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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정치기획] 적폐청산은 신·구 권력 간의 전쟁 

과거사 정리?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여권, 비공개 적폐 실태 지방선거에서 추가 폭로 이어질 수도...개헌을 위한 여야간 협치 국면 온다면 상황 반전 가능

▎10월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1주년 대회’에서는 적폐청산 목소리가 나왔다.
"이제는 의사들까지 현 정부를 도와주네. 그것도 3만 명이나.”

12월 10일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 수만 명이 서울 도심에 모여 정부의 ‘문재인 케어’ 반대 집회를 연 것을 두고 이명박(MB) 정부 고위직을 지낸 A씨는 이렇게 되뇌었다. 문재인 케어 반대 집회가 문재인 정부 정책을 돕는다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말 같다. 하지만 A씨는 “물론 의사들은 문재인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게 맞다. 그런데 이걸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고 권했다.

예컨대 문재인 케어는 자기공명영상장치(MRI), 초음파 등 3800여 개의 비급여 항목에 단계별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부 정책이다. 이를 위해 2022년까지 30조600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의사들은 문재인 케어에 구체적 재정 확보 방안이 없어 건보 재정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를 들어 집단적인 반대에 나섰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이 받는 낮은 수가(酬價) 문제를 개선하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의사 집단행동이 문 정부 돕는다?


▎11월 20일 공수처설치법 제정 관련 당·정·청 회의에 참석한 박범계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맨 왼쪽),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맨 오른쪽) 등 여권의 주요 인사들.
의사들의 주장과 관련해 A씨는 “국민들의 눈에는 고소득 전문직 의사들이 기득권에 연연해 집단행동을 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면서 “그래서 비급여 항목을 줄여 의사들 돈 줄을 막은 정부 정책에 속이 후련하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88만원 세대 등 젊은 층은 고급 승용차를 몰고 해외여행을 하는 의사들의 시위 자체를 탐탁지 않게 보기 십상이라고 지적했다. 총선에 출마한 경험이 있어 민심 동향에도 밝은 A씨는 적폐청산이 일반 국민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적 측면에 주목한다. “가진 사람들이 자기 몫을 주장하면 못 가진 사람들은 그 주장의 타당성을 따지기에 앞서 상대 비교에 기초한 반감을 표출한다.” 의사들의 시위 역시 국민들의 마음 한 구석에 ‘적폐청산은 역시 필요하다’는 예단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구성원이었던 A씨의 발언은 적폐청산 프레임이 여권에 유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잘 설명해준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2017년 하반기 이후 70% 선을 유지하는 것도 적폐청산에 나선 여권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월 단위로 산출한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6월 81%, 7·8월 78%, 9월 69%, 10월 72%, 11월 73%, 12월 72%를 기록했다. 한국갤럽은 “지난 9월 초 북한 6차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주간 지지율이 65%까지 떨어졌으나, 추석 이후 다시 상승해 70%대 초·중반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성적표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는 취임하던 해 1분기(1993년 3월) 71%이던 지지율이 2분기(6월) 83%, 3분기(9월) 83%를 기록했다. 취임 초 지지율을 가장 높고 길게 가져간 정부다. 1998년 3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1분기(3월) 71%→2분기(6월) 62%→3분기(9월) 56%로 하강곡선을 그렸다.

문 대통령과 YS는 과거사 청산과 탈권위주의 행보에서 닮은꼴이다. YS는 취임 첫날 통행금지 구역이던 청와대 앞 길과 경복궁 후문을 개방했다. 청와대 주변 안가(安家)를 헐고 공직자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 시행, 하나회 해체 등을 통해 적폐를 하나씩 걷어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개혁이나 적폐청산은 피로감을 주는 게 맞지만 그 피로감은 주로(개혁·적폐청산) 당하는 쪽에서 쌓일 뿐 국민은 좀처럼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지금은 YS 때와 달리 대통령 국정농단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불거진 상황이다. “현 정부의 경제·외교·복지 점수가 하락해도 적폐청산은 정권에 지치지 않는 에너지원을 공급할 가능성이 커보인다”고 전망했다.

