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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2017 코리아 열기구 그랑프리 대회’를 가다 

겨울 하늘에 수놓은 불의 교향악 

사진·글 부여=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등나무 바스켓에 올라타 ‘구름 위 걷는 기분’ 만끽…열기구 조종실력 겨루는 ‘토끼몰이’ 경기 등도 이색적

열기구는 하늘에 고요히 떠 있다. 갖가지 색깔의 원단으로 만들어져 ‘하늘에 걸린 조각보’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중동(靜中動)이 있다. 열기구 조종사들은 버너 버튼을 꼭 쥔 채 바람을 달래며 가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손맛에 이끌려 100여 명의 사람이 충남 부여로 몰려들었다.


새벽 공기를 짓누르던 어스름이, “번(burn)!” 소리와 함께 주위가 단숨에 밝아졌다. 불기둥이 올라오자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던 거대한 풍선이 하나둘 일어섰다.

2017년 12월 9일, 충청남도 부여군 금강 앞 구드래선착장에서는 ‘2017 코리아 열기구 그랑프리 대회’가 열렸다. 금강 양옆으로 너른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열기구 마니아들은 이곳을 최고의 열기구 비행 장소로 꼽는다.

이날도 열기구 열 대가 하늘로 떠올랐다. 열기구 풍선은 모두 부풀었을 때 높이 35m, 지름 20m에 달한다.

“현재 초속 1m의 북동풍이 불고 있습니다.”

열기구 비행에 가장 중요한 건 바람. 탑승 전 대회 관계자들이 가장 강조한 것도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었다. 브리핑을 마친 조종사들은 지도를 들고 열심히 비행 동선을 머릿속으로 짜고 있었다.

“바람에 몸 의탁하며 원시적인 쾌감 느껴”


▎국내 열기구 제작사 ‘스카이배너’의 김도형(23) 씨가 열기구의 재봉을 준비하고 있다. 열기구는 400여장의 원단을 이어 붙여 만들어진다.
3년차 조종사인 김홍철(51) 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열기구를 조립했다. 먼저 연료로 쓰는 LPG 가스 3통(1통 당 32㎏)을 등나무로 만든 탑승공간에 옮겨 실었다. 큰 바구니를 닮았다고 해서 ‘바스켓’이라 부르는 곳이다.

대회 관계자들이 엔진 송풍기의 시동을 걸고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불처럼 얇게 잠자고 있던 풍선이 순식간에 공처럼 부풀어 오르자 김씨는 “번!”이라 외치며 버너를 점화했다. 등나무 바닥을 끌며 이륙하는 느낌은 구름 위를 걷는 기분과도 같다.

이내 열기구는 중력을 거스르며 점점 고도를 높여갔다. 김씨는 버너를 껐다켰다 반복하며 열기구 방향과 높이를 조정했다. 김씨는 “버너 조정을 잘 못하면 열기구가 엉뚱한 곳으로 가버린다. 마치 열기구와 바람이 서로 탐색전을 벌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라고 말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김씨는 “이륙 준비가 만만치 않지만 일단 비행이 시작되면 표현하기 어려운 쾌감과 설렘이 밀려온다”고 덧붙였다.

어느새 하늘은 밝아져 한낮으로 바뀌었다. 발아래 금강도 느리게 걷는 열기구처럼 유유히 흘러갔다.

열기구 조종사들끼리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경주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해진 시간 안에 이륙해 표적지에 자신의 번호가 표시된 모래주머니를 가장 가깝게 던져 득점하는 게 기본 경기다. 일명 ‘토끼몰이’라고 부르는 경기도 있다. ‘토끼’로 지정된 열기구를 쫓아가면서 해당 열기구가 착륙한 장소에 가장 가까이 착륙하는 방식이다.

열기구 생산업체 세계 10여곳뿐… 국내 기업도 ‘눈길’


▎열기구 비행은 주로 겨울에 이뤄진다. 열기구가 논밭에 착륙하더라도 농작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을 마친 참가자들이 열기구를 운반하고 있다.
열기구 생산·임대시장은 국내외 10여개 업체가 전 세계 시장을 독식한다. 한국 기업으로는 경북 고령에 위치한 ‘스카이배너(Skybanner)’가 유일하다. 스카이배너는 최근 특수원단을 사용해 평균 400㎏가량 나가는 열기구의 무게를 120㎏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열기구 무게는 이동성과 연료효율에 직결된다. 바스켓을 만드는 소재 역시 경량화해 최근 해외 바이어들이 스카이배너를 찾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2017년 10월 현재 등록된 대한민국 열기구 조종사는 모두 93명이다. 이웃 일본에는 만 명 이상의 조종사가 활동 중이다. 열기구 조종사가 되려면 기상학, 항공법, 항공운용, 열기구 이론 등 필기 과목 시험에 합격한 뒤, 16 시간의 비행시간을 이수해야만 한다. 이후 실기시험에 합격해야 조종사 자격증을 딸 수 있다.


▎대회 유일의 여성 참가자인 노은영(40) 씨는 17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다. 노씨가 이륙을 위해 버너를 작동하고 있다.



▎3년차 조종사 김홍철 씨가 버너를 조작하면서 고도계를 확인하고 있다. 김씨의 발아래로 부여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버너를 점화하고 열기구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에는 베테랑 조종사도 바짝 긴장한다. 방심하면 열기구가 넘어지거나 그대로 날아가버리기도 한다.



▎자신의 번호가 표시된 모래주머니를 표적지에 가장 근접하게 던지면 높은 점수를 얻는다. 조종사는 버너를 이용해 고도를 조절하면서 최적의 위치를 찾는다.



▎열기구는 이른 아침에 이륙한다. 대기가 가장 안정적인 시간대라 느긋하게 구름위의 산책을 즐길 수 있다. / 사진:한국열기구협회
- 사진·글 부여=김현동 기자 kim.hd@joongang.co.kr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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