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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모스크바에서 시인 윤동주를 노래하다 

카레이스키가 읊는 ‘별 헤는 밤’ 

글·사진 모스크바=라예진 중앙일보플러스 기자 rayejin@joongang.co.kr
러시아 모스크바의 유일한 한민족학교에서 윤동주 시낭송대회 열려…고려인 포함한 53개 소수민족 학생들, ‘한(恨)’ 정서로 통했다

윤동주는 첫 시집(詩集)의 제목으로 ‘병원’을 떠올렸다. ‘세상이 온통 환자투성이’라는 뜻이다. 나라 잃고 떠도는 민중의 한(恨)이 베어 나온다.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야 했던 고려인들은 망국의 흔적이자 산증인이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추모하는 시낭송대회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2017년 11월 17일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 시낭송대회가 러시아 모스크바 17-3학교에서 열렸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온다기에.”


한 소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윤동주의 시 ‘편지’를 읊었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킨 소녀는 같은 시를 노어(露語)로 한 번 더 낭송하며, 편지를 쓰고 땅에서 눈을 줍는 연기를 했다. 여느 평범한 중·고등학교의 국어 수업시간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민족학교 교실이다. 벽 곳곳에 학생들이 그린 그림과 직접 노어로 번역해 적어놓은 윤동주의 시를 볼 수 있다. 한편에는 러시아 전통 인형인 마트료시카가 큼직하게 놓여 있다. 대한민국 인천에서 장장 9시간이나 비행해야 닿을 수 있는 이곳에 펼쳐진 낯선 풍경은 바로 ‘제10회 국제 윤동주 시낭송대회’ 현장의 모습이다.

2017년 11월 17일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 시낭송대회가 러시아 모스크바 한민족학교인 17-3학교에서 진행됐다. 17-3학교는 러시아 정부가 유일하게 인정한 모스크바 한민족학교로, 유치부·초등부·중등부·고등부까지 7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학생은 고려인을 비롯해 러시아 53개 민족의 학생들로 구성됐다.

모스크바와 윤동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숭실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나와 일본 도쿄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 릿교대(立敎大)에 입학해 교토의 도시샤대(同志社大)로 편입한 그는 귀향길에 오르려다 항일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리고 1945년 2월 16일, 광복 6개월을 앞두고 후쿠오카 교도소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일제 식민지 현실 속에서 ‘히라누마 도쥬’로 창씨개명까지 하게 된 그의 시에는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과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정숙 윤동주 시낭송대회 추진위원장은 “스탈린 시대에 극심한 차별을 받으면서도 민족성을 지켜온 고려인들을 보면서 윤동주 시인이 떠올랐다”고 회고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서 위원장은 중국 옌벤대에서도 일곱 차례 운동주 시낭송대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올해는 한·중 갈등 여파 탓인지 중국당국으로부터 대회 승인을 받지 못했다. 서 위원장은 “조선족만큼이나 타국살이 아픔을 겪은 분들이 고려인 아닌가. 그래서 이번 행사를 모스크바에서 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타향살이 윤동주 삶에서 고려인 떠올라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입을 모아 윤동주의 시에서 뭉클함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회를 즐기는 학생들의 모습. / 사진:라예진
대회가 열리기 전 17-3학교를 설립한 엄넬리 설립자를 만났다. 그 역시 고려인 3세 출신이다.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조부모는 생활고 탓에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소련 당국에 의해 중앙아시아까지 쫓겨났다. 스탈린이 명령한 한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이었다. 엄 설립자는 “친오빠가 한국말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모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늘 괴로웠다”고 말했다.

쉰 살이 넘어서야 한글을 배웠다는 엄넬리 설립자는 “모진 핍박과 멸시를 견디고 살았지만 한민족의 자긍심은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교과서를 만들어 한민족학교 학생들에게 한글과 역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그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윤동주 시를 묻자, 매일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 타국살이의 고된 삶이 느껴지는 시 ‘해바라기 얼굴’을 꼽으며 울먹였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이 중학교 시절 적은 동시 중 하나다.

“누나의 얼굴은 해바라기 얼굴
해가 금방 뜨자 일터에 간다.
해바라기 얼굴은 누나의 얼굴
얼굴이 숙어들어 집으로 온다.”


같은 아픔이 있어서일까. 고려인 작가의 작품 속에서도 윤동주 시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적 고통을 러시아 배경으로 발견할 수 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조은경 전주 근영중학교 수석교사는 “스탈린 시대를 겪으며 문학으로 고뇌를 표현한 고려인 3세 작가 아나톨리 김은 윤동주를 연상케 한다”고 설명했다. 작가 아나톨리 김은 소설 [다람쥐]와 [켄타우로스의 마을] 등의 작품으로 모스크바 시·문학상과 톨스토이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러시아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은 노어로 써졌지만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고려인의 삶이 곳곳에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나톨리 김의 시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녹아 있다. 러시아에서 살고 러시아 언어를 사용하지만 한민족의 정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동양적 인간, 구체적으로 말해서 ‘한(恨)’이라고 불리는 어떤 철학적 우수 같은 것을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한국 사람인 나는 러시아어로 쓴 시와 산문 속에 영혼을 담으려 했다.”

