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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기획] 6월 지방선거 야권 3당 대격돌 

본선(대선)보다 예선(지방선거)이 더 치열한 이유 있었네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호남 버리는 안철수, 대구의 ‘이단아’ 유승민 합종책으로 중원 노려…개인기 뛰어난 홍준표, 안목과 인화(人和)의 리더십 확보가 관건

6월 지방선거는 여야의 운명을 가를 승부처이기도 하지만 보수 진영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험대이기도 하다.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보수의 대표성을 놓고 격돌하는 무대가 바로 지방선거인 것이다. 시야를 보수진영 내부로 국한한다면 야 3당은 영웅호걸이 천하를 놓고 쟁패를 벌이던 중국의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연상케 한다. 거대 정당을 거느린 홍준표 대표, 호남을 기반으로 중원을 넘보는 안철수 대표, 수도권 지지기반을 밑천으로 뒤집기에 나서야 하는 유승민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1월 15일 자유한국당 부산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지방선거 필승을 다짐하는 희망의 대북을 치고 있다. / 사진:송봉근
천하를 놓고 벌이는 쟁패(爭覇)에는 여러 가지 양상이 있다. 초한지(楚漢志)의 양강대전과 열국지(列國志)의 어지러운 다자 대결이 대표적이다. 그 중간쯤에 제3의 대안으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가 있다. 중국 역사책 [삼국지]의 ‘3국 쟁패’가 가장 상징적이다.

제갈공명이 주창한 ‘천하삼분지계’는 듣기엔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 상당히 불안정하다. 그래서 더 드라마틱하다. 이런 불안한 상황은 백성들에게 고통을 준다. 각국이 서로 치열하게 싸우다보면 군주가 자주 바뀔 수밖에 없다. 백성들은 그때마다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동원의 대상이고 점령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쟁패가 얼마간 지속되면 고통을 감내하던 백성들은 통일제국을 바란다.

그런 여망에 힘입어 천하를 통일한 제국은 초기에는 개혁에 매진한다. 그러나 제국이 지속되면 안정된 나라는 결국 부패와 무기력에 빠지게 마련이다. 사회는 점차 양극화되고 권력은 유연성을 잃는다. 백성들은 다시 ‘나라님’을 원망하고 새로운 지도자와 체제를 갈망한다. 그 원성의 강도와 영웅의 출현에 따라 쟁패의 양태가 결정된다. ‘달이 차고 기울기를 반복하듯’ 역사는 통일과 해체를 그렇게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천하삼분지계’는 수시로 명멸한다.

현대 한국 정치에서도 ‘천하삼분지계’가 등장하곤 했다. 보수·진보 양대 정당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김종필의 ‘자민련’과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이제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등장했다.

국민의당은 과거의 유사 정당들과 좀 다른 점이 있다. 교섭단체를 자력으로 만든 것이다. 김종필·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전성기를 넘어 얼마 남지 않은 자산으로 정당을 만들었다. 정치 인생의 내리막길이었고 기반도 충청권에 한정돼 있었다. 그래서 의석수를 충분히 채우지 못했다.

반면, 안철수 대표는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희망과 미래가 있다. 처음(20대 총선까지)에는 호남에 의지했으나, 그 후에 중원(수도권과 충청권)까지 뜻을 두고 있다. 국민의당이 총선과 19대 대선이 워밍업이었다면 새로 추진하는 ‘통합신당’은 다음 대선을 향한 포석이다. 그래서 안철수의 ‘통합신당’ 시도는 그 자체가 드라마다. 국민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유비 안철수, 호남 중진 버려야 호남 민심 얻어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14일 대표 취임 인사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예방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박종근
안철수의 대선 승리 전략의 핵심은 호남 민심이다. 어차피 영남 대표 후보는 나올 것이다. ‘포스트 문재인’ 시대 호남의 대안은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호남 민심은 ‘대권 가능성이 큰’ 비(非)영남권 주자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영남 출신이지만 비영남권을 대표했던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에게 호남표가 쏠렸듯이 말이다. 문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호남 중진을 버렸다. 그렇게 명분을 쌓아 영·호남 이외의 지역에서 대안임을 확실히 과시했다.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진 문재인 후보를 호남은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당선시켰다. 이 과정을 본 안철수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안철수를 [삼국지]의 유비에 대입하자면, 호남은 형주성과 같은 곳이다. 호남은 안철수에게 중요한 교두보인 동시에 부담이다. 유비는 형주의 성주인 유표와의 공조(정확히는 빌붙어서)를 통해 공동의 적에 대항했다. 하지만, 딜레마에 빠졌다. 유표 집안을 버려야 형주를 차지할 수 있고, 그래야만 그가 꿈꾸는 ‘대업’의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다. 정치인에게 배신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아닌가. 그 과정에 지탄받지 않을 정도의 정치력과 쇼맨십이 필요할 뿐이다.

