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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레저특집] 겨울에 떠나면 더 좋은 해외 여행지 7選 

아주 먼 데로 떠나, 사계절을 안고 돌아오자 

한경심 자유기고가 icecreamhan@empal.com
시베리아 횡단열차, 은빛으로 반짝이는 설원과 침엽수림에서 유황가스가 피어 오르는 소금벌판, 폭염의 에티오피아까지

겨울 여행은 더운 나라로 날아가도 좋지만 아예 추운 지방으로 떠나도 멋지다. 러시아부터 인도 남단, 호주의 한가운데까지 이 겨울에 가면 더 좋은 여행지 일곱 군데를 찾아보았다. 유럽 일주, 남미 일주같이 큰돈 들이고도 수박 겉핥기식이 되기 쉬운 일정이 아니라 경비에 비해 체험의 질을 높이면서도 괜한 고생은 피하는 여행을 떠나보자.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과 아름다운 숲을 상상해본 사람이라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야 한다. 담배를 피우며 열차 앞을 걷는 이 멋진 사내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 같다
1. 시베리아 횡단열차 | 겨울나라로 떠나는 설국열차

이 지구상에서 겨울의 매력을 여실히 보여줄 곳은 단연 시베리아다. 영화 [닥터 지바고] [시베리아의 이발사] [제독의 연인] 등을 보며 광활한 시베리아 평원과 아름다운 숲을 상상해본 사람이라면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야 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설원과 침엽수림 타이가 지역, 흰 자작나무 숲, 얼어붙은 바이칼 호를 지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은 말 그대로 겨울 나라로 떠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장장 9334㎞에 이르는 지구상 가장 긴 노선으로, 내리지 않고 계속 타고 간다 해도 7~8일이 걸린다. 지나는 역만 해도 850군데, 멈추는 역도 50군데 이상이어서 정거장 구경만으로도 풍성하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알차게 여행하는 방법은 주요 기착지에서 내려 며칠씩 묵으며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북한 영공을 날아갈 경우)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 ‘해삼위’로 불리며 간도와 함께 우리와 인연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공산주의자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하바롭스크의 아무르 강 철교를 건너면 거대한 숲과 황무지가 이어져 러시아 작가들이 말하는 ‘어머니 러시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의 백미는 바이칼 호수다. ‘시베리아의 진주’니 ‘시베리아의 푸른 눈’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바이칼 호수는 세계 담수의 5분의 1을 담고 있는 큰 호수로 길이는 600㎞가 넘고 면적은 남한의 3분의 1에 이르는데, 아직도 팽창 중이라고 한다. ‘성스러운 바다’ ‘자연’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는 바이칼 호는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어 가장 깨끗한 물로도 명성이 높다.

횡단열차 노선 중간쯤에 지나게 되는 바이칼 호는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광도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이르쿠츠크에서 내려 바이칼 호수로 들어가는 일정을 잡아볼 만하다. 겨울 바이칼 호수는 꽝꽝 얼어서 호수 안에 있는 가장 큰 섬인 알혼 섬으로 갈 때 버스로 호수 위를 달리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알혼 섬에는 몽골 샤머니즘의 흔적을 간직한 유적지와 박물관이 있고, 목조호텔에 머물며 개썰매와 스노모빌을 즐길 수도 있다.

이르쿠츠크는 데카브리스트 반란으로 시베리아로 쫓겨난 귀족들이 문화를 일궈 ‘시베리아의 파리’로 일컬어지는 매력적인 도시다. 이르쿠츠크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는 예카테린부르크까지 가는 동안 자작나무 숲과 침엽수림 타이가 지역을 지나며 가장 시베리아다운 풍광을 만나게 된다. 예카테린부르크는 제정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최후를 맞은 곳으로 관광명소가 많다. 우랄산맥과 볼가 강 철교를 지나 모스크바에 도착하면 베를린이나 핀란드 헬싱키로 이어지는 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갈 수 있다.

아주 먼 데.
말도 통하지 않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먼 데까지 가자고.

