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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로빈 후드 대통령’ 롤링스 前 가나 대통령 

“아프리카인의 머리와 마음엔 아직도 쇠사슬이 채워져 있습니다” 

이케다 다이사쿠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1981년 정권 잡은 뒤 정계·관계·군부 부패 발본색원…가능성 꽃피우는 교육만이 인간의 기계화 막을 수 있어

▎1997년 12월, 세이쿄신문사에서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과 롤링스 가나공화국 전 대통령이 만나 대화하고 있다. / 사진제공·한국SGI
“아프리카를 배워야 합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오만한 마음은 우호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본에 오신 ‘가나의 로빈후드’ 대통령, 환영합니다!”

환영의 말을 건네자 롤링스 대통령은 “이렇게 만나게 돼 정말 반갑습니다”라고 답했다. 대통령은 트레이드마크인 인간적인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자, 어서 이쪽으로 앉으십시오”라며 자리를 안내했다.

1993년 10월의 어느 가을날, 도쿄에서 만난 젊은 대통령은 마흔여섯 살이었다. 그로부터 12년 전인 1981년에 정권을 잡고 정계와 관계, 군부의 부패를 발본색원했다.

“나는 절대로 부정부패를 용서하지 않는다. 이 나라는 인민의 나라다. 민중의 나라다.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사람들의 나라다. 거센 파도에 맞서는 용감한 어부의 나라다. 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나라다. 짐을 실어 나르는 운전수의 나라다. 민중의 손으로 권력을 되찾아야 한다!”

“극소수 특권계급이 타락해 나라의 미래를 빼앗겼다. 나는 결코 타협하지 않겠다!” 사람들은 ‘정의의 편에 선’ 청년 롤링스의 등장을 ‘포악한 관리들’을 응징한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 로빈후드에 비유했다.

대통령은 아직도 검소를 좌우명으로 삼아, 밤에는 집무실에 야전용 침대를 갖다 놓고 잔다고 한다. 관저에 묵으면서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환경·위생문제를 개선하자고 호소하며 직접 거리로 나가 하수구를 청소한다. 동료들에게도 시킨다. 장화를 신고 삽을 움직인다. 인기를 끌려는 쇼가 아니다. 자신이 직접 모범을 보여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가르친다.

부정을 싫어하고 주변이 말할 수 없이 깨끗해서 ‘권력의 단물’을 빨아 먹고 싶은 사람은 옆에 있을 수 없다. 몇몇 측근도 엄중히 처단됐다고 들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21세기는 아프리카의 세기’라고 주장했다. 지난 300년 동안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빼앗고 속이고 죽이고 파괴했다. 그 상처는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장 고통받은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지지 않는데 어떻게 ‘신세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사람들의 행복 없이 인류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세기’는 없다.

나는 기대를 담아 이렇게 말했다.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초대 대통령은 ‘미래의 영웅은 민중을 노예 취급하는 ‘숨막히는 안개’ 속에서 우리를 ‘빛의 골짜기’로 인도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희망’을 내걸었습니다. 나는 아름다운 이 ‘희망’이 드디어 가나에서 빛나기 시작했다고 믿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아프리카의 세기’ 그 새벽을 보고 싶었다. “우리나라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마음이 절실히 느껴집니다.”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은 식민주의와 싸웠지만 자신은 ‘새로운 식민주의’와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분명 아프리카 사람의 손발을 묶고 있던 쇠사슬은 풀렸습니다. 그러나 머리와 마음에는 아직도 쇠사슬을 차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서 대통령의 깊은 인간주의를 느꼈다.

지금 일본에도 꼭 들어맞는 말이었다. 대통령은 교육에도 ‘인간을 길들이는 교육’과 ‘인간을 해방시키는 교육’이 있다고 했다. ‘위에서 아래로’ 하는 주입식 교육은 인간을 권위에 순종시키는 로봇이나 노예처럼 만들어버리고, ‘안에서 밖으로’ 가능성을 꽃피우는 교육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고 만다고 말이다.

‘인간 공동화’를 멈춰 세우다


▎아프리카 서부에 위치한 가나는 해안지대가 황금해안(Gold Coast)으로 알려지며 유럽 각국의 각축장이 됐고, 1874년 영국의 식민지로 예속됐다. 1957년 가나로 독립했고, 1960년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공화국이 됐다. 수도 아크라의 번화가 모습.
대통령과 4년 뒤에 다시 만났다(1997년 12월). 나나 여사도 함께 만났다. 나리타 공항에서 곧장 나를 만나러 오셨다.

