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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UAE 원전 스캔들’ 전말(顚末) 

청와대-야권 진실게임, 최후 승자는 누구?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비서실장 ‘임길동’의 잠행(潛行)에 정치권 요동… 원칙은 실종, 정치적 셈법만 난무

▎1월 12일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원내대표실로 이동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이날 국익을 위해 UAE 스캔들을 더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중동에서 불어온 열풍이 세밑을 뜨겁게 달궜다. 이른바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스캔들’. 임종석(52)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사 자격으로 UAE를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방문 배경을 두고 갖은 의혹과 추측이 난무했다. 이명박 정부 때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태영(68)씨의 폭로에 가까운 고백도 있었다. 수수께끼가 풀리는듯하더니 여야 정치권은 의혹 파내기를 멈췄다.

의혹이 제기된 지 한 달 만인 1월 12일 임 실장이 김성태(59)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만나면서 스무고개 넘기 식 정치 공방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두 사람은 “국가의 신뢰와 이익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덮자’는 합의다. 현 정부가 적폐 청산을 내세워 과거 정권의 잘못을 샅샅이 찾아내 심판대에 올렸던 것에 비춰볼 때 한국당과 타협에 나선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의혹이 명쾌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다. 다만 김종대(51) 정의당 의원이 제기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 수주에 대한 대가성 군사지원 밀약설이 정설로 굳어졌을 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김 의원은 “합의 내용을 낱낱이 공개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정부의 고민을 이해한다”면서도 “무조건 덮어두기보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청와대는 추측과 의혹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으며, 대정부 투쟁의 호재로 여겼던 한국당은 이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한 것일까? UAE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선 시간표를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조원 규모의 UAE 바라카 원전 건설사업을 따냈던 시기다. 스캔들이 본격화한 건 그로부터 9년 뒤인 지난해 12월 임 실장이 UAE로 떠난 때부터다. 여야의 대처는 국익으로 포장된 정치적 셈법이나 다름없었다.

지난해 12월 10일 청와대는 임 실장을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UAE와 레바논에 파견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외국 특사로 파견되는 것은 14년 만이다. 2003년 참여정부 초기 문희상 비서실장이 아르헨티나 대통령 취임식에 노무현 대통령의 경축 특사로 파견된 게 가장 최근의 일이다. 임 실장의 파견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는 게 당연했다. 임 실장이 ‘모종의 특별 임무’를 띠고 간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14년 만의 ‘비서실장 해외 특사’ 왜?


▎이명박 정부 때 수주한 UAE의 바라카 원전 1, 2호기의 모습. 3세대 한국표준형원전(APR1400) 기술을 적용했다.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군사지원을 약속한 비밀 협정이 체결됐다.
청와대는 ‘해외 파견 부대 장병 격려’를 위한 방문이라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12월 10일 브리핑에서 “임 실장이 해외 파견 부대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 9일부터 12일까지 2박4일 일정으로 UAE 아크부대와 레바논 동명부대를 차례로 방문 중”이라고 했다. 일정 중에는 무함마드 빈자이드 알 나하얀 UAE 왕세제와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을 예방하는 외교 일정도 포함됐다. 그리 대수로울 게 없어 보였다.

이보다 10여 일 앞선 11월 29일 북한이 탄도미사일 ‘화성-15형’을 발사한 뒤여서 대북 제재와 관련 중동과 협력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또 평창겨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뜻도 담겨 있을 것으로 정치권은 관측했다.

그러나 청와대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석연치 않았다. 임 실장이 방문한 아크부대와 동명부대는 불과 한 달 전 송영무(68) 국방부 장관이 방문한 적이 있다. 국방부 장관이 이미 격려 방문한 곳을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사로 재차 방문한다는 건 어색한 일이다. 청와대는 “비밀 임무는 없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 추측과 의혹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첫 의혹은 임 실장의 잠행이 이명박 정부의 비리와 관련됐을 가능성으로 모아졌다. 자원외교 등 이 전 대통령의 치적 사업에 대한 비리 의혹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에 앞서 정부가 UAE에 양해를 구하려고 임 실장을 파견했을 것이란 게 의혹의 핵심이었다. 2009년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원전 수주를 계기로 한국과 UAE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청와대는 의혹을 부인했다. 출입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임 실장이 이전 정권 비리와 관련해 중동지역을 방문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윤영찬 국민소통 수석도 “일부 방송사의 확인되지 않은 과감한 보도에 유감을 표시한다”고 톤을 높였다.

