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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정치기획] 문재인 정부 新권력 회로도 

문 대통령, 양정철보다 이호철 스타일 선택했다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이호철 전 민정수석의 포괄적 영향력 아직 막강…그러나 공조직의 자생력과 지속성 넘보긴 어려워

문재인 정부의 권력 회로는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장외 영향력이 여전한 친문 세력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문 대통령의 인사는 새로운 시민사회 세력 중심의 리더십 교체, 포용과 설득의 리더십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통령이 이호철 전 수석의 온건·합리적인 스타일을 선택한 이유다.


▎지난 5월 29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 오른쪽부터 문 대통령,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이상철 국가안보실 1차장, 조현옥 인사수석, 조국 민정수석.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고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사고 회로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노 대통령이 두괄식이었다면 문 대통령은 미괄식이다. 노 대통령은 미리 목표나 개념을 정하고 나면 그대로 밀어붙이길 좋아했다. 속도감이 있었고, 참모들의 의견도 설득력과 논리만 갖췄다면 즉각 채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 대통령은 결론을 내리기까지 오랜 숙고와 주변의 설득이 필요한 스타일이다. ‘결정 장애’가 아닌가 의심될 정도다.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스타일이 그러니 청와대 참모들도 비슷한 성향의 인물로 채워졌다. 조국 민정수석, 김수현 시민사회 수석, 정태호 정책기획 비서관, 김현철 경제 보좌관 등이 신중파의 대표적 면면이다. 청와대 참모들이 아이디어는 많지만 실행력이 약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인사와 정책 결정이 계속 딜레이 됐던 이면에도 ‘결정 장애’의 기미가 엿보인다. 대통령이 지향하는 총론에 맞춰 거기에 맞는 각론을 개발하고 실천하는 역량이 미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예컨대 문 대통령의 탈 원전 철학이 2012년 대선 전 이미 완성된 것임에도 실천을 위한 각론은 오랫동안 마련되지 않았다. 탈원전과 사회적 합의의 여정은 멀고도 지난했다. 2017년에 와서야 미진한 상태의 결론, 결론 아닌 결론에 겨우 도달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복귀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아이디어가 채택되는 즉시 거침없이 실천하고 가시적 성과를 거둬내는 ‘양비’의 돌파력이 아쉽다는 배경 설명이 그럴 듯하게 들린다.

문 대통령은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후보자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인선과 어이없는 낙마에 대해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그렇게 인재가 많은 분야에서 겨우 발굴한 인사들이 고작 그들이냐”면서 추천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계속됐던 인사 난맥상은 “양비가 다시 대통령 곁으로 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양비가 다시 대통령 곁으로 와야 한다”


▎2006년 10월 13일, 양정철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문광위 국정감사장에서 유진룡 문광부 차관과의 소위 ‘배 째드리지요’ 사건에 대해 도면을 들고 해명하고 있다.
지난 대선 기간 문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필했던 양 전 비서관은 대선 직후인 지난 5월 25일 “잊혀질 권리를 허락해 달라”며 홀연히 뉴질랜드로 출국했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캠프 출범 전 예비조적인 ‘광흥창팀’을 이끌며 대선 승리를 이끈 일등공신이다. 대통령 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그가 모종의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좀처럼 거둬지지 않는다. 그에 대한 대통령의 애정도 식지 않았다는 주장도 여전하다. 견마지로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그를 내칠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이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는 최근 뉴질랜드에서 한국과 불과 두 시간 거리의 일본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한국과 시차가 없는 지역으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실시간적 대응이 가능한 지역이다. 그의 일본 체류를 국정 관여설과 연결짓는 시각도 그런 맥락이다. 양 전 비서관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친인척관리팀의 특별관리 대상으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그의 움직임을 거의 대통령의 패밀리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란 말만 무성할 뿐 운신의 폭은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가 곧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양비 컴백설’의 배경이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정권 핵심 인사들은 “양비의 컴백은 좀처럼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 입을 모았다.