민주음악문화센터에 들러 ‘가나독립 40주년 기념전(展)’을 관람하고 세이쿄(聖敎)신문사로 갔는데 소카(創)대학교의 범(汎)아프리카 우호회 청년 대표들이 노래를 부르며 맞아줬다.

‘대통령 2기’에 들어서도 인간주의의 정열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민중의 힘을 활성화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의 기계화’ ‘인간의 공동화(空洞化)’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 기구를 만들어 그 ‘틀’에 인간을 끼워 넣으려고 합니다. 국민을 국가에 영속시켜버립니다. 국민에게서 힘을 빼앗아버립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국민에게 힘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공’이고 자신들에게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음에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마음에 쇠사슬을 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케다 회장님, 저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단숨에 말했다. 굉장한 기백이었다. 민중이여, 일어서라! 썩어 빠진 ‘낡은 사회’를 뜯어고쳐야 한다!

나는 대통령의 말에 찬동하며 이렇게 말했다.

“창가학회도 일찍이 ‘가난뱅이와 병자의 모임’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가슴을 펴고 당당히 살았습니다. 어떠한 유명인이 되는 것보다도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위해서 죽는 인생이 가장 올바르다고 믿고 지금까지 투쟁했습니다.”

대통령은 원래 공군 조종사였는데 동지와 함께 부패한 군사정권을 무너뜨렸다(1979년). 그러나 권력의 자리에 앉지 않고 즉각 민정으로 이관해 선거로 문민(文民) 대통령을 뽑았다. 그런데 정부는 또다시 잘못된 정치를 펼치고 부패를 일삼았다. 눈엣가시 같은 ‘로빈후드’는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게다가 내전도 끊이지 않았다.

‘이러면 결코 나라의 장래는 없다.’

청년 롤링스는 자동차를 타고 전국을 돌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 대화했다. ‘인간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서민들 속으로 뛰어들어 동분서주했다.

그리고 1981년, 다시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재건하는데 착수했다. 그 뒤 가나는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경제가 발전했다. 대통령 부부는 ‘국민의 잠재능력을 이끌어내는’ 일에 온 힘을 쏟았다.

“지도자가 (겉모습뿐인) ‘무늬만 신’ 같은 존재여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아내도 영부인이라서 사람들은 아내가 꽃을 받는 일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가 누구든 할 말은 한다

나나 여사는 대통령과 한마음으로 일어서 어디를 가든 ‘여성이 일어서야 민중이 승리한다’고 외쳤다. “여성들은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지신들이 지나치게 조신했음’을 말입니다.”

여사는 ‘여성에게는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 ‘일반 여성들이 힘을 모으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외치며 풀뿌리 운동을 펼쳤다.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소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했다. 식량 등을 효율적으로 마련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주간에 아이를 맡기는 센터를 만들어 가정주부들도 공부나 일을 할 수 있게 시간을 만들어줬다.

대통령은 “저는 아내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위대한 남성 뒤에는 늘 위대한 여성이 있다’는 말이 있는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아내를 두고 제 딸은 이렇게 말합니다. ‘위대한 남성 뒤에는 늘 피로에 지친 여성이 있다’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나는 그 틈을 타 “그럼 이렇게 고칩시다. “위대한 남성 뒤에는 늘 더 위대한 여성이 있다’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여성을 존경하는 사회는 밝은 미래가 펼쳐진다는 것을 함께 확인했다.

1993년에는 대통령의 강한 요청으로 가고시마(鹿兒島)를 방문했다. 그 전해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 청년해외 협력대원의 부모님을 비롯한 유족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아드님은 가나를 위해 매우 가치 있는 일을 했습니다. 아드님의 죽음은 너무나도 원통하지만 그분은 가나에 많은 지식과 기술을 남겼습니다. 결코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습니다. 돈으로는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을 했습니다.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멋진 활약이었습니다. 깊이깊이 감사합니다.” 부모님도 대통령의 마음에 감동했다고 들었다.

대통령은 이렇게 정이 깊으면서도 ‘상대가 누구든 할 말은 한다’가 신조다. 게다가 그 말은 늘 ‘민중이 정말로 하고 싶어 하던 말’이다. 이른바 프로 정치가답지 않은 강직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다. 남자 중의 남자다.

어느 나라의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예전에 그 나라에서 추방된 가나 국민의 이야기를 일부러 꺼내서 항의하고 “가나 동포가 그런 취급을 받은 사실을 잊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벗을 위해서라면 필사적으로 외치고 필사적으로 싸운다. 롤링스 대통령은 ‘인간다운’ 삶을 사는 분이다. ‘마음의 쇠사슬’을 끊고!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창가대학·창가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한국화관문화훈장 외 24개국 29개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73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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