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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석] 문재인 정부, 확증편향 함정 빠지나 

‘대통령 독주(獨走)’ 침묵의 나선 부를라!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콘텐트보다 이미지로 국정 지지율 지탱한다는 비판…불편한 진실 드러내고 상대 포용하는 진보의 가치 퇴색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9%로 200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 실업자 수는 102만8000명. 일자리 늘리기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오히려 청년 일자리 통계 지표가 내리막길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기관에서 산출한 국민행복지수도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떨어졌다는 결과가 있다. (사)국가미래연구원(원장 직무대행 김도훈)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민행복지수는 112.8로 2분기보다 3.99포인트 하락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2017년 2~3분기)는 114.08로 박근혜 정부 평균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10일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에서 출입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과거 정부에서 터져 나오던 ‘헬조선(지옥 같은 한국 사회)을 바꾸자’라는 불만의 목소리가 현 정부 들어서는 쑥 들어간 느낌이다. 왜 그럴까? 박근혜 정부보다 확실히 달라진 풍경이며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여상원 변호사는 “많은 이들이 전임 보수정권과 달리 현 정부는 서민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의 주소를 짚었다. 촛불 민심이 선택한 정부인데다 박근혜 정부와는 극명하게 차별화되는 ‘대비효과’를 누리기에 가능한 결과라고 했다. 여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조차 대통령을 만나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면 문 대통령은 소통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이 인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인 점에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교수는 주목한다. 차 교수는 “소득주도 성장론을 일관되게 견지하고, 야당의 반대를 딛고 공무원 증원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는 등 문 대통령의 일관된 행보가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통령의 행보는 서민지향적이며 친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 대통령은 1월 10일 취임 후 첫 신년기자회견에서 사전에 질문자와 질문 내용을 정하지 않는 ‘백악관 스타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문 대통령은 이날 “새해 정부와 저의 목표는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라며 중점 시책을 제시했다. 그는 “더 정의롭고, 더 평화롭고, 더 안전하고, 더 행복한 삶을 약속해야 한다”면서 “그게 바로 나라다운 나라”라고 규정했다. 촛불 광장에서 확인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 격차 해소, 노동 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같은 근본적인 일자리 개혁 요구를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정책의 방점이 어디 있는가를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해 여상원 변호사는 “국정의 결과는 1~2년 더 지켜봐야 나오겠지만 지금까지는 대통령이 잘해주리라는 기대감과 믿음에 헬조선 같은 구호가 수면 아래 머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정 관련 여론조사 결과도 여전히 정부에 긍정적이다. 한국갤럽이 1월 2~4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7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3.1%포인트, 95% 신뢰수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72%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 대통령 직무 긍정률을 월 단위로 봤을 때도 지난해 9월 69%, 10월 72%, 11월 73%, 12월 72% 등 안정적인 기조를 달린다.

정권 창출과 운영에 참여해본 보수 정권의 한 전략가는 여권의 ‘스킬’에 공감을 표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상징적인 자리에서 국민을 어루만지고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장면의 연출은 정치로서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 행위는 실질보다는 이미지가 모든 걸 삼키는 시대”라고도 했다. 이성보다는 감성적 터치가 먹히는 시대이고 그걸 정부 운영자들이 잘 다룬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정운영의 기본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고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과 마음의 동향을 묻는 여론조사 수치는 별개일 수 있다”고 토를 달았다.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


▎일자리 창출을 중점 정책으로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청년 실업률은 오히려 높아졌다.
늘 그래왔듯이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관점이 다른 탓에 인식에서도 큰 괴리를 나타낸다. 다음과 같은 사례는 그 간극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이불변응만변(以不變應萬變 :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가지 변화에 대응한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새해 들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띄운 첫 메시지다. 그는 1월 5일 “새해를 맞아 가슴에 담은 경구”라며 이 글을 올렸다.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임 실장은 “대통령을 가까이 모시면서 새삼 ‘진심과 정성’의 중요성을 배운다”면서 “대통령은 이 변하지 않는 원칙으로 모든 변화를 헤쳐가고 있다”고 몇 개월간의 보필 소회를 밝혔다. 나아가 “모시는 사람으로서 올해는 저도 열심히 따라 해보려 한다”고 ‘문재인 스타일’ 추종 의사를 밝혔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야당이 강하게 하려면 정부의 긍정적인 측면도 좀 얘기해야 된다. 부정적인 측면만 얘기하면 협력이 안 된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정부에) 지금 긍정적인 측면 하나 있다. 쇼는 기가 막히게 한다.”