나는 집을 나온다.
걷고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몇날 몇밤을 지나서
_ 고은의 ‘먼 데, 그 먼 데를 향하여’ 중에서


겨울 러시아 여행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블라디보스토크의 마린스키 극장분관부터 모스크바 볼쇼이극장까지 도시마다 공연을 즐길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여름 휴가철보다 겨울철에 중요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2. 터키 에페수스 | 에게 해안의 옛 그리스 유적지를 노닐다


▎터키 에페수스의 그리스 유적인 원형극장. 접근성이 뛰어난 에페수스는 음악당, 상업과 정치의 중심이었던 아고라, 도서관 등 다양한 유적을 만날 수 있다.
폐사지의 적막함을 사랑하는 이라면 에페수스에 꼭 가봐야 한다. 유럽 사람들이 그리스와 로마 유적지보다 더 좋아한다는 에페수스는 터키의 에게 해안 아나톨리아 지방에 있다. 여름이라면 무척이나 뜨겁고 번잡한 이곳을 햇살 좋은 한겨울에 찾으면 붐비지 않고 쾌적하게 거닐 수 있다.

유적지답게 자연 속에 파묻힌 건축물의 잔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힘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무너진 돌무더기와 듬성듬성 서 있는 건축물 사이로 들어가며 이곳의 화려한 시절을 떠올려보자. 학문과 철학을 논하는 학자들이 모여들고, 상업이 번창하며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 축제 때면 늘어서있는 기둥 위에 불을 밝히고 황소 스물네 마리의 고환을 잘라 여신에게 바치는 광란의 축제를 즐겼다는 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릴지도 모른다.

아나톨리아는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으로, 중심지인 밀레토스를 비롯해 프리에네 등에도 그리스 유적지가 있지만 에페수스는 접근성이 뛰어난 데다 무엇보다 아름답다. 돌기둥을 따라 완만하고 긴 돌층계를 따라 내려가면 개인저택과 공중목욕탕, 공중화장실(대리석으로 만든 수세식이다!)을 지나게 되고 음악당, 상업과 정치의 광장이었던 아고라, 도서관과 원형극장에도 이르게 된다. 이처럼 도시를 골고루 다 엿볼 수 있는 유적지는 귀하다.

해안 가까운 곳에 건설돼 해상무역으로 부를 이룬 이오니아의 상업 중심지였던 이곳이 한때 얼마나 화려했는지 증명하듯 곳곳에 대리석 바닥과 모자이크화가 남아 있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시작된 에페수스의 내력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 그리고 비잔틴 시대까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와 페르시아 전쟁,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고트 족의 침입 등 역사의 흥망성쇠에 따라 무너지고 재건축돼 여러 양식이 섞여 있어 더욱 다채롭다.

터키 현지어로는 에페소(현재 이름은 셀축)라 불리는 이곳은 신약에서는 에베소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하나였다. 요한이 이곳에서 계시록을 썼고, 에베소서를 쓴 바울은 이곳에서 전도하며 교회를 세우며 고린도 전서를 완성했다고 한다. 이처럼 기독교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지만 에페수스 유적지는 기독교보다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담고 있다.

에페수스 유적지의 정점은 셀수스 도서관이다. 로마시대 아시아 총독으로 부임한 그리스 혈통의 셀수스가 원로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를 기려 만든 도서관이다. 고트족의 침입과 지진으로 불탔다는 이 도서관이 유명한 것은 남아 있는 2층짜리 앞 벽면(파사드)의 웅장함과 아름다움 때문이다. 코린트식 돌기둥 사이에 서 있는 네 명의 여신은 지혜와 지식, 지성과 용기를 상징한다.

2만5000명을 수용했다는 원형극장은 애초 연극무대로 사용되다 로마시대는 검투사들의 무대가 된 극장이다. 고대 극장답게 항구로 이어지는 거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이 극장의 음향은 아직도 훌륭하다.

터키에는 에페수스 외에도 여러 고대 유적지와 초기 기독교 유적지가 있어 그리스와 로마시대 건축물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에페수스만큼 호화롭고 다양하지는 않다. 고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또 다른 곳은 지중해 연안에 있는 안탈라다. 터키석만큼이나 푸른 지중해의 작은 포구도시 안탈라는 성벽 안에 포근히 자리 잡은 아름다운 휴양지다. 에페수스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의 소아시아 국가였던 안탈라는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대왕의 영토가 되었다 다시 로마로 넘어갔고, 이후 오스만제국과 몽고의 침입도 겪어낸 파란만장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이제는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휴양지가 됐다. 성벽 안 예쁜 골목을 따라 포구까지 걸어가는 길이 아기자기한데,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의 문을 비롯해 비잔틴 시대 교회건물까지 다채롭고 아름다운 건축을 구경할 수 있다.

