억측


▎목줄을 매지 않은 개는 위험하다. 목줄은 사람도 보호하지만 자동차 오토바이 등 여러 가지 노상 사고로부터 개를 보호한다.
이상의 진행 과정을 보면 비록 불상사가 있었어도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는 두 가족의 상처와 화합에 이르는 과정은 수많은 보도와 비난, 억측으로 점점 일그러져 간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양측이 유명인인 데다 당사자들이 취한 태도와 행위 하나하나 다 까발려지고 각자 의견과 토(대부분 부정적인 비난 일색)를 달다 보니 정작 당사자의 심정은 묻히고 대신 우리 사회의 미움과 증오의 민낯이 드러난 것 같다. 최 씨 가족에 대한 비난은 막말 수준인 경우가 많고, 벅시와 최 씨에 대한 비난은 모든 반려견과 그 보호자들에게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 그동안 빠른 속도로 자리 잡아 가던 애견 문화에 찬물을 끼얹어 개를 키우는 것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을 되살린 셈이지만, 한편으로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의 자세를 점검해보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개를 키우고 있는 나도 앞으로 개를 데리고 나가는 산책길에서 만날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키우는 늑돌이를 평소와 다름없이 목줄을 채우고 길을 가는데도 몇몇 사람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들으란 듯이 ‘최시원’ 운운하며 일행에게 ‘개에게 물릴라, 조심해’라는 말을 했다. 한번은 벤치에 앉는데 같은 벤치도 아니고 옆 벤치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가 질색하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손사래를 쳤다. 마침 늑돌이가 차분하게 내 옆에 앉자 아주머니는 머쓱해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비록 경계의 눈빛은 많아졌지만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늑돌이의 검은 털 때문에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다(사람들은 흰 털을 가진 개보다 검은 털 개를 더 경계한다). 하지만 늑돌이가 큰 개도 아니고 워낙 조용하니 별 탈 없이 산책할 수 있었다.

그즈음 내가 좋아하는 여린 누런빛 털을 가진 큰 개 데니스와 보호자를 만났는데,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렇게 큰 개를 입마개도 하지 않고 다니느냐?”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데니스는 순하디 순한 래브라도로, 그 황갈색 눈동자만 봐도 마음이 녹아버리는데 모르는 사람은 데니스의 큰 덩치에 우선 놀랄 수 있다. 데니스의 보호자는 입마개를 거론할 때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 개는 안 물어요”는 이제 아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사실 이전에도 이 말은 개 주인의 자기 위주와 안일함을 비꼬는 대표적인 말로 꼽혀왔다. 사실 이빨을 가지고 있는 모든 개와 동물(사람까지 포함해)은 항상 물 가능성을 갖고 있다. 태어나 한 번도 사람이든 동물이든 문 적이 없는 늑돌이도 누군가 자기나 나를 해치려고 한다면 물지도 모른다. 또 다른 개가 공격해 오거나 어쩔 수 없이 싸움에 휘말리게 되면 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우리 개는 안 물어요”는 성립될 수 없는 말일지도 모르고, 정확한 뜻은 “우리 개는 아직까지 한 번도 문 적이 없어요”일 것이다. 그럼에도 데니스의 보호자가 할 수 있는 말은 달리 뭐가 있을까?

만약 크게 이슈가 되는 성범죄가 일어나 모든 남자가 잠재적 성범죄자로 취급받는다면 점잖은 한 남자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얼까.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라는 말밖에 더 있을까? 그 말도 따지고 보면 말이 안 될 수 있다.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유전자가 따로 있는가. 평생 착하게 살아온 사람도 어떤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칠 수도 있다. 정당방위라는 것도 있으니까.