안철수에게 호남 의원들은, 형주를 물려받겠다고 각축하는 성주 유표의 아들들과 같은 존재다. 유비는 유표에겐 의리를 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형주를 차지하기 위해 아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다. 일단 교두보에 입성할 때는 도움이 됐지만 유표 집안은 결국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남 의원들은 끊임없이 여당의 곁불을 쬐고 싶어 한다. 그들의 안전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안철수를 포박해 끌고 가서라도 투항할 것이다. 호남 중진의원뿐 아니라 호남 자체가 대권가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촉나라 건국 이후 유비는 형주를 통치하던 관우를 잃었다. 유비가 천하통일의 대업에 실패하고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도 형주였다. 형주는 희망찬 시작이고 아쉬운 결말의 단초였다. 안철수가 호남을 지키려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다. 호남에서 희망을 찾았지만, 그곳은 궁극의 좌절이 내포하는 땅인지도 모른다.

안철수는 호남에 읍소한 20대 총선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당시 문재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팽(烹)’당한 호남 의원들에게 안철수는 구세주였다. 안철수의 대권욕에 편승해 배지를 유지했다. 안철수도 문 전 대표나 같은 처지였으니 서로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리품 배분은 비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관들도 위기에 과감하게 깃발을 들었던 안철수를 더 높게 평가할 것이다. 구심점 없는 (호남)군영은 오합지졸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이에나 무리 피해 늑대와 연대


▎지난해 10월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만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총선 이후 좋은 분위기에서 대선이 치러졌다. 안철수는 ‘다크호스(dark horse)’였다. 대선 경쟁력에 확신을 주지는 못했으나 뜻밖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물이었다. 양보만 하던 ‘철수 안철수’가 ‘강철수’라 칭해 달라며 포효했다. 목소리 톤도 내용에 맞게 바꾸었다. 보수 여당의 지리멸렬도 작용했겠지만, 안철수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도 컸다. ‘폭망한’ 보수 야당을 지지할 수도 없었고, 현 집권층을 지지하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대선 기간 중기까지 돌풍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방송 토론의 미숙, 결단의 유예로 결국 그 인기를 유지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캠프는 ‘친안(親安, 친안철수)계’와 ‘호남계’로 나뉘어 갈등했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문준용 관련 증거 조작사건’에서 그 실체가 여실이 드러났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능한 조직에서 리더의 미숙은 결정적인 패인이 된다. 그렇게 패했고, 치욕을 당했다.

대선 패배 후 호남 중진들은 안철수를 따돌렸다. 한마디로 이용가치가 다 된 것이다. 매장될 수 있었던 패장 안철수가 당대표로 복귀했다. 그리고 스스로 또 ‘달라졌다’고 말한다. 소통이 늘어난 만큼, 말 바꾸기도 늘었다. 모험도 늘었고, 포기도 과감해졌다.

안철수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강행하며 결국 ‘호남을 버리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호남 민심을 얻기 위해 호남 중진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 논리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지도를 보면 국민의당 호남 중진의 ‘호남정신 발언’은 힘을 잃는다. 문 대통령과 현 여당의 고공 지지도는 호남 적장자를 주장하는 국민의당을 무색하게 만든다. 안철수는 2년 전 문재인 전 대표의 심정을 100% 동감하게 됐을 것이다. 호남 중진들은 멀미가 날 정도로 대표를 흔들었고, 어린애 취급했다. ‘구상유취(口尙乳臭)’는 호남중진이 붙여준 안철수의 별명이 됐다. 권위를 손상시키고 리더십에도 상처를 주었다. 2년 전 문재인 전 대표 때처럼 말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부의 조력이 필요하다. 천하를 차지한 문재인도 김종인의 도움을 필요했듯이 말이다. ‘줄탁동기’라 했던가.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때 안에서 껍질을 깨면 밖에서 어미가 알을 쪼아준다. 그 어미 역할을 유승민 대표와 바른정당에 맡긴 것이다. 의원 수라는 덩치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홀로서기’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호남 중진을 제외하고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만들려면, 바른정당의 10명 안팎 국회의원들은 외면할 수 없는 중요한 우군이다.