이 전 대통령: “그것도 능력 아닌가.”

홍 대표: “그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진실이 담기지 않은 쇼는 그뿐이다. 그래서 저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본다.”

1월 3일 신년인사차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 전 대통령 사무실을 찾은 홍 대표와 이 전 대통령이 나눈 대화록이다.

문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과 서민 행보에서 임 실장은 ‘진심과 정성’을, 홍 대표는 ‘진실이 담기지 않은 쇼’를 읽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눈물이 많다. 최근 영화 [1987] 상영관에서, 지난해 5월에는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 등에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지난해 8월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하는 자리에서도 눈시울을 붉혔다. 참모의 과잉해석이 역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문 대통령이 제천 화재 희생자 유가족을 위로할 당시의 상황과 관련해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숨소리에 울음이 묻어 있었다”고 했다가 “슬픔을 이용한 감성팔이 코스프레”(웹툰 작가 윤서인)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정성은 광범위하게 수용되는 분위기다. 여상원 변호사는 “서민들은 문 대통령의 눈물에서 대통령이 자신들의 편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팟캐스터로 활동하는 이쌍규 스마트미디어앤 본부장은 “세상엔 ‘악어의 눈물(위정자의 거짓 눈물)’도 있지만 문 대통령의 눈물은 성찰의 눈물”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감정의 과시가 먹히는 시대 분위기라면 “연민을 경계하라”던 철학자 니체의 냉철한 직관은 설 자리를 찾기 어렵다.

게다가 문 대통령의 참모들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안다. 박노해 시인이 자신의 시 ‘후지면 지는 거다’에서 말했듯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크기로, 미래의 빛으로 이기는” 시대에 한국은 와 있다. 박 시인은 “적을 타도할 수 없다면 적을 낙후시켜라”고 했다. 나아가 “인간은 후지면 지는 거다”고 강조했다.

박 시인의 말대로 진보 진영이 승리할 때는 늘 시대를 보는 눈에서 우위에 있었다.

“5년 전 10만 명이던 국내 종합정보통신망(ISDN) 가입자가 2002년 말 1000만 명으로 늘었다.”

탈매개·초연결 사회의 승자


▎청와대 여민관 대통령 집무실에 설치된 ‘일자리 상황판’.
노무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03년 1월 천호선 대통령직 인수위 전문위원은 대선 승리의 원동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 있다. 노무현 후보 선대위 인터넷본부 기획실장으로 관련 업무를 총괄했던 그였기에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의 비약적 증가에 주목했던 것이다. 그는 당시 “1997년 대선 당시 국내 유권자들의 극히 일부만 인터넷으로 연결됐다면 2002년 대선은 거의 모든 가구에 초고속 인터넷망이 깔림 셈“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지역별, 직능별 조직에 의존하는 고전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버리고 온·오프라인에서 역동적인 홍보 전략을 폈다.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달라진 환경에 최적화된 선거 전략의 승리이기도 하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렇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전국 시도별, 직능단체별 조직 현황표가 종합상황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역대 대선에서 해오던 방식대로 지역별, 직능별 득표 기준을 세우고 표밭갈이를 독려하는 식이다. 하지만 노무현 후보를 내세운 새천년민주당의 종합상황실은 다소 한가해 보일 정도로 단출할 뿐만 아니라 번지르르한 현황표 같은 것도 따로 없었다. 당시 민주당 종합상황실 관계자들이 “우리는 온라인에서 승부를 건다”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던 기억이 생생하다.

