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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의 ‘사랑학개론’(1)] 문학에 담긴 사랑의 ABC(1)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여인의 사랑, 그 독을 두려워하라” 

김환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표작이자 자전적 소설로 자신의 체험 일부 솔직하게 묘사…첫 번째 사랑이 너무 강렬하면 두세 번째는 시시해 보일 수도

사랑은 모든 사람의 관심사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다. ‘사랑학개론’이 필요하다. 본 연재는 고전문학 작품이 드러내는 사랑의 여러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랑학개론’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구약성경의 <아가(雅歌)>, 몰리에르의 <동쥐앙(Don Juan)>, 카사노바의 <자서전> 같은 작품에서 당장 활용 가능한 사랑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추출할 것이다. 우리 모두 더 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연재라고 자부한다. 배우고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다. ‘사랑학개론’이 필요하다. 본 연재는 고전문학 작품이 드러내는 사랑의 여러 모습을 통해 우리 모두를 위한 ‘사랑학개론’을 만들어보고자 한다. 구약성경의 <아가(雅歌)>, 몰리에르의 <동쥐앙(Don Juan)>, 카사노바의 <자서전> 같은 작품에서 당장 활용 가능한 사랑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추출할 것이다. 우리 모두 더 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연재라고 자부한다.


▎영화 ‘클래식’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간직해뒀음 직한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을 그렸다. 여주인공인 배우 손예진의 풋풋한 모습.
프랑스에서는 첫사랑을 복수형처럼 ‘보이는’ ‘les premi res amours(레프르미에르자 무르, the first loves)’로 쓰기도 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le premier amour(르프르미예라무르, the first love)’의 시적인 표현일 뿐 사실은 복수가 아니라 단수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첫사랑보다는 ‘첫사랑들’이라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다. 사랑에 취하면 약도 없다. 열정적이다. 사람을 시인으로 만들고 모든 유행가 가사를 곧 ‘내 이야기’로 만든다. 첫사랑은 더하다. 처음 겪은 일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듀오 그룹인 메이우드(Maywood)가 부르는 ‘I’m in Love for the Very First Time(맨 처음 사랑에 빠졌어요)’은 사랑의 행복·웃음·기쁨을 노래한다. 웃음이 실없이 터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게 첫사랑이지만, 어떤 이들은 첫사랑이 남긴 상처를 평생 극복하지 못한다. 첫사랑의 아픔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은 이렇게 말했다. “첫사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면 두 번째 사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반 투르게네프(1818~83)는 <첫사랑>(1860)에서 처음 겪는 사랑의 홍역을 동반하는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을 세밀한 문체로 묘사한다. 도스토옙스키(1821~1881), 톨스토이(1828~1910)와 더불어 러시아 3대 소설가로 꼽히는 투르게네프에게 <첫사랑>은 각별히 사랑하는 작품이었다.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0.2초


▎폴린 비아르도의 샬롱.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첫사랑>은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즐거움을 준다. 그 자체가 인생이기 때문이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첫사랑>은 내 체험의 일부분이다.” 그렇다. <첫사랑>은 투르게네프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는 자전적인 작품을 쓸 때 제일 잘 썼다는 평가도 받았다.

차르 알렉산드르 2세(1818~1881)도 <첫사랑>의 첫 애독자 중 한 명이었다. 황후에게 직접 읽어줬다. 훗날 무정부주의자에게 암살당한 알렉산드르 2세는 <첫사랑>을 읽을 때 나이가 ‘42’였다.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을 42세에 발표했다. ‘중늙은이가 무슨 첫사랑 운운이냐’는 비아냥도 할 법하지만, <첫사랑>은 40대 이상을 위한 중편소설이다.

