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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의 한자 時評(11) 弊端] 폐단·악습 고치려거든 스스로 공정하고 정직해져야 

옷감 마구 두드려 너덜너덜해지도록 하는 나쁜 행위 弊… 여러 정권의 실패는 음울한 편향성 벗어 던지지 못한 탓 

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10월 1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요즘 적폐(積弊)와 청산(淸算)이라는 두 단어가 유행이다. 오래 쌓인 좋지 않은 습관, 또는 관행에 가까운 행위 등을 일컫는 단어가 앞의 적폐다. 청산이라는 말은 깨끗하게 씻어 정리한다는 뜻이다. ‘없애버리다’가 우선이기는 하지만, 본래의 뜻은 군더더기 없이 셈해서 탈 날 소지를 없앤다는 의미다.

아무튼 이 두 단어가 정치의 한복판에 진입하면서 수많은 파열음이 번지는 상황이다. 누군가에 의해 누가 ‘적폐’라 규정되고, 이어 없애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면 세상에는 분란이 인다. “네가 바로 적폐야”라는 지적에 “너희가 청산의 진짜 대상이야”가 맞서면서 말이다.

그 중심에 놓인 글자 하나가 바로 弊(폐)다. 우리는 게다가 端(단)이라는 글자를 하나 덧붙여 폐단(弊端)이라는 단어를 쓴다. 잘못과 오류, 불의(不義)와 부정(不正)이 머물러 남의 눈에 띄기 쉬운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아울러 ‘잘못이 몰려 있는 곳’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일상에서 쓰임이 아주 많은 단어다. 그 만큼 세상살이에서 오류와 부정, 불의, 잘못 등은 피하기 어렵다.

핵심에 해당하는 弊(폐)라는 글자는 본래 (폐)라는 글자와 맥락이 거의 같다. 새김이 동일한 글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폐)라는 글자의 생김새를 들여다보자. 우선 글자의 왼쪽 부분은 예전 시대에 활용도가 높았던 일종의 ‘치마’라고 보면 좋다.

지금은 여성이 주로 입는 옷이지만 예전에는 장식을 위해 사회적 지위가 제법 높은 남성들이 옷 바깥에 둘렀던 치마 형태의 겉옷이다. 특히 하반신의 겉옷에 해당한다. 오른쪽에 해당하는 글자 요소는 어떤 행위를 가리키는 (복)이다.

이 (복)이라는 형태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잡고 어떤 물건을 두드리는 동작이다. 때로는 무기를 들고 남을 해치는 행위도 가리킨다. 대상을 두드리거나, 때려서 망가뜨리는 동작이다. 따라서 (폐)의 의미는 명확해진다.

옷감이나 옷을 두드리고 때려서 해지게 만드는 일이다. 그로부터 망가뜨리거나 훼손하는 일, 또는 그로써 벌어지는 결과를 가리켰다. 요즘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弊(폐)는 (폐)에 두 개의 손이 그려진(공)이라는 글자 요소가 덧붙여졌다.

두 개의 손이 개입하면서 이 글자의 새김은 더욱 분명해진다. 어떤 옷감을 마구 두드리거나 때려서 옷감이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또는 그런 행위의 결과다. 그래서 결국 나쁜 행위, 또는 그로써 얻어지는 좋지 않은 결과다.

따라서 요즘 우리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적폐’라는 단어의 뜻은 자명해진다. ‘쌓다’라는 새김의 積(적)이라는 글자는 과거 농작물로 세를 바치던 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세를 내기 위해 쌓은 농작물, 즉 노적가리 정도로 보면 좋다. 그로부터 높이 쌓는 행위, 또는 그런 모습을 일컫는 글자로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적폐’라고 하면 오랜 세월 쌓인 높고 큰 오류, 잘못의 행위다.

비슷한 흐름의 단어는 적지 않은 편이다. 우선 악폐(惡弊)는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이뤄진 나쁜 일 그 자체를 가리킨다. 폐해(弊害)는 그런 행위와 습속으로 인해 생기는 잘못을 지칭한다. 유폐(流弊)는 오랜 악습, 시폐(時弊)는 당시의 나쁜 습속을 말한다.