문재인의 청와대가 출범할 때 양 전 비서관이 과연 어떤 자리를 원했는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노영민 주중대사, 최재성 전 의원, 전해철 의원이 비서실장 자리를 놓고 경쟁할 때 양 전 비서관이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 임종석 비서실장을 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다면 정작 자신은 어떤 자리를 내심 원했을까? 스스로 비서실장 자리를 원했다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당선 후 문 대통령에게는 양 전 비서관을 홍보수석, 국정상황실장으로 상정한 두 개의 보고서가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 보고서의 작성 주체가 누구였는지도 파악됐으나 몇 가지 사정으로 작성 주체 본인의 확인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보고서의 존재를 제보한 친노 핵심 인사는 문 대통령이 양 전 비서관의 중용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가 대통령의 ‘새로운 리더십 창출 구상’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갈등구조 중심으로 일을 끌어나가는 것은 문 대통령의 체질에 맞지 않고, 포용과 설득의 리더십 구축과 양 전 비서관의 스타일과 정체성은 엇박자를 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는 것이다. ‘양정철 복귀설’에 대해 인터뷰에 응한 노무현 정부의 핵심인사는 이렇게 내다봤다. “양정철의 복귀는 문재인 정부가 힘이 빠져 위기에 봉착했을 때나 가능하다는 전망이 있지만, 그것도 현실성이 있는 카드는 아니다. 국가 리더십의 교체, 포용과 설득의 리더십을 구상하고 있는 문 대통령이 양비와 같은 투쟁적 이미지의 돌파형 인물을 다시 중용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새로운 리더십 창출 구상’


▎2003년 8월 19일 이호철 당시 민정1비서관(가운데)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앞서 김만수 보도지원비서관(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그가 언론의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복심’이나 ‘실세’로 자리매김한 것도 문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가 돌아와 어느 곳에 자리를 잡더라도 ‘실세’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편하다는 시각이다. 청와대 안의 수석급 자리 이외에는 정권 내에서 맡을 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것도 양 전 비서관의 컴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어떤 자리를 맡든 그는 야당과 보수세력의 타깃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통령의 ‘새로운 리더십 창출 구상’은 상당히 원대한 포석임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1987년 체제에서 수혜를 본 엘리트 권력을 해체한다는 것이 문 대통령의 국가 리더십 교체 구상의 대강이다. 1987 체제의 수혜자는 20년 가까이 정치권에 군림한 486세대 지도부, 지역주의에 매몰된 호남 구세대 정치인, 기득권을 누리는 노동운동권 상층부, 일부 대기업 세력이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세력으로 시민사회를 주목하고 있다. 마이너리티에 불과했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시민사회 세력이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국가의 메이저 세력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대립 구도 역시 보수세력과 시민사회 세력 사이에 형성되며, 대통령인 자신은 포용과 설득의 리더십으로 두 세력 간의 갈등과 대립을 굽어보는 위치에서 조정하겠다는 구상이다.

양정철 비서관과 함께 요즘 여권 핵심부 내 최대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인물이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다. 그의 부산시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면서부터다. 그는 대선 직후인 2017년 5월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외유했다. 소위 3철(이호철·전해철·양정철)의 2선 후퇴도 그의 기획이란 설이 유력하다. 선거의 전면에 나서 뛰면서 지지그룹의 신세를 많이 질 수밖에 없었던 양정철 전 비서관에게 “정권의 전면에 나서 일하면 신세진 것 갚으라는 사람들의 등쌀에 견딜 수 없을 것”이라며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유럽 각국을 돌다 지난 6월 말 국내로 다시 돌아왔다. 이 전 수석은 조기 귀국한 이유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라고 밝힌 바 있다. 노 전 대통령 기념관은 현재 봉하마을에 있는 추모관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임시 가건물 형태로 돼 있는 추모관을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위상에 걸맞게 새 단장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에는 노무현 센터 건립도 추진된다. 노무현재단에서 주도하는 것으로 둘 다 내년 상반기에 착공할 계획이다.

이 전 수석은 부산에서 여당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재직하며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과 함께 부산파 핵심으로 불렸다. 지난 5·9대선에서도 부산지역 선거를 막후에서 지휘하며 문 대통령 당선을 도운 실세다. 문 대통령이 인간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을 단 한 명 꼽는다면 이 전 수석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친문 세력의 좌장이며, 그룹 내 카리스마도 대단하다. 이 전 수석을 오래 지켜봤던 한 486그룹 정치인은 “문재인과 이호철의 우정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이 전 수석이 문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했다고 본다. 부르면 최선을 다해 돕고, 부르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경우에도 원망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호철 전 수석은 원래 자유인이다. 사고도 자유롭게 하는 스타일이다. 현실정치 참여에 상당한 거리를 뒀고 스스로 꺼렸다. 대선 후 홀연히 떠난 것은 평소 스타일로 봐선 크게 이례적이지 않았다.