<첫사랑>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 있는 ‘틀 이야기(frame story)’ 형식을 취했다. 시공은 1850년대 러시아다. 시각은 12시30분. 부자들이 저녁식사를 마쳤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3명만 남아 있다. 주인이 첫사랑 경험을 공유해보자고 제안한다. 40세 정도된 주인공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자신이 말솜씨가 전혀 없다며 첫사랑의 추억을 공책에 적어 올 테니 2주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블라드미르는 16세 소년으로 되돌아가 다음과 같이 추억을 음미했다. 그때 옆집으로 지나이다가 이사 왔다. 지나이다는 21세. 몰락한 귀족의 딸이다. 40세가 넘은 ‘어른’이 보기에는 16세나 21세나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다. 이 둘은 풋사랑을 어떻게 이어갈까.

사랑에 빠지는 데는 0.2초 걸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블라드미르는 5년 연상인 지나이다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다.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내가 사랑이 뭔지 안다면, 그것은 당신 때문”이라고 말했다. 블라드미르는 지나이다를 처음 본 순간 사랑 세계의 일원이 됐다.

지나이다는 코케트(coquette)다. 코케트를 ‘요부(妖婦)’ 즉 ‘요사스러운 계집’이라고 우리말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영어·불어에서 반드시 나쁜 뉘앙스가 담긴 말은 아니다. 지나이다는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미인이다. 구애자들이 매일 저녁 그의 집에 모여 알랑거린다.

아들을 우유부단하게 만든 어머니의 ‘준엄한’ 사랑


▎이반 투르게네프가 평생 사랑한 것으로 알려진 폴린 비아르도.
블라디미르도 ‘지사모(지나이다를 사랑하는 모임)’의 일원이 됐다. 지나이다의 ‘시동(侍童)’이 된 것이다. 백작·의사 등 ‘빵빵한’ 신분의 구애자들은 애초 소년의 상대가 아니다.

하지만 지나이다는 구애자들 중에서는 ‘그래도 블라디미르를 가장 사랑한다’고 암시하며 희망을 솟구치게 한다. 또 ‘친구하자’ ‘누나·동생으로 지내자’며 ‘사랑의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한마디로 미치고 환장하게 만든다. 지나이다가 ‘나를 사랑한다면 뛰어내려라’라고 하자 블라디미르는 실제로 4m 높이 담장에서 뛰어내린다. 덕분에 블라디미르는 지나이다의 키스 세례를 받는다.

어느 날 블라디미르는 직감적으로 지나이다가 사랑에 빠져 있음을 알아챈다. 처음에는 경쟁자들을 의심했다. 알고 보니 블라디미르의 아버지였다. 묘하게도 소년이 느낀 것은 증오나 질투의 감정이 아니었다.

<첫사랑>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아버지는 “여인의 사랑을 두려워하라. 그 지극한 행복, 그 독을 두려워하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지나이다도 애를 낳다가 죽는다.

간과하기 쉬운 <첫사랑>의 또 다른 테마는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다. 블라디미르 소년은 멋있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버지를 ‘짝사랑’한다. 아버지는 냉담하다. 아들을 마치 남처럼 ‘예의 있게’ 대한다.

<첫사랑>에는 놓치기 쉬운 사랑의 테마가 또 있다. <첫사랑>에는 사실 두 개의 첫사랑이 나온다. 지나이다의 첫사랑이다. 21세 꽃 같은 청춘의 지나이다는 왜 ‘쉰내 나는’ 중년 유부남을 사랑했을까. 사랑에는, 첫사랑에는 미스터리가 많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한글판 표지.
<첫사랑>의 도입부도 첫사랑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까지 남은 손님인 세르게이는 첫사랑이 없었단다. 굳이 있었다면 여섯 살 때 유모가 첫사랑이었다는 것이다. 식사자리를 마련한 주인 또한 털어놓을 만한 첫사랑이 없다. 아버지와 장인의 중매로 만난 부인이 첫사랑이다. 둘은 사랑에 빠져 곧바로 결혼했다. 세르게이와 주인은 뼈저린 첫사랑의 아픔이나 마법 같은 환희가 없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대치동 사교육 성공의 6조건’은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할머니의 운전 실력, 본인의 체력, 동생의 희생’이라고 한다. 세칭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는 그런 조건들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한 인생의 조건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투르게네프의 삶이 예시한다. 물론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서로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야 자식들도 행복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게 아닐까. 투르게네프의 부모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다. 기병대 대령 출신인 아버지는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랑 없이 어머니와 결혼했다. 어머니는 독재자였다. 5000명의 농노를 거느린 대농장을 상속받은 어머니는 농노들에게 가혹했다. 아이들은 매질로 키웠다.