실로 여권의 기세는 등등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2016년 12월 9일) 1주년에 즈음해 열린 12월 8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가 그랬다. 추미애 당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촛불혁명으로부터 1년이 흘러도 자유한국당의 모습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면서 “성찰하고 혁신하는 어떠한 모습은커녕 국민들의 염원인 적폐청산마저 방해하고 있다”고 자유한국당을 질타했다. 나아가 “촛불 민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넘어서 전면적인 국가시스템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며 적폐청산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박범계 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도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의 절대적인 다수인 70% 이상은 적폐청산을 지지하고 있다”면서 “철저하고, 완전한 의미의 적폐청산은 계속돼야 된다”고 강조했다.

집요한 여권, 발 빼는 검찰


▎문무일 검찰총장은 12월 5일 적폐청산 수사와 관련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등 여권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이 이명박 정부의 권력형 비리 의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심증을 굳힌 듯하다. 민주당의 과거사 청산작업을 주도하는 박범계 위원장은 각종 인터뷰에서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국가기관이 개입한 여론 조작과 방송 장악을 통해 정권을 보위했고 급기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 시절의 권력형 비리가 최순실 국정농단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엄청날 수도 있다”는 개인 의견도 피력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도 “MB는 국정원 적폐의 몸통”이라며 “MB가 법의 심판대에서야 진정한 의미의 적폐청산이 이뤄졌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고 쏘아붙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한국당은 진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끌어 들이며 “적폐청산은 정치보복”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10월 “적폐청산에 대해 정치보복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로 정치보복의 악순환이 끝난 줄 알았는데 현 정권이 정치보복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포장했다”고 공박했다. 나아가 자유한국당은 자체 집계한 ‘문재인 정부 정치보복 TF 구성 현황’ 보고서도 제시했다. 정부 기관 내 적폐청산 관련 태스크포스(TF) 39개 구성원과 적폐청산 수사에 투입된 검사 등 589명 가운데 19.7%에 달하는 116명이 편향성을 가진 인사라며 여론전을 펼쳤다.

문무일 검찰총장의 ‘적폐 수사 연내 마무리 발언’은 정치권 적폐청산 공방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문 총장은 12월 5일 출입기자간담회에서 “수사의 기한을 정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회가 한 가지 이슈에 너무 오래 매달리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도 덧붙였다. 청와대가 “문 총장 발언은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말로 올해까지만 적폐청산 수사를 하겠다고 시한을 정한 것은 아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야권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정용기 수석대변인은 “서초동 검찰청 주변에는 청와대가 문무일 총장을 ‘패싱’하고 하명수사를 제대로 받드는 윤석열 지검장과 직거래한다는 설이 파다하다”며 여권 내 분란을 부채질했다.

정부·여당 관계자들은 이른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사업, 제2롯데월드 인허가,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에 이르기까지 MB 관련 사안을 다 들여다보겠다고 별렀다. 그 와중에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까지 야권의 공격에 노출됐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12월 14일 당 공식회의에서 “MB 정부의 원전 수주와 관련해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퍼트리는 문재인 정부를 그 나라 왕세자가 ‘국교 단절’까지 거론하면서 격렬히 비난했다”는 주장을 폈다. 김 원내대표는 “이를 수습하고 무마하기 위해서 임 실장이 달려갔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며 여권을 몰아쳤다. 청와대 측은 “양국 발전을 협의하러 간 것일 뿐”이라며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지만 미묘한 뒷맛을 남겼다.