노무현-문재인의 뒤를 이을 정치적 계승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친문계는 아니지만 취임 후 권부 내에서 상당한 피워와 영향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중반이었던 2005년 8월 12일 이호철 제도개선비서관을 국정상황실장에 임명했다. 즉각 ‘좌(左) 재인, 우(右) 호철’이라는 말이 안팎에서 회자됐다. ‘왕수석’으로 불리던 문재인 민정수석이 이미 사정을 맡고 있었던 터에 ‘86 참모 맏형’격인 이호철 실장마저 정보를 총괄하는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노무현-문재인의 뒤를 이을 정치적 계승자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만약 그가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부산시장에 당선된다면 단박에 차기 반열로 체급이 올라간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반면 그의 성정으로 보아 정치적 야심을 펼칠 리 없으며, 부산시장 선거에도 결국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인사도 적지 않다. 노무현-문재인 두 대통령을 도와 당선시킨 참모일 뿐, 그가 자신의 표를 얻기 위해 유권자에게 허리를 굽힐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선 지방자치시대가 열린 이후 민주당 후보가 영남지역에서 광역단체장에 당선된 사례는 없다. 2010년 민주당 김두관 의원이 경남지사에 당선된 적은 있으나 당시 그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이 전 수석이 침묵을 깨고 과감한 ‘외출’에 나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과거 선출직 공직에 강한 거부 반응을 보였던 모습과 비교하면 최근 이 전 수석의 침묵 자체가 상당한 진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의 부산시장 출마 가능성은 “제로에서 50%까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자들의 빗발치는 인터뷰 요청에도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그가 정치를 완전히 떠난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호철 전 수석을 높이 평가하는 지점도 바로 그 대목이다. 문 대통령이 정치를 떠난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전 수석의 현실 인식에서 많은 참고와 영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시민사회 세력 형성론, 설득과 포용의 리더십론은 이 전 수석의 조언과 제안에 힘입은 바 크다. 문 대통령은 평소 측근들에게 “이호철은 세상에 대해 이기적인 애착이 없다”는 말로 그를 높이 평가한다고 한다.

취재에 응한 복수의 정권 핵심인사들은 그가 차지하고 있는 정권 내 위치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이상으로 본다. 특히 정권 출범 초기에는 내각 구성과 청와대 인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취재 과정에서 김부겸 행자부 장관, 김영춘 해수부 장관, 김현미 국토건설부 장관의 입각에 그의 추천이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언도 나왔다. 이낙연 총리의 내정에도 이 전 수석의 역할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전 수석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는 “장관 추천설 등은 사실과 다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수석의 측근들이 현 정권의 핵심 실세로 배치된 대목도 눈에 띈다. 청와대 안에는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이 그들이다. 노무현 청와대의 정무기획비서관을 거쳐 문재인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윤건영(48) 실장은 문 대통령과 매일 아침 만난다. 밤 사이 취합된 사건·사고와 사정기관 보고서 등을 선별해 보고하는 게 그의 주된 업무지만 문 대통령의 지시사항이나 공식 일정까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과의 접촉빈도만 놓고 보면 임종석 비서실장에 뒤지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출근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인사가 바로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이다. 그는 부속비서관으로 공식 임명되기 전부터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의 일정을 챙겼다.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는 일정총괄팀장을 맡았었다. 송 비서관은 특히 문 대통령이 사적(私的)으로 지인 또는 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때 연락책 역할을 한다. 임종석 비서실장도 모르는 문 대통령의 비공식 일정은 그의 손을 거친다.

이호철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출마 이뤄지나


▎1.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변 전 실장은 ‘혁신주도형’ 경제철학이 트레이드마크다. / 2.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취임 초 변양균 라인에 밀렸지만 이제는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3. 변양균 전 정책실장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김동연 경제부총리.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도 이 전 수석과 관계가 각별하다. 김 의원은 현재 초선(初選)이지만 당과 청와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정무수석급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중평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자 김 의원은 한동안 청와대로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상주하는 춘추관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청와대 조직 개편에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아직은 불확실하지만 이호철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도지사 출마가 이뤄지면 부산·경남권 전역에 상당한 바람과 시너지가 형성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호철 전 수석의 한계도 분명하다. 정권 초기 공조직의 형성에 기여한 바 있다 해도 일단 공조직이 세팅되면 지속성과 재생산성을 갖기 마련이다. 특히 문 대통령은 공식 라인에 속하지 않는 인물의 인사 청탁 등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지낸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이 이 전 수석에게 전화할 수 있어도 이 전 수석은 대통령에게 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별한 임무가 주어지지 않는 한 공식 라인에 속하지 않은 비선실세가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영향을 미치기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전 수석이 부산시장 출마를 저울질하는 것도 자신의 정치적 역할과 책임을 일정수준 유지하고, 정권의 성공에 기여하기 위한 방편을 찾는 과정의 고육책일 수 있다. 부산시장 출마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도 선거 분위기를 민주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세팅된 공조직이 뿌리를 내리는 과정은 소위 ‘광흥창팀’(서울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 인근 대선준비 사무실) 출신의 약진으로도 잘 나타난다. 광흥창팀은 더불어민주당 예비 경선 캠프가 꾸려지기 전 베이스캠프 역할을 했던 핵심 전략 팀이다.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한기 의전비서관, 송인배 1부속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한병도 정무수석,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이 이 팀의 멤버였다.