고려인·러시아인 참여해 한글로 시 낭독


▎제10회 윤동주 시낭송대회 대상은 8학년 정소냐 학생(가운데)이 수상했다. 대회 참가 학생들과 전주기전대 조희천 총장(왼쪽 열일곱 번째)을 비롯한 대회 운영진 모습. / 사진:전주기전대학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익숙한 정선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졌다. 엄넬리 교장은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학교종이라고 귀띔했다. 학생들과 함께 한국에서 온 관계자들은 ‘아리랑’을 흥얼거리며 대회가 열리는 학교 강당으로 들어섰다.


▎엄넬리 설립자는 고려인 3세로 러시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어려웠던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는 엄넬리 설립자 모습. / 사진:라예진
700여 명 학생 가운데 본선에는 23명이 올랐다. 초등부부터 고등부 학생까지 학년마다 다양했다. 한 학생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나오고, 다른 한 학생은 러시아 전통의상을 입고 나와 다채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차례대로 마이크 앞에 서서 지정시인 서시(序詩)와 함께 자유시를 1~2편씩 낭송했다. ‘편지’ ‘길’ 등 명시들이 읊어지는 가운데,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시는 ‘별 헤는 밤’이었다.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신 빅토리아 양은 “‘별 헤는 밤’을 읽으면 나라를 잃고 어머니도 볼 수 없는 상황이 떠오른다”며 “시를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무언가 뭉클한 마음이 차오른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려인이 아닌 다른 민족 학생도 다수 참여했다. 바실리바 빅토리아 학생은 “고려인 친구들만큼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진 못 한다”면서도 “윤동주 시의 슬픈 감정은 가슴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대회를 지켜본 러시아 모스크바 한국문화원 정창윤 교육관은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보다 톨스토이, 푸쉬킨을 더 존경하는 나라가 러시아”라며 “이곳에서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 낭송되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수상부문은 ‘대상’ ‘금상’ ‘은상’ ‘동상’과 ‘참가상’으로 나뉘었다. 대상은 10학년 선배들을 물리치고 8학년 정 쏘냐(17) 양의 차지가 됐다. 비결을 묻자 정양은 대회를 위해 한 달간 윤동주 시인을 공부했다고 밝혔다. 정양은 “윤동주를 잘 몰랐는데, 낭송을 준비하면서 시인의 상황은 어땠는지 등을 지도교사에게 물어보며 더욱 잘 알게 됐다”며 “윤동주 시도 많이 알게 되고 상까지 받게 돼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이정환 KBS 편성마케팅국 팀장은 “학생들이 시인 윤동주를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를 중요하게 봤다”며 심사평을 밝혔다. 이 심사위원은 “시 ‘서시’와 ‘쉽게 쓰여진 시’에서 보듯 윤동주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부끄러움의 시인’이였다”며 “이를 모르고 큰 소리로 저항하듯이 낭독하는 것보다 말하듯 낭송하는 모습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 학생들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대회가 끝난 뒤 슬쩍 물었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많은 학생이 “한국 대학을 입학하고 한국 기업에 들어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민족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고국의 시를 읊어도 이방인으로서 고단함까지 지울 수는 없노라 말하는 듯했다. 서정숙 위원장은 “2018년에는 그동안 낭송대회가 열린 지역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함께 감동을 나누고,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박스기사] 서정숙 윤동주 시낭송대회 추진위원장 - “한국학교 있는 15개국에 시낭송대회 열 것”


▎사진:전주기전대학
‘국제 윤동주 시낭송대회’가 올해로 10회째를 맞이했다. 2009년 전주기전대학 총장이었던 서정숙 위원장이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 방문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서 위원장은 “일본인이 앞장서 윤동주를 추모하는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꼈다”며 “우리도 민간에서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서정숙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에서는 왜 윤동주를 추모하나?

“이곳의 쿠시마 이사장이 자신을 윤동주 시인의 동지사대 5년 후배라고 소개했다. 쿠시마 이사장은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을 헐고 그 자리에 예술대학 건물을 지은 것을 후회한다’며 ‘건물 한편에 윤동주 기념비를 세우고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을 처음 맞을 때도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졸업사진을 크게 확대한 액자 밑에 꽃바구니를 놓고 있었다.”

시낭송대회 전에는 콘서트도 열었다고 들었다.

“윤동주 시인의 6촌 동생이자 전주기전대학 이사인 가수 윤형주 씨와 협의해 시인을 추모하는 콘서트를 2010년에 개최했다. 윤동주 시인이 홋카이도 감옥에서 사망한 날인 2월 16일에 맞춰 교토조형예술대에서도 추모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일본 전역에서 윤동주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 500여 명이 모였다.”

콘서트가 시낭송대회를 열게 된 계기가 된 건가?

“그렇다. 콘서트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윤동주를 노래하길 원한다는 걸 확인했다. 윤동주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을 위해 ‘직접 무대에 서서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낭송할 수 있으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또 글을 읽는 것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낭송 대회가 남녀노소에게 부담 없이 행복을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번 대회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가?

“우리와 다른 모습의 러시아 학생들이 우리말로 윤동주 시를 낭송할 때 울컥하는 감동이 여러 번 있었다. 불과 150년 전에 조선인 13가구가 먹고살기 위해 연해주로 이주하고 1896년 고종과 왕세자가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했던 때가 불과 120년 전의 일이다. 현재 러시아에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대회와 관련해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30여 개 재외한국학교가 있는 15개 국가에서 윤동주 시낭송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윤동주 시를 통해 재외 한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 더불어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넓혀갈 것이다. 또 유·초등부 대상으로 윤동주 동시낭송대회도 기획하고 있다.”

- 글·사진 모스크바=라예진 중앙일보플러스 기자 rayejin@joongang.co.kr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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