마마보이였다. 투르게네프는 어머니의 강요로 거의 2년간 울며 겨자 먹기로 공무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준엄한 사랑(tough love)’은 그를 우유부단하게 만들었다. 좀 ‘의지 박약’이었다.

그는 숱하게 사랑에 빠졌지만 미적거렸다. 어머니 영향이라는 설이 있다. 투르게네프와 영지(領地)의 농부 아낙네 사이에서 1842년 딸이 태어났지만 결혼하지 않았다. 무정부주의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1814~1876)의 여동생 타티야나와 염문을 뿌렸지만 그저 그러다 말았다.

투르게네프가 평생 사랑한 것은 폴린 비아르도(1821~1910)라는 유부녀였다. 이반이 25세, 폴린이 22세일 때 만났다. 폴린은 19세기 최고 디바로 손꼽힌다. 메조소프라노 성악가인 폴린은 교육가·작곡가이기도 했다.

1843년 ‘세비야의 이발사’에 출연한 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1845년 투르게네프는 폴린과 함께하기 위해 러시아를 떠났다. 둘 사이에 육체관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1857년 폴린이 낳은 아들 폴이 투르게네프의 자식이라는 설도 있다. 폴은 자신의 생부가 누구인지에 대해 긴가민가했다. 키가 작은 아버지 루이 비아르도와 달리 폴은 투르게네프처럼 키가 컸다. 어쨌든 투르게네프가 64세를 일기로 사망했을 때 그의 곁에는 폴린 비아르도가 있었다.

극단을 싫어했던 자유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


▎국내 드라마 시청률 1위(65.8%)로 기록돼 있는 KBS 드라마 ‘첫사랑’. 최수종 ·이승연·배용준 (왼쪽부터) 등이 출연해 빈부의 차이로 고민하는 남녀의 사랑을 그렸다.
투르게네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자유주의자·휴머니스트다. 극단을 싫어했다. 농노해방을 열망했으나 농민반란에는 반대했다. 혁명이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의 편에 섰다. 혁명가들에게 투르게네프는 시대착오적인 자유주의자였다.

그의 대표작 <아버지들과 아들들>(1862)은 보수주의자와 혁명가 모두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혁명으로 치닫고 있는 모순 많은 러시아에서 투르게네프의 중도주의·점진주의가 설 땅은 없었다. 현재로서는 역사가 투르게네프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1907년 러시아혁명은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끝에 러시아가 적어도 표피적으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수용하게 됐다.

정부와 투르게네프는 미묘한 관계였다. 1852년 작가 니콜라이 고골(1809~1852)이 사망하자 투르게네프는 그를 찬양하는 부고를 썼다. 당국에 미운 털이 박힌 투르게네프는 한 달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18개월간 영지 스파스코예에 가택연금 당했다. 하지만 그의 <사냥꾼의 수기>(1852)는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1861년 농노해방에 영향을 줬다.


▎오페라 영화 ‘나비부인’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는 미군 장교 핑커톤과 일본 게이샤(藝者) 초초.
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와는 사이가 나빴다. 둘은 특히 투르게네프의 친서방주의가 마음에 안 들었다. 투르게네프는 서구화론자였다. 계몽주의가 낳은 서부유럽의 근대 문명이 러시아를 구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둘과 달리 투르게네프의 작품에는 종교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첫사랑>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위해,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다”로 끝난다. 종교와 연관 있는 유일한 대목이다. 투르게네프는 불가지론자였다.