2017년 대선은 대통령 탄핵, 촛불 민심의 동의어로 와 닿는다. 이미 승자를 결정해놓고 치러진 선거와 다를 바 없다. 이에 더해 문 대통령의 주변은 세태 변화를 잘 간파했던 것 같다고 정국 상황을 주시해온 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말한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탄생과 쾌속 질주에는 나름의 동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기존의 엘리트 중심의 수직적 사회 구조에 몸담던 개인들이 요즘은 네트워크 환경에서 직접 연결되는 탈(脫)매개(dis-intermediation) 사회를 살아간다. 과거의 정치는 정당, 여론주도층, 언론, 로비단체 등이 최고 권력자와 일반 유권자의 가교 역할을 했다면 현대 정치는 그 중간층이 사라지고 대통령과 국민이 바로 붙어 있는 시대에 진입했다는 설명이다. 정보기술(IT) 발달로 모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이 네트워크로 직접 연결되는 초(超)연결(hyper connectivity) 사회가 되면서 일반 유권자들이 대세를 결정할 힘을 가지게 됐다. 이 전문가는 “이는 비단 한국만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했다. 정치 아웃사이더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 원내 의석 제로(0)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집권, 영국의 브렉시트(EU 탈퇴) 등이 모두 탈매개·초연결 사회의 결과물인 셈이다.

집권 후에도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국정운영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국민을 상대로 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나 문 대통령의 청와대가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내보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학자는 “공유경제의 선두주자 격인 우버(Uber)가 기존 교통시장 질서와 판도를 뒤집었듯 네트워크의 발달과 함께 정치의 패러다임도 바뀔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래는 탈매개·초연결 환경을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쪽이 정치를 잘하게 된다. 지금 이른바 ‘이니즘’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는 국민과 맞닿은 지점에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는 국정운영뿐만 아니라 향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도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작동할 것이다.”

넘치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충수 늘어나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광주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게다가 보수는 분열됐고 매력을 주지 못한다. 여권이 중대한 실책을 하더라도 여론은 여전히 정부에 우호적이다. 정치권에서는 “야당의 지리멸렬에 따른 어부지리 효과를 여권이 누리고 있다”고 말한다. 뒤집어보면 분열된 보수 진영이 문 정부를 돋보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한국의 정치는 ‘문재인 1강(强)’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을 자기편으로 묶어두는 테크닉도 발군이다. 문제는 자신감이 넘치다 보니 자충수를 두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민단체 경력을 공무원 호봉에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보류한 케이스를 보자. 인사혁신처는 1월 4일 공무원 보수규정 개정안과 관련해 시민단체 경력을 호봉에 반영하겠다고 했다가 시민단체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에 나흘 만에 철회했다. 친여 성향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을 정부부처에 전진 배치하려 한다는 공격을 자초한 것이다. 바른정당 이종철 대변인은 1월 9일 “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자기 식구 챙기기’로 전락했다”고 질타했다.

한·일 위안부 협정의 이면합의 내용 공개 건도 국제사회의 신뢰를 떨어트리고 우리 사회 내부의 반목을 키웠다는 비판적인 평가를 받았다.

지난 12월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는 2015년 당시 한·일 위안부 협정 관련 비공개 합의 내용을 포함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위안부TF는 외교문서 자체를 공개한 게 아니라 문제가 되는 내용만 공개했기에 위법적 요소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시 합의를 주도한 당사자들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하시키는 행위라며 반발했다.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전 외교장관은 “국제 외교 관례를 무시하고 외교부 70년 역사에 전례가 없는 민간 TF라는 형식을 통해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앞으로 우리 외교의 수행 방식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를 저하시킬 뿐 아니라, 우리 외교관들의 고난도 외교 수행의지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누가 책임지나”


▎청와대는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추구한다. 페이스북 라이브에 출연한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 /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12월 15일 방중 일정에 포함된 문재인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의 적절성 여부도 도마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저는 시진핑 주석에게서 중국의 통 큰 꿈을 보았다”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호 증진을 겨냥한 대학 연설이라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스스로를 작은 나라로 칭한 것은 사대주의적 사고가 은연중에 작용한 게 아니냐는 항의에 직면했다. 또 중국의 영웅을 언급하면서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음악가 정율성을 상기시킨 대목도 도마에 올랐다. 그가 북한 군가인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자 한국전쟁 때 중국 팔로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사회주의자라는 경력 탓이다. 바른정당 정운천 최고위원은 “정율성은 6·25 전쟁에 참여했고, 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해서 김일성의 총애를 받았다”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누가 책임 질 것인가, 문 대통령은 여기에 분명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문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이념적, 정서적 배경을 의심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이런 경향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혹자는 정권 주도 세력의 다소 배타적인 국정운영 방식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결과로 풀이하기도 한다. 확증편향이란 일반적으로 자기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아닌 경우는 무시하는 성향을 일컫는다.