불과 1년 전에는 문 대통령의 사람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무·인사·정책 등 국정운영 전반의 ‘그립’을 쥔 것으로 평가되는 임 비서실장의 등장도 드라마틱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박지원, 박근혜 정부의 김기춘 실장보다는 파워가 떨어진다 해도 공조직의 수장 임종석은 장외의 수장 이호철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권력 회로의 이상 신호는 경제팀에서 나온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변양균 전 참여정부 정책실장을 양대 축으로 한 정책과 인사 경쟁이다. 청와대는 이 경쟁이 ‘장하성 대 변양균 라인’의 파워게임으로 비쳐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

두 라인의 대결 구도가 역전의 연속 양상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초기엔 ‘변양균 라인’이 먼저 부각됐다. 문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5월 11일 홍남기 초대 국무조정실장과 이정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임명됐기 때문이다. 이어 장 실장이 김동연 부총리와 함께 5월 21일 임명됐고, 그는 주요 요직에 ‘장하성 라인’을 기용해 기세를 잡았다.

적폐청산의 컨트롤타워 백원우 민정비서관


▎2009년 5월 29일 오전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헌화 순서에 백원우 당시 국회의원이 “사과하라”며 소리치자 경호원들이 입을 막고 있다.
변 전 실장과 장 실장은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을 이끌었으며 진보적 철학을 가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경제 핵심 가치는 다르다. 변 전 실장은 ‘혁신주도형’을, 장 실장은 ‘소득주도형’으로 분류된다. 문 대통령이 내건 새 정부의 경제 기조는 일단은 후자다.

현재까진 ‘장하성 라인’ 쪽에 무게중심이 기울어져 있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초만해도 ‘변양균 라인’이 약진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인 5~7월 새 정부 경제라인으로 김동연(60) 경제부총리, 홍남기(57) 국무조정실장, 반장식(61) 청와대 일자리수석, 이정도(51) 총무비서관을 임명했다. 이후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오르내렸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에서 변 전 실장이 기획예산처 장관과 정책실장으로 있을 때 함께 일한 경제관료 출신의 후배들이다.

2005년 변 전 실장의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김 부총리는 전략기획관을 맡았고, 참여정부의 중장기 복지정책인 ‘비전 2030’을 만들었다. 경제기획원 출신인 반 수석은 참여정부 시절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기획단장으로 변 전 실장과 함께 일했다. 홍 국무조정실장은 변 전 실장이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정책보좌관이었고, 이 비서관도 노무현 정부 시절 변양균 기획예산처 차관·장관의 비서로 일했다.

일각에선 새 정부 출범 초 경제라인 인선 과정에서 변 전 실장이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금융권을 중심으로 ‘장하성 라인’이 구축되면서 ‘변양균 라인’이 뒤로 밀렸다는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특히 이른바 ‘김동연 패싱’이 근거로 제시됐다. 세법 개정안 등 증세는 장 실장이 주도하고, 8·2 부동산 정책을 발표할 당시 김 부총리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점 등이 거론되며 ‘김 부총리의 역할이 미미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김 부총리가 들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평가일지도 모른다.

현재 청와대의 권력 회로도에서 가장 돌출된 인사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이다. 그는 전병헌 정무수석에 이어 정무수석에도 거론될 정도로 정권 내 비중이 커졌다. 두뇌 회전이 매우 빠르다는 평가가 있고, 김정숙 여사의 신뢰가 깊다는 말도 나온다. 조국 민정수석은 방패이며, 백 비서관은 창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적폐청산 작업에서는 수석보다 더 큰 권한을 휘두른다는 말이 있다. 조국 민정수석이 지방선거에 차출되면 민정수석 자리를 노릴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그만큼 그의 의욕은 크고, 위치는 독특하다.

그는 권력의 두 기둥인 친노와 전대협 출신의 교집합이다. 전대협의 핵심 포스트인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그는 2002년 일찌감치 노무현 후보 정무비서가 됐다. 여기에다 지금은 권력기관을 지휘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민감한 정보를 받는 민정비서관이다. 그는 또 보수정치권과 악연이 뿌리 깊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MB를 향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라고 고함을 친 일이 있다.

당시 상주 역할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MB에게 사과했지만 이 일로 그는 곧바로 보복을 당했다. MB의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그의 친인척·보좌진까지 가혹하게 사찰한 것이다. 그래서 보수 야당은 백 비서관이 그 복수를 하고 있다고 본다. 권력 회로도의 정상적인 순환은 적폐청산 작업의 신속성과 공정성에 달렸다. 백 비서관의 엄정한 적폐청산 관리가 정권 성공의 첫째 관문이 될 것 같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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