뒷다리에 매달린 하이에나 무리를 피해 늑대와 연대하는 것이다. ‘독자 교섭단체’는 통합 반대파를 견제하고 중도파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탈당파를 줄여야, 경쟁할 제4당 출현을 막을 수 있다. 실속 있는 제3당을 만들어 정치적 파이를 키운 후에야 유승민 대표와 당내 대결이 의미가 있다. 둘 간의 경쟁이 제대로 된다면 새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시선을 끌 수 있고, 대권 가능성도 커진다. ‘40대 기수론’으로 서로 경쟁하며 파이를 키운 YS, DJ처럼 말이다. 이대로 가면 국민의당은 여당에 흡수될 것이고, 안철수는 ‘서서히 끓는 물에 익어가는 개구리 같은 신세’가 될 게 뻔하다. 그나마 힘이 좀 남아 있을 때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상식에 부합하는 일이다.

안철수가 유비라면 유승민은 손권이다. 손권은 ‘강동의 호랑이’인 아버지 손견, ‘소패왕’으로 불린 형 손책에 이어 오나라를 경영했고 스스로 황제에 즉위한 인물이다. 강남의 최고 명문가요, 기린아 집안 출신이다. 유승민 집안도 만만치 않은 명문가다. 아버지는 판사에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지역 기반도 ‘보수의 심장’이라 불리는 대구다. 아들 유승민도 대구에서 출마해 내리 4선을 했다. 아버지는 박정희 정권 때 사법파동으로 법복을 벗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안과 악연이었지만 아들 유승민은 박근혜 대표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원조 친박’을 자임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선 박근혜 대통령과 불편한 사이가 됐다. 대구를 기반한 정치인으로서 대구가 만든 박근혜 정부와 각을 세우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대통령에 필적하는 남다른 자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유승민의 생존 전략, 손권의 적벽대전을!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국민의당 지키기 운동본부’ 소속 의원들이 1월 14일 국회에서 독자 신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강정현
유승민의 생각에 대구는 온전히 그의 텃밭이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경북은 최경환, 대구는 유승민이 대리 관리했다.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객(客)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개인적인 연고도 없었고, 지역 정치에 깊이 개입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대구에 너무 늦게 들어갔다.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지역과 연고를 맺기는 힘든 조건이었을 것이다. 대구의 특성상 보수를 대표하는 정당은 지역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특히 보수 정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더욱 그렇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인물이었다. 성격도 그리 세세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세상물정을 잘 몰랐다.

유승민은 달랐다. 지역에서 학연도 탄탄했고, 집안도 지역과 잘 결합돼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 지역을 열심히 닦았다. 소싯적 아버지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커서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런 그의 훌륭한 배경과 자부심이 역설적으로 큰 시련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볍게 보고 ‘역린(逆鱗)’을 건드렸다. 권력자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렸다가는 죽음을 면키 힘들다. 유승민은 이를 간과했다. 그녀의 측근들을 얕보고 거칠게 말해 박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수족을 욕보이는 것은 절대 권력자에게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표비서실장일 때 유승민은 박 전 대통령 측근들의 준(準)보스였다. ‘대표의 지시를 받아’ 그들을 통할했다.

그러나 수행 비서와 핵심 측근들은 비서실장과는 일정한 긴장관계가 있기 마련이다. 유승민은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못했고 안 했다. 그 후 비서실장도 아닌 사람이 그들을 가볍게 여기고 심지어 ‘얼라들’이라며 모욕했다. 과거 환관들이 재상과 장군들의 홀대를 참지 못하고 거짓 역모를 꾸며 제거했던 전형적인 사례를 그들이 답습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런 이유로 유승민은 본가에서 배척당했고, ‘배신자’의 오명을 썼다. 이후 그의 대처도 서툴렀고 안이했다. 탄핵 국면에서 집안의 위기를 모른 체하고 기둥을 뽑아 딴살림을 차린 것이다. 만약 그가 어려움 속에서도 당을 지켰다면 유력한 대선후보가 됐을 것이고 홍준표 대표도 설 자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어 본가는 망하고 빈틈을 노려 홍준표 경남지사가 ‘파산 관리인’으로 주인 행세를 했다. 그는 종손은 아니지만 집안과 관계가 전혀 없는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당 복귀 일성으로 스스로 ‘보수의 적자’라 선언하고, 유승민을 ‘배신자’라며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재산을 놓고 벌이는 전형적인 집안싸움이고 적통 경쟁과 다를 바 없다.