큰 개는 무조건 입마개를 해야 한다?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씨는 “입마개는 몸집과 상관없이 공격 성향이 있는 개에게 자발적으로 씌워야 한다”고 말한다.
벅시가 크지도 않았는데 이 사건 이후 사람들은 큰 개는 무조건 입마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개 전문가 강형욱 씨의 말대로 입마개는 몸집과 상관없이 공격 성향이 있는 개, 물 확률이 많은 개에게 보호자가 사람과 개를 동시에 보호하기 위해 알아서 씌우는 것이지 견종이나 몸집, 몸무게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벅시 사례에서 보듯 사실 무는 개는 큰 개보다 작은 개가 더 많다. 그리고 물고 안 물고는 몸집이나 견종에 따른 것이 아니라 개체의 성향이다. 어느 특별한 민족이나 키 큰 사람만 범죄를 저지르는 성향을 타고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물론 맹견인 경우 당연히 입마개를 하도록 돼 있다(어길 시 과태료 50만원). 법적으로 맹견으로 분류되는 종류는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테리어, 스태퍼드셔 불테리어, 로트와일러와 이 개들의 잡종, 그리고 사람에게 상해를 입힐 가능성이 큰 개’로 돼 있다. 또 맹견이 아니어도, 그 개가 아무리 작아도 광견병에 걸린 개에 물리면 어른도 병에 걸릴 수 있다.

목줄만 해도 목줄을 매지 않는 사례는 작은 개일 경우가 많다. 사람들도 작은 개는 목줄이 없어도 크게 위협을 못 느낀다. 쉽게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개가 목줄을 매지 않고 사람이나 다른 개에게 함부로 접근하면 작은 개가 다칠 확률이 더 높다. 사실 목줄은 사람도 보호하지만 자동차와 오토바이, 자전거가 어디서든 나타나는 우리나라의 길에서는 개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매야 한다. 경계심이 강한 개는 예고 없이 나타나 움직이는 물체를 보면 무서워 짖거나 자신이 공격당한다고 생각해 달려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동물보호의 후진국이다. 학대와 지나친 애정공세 모두 동물의 삶을 어렵게 한다.
벅시 사건 이후 경기도에서는 15㎏ 이상인 개에게 의무적으로 입마개를 착용하도록 하고 개 줄도 2m 이내로 제한하도록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방송에서는 개 안전수칙이라며 엘리베이터에 개와 함께 탈 때는 무조건 안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법이나 수칙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작은 개라고 안 무는 것도 아니고, 짧은 목줄은 개에게 압박감만 높일 뿐이라는 것이다. 줄은 사람이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다른 행인이 있으면 줄을 짧게 잡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넉넉하게 잡아줄 수도 있다.

벅시의 경우 현관문 밖을 목줄도 없이 나가도록 방치한 게 잘못이지만, 집 안에서도 개에게 목줄을 채우고 잡고 있을 수는 없다. 이 사건의 경우 현관에 펜스가 없었다는 게 이상하다. 또 엘리베이터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개들은 예민하고 경계심이 높아져 다른 사람이 타면 짖거나 뛰는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럴 경우 개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개의 사회화 정도와 교육에 따라 다르다. 강형욱 씨는 개를 안으면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안긴 개는 몸을 못 움직이고 얼굴만 움직일 수 있는데다 사람 얼굴과 비슷한 높이가 돼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터지면서 개와 개 보호자에 대한 불쾌감과 불만이 쏟아진 것은, 최근 도시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이 크게 늘어난 데 비해 개를 데리고 다닐 때 예절을 잘 지키지 않아 그만큼 사람들이 버릇없는 개와 몰상식한 보호자에게 시달렸다는 뜻이리라. 일반인만 시달린 게 아니라 개 키우는 사람 역시 시달린다. 아니 일반인보다 개 키우는 사람이 오히려 더 많이 시달릴 것이다. 개를 산책시키러 나갈 때면 언제나 다른 개를 만나게 되니까. 나도 사납게 으르렁대는 맹견은 무섭고, 작다는 이유로 목줄도 매지 않은 채 늑돌이에게 마구 달려드는 개도 싫다. 길바닥에 똥을 치우지 않고 내뺀 개 주인도 밉다.