3. 에티오피아의 다나킬 사막의 화산지대 | 다른 행성에서 보내는 하룻밤


▎유황 가스가 피어오르는 소금 벌판,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형형색색의 땅 에티오피아. 다나킬 사막에 들어서면 더위에 숨은 막히나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황홀감과 공포감,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유황 가스가 피어오르는 소금 벌판, 물감을 풀어놓은 듯 형형색색의 땅.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그중에서도 가장 덥다는 다나킬 사막에 들어서면 이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 분간할 수 없다. 더위에 숨은 막히고 유황가스에 눈이 따가운데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지구가 아닌 딴 행성에 와 있는 듯 황홀감과 공포감, 경이로움을 자아낸다. 초록과 노랑, 보라 등 보통 땅 색깔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지면이 파도치고 꿈틀거리는 모양으로 굳어 있다. 분명 딱딱한 소금으로 굳은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히 그 움직이는 듯 끓어오르는 듯한 지면에 발을 딛기 망설여진다.

모험(그러나 안전한 모험이다)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에티오피아의 다나킬(악마의 사막이라는 뜻)에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 한여름에는 50도까지 올라간다는 이곳에 계절 구분은 의미 없지만 그래도 겨울 여행에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고원지대에 있어 연평균 16도 정도로 기후변화도 크지 않고 온화한 편. 그러나 에티오피아 북동부 끝자락에 가까운 다나킬은 해수면보다 100m 이상 낮아 지구에서 가장 더운 곳에 속한다. 이곳이 이렇게 낮아진 것은(지금도 조금씩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세 개의 판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수백만 년 전부터 이 판이 움직이면서 땅이 갈라져 가라앉게 됐고, 홍해의 일부였던 다나킬은 화산활동으로 대륙 안에 갇히게 됐다. 그리고 엄청난 열기로 물이 증발해 소금 사막이 됐다. 거기다 주변의 여러 화산이 분화해 넘친 용암이 흘러 소금과 어우러져 기기묘묘한 색깔의 지면이 형성됐다.

다나킬로 가려면 아디스아바바에서 메켈레를 거쳐가야 한다. 메켈레는 티그레이 지방의 중심지로 19세기 에티오피아에 군림했던 요하네스 황제의 궁전과 유물이 보관돼 있는 박물관이 있고,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깨끗한 계획도시로 손꼽힌다. 이곳에서 지프로 아파르주로 들어가 소금사막과 달롤 화산지대까지 보고 올 수 있다. 먼저 닿는 소금사막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만나면 행운이다. 낙타와 당나귀에 소금을 싣고 오는 아파르주 원주민의 모습은 고되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멋지다.

소금사막에서 달롤 화산지대로 접근해갈수록 땅 색깔이 달라지며, 소금과 용암이 빚어내는 조화에 말문이 막힌다. 그런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악조건에도 다나킬로 모여든다. 흔히 소금 사막이라면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유명한데, 우유니가 고요한 사막이라면 다나킬의 소금사막은 여기저기 소금 기둥과 계곡까지 있어 소돔과 고모라의 전설이 저절로 떠오른다. 이곳에 부는 소금 바람을 맞으며 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집에서 하룻밤 자면 나뭇가지로 얽은 지붕조차 고맙고, 밤하늘의 별과 바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에티오피아는 솔로몬과 사랑에 빠진 시바 여왕의 나라로 에티오피아 정교의 역사가 오래되어 기독교 유적지가 많고 악슘과 같은 고대 도시가 있어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색다른 분위기의 나라다. 국립박물관에는 최초의 인류로 추정되는 ‘루시’의 화석이 전시돼 있다.

4. 중국 푸젠성 무이계곡 | 산과 물과 차가 일품인 땅


▎무이산의 무이계곡을 이른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뗏목을 타고 내려오면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무이산 위에는 신선의 영기가 있고
산 아래는 찬 물결 굽이굽이 맑다
그중에 절경이 어딘지 알고 싶으면
뱃노래 두어 수 한가로이 들어보라

_주자의 ‘무이구곡가’ 중에서


무이산의 무이계곡을 이른 새벽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뗏목을 타고 내려오면 한 폭의 동양화 속에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뗏목 위에 서서 삿대를 휘휘 젓는 사공의 노래한 자락이라도 울려 퍼지면 옛 시구절이 옛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달뜨는 밤, 한잔 술을 앞에 두고 이 계곡을 내려온다면 또 어떤 기분이 들까?