MB정부 비리 캐러? 한국당이 덥석 문 미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월 9일 칼둔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과 서울 성북구 한국가구박물관에서 오찬회동을 마치고 나오며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원내대표 취임과 함께 전열을 재정비하던 자유한국당은 이를 호재로 받아들였다. 다스 실소유주 의혹 등 검찰의 수사가 이 전 대통령을 향하던 때였다. 정부가 적폐 청산을 빌미삼아 외교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기에 좋은 소재였다. 김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처음 주재한 원내대책회의에서 “MB정부 원전 수주와 관련해 터무니없는 얘기를 퍼뜨리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UAE 왕세자가 국교 단절까지 거론하며 격렬하게 비난하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 임 실장이 달려갔다는 소문이 나돈다”며 “국회 운영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실제적인 내용을 정확히 밝히겠다”고 반발했다.

한국당은 이를 ‘외교 참사’ ‘진화(鎭火) 외교’라고 규정했다. 이 전 대통령 측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한국당은 19일 국회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임 실장을 출석시키겠다고 별렀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갓 취임한 김 원내대표로선 청와대를 향한 대여 투쟁의 소재로 이만한 게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청와대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청와대측은 “김 원내대표가 말씀한 내용에 대해 청와대로선 ‘드릴 말씀이 없다’가 답변”이라고 했다. 운영위 소집을 이틀 앞두고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야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의혹에 살이 붙고, 가지가 뻗었다. 이번엔 한국의 탈원전 정책이 UAE의 불만을 불렀다는 ‘설’이 나왔다. 임 실장이 12월 10일 무함마드 왕세제를 면담하는 자리에 바라카 원전 건설 총책임자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원자력공사(ENEC) 이사회 의장이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칼둔 의장이 “거액을 주고 바라카 원전 건설과 함께 완공 후 관리·운영권도 맡겼는데,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건설과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는 것이다. 2006년 10월에 한전이 따낸 바라카 원전 운영권은 54조원에 달했다.

청와대는 “임 실장의 방문은 양국의 국가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큰 틀의 차원에서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회동이었다”고 했다. ‘파병부대 장병 격려차’란 최초 해명과 확연히 달랐다. 다만 칼둔 의장이 배석한 것은 “아부다비 행정 청장 자격이었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파트너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의혹은 진실게임 양상으로 접어들었다. 정치권이 의혹을 제기하면 청와대가 부인하고, 새 의혹이 나오면 다시 “그건 아니다”고 부인하는 식이다.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답을 피하려는 모양새가 역력하자 한국당은 “진실을 얘기하라”며 공세의 고삐를 바짝 좼다. 임 실장은 국회 운영위 개최를 하루 앞두고 돌연 휴가를 냈다. 야당의 공세를 피하겠다는 청와대의 의도가 더 분명해졌다.

“외교 참사” 야당 비난에도 청와대 ‘함구령’


민주당을 제외한 야 4당(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은 일제히 청와대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민주당의 대응도 청와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급 자체를 삼가거나 정쟁으로 치부하는 식이다. 최근 한 야당 의원은 기자와 통화에서 “청와대에서 민주당에 함구령을 내렸다고 들었다. 사실 민주당 내에서도 ‘청와대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다’고만 짐작할 뿐 내막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청와대의 모호한 태도는 계속됐다. “왕국인 UAE 의전규칙상 (접견) 내용은 비공개라고 한다. 다 브리핑할 수 없는 것을 양해해 달라. 뭘 숨겨야 할 사연은 없다”는 청와대 입장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다”는 암시가 들어 있었다.

현 정부의 이런 태도는 다소 이례적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의 일정을 세세히 공개하겠다며 투명성을 강조해왔다. 아방궁처럼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전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한데 유독 UAE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였다. 기밀로 분류된 한·일 위안부 협약의 내용마저 공개 방침을 세웠던 것과도 대조적이었다. 이런 청와대의 태도가 정치권에는 ‘뭔가 있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당은 이를 정부·여당의 아킬레스건을 움켜쥘 만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한국당은 의혹을 ‘게이트’로 확대 규정했다. 발표가 나온 지 열흘째인 19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문재인 정권 출범 8개월 만에 ‘아랍에미리트 원전 게이트’가 터졌다”고 했다. 장제원 한국당 대변인은 “어설픈 원전 포퓰리즘 정책과 100조의 국익을 바꿔버릴 뻔한 의혹, 전임 정권에 대한 치졸한 정치보복으로 국익 100조를 날려버릴 뻔한 의혹에 대해 이실직고하고 국민들 앞에 참회하라”고 몰아세웠다. 그는 “세간의 풍문”이라며 “문재인 정권이 정치보복을 위해 이 전 대통령의 뒤꽁무니를 캐다가 심지어 UAE 왕실 자금까지 들여다보다 발각됐고, UAE 왕실이 격노해 국교를 단절하겠다고 항의하니까 이를 무마하기 위해 임 실장이 국정원 1차장을 대동하고 UAE 왕세제에게 고개 숙이고 사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의 해명은 다시 한 번 바뀐다. 한병도 정무수석은 12월 26일 “문 대통령의 친서 전달차 방문했다”면서 “외교적 관례, 신의의 문제가 있다”며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런 상황을 청와대가 즐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나서서 전말을 밝힐 순 없었겠지만 의혹이 증폭되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을 거다. 관심이 증폭됐을 때 전 정권의 잘못으로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게 드러나면 일거에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말을 아끼면서 오히려 표정 관리하느라 힘들었을 거다.”