서부유럽에 처음 알려진 러시아 작가는 투르게네프였다. 그는 1870년대 파리 살롱 사교계의 명사였다. 플로베르, 모파상, 조르주 상드, 공쿠르 형제, 에밀 졸라, 헨리 제임스 등과 돈독한 사이였다.

투르게네프는 1879년 옥스퍼드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의 작품이 서부유럽에 알려지면서 이 둘에게 차츰 밀려났다. 하지만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1843~1916)나 폴란드 태생의 영국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1857~1924)는 이 둘보다 투르게네프를 더 높이 평가했다. 헤밍웨이(1899~1961)는 젊은 작가들에게 투르게네프의 작품 전체를 읽을 것을 권했다.

사랑은 심리학의 중요한 주제다. 심리학자들은 첫사랑이 강하게 기억에 남으며 두 번째, 세 번째 사랑의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목한다. 강렬할수록 어른이 된 다음의 사랑은 시시해 보일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일부 심리 학자는 ‘사랑의 열병(infatuation)’인 풋사랑은 아예 피하는 게 좋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들이 첫사랑에만 몰입하지 않도록 그들이 운동·독서·공부 등 활동을 다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물론 해피엔딩도 있다. 첫사랑의 주인공들은 수십 년 후에 만나도 양쪽 모두 ‘자유의 몸’이라면 결혼에 골인할 가능성이 70%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유명인들 중에는 ‘내 첫 번째 사랑은 기타였다’ ‘음악이었다’ ‘레슬링이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첫사랑인 사람들은 행복하다.

[박스기사] 투르게네프의 인생


▎러시아의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초상.
● 1818년 러시아 오룔에서 출생
● 1837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졸업
● 1838~1841년 독일 베를린대에서 철학 공부
● 1834년 아버지 사망
● 1841년 러시아로 귀향. 철학자가 되려 했으나 정부가 철학 교육을 금지시킴
● 1843~1845년 내무부 공무원 생활
● 1854년 서부유럽으로 이주
● 1860년 <첫사랑> 출간
● 1862년 <아버지들과 아들들> 출간
● 1879년 옥스퍼드대 명예박사
● 1883년 프랑스 파리 근처 부지발에서 사망





[박스기사] 사랑에 대한 말말말···

“어떤 여자의 첫사랑인 남자는 운이 좋다. 어떤 남자의 마지막 사랑인 여자는 운이 좋다.” _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

“첫사랑은 그저 약간의 어리석음과 많은 호기심에 불과하다.” _아일랜드 작가 조지 버나드 쇼(1856~1950)

“첫사랑의 마법은 첫사랑의 끝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다.” _영국 정치가·작가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

“첫사랑은 그것이 마지막 사랑일 때에만 위험하다.” _세르비아 작가 브라니슬라브 누시취(1864~1938)

“첫사랑에 빠지면 인생이 영원히 바뀐다. 아무리 애를 써도 첫사랑의 느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_미국 소설가 니컬러스 스파크스

“드디어 꿈보다 현실이 더 훌륭하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에 빠진 것이다.” _미국 작가·만화가 닥터 수스(1904~1991)

“내 비록 당신의 첫사랑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마지막 사랑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_무명씨(anonymous)

※ 김환영 - 중앙일보 논설위원. 외교부 명예 정책자문위원. 단국대 인재 아카데미(초빙교수), 한경대 영어과(겸임교수), 서강대 국제대학원(연구교수)에서 강의했음. 서울대 외교학과 학사, 스탠퍼드대 중남미학 석사,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쓴 책으로 <마음고전> <세계사의 오리진을 만나다> <세상이 주목한 책과 저자> 등이 있다.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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