뒷걸음질치는 애견 문화와 ‘개똥’ 갈등


▎주인을 따라 제주도 해변에 놀러 온 반려견의 행복한 모습. 대부분의 개는 예민해서 낯선 사람이 갑자기 손을 대면 짖거나 으르렁댄다.
산과 개울이 있고, 주택이 많은 우리 동네에는 유난히 개가 많고 그동안 개똥 문제로 주민들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도 있었다. 간혹 들리는 온 동네 떠나가라고 짖는 소리도(작을수록 높고 날카로운 소리로 잘 짖는다) 틀림없이 귀에 거슬렸을 것이다. 개에 대한 혐오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곱지 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평소 품어온 불만은 언제나 일촉즉발의 상태였다. 이런 지경이 된 것은 무엇보다 개똥을 잘 치우지 않은 일부 사람 탓이 크다.

마당에 살던 개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새로 생겨난 애견 문화는 나이든 어른이나 개를 집 안에서 키워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낯선 일일 게다. 개를 어떻게 실내에서 키우는 것인지, 왜 매일 데리고 나와 산책을 하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개똥은 왜 잘 치우지 않는지 분통이 터질 것이다. 사실 나도 늑돌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개를 좁은 실내나 마당에 묶어 키우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애견 문화도 유행인지 텔레비전에서 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자주 등장하고,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도 재미와 감동을 느끼며 조금씩 반려동물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넓혀가는 시기에 터진 이 사건으로 앞으로 한동안 애견 문화가 뒷걸음질치게 생겼다. 개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애견 문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개를 키우는 사람 가운데도 예전 시골에서 키우듯 개를 방치하거나 아니면 산책도 하지 않고 묶어두기만 하고 개똥은 왜 치워야 하는지 모르는 어른들도 있다. 이들에게도 역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의 개 사랑은 유별나다. 이곳에서도 자주 개똥을 만나게 된다(사실 우리나라보다 더 많다고 느낀 적이 많다). 물론 외국의 동물 관련법은 꽤 엄격해 개로 인해 상해 사건이나 피해가 발생했을 때 무는 벌금이나 처벌은 우리나라보다 무겁다. 우리나라도 사안에 따라 안락사나 강제수용 등의 조치를 하고 개 주인을 구속한다. 위험한 견종 법률(Dangerous Dog Act, 1991)이 있는 영국은 개 주인이 최대 14년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맹견을 기르려면 총기 사용처럼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영국 우체부가 맹견 핏불테리어에게 물려 죽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영국인의 반응은 “우체부가 개를 도발했던 것 아니냐”였다고 한다. 애견인이 소수 비주류가 아니라 주류가 된 미국에 사는 친구 말에 따르면 개를 금지하는 곳은 오히려 차별을 받아 식당에도 개를 보호할 수 있는 장소를 따로 마련해야 장사가 될 정도라고 한다. 개를 싫어하는 친구는 싫어한다고 표현 대신에 항상 “무서워한다”고 얘기한단다. 독일은 동물을 예뻐할 수 있는 동물카페가 금지돼 있고, 스위스는 동물(을 위한) 변호사도 있다. 선진국의 특징은 동물보호 측면에서도 그만큼 법이 엄격하다는 사실이다.

동물보호 면에서 우리나라는 할 말이 거의 없다. 개 사육장과 유기견 문제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내 개 내 맘대로 하는’ 학대와 애정 공세 역시 동물의 삶을 어렵게 한다. 사람들은 좀 예뻐 보이는 개가 보이면 무작정 먼저 만지려 든다. 사회화가 아주 잘된 극히 드문 개를 빼고 대부분 개는 예민해서 손이 쑥 나오면 예외 없이 짖거나 으르렁댄다. 예쁜 암놈을 키우는 한 친구는 무조건 “우리 개 물어요”라고 말한다고 한다. 한 번도 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몇 주 전, 늑돌이를 데리고 산책 나갔을 때였다. 언제나 다니던 길가 풀포기에 늑돌이가 코를 박고 냄새 맡기에 한창 열중하고 있고 나는 옆에 서서 가만히 기다려주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대뜸 내게 말했다.