물론 지금 사공은 면허를 받아야 하고, 뗏목마다 번호표까지 달려 있지만 무이산과 무이구곡의 아홉 물 구비는 천년 전 주자가 이곳 무이산에 은거해 들어왔을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중국 푸젠성 무이산(武夷山, 우이샨)은 태산의 장중함과 황산의 기이함, 화산의 험준함, 계림의 수려함을 다 가지고 있는 명산으로 손꼽힌다. 이 표현은 무어라 딱 집어 말할 수 없는 무이산의 매력을 그나마 잘 묘사한 말이다.

남송시대 유학자 주자(朱子)는 무이산에 반해 이곳에 무이정사를 짓고 후학을 양성했다. 그가 지은 ‘무이도가(武夷櫂歌: 무이의 노 젓는 노래, 즉 뱃노래, 사공의 노래)’는 무이계곡이 아홉 번 구비치는 절경을 노래한 것인데, 상류에서 내려오는 뗏목 놀이 순서와 달리 하류를 제1곡으로 삼았다. 하류 1곡에서 상류 9곡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무이도가(무이구곡가)’는 도를 구하는 경지를 빗댄 것이다. 그래서 9곡 상류에 다다르면 ‘이곳이 바로 인간세상과 떨어진 세계(除是人間別有天)’라고 노래한다. 주자를 존숭한 조선 선비들은 무이구곡을 머리와 그림으로 상상하며 그리워했을 터. 퇴계선생은 ‘무이도가’의 운을 따 ‘차무이도가’를 지었고, 이율곡은 고산구곡가를 읊었으며 송시열은 괴산에 머물 때 화양천 계곡에 아홉 구비 이름을 지었다.

실제로 무이계곡에서 뗏목을 타고 내려오면 아홉 번이 아니라 아흔 번쯤 구비치는 물길을 타고 오게 된다. 굳이 아홉 구비를 말한 것은 아홉 명승지를 거론했기 때문이다. 이 명승지를 포함해 무이산과 무이계곡을 다른 각도로 감상하고 싶다면 무이산 등반을 선택해도 좋다. 해발고도는 400m 남짓하지만 경사가 70도에 가까워 예전에는 잘 오를 수도 없었다는 천유봉도 지금은 돌층계 880개를 깎아놓아 어렵지 않게 정상에 다다른다. 절벽을 타고 오르며 내려다보이는 무이계곡은 또 다른 절경이다.

푸젠성은 중국 대륙 남동쪽에 자리해 아열대 기후로 여름에 가면 덥다. 대만과 가까운 이곳은 중국 대륙과도 다르고 대만과는 다른 분위기다. 남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면서도 깊은 산속의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

무이산의 또 하나의 명물은 대홍포차다. 본래 암벽에서 자라는 야생차를 따서 만들어 최상품으로 유명하다. 이 야생차는 보통 차와 다른 진한 뒷맛이 있다. 최상품은 매우 비싸지만 보통 대홍포차를 마셔도 썩 훌륭하다. 이 대홍포차와 무이산의 옥녀봉과 장군봉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만든 인상(印象)공연도 놓쳐서는 안 된다. 장이머우 감독이 중국의 빼어난 명승지 다섯 곳(계림, 차마고도의 여강, 항주의 서호, 해남도, 무이산)을 배경으로 연출한 인상 쇼는 실제 자연을 무대삼은 공연으로 유명한데 무이산의 ‘인상대홍포’ 역시 화려한 조명과 음악, 춤으로 스펙터클하다. 공연이 끝나면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차를 직접 대접한다.

5. 남인도 케랄라 | 색다른 인도의 낙원을 엿보다


▎인도 남서부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 케랄라의 명소는 역시 코친이다. 코친 항구에 남아 있는 거대한 중국식 어망은 이곳의 전통 명물로 꼽힌다. / 사진:소풍투어
인도라면 덥고 지저분하다고 여기거나 아니면 몇 달 내지 몇 년은 방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인도는 언제나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다.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먼저 인도 남서부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 케랄라를 찾아가볼 일이다. 인도 북부도 물론 겨울에 그다지 춥지 않지만 난방을 하지 않는 관계로 으스스하게 보내야 하는데, 남부는 섭씨 25~30도 정도(코친 기준) 되니 견딜 만하다.