말을 하면서 남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표현이 나오면 우리는 이를 어폐(語弊)라고 부른다.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지독한 병증처럼 잘못이 있는 경우는 병폐(病弊)다. 잘못된 행위와 습속이 쌓여 아주 고단한 정도에 이르는 상황은 피폐(疲弊)다.

작폐(作弊)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버젓이 그를 행위로 옮길 때 자주 쓰는 말이다. 현대 중국에서는 이 단어가 시험장에서 남의 답안을 훔쳐보며 제 답으로 옮기는 일, 즉 ‘커닝(cunning)’으로 쓰이고 있어 흥미롭다.

조선왕조부터 이어진 ‘전통’, 정치적 편향성

아무튼 요즘 유행하는 ‘적폐’와 ‘청산’이라는 단어 덕분에 우리사회의 오랜 잘못과 오류, 그를 없애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을 생각해 본다. 사회 전체가 지닌 적폐와 그를 없애기 위한 청산의 방법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이런 단어가 등장하고 그에 이어 어떤 캠페인 식의 흐름이 나타날 때가 문제다.

우리 정치에서의 편향성은 정평이 나 있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조선왕조에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전통’에 가깝다. 서로 무리를 지어 편을 가른 뒤 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서로 죽일 정도로 그악하게 싸워대는 붕당(朋黨)과 파당(派黨)의 정치 말이다.

왕조의 명운이 쇠하고 현대 국가 체제로서 대한민국이 등장한 뒤로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제 혈연·지연·학연으로 파당을 만들어 어둡고 음울한 싸움을 벌여온 지가 오래다. 진흙의 땅에서 뒹굴며 악다구니로 싸우며 물어뜯는 개의 싸움, 즉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악명을 얻은 지도 오래다.

조선은 그래서 결국 망국(亡國)의 명운을 비켜가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대한민국의 정치판이 그려내는 기상도(氣象圖) 또한 이 전통적이며 관습적이고 퇴행적인 흐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에 등장했던 대한민국 여러 정권의 결정적인 실패는 이 좁고 음울한 편향성을 벗어 던지지 못한 데서 비롯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한반도 정치권의 가장 큰 폐단은 바로 이 점이다. 이는 곧 오래 쌓여 흔들기 힘든 적폐라고 봐도 무방하다. 습속처럼 굳어져 아예 폐습(弊習)이라고 적어도 다른 의견이 없을 듯하다. 일반에 미치는 영향이 과도할 정도로 커 민폐(民弊)라고 불러도 이견은 나오지 않을 듯하다.

다 저 자신과 이해를 함께하는 무리와 사람들을 감싸는 행위다. 그로써 잃는 것은 공정(公正)함이자 정직(正直)이다. 이를 깨치지 않고서는 우리가 적폐를 청산한다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성어 하나 소개하면서 글의 마무리를 짓자.

補偏救弊(보편구폐)라는 성어가 있다. 중국 사서인 <한서(漢書)>에 나오는 말로 기울어짐(偏)을 바로잡아(補) 폐해(弊)를 고친다(救)는 엮음이다. 주목할 점은 바로 서있지 않는 기울어짐, 편향(偏向), 경사(傾斜)에서 비롯한 비뚤어짐을 피해야 폐단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의 흐름이다.

이 성어는 거편구폐(擧偏救弊)라고 써도 좋다. 역시 묻혀 있는 치우침, 쏠림의 偏(편)을 들어내(擧) 폐단을 없앤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성어에서 弊(폐)와 偏(편)의 상관관계에 주목해야 옳다. 스스로 오랜 폐단과 악습을 고치려면 무엇보다 공정함과 정직함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적폐의 청산에 앞서 우리는 우선 이 점을 거듭 살피고 살펴야 한다.

※ 유광종- 중어중문학(학사), 중국 고대문자학(석사 홍콩)을 공부했다. 중앙일보에서 대만 타이베이 특파원, 베이징 특파원, 외교안보 선임기자, 논설위원을 지냈다. 현 중국인문경영연구소 소장. 저서로 <유광종의 지하철 한자 여행 1, 2호선> <중국이 두렵지 않은가>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2권> 등이 있다.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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