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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디지털 변혁 20년 승자의 기록 

콘텐트보다 네트워크에 주목하라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최고 콘텐트만이 성공의 보증수표란 믿음 사라져…고수들은 콘텐트의 전파에 가장 많은 재원을 투입

▎콘텐츠의 미래 / 바라트 아난드 지음 / 김인수 옮김 / 리더스 북 / 2만8000원
“뉴스라는 존재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가?”란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 뉴스는 상품인가, 아니면 고유한 장르인가 라는 의문이다. 그동안 언론사들은 뉴스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수직적으로 관리해왔다. 뉴스는 독보적 존재 가치를 지닌 채 이를 찾는 독자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그러나 결국 뉴스 역시 상품에 불과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에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빠져들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SNS와 포털의 득세로 언론사는 뉴스의 배포·전달·소비 중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게 됐다.

최근 중앙일보 주최 ‘유민 100년 미디어 콘퍼런스’ 참가한 케빈 딜레이니 [쿼츠] 편집장은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콘텐트를 생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흥미로움과 중요성의 교차점 찾기 ▷기사를 짧게 쓰거나 반대로 길게 쓰기 ▷이야깃거리 던져주기 등이다. 애틀랜틱 미디어의 국제경제 사이트인 [쿼츠]는 2012년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로 현재 2000만 명 이상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는 “우리 뉴스룸의 첫 번째 원칙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내용의 교차점을 찾는 것”이라며 “기자들이 할 일은 재미없는 뉴스 속에서 흥미로움을 포착해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콘텐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전혀 다른 시각으로 콘텐트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콘텐츠의 미래]의 지은이 바라트 아난드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텐센트는 어떻게 인스턴트 메시징으로 100조원을 벌었을까? 노르웨이 작은 신문사 십스테드가 42개국 광고 산업을 점령하게 된 비밀은? 빌 게이츠와 구글은 왜 보잘것없는 칸 아카데미에 투자했을까? 이 모든 드라마 뒤에 숨은 하나의 단 하나의 키워드는 ‘연결’이다. 콘텐트보다 네트워크에 주목하라는 주문이다. 네트워크 없이는 콘텐트도 없다는 통찰인데, 오랫동안 최고 콘텐트만이 성공의 보증수표란 믿음에 익숙한 구식 언론인이 받는 상실감과 고통은 극심하다. 그만큼 디지털 세계의 생존원리는 엄혹하다.

다시 바라트 아난드가 제시하는 사례를 일별하자. 불법 음원 다운로드는 시장을 죽이기는커녕 거대한 콘서트 부활로 이어졌고, 디지털 뉴스는 [뉴욕타임스]를 폐간시키는 대신 매년 수억 달러 매출을 일으키고 있다. 이 책은 게임이든, 음악이든, 자동차든, 냉장고든 분야에 상관없이 비즈니스 성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와 제품과 기능을 ‘적절히’ 연결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전 세계 승자 기업의 20년 역사 연구와 실사례 분석으로 완성한 ‘콘텐츠의 미래’다. “콘텐츠에 집중하는 함정에서 벗어나 ‘연결’의 시너지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다.

우리가 잘 아는 애플의 성공은 네트워크의 힘에서 비롯된다. 애플은 뛰어난 하드웨어를 대량 생산하던 기업에서 콘텐트와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기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소유권이라는 장벽을 세우던 기업에서 언제 그 장벽을 허물어야 할지를 아는 기업으로 바뀌었다. 하수들이 콘텐트의 질 높이기에만 급급할 때, 고수들은 콘텐트의 전파에 가장 많은 재원을 투입한다. 신경망이 소화기관보다 우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glutton4@joongang.co.kr

201801호 (201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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