케랄라에서 첫손에 꼽는 명소는 코친(또는 코치). 인도에도 이렇게 호젓한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이국적인 풍물로 여느 인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곳은 로마시대부터 향신료 무역항으로 명성을 날리던 고도(古都)다. 중국과 아라비아를 잇는 해양실크로드의 주역으로 코친은 부를 쌓았고, 이 때문에 16세기부터 서구 열강이 눈독을 들이고 몰려들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각축을 벌였고, 19세기에야 겨우 영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래서 코친에는 영국 풍만이 아니라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자취도 남아 있고, 일찍이 무역상으로 진출했던 유대인들의 거리도 있다. 지금은 유대인은 없고 페르시아 풍과 유대물품을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중국의 영향도 남아 있다. 오늘날 코친 항구에 남아 있는 거대한 중국식 어망은 해 저무는 아라비아 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단골 주인공이다. 이 특이한 어망은 쿠빌라이 칸 시대 들어온 것이라는 설도 있고, 명나라 정화의 원정군이 퍼뜨렸다는 설도 있다. 예전에는 장정들이 이 어망을 끌어올려 고기를 건졌다지만 지금은 기중기로 들어올리고 고기도 잡는 시늉만 한다.

코친에는 인도 최초의 교회인 성 프란시스 성당이 있는데,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가마의 유해가 12년간 안치됐던 것으로 유명하다. 포르투갈이 코친 지배자에게 선물한 마탄체리 궁은 네덜란드가 증축한 뒤 네덜란드 궁으로 불렸는데, 건축의 매력보다 내부에 있는 ‘라마야나’ 벽화가 유명하다.

코친에서 꼭 챙겨봐야 할 것은 카타칼리 공연이다. 중국 경극처럼 과한 분장을 하고 주로 ‘라마야나’ 이야기 중 일부분을 마임으로 공연한다. 카타칼리 공연과 함께 훌륭한 인도 음악도 감상할 기회가 많다.

케랄라는 인도의 베네치아로 불릴 만큼 수상교통이 발달했다. 발달한 내륙 수로 중 알레피에서 꼴람 사이의 수로 유람은 베테치아와는 다른 멋이 있다. 수로는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면서 유유히 흘러가고, 그 잔잔한 물살에 몸을 맡기다 보면 시간이 정지한 듯 무심해진다. 이런 게 인도의 힘인지도 모른다.

케랄라와 타밀나두 경계에 자리 잡은 테카디는 페리야르 국립공원과 향신료 농장으로 유명하다. 야생보호구역이기도 한 이 공원에는 호랑이와 코끼리 등의 동물과 함께 상록수와 낙엽수로 뒤덮여 있어 공원이 아니라 정글 속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6. 스페인 마드리드와 톨레도 | 건축과 미술, 음식의 향연


▎엘 그레코와 보쉬의 대표작이 있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
겨울철 유럽은 해도 일찍 지고 매일 비가 추적추적 내려 크리스마스 철을 빼면 음울하다. 북유럽 오로라 여행은 9월부터 11월이 최적기라 겨울에 가면 멋진 장관을 만날 확률은 떨어지고 지독히 추울 뿐이다.(사진으로 보이는 황홀한 오로라는 특수한 렌즈로 촬영할 때만 보이는 거라 한다.) 그래도 유럽이 그립다면 스페인 마드리드로 떠나보자. 바르셀로나도 그렇지만 마드리드도 건축의 전시장이다. 바르셀로나처럼 이색적인 건물보다 고전적인 점잖은 건축물이 도시 전체를 박물관처럼 보이게 한다.

마드리드 여행자들은 마요르 광장 같은 곳은 꼭 가게 되지만 마드리드 왕궁은 곧잘 생략한다. 유럽에 넘쳐나는 왕궁에 질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함까지 맛본 사람일수록 왕궁 구경에 심드렁해지기 쉽다. 그러나 마드리드 왕궁에 들어가면 깜짝 놀라게 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방은 과하지 않게 품위 있고 아름답게 치장돼 있고, 방마다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갖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실제로 왕가가 머문다는데 이 때문인지 여느 왕궁과 달리 생기가 돌며 어딘가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거리 전체가 멋진 건축이고 동상에다 여행정보가 넘쳐나니 여행에 어려움이 없다. 축구팬이라면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볼 수 있고(예매하고 가는 게 좋다), 미술애호가라면 엘그레코와 보쉬의 대표작이 있는 프라도 미술관을 비롯해 티센-보르네미차 미술관, 라사로 갈디아노 미술관 등을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마드리드 여행은 충분할 듯하다. 마드리드에는 좋은 그림이 많은데 특히 벨라스케스, 엘 그레코, 고야, 루벤스 등의 작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고, 종교심 강한 스페인답게 종교화도 무척 많다.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 내려가면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가 있다.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붉은빛을 띠고 있는 중세 도시로 중후한 매력을 발산한다.
현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70㎞ 내려가면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가 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로 쉽게 다녀올 수 있는 톨레도는 도시 전체가 붉은빛을 띠고 있는 중세 도시로 여름에는 4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말 그대로 옅은 하늘색 하늘이 매력이지만 솔직히 너무 뜨겁다.

