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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집중 없이는 영혼도 없다 

집중은 예리하고 섬세한 정신의 지속성… 영혼은 집중의 수행을 통해 자태 드러내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집중과 영혼/ 김영민 지음 글항아리┃4만8000원
우리 철학계에 김영민이란 독창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학자가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강단철학은 서구 철학을 소개하는 데 학문적 역량을 소진하는 다수 학자의 영역 아니었던가. 그곳에는 학문하는 자의 주체적 현실인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깊이나 넓이에 있어서도, 예를 들어 김우창과 같은 문학 전공자가 보여주는 철학적 사유의 도저한 지평을 우리 철학계는 대중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저서 <포스트휴먼이 온다>를 통해 ‘인간의 미래와 고유성’에 주목한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의 지적이 공감을 얻는다. 이 교수는 “지금 철학은 과거의 지식과 사상가들을 전시하는 지식 박물관 역할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현상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인간에 관한 담론이 뇌과학에 집중되고 있는데, 철학은 인간의 활동과 가치, 자율성 등을 종합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활동과 가치, 자율성을 논할 때 ‘집중과 영혼’이란 테마처럼 핵심적인 이슈도 드물 것이다. 이미 도래한 뇌과학의 시대에 철학계가 도전해야 할 한 분야를 마치 신호등처럼 보여줬다고 할까. 그간 <동무론> <영도의 인문학> 등 독특한 사유를 펼쳐온 철학자 김영민이 그 주제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 경이롭다.

그런 포착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님은 불문가지다. 그는 아주 오랜 기간 고전과 현대, 종교와 과학, 대중문화와 철학 등 이질적이면서도 폭넓은 영역을 활보했다. 그에게는 ‘사유의 기인(奇人)’이란 별명을 붙이고 싶다. 1000쪽이 넘는 대작 <집중과 영혼>을 내놓으면서 지은이는 “‘사람만이 절망’이라는 게 내 오래고도 얄궂은 지론이지만, 짧지 않은 세상을 지나오면서 사람의 마음, 그 역사와 가능성만큼 깊이 감심케 하는 것도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집중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현재와 미래를 한 궤선으로 잇고 주체의 일관된 의지로 이 궤선을 완결시키는 행위”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무엇으로 구분되는가? 집중이다. 동물들은 욕망을 즉각적으로 풀어내지만, 인간은 이를 미루고 참는 ‘차분한 태도’를 보인다. 인간은 ‘집중’이라는 태도를 배양하며, 이와 더불어 그 정신이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상승한다. 인간의 숭고함은 결국 집중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집중’은 “정신의 강도(强度)라기보다는 오히려 예리하고 섬세한 정신의 지속성”에 가깝다. 때문에 집중은 동물도 할 수 있는 ‘열중’과 다르다. 사욕을 비워내는 차분하고 지속적인 과정으로서, 집중은 ‘존재론적 겸허’를 갖춘 태도며, 그것은 ‘에고’와의 투쟁이다. 그래서 집중은 인간만이 갈고 닦아온 공부, 또는 수행이라는 기이한 존재론적 실천과 깊이 연결된다.

그렇다면 집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영혼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에 관한 이야기’로서, 하나의 가능성과 같은 것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의식은 지속적인 집중에 의해 성취하는 ‘깊이’ 속에서야, 비로소 ‘영혼’이라 부를 수 있는 자태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산만한 사람은 김영민의 섬뜩한 잠언을 기억하면 좋겠다. 집중 없으면 영혼도 없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712호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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