청와대와 정부 요직에는 운동권 출신 586(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50대) 인사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기성세대 중에는 이들이 학창 시절 심취했던 반미주의와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났는지 미심쩍어 하는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앞서 언급된 보수 진영의 전략가는 “중국에 두드려 맞다시피 하는 굴욕적 외교를 보면서 과거 586들이 반미주의에 기울었음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런 경향이 지금도 집단적으로 유효한지는 모르겠다”면서도 “현 정부의 과도한 친중 노선은 미국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근저의 욕구가 자양분으로 작용하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고 반문했다.

대통령 만능주의가 사유 가로막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부산역에서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 규탄대회’를 마친 뒤 행진하고 있다.
서성교 바른정치연구원장은 확증편향 논란과 관련해 “쉽게 말하면 좌파 운동권 콤플렉스의 산물로 이해된다”고 주장한다. 서 원장에 따르면 대학 시절 민주화, 사회주의, 주체사상에 심취한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사회주의 붕괴, 북한 경제 실패에 큰 좌절과 혼란을 경험했다. 그 뒤에도 사상적 전향 없이 세월의 흐름에 편승해 지금의 자리에 왔다면 그런 경향성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 정부가 과연 국정의 내실을 제대로 다지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여전히 살아 있다. 통상 국정을 가장 힘차게 추진할 수 있는 기간은 대통령 임기 초 1년 동안이라고 한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사람중심 경제’를 표방하며 비정규직 해소, 법인세, 소득세, 최저임금 인상 정책 등을 밀어붙였다. 이는 시대에 불만 있는 이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효과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일상화된 저성장을 탈피하는 데 필수적인 노사정 대타협과 같은 갈등 이슈는 손을 대지 못했다는 비판이 따른다. 정부가 정작 중요한 현안은 뒤로 미루거나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야권을 비롯한 비판자 그룹에서 나오는 배경이다.

예컨대 정부는 노동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여권이 정신적 지주로 추앙하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도 노동 문제에서 결국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는 아주 쓰라렸다. 지지층과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빚었고 심지어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다.

2009년 노무현재단이 노 전 대통령 어록을 추려서 펴낸 [진보의 미래-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책에서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하면 이를 가는데 김대중·노무현은 채택해버렸다”고 회고했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이상과 현실, 정책이라는 것은 충돌과 타협 속에서 나오는 거라고 했던가”라며 “1990년대 초반 김대중 대통령이든 나든 소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물결의 세례를 듬뿍 받으면서 지나왔다”고 돌이켰다. 그 결정판으로 노동 문제를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은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라고 규정하면서 “아주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 유연성,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 핵심은 그것인데, 정리해고를 거역할 방법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우리가 진짜 무너진 핵심은 노동”


▎1월 10일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시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TV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의 팬덤에 의해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꿰찼고 집권에 성공했지만 결국 그 팬덤에 의해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팬덤이라는 게 원래 서로 얽히고 의지하지만 실질적인 콘텐트가 없으면 모두 무너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지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김 부소장은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노 전 대통령에게 가장 극성으로 반기를 든 쪽이 바로 노조와 시민단체”라며 “그 점을 잘 아는 문재인 대통령은 그래서 노조와 시민단체에 더 집착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철희 민주당 의원도 우선순위나 성과를 판별하는 한 기준으로 ‘지지기반을 흩뜨리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그는 “정권의 지속가능함이라고 할까, 문재인 정부를 넘어 그 이후까지 진보정권을 유지하려면 지지세력을 약화시키는 선택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한 토론에서 말했다.