홍준표 “당이 소멸될 수도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운데)가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했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UAE 원전은 누더기 계약’ ‘원전 자금 조달 과정에 의혹이 있다’ 등 한국의 UAE 원전 수주 과정에 집중적으로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2월 11일 MBC가 ‘임 실장이 과거 정권의 비리와 관련해 중동 지역을 방문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내보낸 직후라 정가에서는 입방아가 그치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국가정보원 주변에서는 MB정부 시절 해외 공관에 파견된 국정원 직원들이 새삼 주목을 받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외 자원외교의 실무는 현지 국정원 파견관의 손을 거치게 되므로 그들이 사업의 실체에 가장 정통하다는 이유에서다. 여권이 자원외교 비리를 파헤친다면 이들이 주요 조사 대상이 될 게 자명하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이미 감사원이 이 잡듯 감사한 4대강 사업에 견주면 해외에서 벌어진 자원외교는 빈 구멍이 많이 남아 있다”면서 “여권이 자원외교를 들여다보자면 당시 파견관들의 입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진영의 심기가 편할 리 없다.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 수감됐다. 그를 모셨던 전직 국정원장, 청와대 참모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등 박근혜 정부 자체가 초토화된 상황이다. 여권은 적폐청산 수사의 정점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표적이 된 MB 측은 확전은 경계하면서도 응전 의지를 다진다. 12월 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과거 함께 일했던 전직 장·차관, 청와대 수석·비서관들과 잇따라 모임을 가졌다. 이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 국면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고 전해진다. 이 전 대통령은 여권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한 일에 잘못이 없다. 당당하게 임하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참모들은 여권의 과거사 청산이 노골적으로 MB를 향하는 현실에 분개한다. 나아가 정부의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 정치 보복식 ‘억지 수사’라는 불만을 터뜨린다. ‘MB의 입’으로 통하는 이동관 전 홍보수석은 “국정원 서버까지 맘대로 뒤지는 걸 보면 MB 관련 혐의가 나올 때까지 털어보겠다는 것 같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거리낄게 없다”고 말했다. “MB 측에서 4대강으로 돈 받아 문제가 된 사람이 있나, 자원외교 비리에 걸린 사람이 있나, MB정부에는 권력형 비리라는 게 없다. 그럼에도 전직 대통령을 교도소에 보내려는 그 졸렬함을 국민들이 용납하겠나.”

사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정치 관여 의혹사건 수사는 답보 상태에 있다. MB 측근 김태효 전 대외전략기획관의 영장은 기각됐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도 법원의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검찰의 구속영장 남발 등 과도한 수사가 법원에 의해 제지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수석은 “정의가 자기편이라고 착각하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지지율만 믿고 무리하게 적폐청산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적폐청산 작업에 여론이 호응하더라도 보수의 뿌리를 뽑아 궤멸시키려는 시도는 국민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눈길 끄는 국정원 개혁위 비공개 자료


▎문재인 대통령은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지방선거 시기에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신·구 권력 간 칼끝 대치와 별개로 여야 정치권도 적폐청산 작업에 각자의 명운을 거는 모양새다.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2018년 들어 여권이 적폐청산의 고삐를 더욱 죄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여권은 국정농단 심판의 완결 프레임으로 적폐청산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의식한 듯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여권의 적폐청산 관련 전방위 공세를 ‘좌파 광풍’으로 규정하며 강력한 대여투쟁 의지를 다졌다. 홍 대표는 12월 12일 신임 원내총무-정책위의장을 선출한 의원총회에서 “우리가 제대로 된 야당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을 합쳐 좌파 광풍을 몸으로 막아야 한다”면서 “그런 각오로 대여투쟁을 하지 않으면 지방선거를 계기로 이 당이 소멸될 수도 있다”고 경각심을 불어 넣었다.

홍 대표의 ‘소멸 가능성’ 발언은 보수 진영이 안고 있는 현실적 위기감을 여실히 반영한다. 2018년 지방선거는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 70%, 민주당 지지율 50%라는 여권에 유리한 운동장에서 치러진다. 향후 6개월 동안 특단의 변수가 없다면 야권은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여론조사기관에서도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는 생각보다 견고하며 앞으로도 이런 기조가 유지된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에 많은 국민들이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 개인 캐릭터가 인기의 원천이라는 해석이다. 이 전문가는 “문 대통령 본인이 비판받을 언행을 하는 스타일이 아닌 관계로 여권이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않는 한 국정지지율이 급전직하하는 일은 벌어지기 어렵다”고 했다. 물론 경제 지표와 북핵 문제 등은 국정지지율 등락의 변수로 작용한다. 특히 북핵 위기의 경우 대처 방식에 따라 여당에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권의 지지율을 빼앗아갈 강력한 야권이 존재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이 전문가는 지적했다. “설령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떨어지더라도 야권이 전반적 우위를 점하기는 어렵다.”

이에 더해 선거에 임박해 과거 보수정부 9년의 적폐 현안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야권에겐 악몽이 펼쳐진다. 적폐청산에 대한 국민적 호응도를 생각하면 야권은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몰락할 수도 있다. 적폐청산은 민주당이 말하듯 ‘촛불의 명령’이고 ‘역사적 책무’이기도 하지만 선거에서는 ‘전가의 보도’로 쓸 수도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민주당 정책위가 11월 9일 작성한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적폐 현황’이라는 자료만 해도 13개 상임위 별로 과거 보수정권의 국정 운영 문제점 73건을 나열하고 있다. 또 이미 활동을 종료했거나 이제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갈 정부 기관 내 적폐청산 관련 태스크포스도 30~40개에 이른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자체 분석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은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르는’ 극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선거에 임해야 한다.