“나는 개가 정말 싫어요.”

그 당당한 발언에 나는 당황했지만 친절한 미소를 띠며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시면 돼요”라고 말했다. 그 청년이 개를 무서워하는가 보다 생각한 것이다. 나는 목줄도 잡고 있었고, 늑돌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머리를 풀 속에 처박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아니, 개라는 존재 자체가 싫다고요.”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나는 개가 싫다”


▎요즘엔 반려견을 동반한 해외여행객도 많이 늘었다. 주인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반려견의 귀여운 포즈.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렇게 노골적인 미움이라니! 존재 자체가 싫다는 그토록 잔인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심장은 얼마나 차갑고 딱딱한 것일까. 그 부정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내 안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여전히 평화롭게 풀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늑돌이가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얼마나 많은 개와 개 보호자에게 저런 말을 하며 다녔을까. 그런데 존재 자체가 싫다는 그 무섭고 날카로운 말에 내가 고작 반격이랍시고 한 말은 “이 지구가 사람만의 것은 아닙니다”였다. 그는 이미 나를 지나쳐 간 뒤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아, 당신 말 들으니 그 마음 이해가 되네요. 나도 당신 존재 자체가 싫어지는군요!”라고. 그랬다면 속이 좀 후련했을 텐데. 그리고 그도 조금은 움찔하지 않았을까. 나는 뒤늦게 억울해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하소연까지 했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렇게 말하지 않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다. 미움에 미움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 미움에 물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이 청년이 내게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표현할 수 있는 ‘용기’(정확히 뻔뻔함이라고 말하고 싶다)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최근 일어난 벅시 사건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불행한 사건에 편승해 혐오감을 내보이는 것은 비겁할 뿐만 아니라 평소 열등감이 많은 가련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사람은(나 자신을 포함해) 다양한 대상에 혐오감을 품을 수 있다. 혐오 대상도 저마다 다 다르기에 개나 동물에 호의적인 사람이 피부색이 짙은 사람에겐 가혹할 수도 있다. 사람이 느끼는 혐오감 자체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느낌은 우리가 통제할 사이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니까. 다만 그 혐오감을 상대에게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상대를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마음, 그 마음을 그대로 쏟아내도 ‘나는 안 다치는’ 우위에 있다는 믿음,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교만함, 그리고 쉽게 혐오대상이 되는 약자나 소수자를 찍어 누르는 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보편적이고 오래된 유색인 혐오와 이민족 혐오를 비롯해 다른 지방 출신자, 가난한 사람 또는 부자에 대한 혐오, 여성 혐오, 남성 혐오도 있다. 종류는 아마 끝이 없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얼마쯤은 자기혐오도 틀림없이 경험할 것이다. 혐오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게 있을 수가 있겠나? 혐오는 전염병 같고 유행 같다. 분명한 것은 혐오하던 사람이 다른 나라에 가면 바로 혐오당하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누구나 혐오할 수 있지만 누구나 혐오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다. 누구도 혐오할(혐오를 표현할) 권리는 없고 혐오 받아서는 안 된다고. 지금 말하는 혐오는 단지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우리 사회에는 미움과 혐오의 광풍이 불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벅시 사건에서도 미움과 혐오, 헐뜯기를 숱하게 봤다. 안 그래도 넘쳐나는 미움과 혐오에 개 혐오까지 더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모든 존재는 존재 자체로 완벽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늑돌이를 통해 배웠으니까.

- 한경심 자유기고가 icecreamh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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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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