일부 보수진영 인사들은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행보와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두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 방식은 천양지차다. 한 정치분석가는 “문 대통령은 국정운영과 관련해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언급을 잘 안 하는 편”이라며 “이는 말이 말을 낳고 논쟁으로 비화하기 일쑤였던 노 전 대통령 어법에 대한 학습효과의 결과”라고 간주했다. 문 대통령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메시지를 발산하는 유형이라는 것. 그는 “국정 현안을 직접 언급하기보다 행사장에서 웃고 울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이미지 정치”라고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는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초하는 흡사 ‘확신범’에 가까운 국정운영을 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 지상주의, 안전 제일주의적 관점에서 국정에 임한다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주도세력이 가진 ‘노무현 콤플렉스’의 한 단면으로 이해된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가 벌써부터 매너리즘에 빠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권세력은 초심에 충실한가라는 질문과 맞닥뜨릴 수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일하는 조국 서울대 교수가 2012년 대선에 임박해 펴낸 저서 [지금부터 바꿔야 하는 것들-정글 대한민국 개조론]은 하나의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그는 당시 진보진영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민주노동당, 통진당, 민주노총 등 진보진영을 향해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을 위한 민주진보진영의 고투를 인정하지만 체제를 ‘괴물’로 규정해 투쟁하기만 하고 자신을 성찰하지 못한다면 어느새 자신 속에서 바로 그 ‘괴물’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적이 우리를 음해 공격하려 노리고 있기에 내부자의 중대 과오나 범죄를 묻어버리고 ‘단결’하자는 논리는 자기파괴를 가져올 뿐이다. 진보는 불리한 진실도, 불편한 진실도 모두 다 드러내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비수 같은 날카로움이나 망치 같은 파괴력만이 아니다.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중시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도 웃어넘기며 상대를 끌어안고 자기 정파 이익을 먼저 양보하는 포용력과 넉넉함을 보고 싶다.”

조 교수가 의도한 맥락과는 다를 수 있지만 이를 인용하는 것은 정리해고 규제, 비정규직 해소에 방점을 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핵심부에 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말한 진보가 견지해야 할 덕목은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조 교수는 특히 니체의 경구를 인용하면서 성찰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니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경북대 김광기 교수(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도 지난해 펴낸 [대한민국의 정의를 묻다]에서 ‘적폐는 누구에게나 도사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불공정, 부조리, 불평등은 단지 부패 기득권 세력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김 교수는 “(적폐는) 하도 오랜 세월 지속되다 보니 일종의 학습효과가 돼 우리나라 국민의 일상에, 우리 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면서 “평범한 이들의 삶 속에서도 그 적폐들은 쉽사리 목도된다”고 언급했다. 결론적으로 “나 자신부터 내 삶 속에 딱 달라붙어 있는 이 적폐들을 청산해야 완전한 청산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역사 돌이켜 보면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 행사를 취재하던 한국 기자가 중국 경호 관계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진영으로부터 대(對)중국 굴욕외교라는 비난을 받았다.
넘치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자기 검열과 감정적 탄압의 기운이 드세지는 것도 여권의 현주소다. 정부에 쓴소리 아니,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는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다. 진보진영을 향해 “논쟁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 “당신은 대통령이 못 될 것”이라는 공세에 시달린 안희정 충남지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 강연에서 문재인 지지층을 향해 “문제를 제기할 권리를 적극 보장해야 한다”고 고언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그가 “현재 진행되는 것을 보면(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견 자체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대통령이 하겠다고 하는데 네가 왜 문제를 제기하느냐고 한다면 우리 공론의 장이 무너진다”고 지적한 게 동티가 났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안 지사를 향해 ‘적폐세력’ ‘친일 매국노’라고 쏘아붙이며 “일부러 분란을 일으켜 다음 대선 주자로서 존재감을 알리려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안 지사 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강조했던 열린 토론,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안 지사는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는 등의 반발은 쉬 수그러들지 않았다. 또 얼마 전 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판적인 기사를 쓰면 대통령 지지자들이 보내는 격한 댓글이 많다’고 질문한 기자에게도 엄청난 비난 글이 쏟아지기도 했다.

자유로운 토론이 되자면 누구든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극성 지지자들의 억지 논리와 언어농단으로 공론의 장이 피폐화되는 상황에서는 침묵의 유혹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문재인은 문재인이고 그거면 됐다’는 식의 대통령 만능주의가 냉정한 사유를 가로막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일이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최근 [그리스인 이야기] 시리즈를 집필 중이다. 국가의 정치체제와 지도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책이라는 평가가 따른다. 시오노 나나미는 지난해 말 [일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물고기는 머리부터 썩는다”고 갈파했다. 그는 “민중은 대부분 마지막까지 건전하다”고 전제, “정치가 먼저 썩으면 민중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국력은 점점 쇠퇴해간다”고 고찰했다. 물고기의 머리는 인류 역사에서는 정치에 해당한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그래서 “정치가 기능하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도 역사의 한 조각이라면 국정 운영에 참고할 만한 경구라 하겠다.

- 박성현 월간중앙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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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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