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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100년 서예 인생에서 입고출신의 길을 찾다 

 

문상덕 기자

▎추사를 따라 또 다른 길을 가다 / 김종헌 지음|중앙books|4만8000원
시는 자하(紫霞)에서 망했고, 산문은 연암(燕巖)에서 망했으며, 글씨는 추사(秋史)에서 망했다는 말이 있다. 조선 후기 선비들이 토해낸 절규와 같은 말이다. 아무리 세 천재가 남긴 작품을 배워봐도 새로운 성취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옛것에서 새로움이 나온다(入古出新)’라지만, 저자는 추사 이후에 “누구도 입고(入古)와 출신(出新)을 두루 갖춘 글씨를 내놓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줄기차게 답습만 하거나 근본 없이 붓을 휘둘렀을 뿐이라는 의미다.

입고와 출신은 어떻게 조화되는가? 저자는 추사의 삶을 되짚어본다. 추사는 24세 때 청나라로 건너가 소동파(蘇東坡)와 구양순(歐陽詢)이 남긴 글씨를 본뜨며 기본을 다졌다. 귀국해 이조판서까지 올랐던 추사는 54세에 이르러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추사는 이때 비로소 구습에서 벗어나 뚜렷한 음양조화를 특징으로 한 ‘추사체’를 창안해냈다. 요컨대 추사체란 추사 자신의 굴곡진 삶이 투영된 자화상과 같았던 셈이다.

저자는 소지도인(昭志衜人) 강창원을 추사체의 요체를 이해한 몇 안되는 서예가로 꼽는다. 1918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소지도인은 베이징으로 망명한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때 저명한 서예가 양자오쥔에게 중국 서예계보의 큰 맥을 배웠다. 광복 후 한국의 서예가들이 그의 글씨를 교본으로 할 정도로 입지가 컸지만, 1977년 소지도인은 돌연 미국행을 선택했다. 지위나 권위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를 가다듬는 일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추사를 따라 또 다른 길’을 갔다고 할 만하다.

소지도인은 올해로 100세를 맞았다. 이번 평전은 그의 서예 인생을 갈무리한 결과물이다. 별책으로 소지도인의 역작인 <금강반야바라밀경> 영인본과 그 한글 및 영문 번역본을 담았다.

- 문상덕 기자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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