수도권 민주당과 제3당이 경합?


▎이명박 전 대통령은 11월 12일 바레인 출국에 앞서 ‘적폐청산’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여권은 이미 실태를 파악하고서도 공개하지 않는 과거 정부의 적폐를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게 정가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예컨대 12월 하순 활동을 종료키로 한 국정원 개혁위원회만 해도 비공개 정보를 다수 비축하고 있다고 국회 정보위 관계자가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국정원 개혁위는 이미 많은 자료를 손에 넣었다고 한다”면서 “여론의 향배와 정국 상황을 봐가며 하나하나 순서에 입각해 풀게 되면 야권은 맥없이 주저앉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속전속결 식으로 일을 진행해 비교적 조기에 활동을 종료하는 케이스에 속한다. 검찰·경찰 등 주요 사정기관 내 개혁TF의 활동은 이제 갓 본궤도에 오르거나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한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 말고도 무수한 과거 정부의 적폐가 쏟아져 나올 환경에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는 말이다. 이 정보위 관계자는 “지방선거 국면에서 국민을 열 받게 하는 재료가 속속 공개된다면 구 여권의 중심인 자유한국당이 버텨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적폐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수도권에 민주당과 경합하는 구도로 선거 지형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시각이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반사이익을 제대로 누릴 수 있을까? “한계가 있다”고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본다. 겉으로는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여당을 견제하는데 방점을 두는 듯하지만 실은 선거 후의 야권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획득하는 데 더 관심을 둔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 센터장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할 것 없이 당의 안정화를 기하고 야당 내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 본질적인 의미를 두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고 평했다.

여권이 적폐청산 국면 관리에 능하다는 점도 야권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기본적으로 과거의 잘못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데는 시한이 있을 수 없다고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말한다. 그는 “내용 없는 적폐청산은 피로감을 줄 수 있다”면서도 “적폐청산을 어느 시점에서 끊으라고 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한다. 박 교수가 보기에 지금은 적폐청산에 대한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들도 문재인 정부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인내심을 발휘하는 상황이다. 박 교수는 “그런 면에서도 여권이 적폐청산 관련 속도 조절을 잘하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의 한 분석가도 “적폐청산 과정에서 잡음이 불거지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반감을 사는 수준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상황에 야당은 반감을 가질 법하다. 하지만 보통의 국민들은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그렇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이 분석가의 시각이다.

변수가 없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은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개헌안은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200석) 동의를 얻어야 국회를 통과한다. 116석을 가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물 건너가게 된다. 여권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꼭 개헌을 하자면 일정한 정치적 양보를 통해 자유한국당이 개헌에 참여토록 유도하는 길밖에 없다. 국가권력구조와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을 빅딜 하는 쪽으로 여야가 절충안을 모색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는 원내 협치(協治)가 이뤄질 때 가능한 구도다. 본질적으로 적폐청산과 협치는 양립하기 어려운 길항적 관계다.

“청와대 전략 바뀐다면 봄 무렵 될 것”

여권은 한쪽을 포기하는 선택을 할까? 개헌은 제도가 가진 ‘적폐’를 일소하는 중요한 개혁 작업이기도 하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개헌이 화두로 떠오르면 여권이 지금처럼 적폐청산에 치중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청와대도 전략을 바꿔 조정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면서 “그게 실행된다면 오는 봄쯤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지내 친문계로 불리는 권칠승 민주당 의원은 “협치와 개헌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적폐청산은 협치를 유도하는 수단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적폐청산은 국민적 명령이므로 정당 간 협력을 뜻하는 협치와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없다는 인식이다. 권 의원은 “적폐청산은 중단 없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야당은 표적 사정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사람이나 표적을 두고 적폐청산을 하는 게 아니다”고 단언했다. 개헌과 적폐청산은 호환성이 있거나 거래의 대상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발언이다. 어쨌거나 적폐청산의 열쇠는 여권이 쥐고 있다. 야권은 적폐청산 국면에서 ‘패싱’되는 신세인 셈이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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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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