지리멸렬한 스무고개 넘기 식 공방이 계속되는 와중에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원전 수주 당시 양국이 군사 관련 협약을 맺었고, 여기에 문제가 생겨 임 실장이 급파됐다는 내용이다. 임 실장보다 한 달 앞서 송 장관이 UAE를 다녀온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됐다. 박근혜 정부가 원전 수주 과정의 이면계약을 국정원을 통해 조사했다는 정황과 임 실장이 특사 파견 직전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독대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국회 출석 압박하자 임 실장 돌연 휴가


▎1.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이 1월 9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UAE 비밀군사지원협정의 전말을 밝히고 있다. / 2. 2010년 2월 1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의원들로부터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새로운 의혹은 김종대 의원에 의해 구체화됐다. 김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UAE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군사협력을 약속한 비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박근혜 정부가 이를 이행하지 않아 외교적 갈등으로 비화됐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특전사 150명으로 구성된 아크부대 파병이 당시 MOU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원전 경비와 유사시 우리 군 병력 보호란 아크부대 파병 목적은 ‘위장된 명분’이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이 병력을 철수하지 못하는 까닭도 원전 수출로 이어진 일종의 이면합의 때문이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국방부와 외교부의 전·현직 고위 관계자들을 상대로 취합한 정보에 따르면 당시 MOU 내용은 군 병력 파견, UAE 군의 교육훈련, 각종 탄약과 장비 제공, 방위산업 기술협력 등이다.

UAE와 체결한 MOU는 모두 6건이다. 5건은 이명박 정부 때 체결했고, 나머지 한 건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였다. 국회에는 한 차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MOU에는 군사력 지원 등 동맹에 준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없는 ‘자동 개입’ 조항이 MOU에 들어 있는 것으로 여러 관계자를 통해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국회의 비준동의가 필요한 국가 간 조약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헌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한 현 정부가 송 장관을 보내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가 UAE 측의 반감을 샀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임 실장을 보냈다는 가설이다.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언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닌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의 입을 통해서다.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이 MOU를 체결했다고 했다. (중앙일보 1월 9일자 3면)

김 전 장관은 2009년 9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장관을 지냈다. 재직 시 UAE를 3차례 방문했다. 그는 “섣불리 국회로 가져가기보단 내가 책임 지고 (비공개 군사) 협약으로 하자고 했다. 지금 시각에선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땐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자동 개입 조항이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렇게 약속했다. (다만) 실제론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군사 개입을 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김 전 장관은 “UAE는 오랜 기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다. 위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적고, 만약 발생해도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상대국에 자동 개입을 약속해놓고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것은 자국 국민을 기망한 것이고, 김 전 장관 말대로 실제 병력 투입이 필요할 때 국회 동의를 받으면 된다고 판단했다면, 이는 상대국을 기망한 것이다”고 말했다.

원전사업 따내려 자동 군사개입 밀약


▎2009년 12월 26일 원자력발전소 건설 수주를 위해 UAE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아부다비 왕실 공항에 마중 나온 무함마드 아부다비 왕세제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는 사실상 군사력 수출이나 다름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아크부대 파병을 계기로 UAE의 무기 구매도 급격히 늘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파병 전 5년(2006~2010년)의 UAE 무기 수출액은 393억원이었지만 파병 후 5년(2011~2016년) 동안 1조2000억원으로 약 30배나 늘었다.

당초 한국의 합참의장 격인 알 루마이티 UAE 총참모장은 2009년 12월 UAE를 방문한 김 전 장관에게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요구했다고 한다. 알 루마이티 총참모장은 2011년 이 전 대통령과 2015년 박 전 대통령 방문 때 수행단에 참여하는 등 한국측과 접촉 빈도가 높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국회 동의를 받기가 어렵다는 판단과 조약 체결에 부정적인 외교부의 반대 때문에 비밀 MOU로 격하했다는 것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외교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실상 조약에 가까운 MOU를 국방부 장관이 단독으로 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비공개 안건으로 논의됐고, 이 전 대통령이 승인했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했다.