톨레도의 언덕길은 좀 힘겹기로 유명하지만 겨울철에는 천천히 걸어 다니기 좋다. 버스도 쉽게 탈 수 있어 언덕까지 타고 갔다가 내려와도 좋다.

톨레도는 로마시대 기록에도 나올 만큼 역사가 오랜 도시지만 8세기 이슬람 사라센 제국에 점령됐다가 11세기 말 되찾은 후 가톨릭 왕국으로 크게 발전했다. 이때 유대인들이 금융과 상권을 지배했고 이 때문에 15세기 박해를 받는다. 그런 까닭에 톨레도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문화가 뒤섞여 있다. 로마시대 수로시설부터 이슬람양식과 고딕양식이 혼합된 성채는 물론이고 구시가지의 가옥에서도 옛 역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톨레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산토 토메 성당이다. 16세기 엘 그레코가 그린 명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톨레도 대성당에도 그의 그림이 있고, 톨레도에 엘 그레코 박물관도 있지만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독보적이다.

스페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은 음식이다. 싱싱하고 건강하며 맛난 음식이 많다. 단 여행책자에서 나오는 곳 말고 현지인이 추천하는 곳이 맛도 비싸지 않다.

7. 호주 울루루 캠핑 | 세상 한가운데서 노을을 보다


▎호주 중부에 있는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 주에 자리한 울루루는 호주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해발 863m, 바위 높이는 348m, 둘레는 9.4㎞에 이른다.
울루루(Uluru)는 신성한 바위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큰 바위. 그래서 호주 원주민(애버리진)은 이 바위를 신성하게 모신다. 흔히 ‘울루루’를 ‘세상의 배꼽’이라느니 ‘세상의 중심’이라고 해석하지만(일본 소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촬영지였기 때문일까?) 본래 ‘울루루’는 아무 뜻이 없는 고유명사라고 한다. 아주 신성한 것에는 본래 특정한 뜻이 따라붙지 못한다.

호주 중부에 있는 ‘노던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 주에 자리한 울루루는 세상의 중심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호주 대륙의 중심에는 가까워 보인다. 해발 863m, 바위 높이는 348m, 둘레는 9.4㎞에 이른다. 평지에 우뚝 솟은 것만으로도 신비한 힘을 내뿜는 울루루지만 가장 큰 특징은 시시각각 바뀌는 바위 색깔이다. 특히 일출과 일몰 때 순간순간 변하는 색은 바위를 더욱 신비스럽게 변신시킨다. 날마다 그 색은 다르고, 계절 따라 바뀌니 한 순간도 같은 색일 수가 없다.

‘울루루-카타추타 국립공원’에는 이름처럼 울루루에서 25㎞ 떨어진 곳에 울루루보다 더 큰 바위군인 카타추타(‘많은 머리’라는 뜻)가 있다. 남반부인 관계로 겨울철에 더 더운 울루루와 카타추타 지역 트래킹을 하려면 체력을 갖춰야 하지만, 주변 리조트에서 편하게 즐길 수도 있고 헬리콥터로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본래 공원 안에 캠핑은 금지돼 있지만 리조트 가까운 야영장에서는 가능하다. 사구 바위 위에 설치된 호화로운 사파리 텐트에 묵는 방법도 있고, 직접 텐트를 쳐도 된다. 일출과 일몰을 보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잠들 수만 있다면.

색다른 체험을 원한다면 새벽과 해질녘에 낙타를 타고(노련한 가이드와 함께) 돌아보면 멋지다. 오토바이와 자전거로 이 지역을 돌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울루루 등반은 원주민이 싫어해서 가급적 자제해주기를 바라는데, 2019년부터는 아예 법으로 금지된다.

보통 여행객들은 450㎞ 떨어진 앨리스스프링스에서 출발해 킹스 캐년을 거쳐 울루루로 들어간다. 짜릿한 절벽 위를 걸어갈 수 있는 킹스 캐년 역시 다양한 트래킹 코스가 마련돼 있어 산을 좋아하는 한국인을 유혹하고 있다.

- 한경심 자유기고가 icecreamhan@empal.com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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