아크부대 파병안은 2010년 12월 8일 국회를 통과했다.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처리했다. 헌법 전문가는 김 전 장관의 증언에 위헌적 요소가 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헌법 5조 1항에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돼 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엔 평화유지군도 아니고 다국적군 소속도 아닌 아크 부대의 성격은 이전의 해외 파병 부대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게다가 UAE가 전쟁 발발 시 자동 개입한다는 조항이 들어있는 협정을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고 비밀리에 처리한 것은 헌법 위반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만약 이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었으면 탄핵 사유가 되고도 남는다”는 정치권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외교적 파장이 확산되길 원치 않는 청와대와 드러날수록 궁지에 몰리게 된 한국당이 확전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MOU가 유효한 이상 언제든 UAE와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동 정세는 “UAE는 오랜 기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은 나라”라는 김 전 장관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2015년 1월 시작된 예멘 내전은 이번 스캔들의 도화선이다. 시아파 극단주의 세력인 후티 반군이 일으킨 예멘 내전은 사우디와 UAE의 군사 개입으로 4자 동맹(레바논·후티 반군·북한·이란)과 걸프협력회의(GCC: 사우디·UAE·오만 등)의 국제전으로 확대됐다.

“헌법 위반 사안, 현직이었으면 탄핵감”


▎예멘 내전에 참전한 아랍에미리트 육군. 예멘 내전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 성격으로 진행돼 중동 안전을 위협한다. / 사진:UAE 육군 사이트
지난해 7월 후티 반군이 사우디를 향해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하고, 반군 내 중립파인 살레 전 예멘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상황은 더 긴박해졌다. 직접적인 미사일 공격에 노출된 UAE로선 한국이 약속한 군사 개입 이행을 요구하기에 적당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UAE에 진출해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한국 기업과 원전 사업은 볼모나 다름없었다.

‘군사력 수출’을 명분삼은 특정 국가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비단 UAE에 그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엄격히 관리해야 할 비축무기를 수출한 게 대표적이다.

2015~2016년 사이 전시에 대비해 공군이 비축한 한국형 유도폭탄인 KGGB(Korea GPS Guided Bomb) 150발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반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군 당국은 KGGB 수출 전 과정을 3급 군사비밀로 지정해 국회에 보고하지 않고 은밀하게 추진했다.

김 의원 등 복수의 국회 국방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공군은 2016년 ‘Pre-ATO(Prepositioned Air Tasking Order: 유사시 공중임무명령서)’에서 기존에 반영해 비축하고 있던 KGGB 3일치(150발)를 제외했다. KGGB는 개발업체인 LIG넥스원에 대여됐고, 업체는 이를 사우디에 수출했다가 이듬해 8~10월에 현물로 상환했다. 당시 KGGB 비축물량은 일주일분도 채 되지 않아 전시 목표량인 30일치에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국방부 측은 “중동지역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016년 4월 8일자 러시아 언론 [리얼 러시아 투데이(Real Russia Today)]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의 유도폭탄을 구매했다”고 보도했다. 또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SIPRI, www.sipri.org)는 매년 세계 각국의 무기 수출 데이터베이스를 공개하고 있어 대규모 무기수출을 비밀로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에서 이미 공개된 것을 국내에선 군사비밀이란 딱지를 붙여 철저히 숨겼던 것이다.

외교가에선 정부의 대 중동 군사부문 협력 사업이 균형을 잃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외교부 고위 관료 출신의 한 외교문제 전문가는 “국산 첨단 무기를 수출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때와 장소는 가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시 비축무기까지 사우디에 몰래 팔아

중동의 군사 협력 사업이 사우디·UAE 등 수니파 동맹에 치우칠 경우 경쟁관계에 있는 이란 등 시아파 동맹 지역에서 한국에 대한 반감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 수요가 많은 중동 시장의 절반을 잃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지에 나가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만약 수출된 유도폭탄이 중동 분쟁에 실제 쓰였다면 반대 세력의 보복 대상에 한국이 포함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1월 12일 임 실장과 김 원내대표의 만남으로 한때 ‘게이트’로 확대될 뻔한 UAE 스캔들은 의혹을 남긴 채 봉합됐다. 이보다 앞서 칼둔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방한으로 양국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일정 부분 성과로 보일 수 있지만 양날의 검일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이 첨예한 중동에서 외교의 균형 추를 바로잡는 것도 이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다. 외교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이미 정치적·외교적으로 합의가 끝난 마당에 평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면서도 “UAE와 관계 개선의 기회가 된 점은 긍정적이지만, 향후 중동의 다른 나라들과 관계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도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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