바른정당은 대선 이후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내부 갈등도 심했다. 유승민은 왜소해진 당에 대표로 복귀하며 명예회복과 금의환향을 각오한다. 마침 기회가 왔다. 안철수가 손을 내민 것이다. 안철수에겐 탈출구가 필요했고, 유승민에겐 발판이 필요했다. 유승민은 중원에 교두보를 만들고 고향에 개선장군으로 돌아갈 생각일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춤거리기도 했다. 샅바싸움도 간단치 않은데, 본게임은 어떻겠는가? 주목을 끌어 존재감을 보이는 대신 위험도도 높아졌다.

손권의 입장에서 ‘적벽대전’은 사실 오나라 내부의 호족들을 제압하고 왕권을 굳건히 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전쟁은 대부분 왕권 강화를 위한 좋은 수단이다. 손권에게도 본인의 정치생명과 나라의 존망을 걸고 벌인 모험이었다. 조조에게 항복하는 척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었으나 그래서는 영이 안 서고 권력은 불안정해진다.

안철수와 마찬가지로 유승민도 존립의 위기에 놓여 있다. 내부의 구심력은 점점 약화되고 거대한 외부의 힘(자유한국당)이 원심력을 강화시켰다. 내분을 수습하자면 주적에 대항할 수 있는 동지가 필요하다. 정치적 활로를 찾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같은 처지인 안철수와 당장은 훌륭한 동지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게다가 ‘제3 대안’이라는 국민적 명분도 있다. 어느 정도의 ‘샅바(통합신당의 당권)싸움’은 피할 수 없지만,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생존 이후의 문제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다. 눈앞의 위기를 넘기 위해 그 정도의 갈등과 모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여포 홍준표와 보수 영토 쟁탈전


▎2015년 청와대에서 만난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두 사람은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완전 결별했다.
손권이 유비와 힘을 모아 공동의 적 조조를 물리친 ‘적벽대전’의 주력은 오나라였다. 그러나 유비는 작은 전력으로 투자 이상의 결실을 얻었다. 인물의 특성으로 안철수를 유비로, 유승민을 손권으로 비유했지만, 객관적인 국가 간 전력으로 보면 반대다. 국민의당이 오나라고, 바른정당이 촉나라(사실 이때만 해도 촉은 없었음)다. 유승민은 유비가 그랬듯이 적은 전력으로 참전해 더 큰 전리품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탄핵 사태 이후 보수진영은 갈 길을 잃었다. 탄핵 사태가 없었다면 절대로 등장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인물 홍준표가 대선후보가 되고 당대표가 됐다. 그만큼 자유한국당 내 인재가 고갈된 것이다. 한쪽은 ‘친박’이라는 딱지가 붙었고, 다른 쪽은 ‘배신자’의 낙인이 찍혔다. 그나마 바른정당에 남아 있는 이들은 ‘확신범’ 취급을 받았지만, 복당파들은 ‘기회주의자’란 오명까지 더해졌다. ‘차 떼고 포 떼다 보니’ 홍준표가 대표주자가 됐다.

홍준표는 무공이 뛰어난 승부사다. 삼국지의 여포와 같은 맹장이다. 여포가 이민족이라서 평가절하됐듯이 홍준표도 액면가치에 비해 평가절하된 측면이 많다. 그의 정치적 기반도 간단치 않다. 지역적 기반은 기존 정치인 누구보다 넓다. 경남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교를 나왔다. PK와 TK를 아우르는 보수의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고전적인 의미로 ‘내조의 여왕’인 아내는 호남 출신이다. 정치권에 들어와 첫 지역구는 서울이었고, 경남지사로 재선을 했다. 정치 이력으로는 전국구다. 정치세력으로 유명한 고려대학교도 나왔고 아들을 해병대에 보내 해병전우회와도 관계가 좋다. 모래시계 검사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정치권에서는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이 정도면 대중성도 확보한 스타다.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하던 홍준표는 시련을 맞는다. 고(故) 성완종 전 의원이 치부책(메모)에 ‘홍준표’라는 이름을 적은 것이다. 1심에서는 유죄 선고를 받았고, 2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3심 대법도 불안했다. 그는 좌절치 않고 대선후보가 됐다. 모래시계 검사를 그만두고 조폭이 두려워 정치권에 들어왔던 이력이 교훈이 됐으리라. 대선 패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대표로 복귀했고 당권을 장악했다. 그에게 ‘기다림’은 인내할 수 없는 상태다. 지난해 말 드디어 대법원이 족쇄를 풀어줬다. ‘무죄 선고의 이유’에 대한 억측도 많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자유로워진 것이다.

여포는 삼국지에서 무공으로는 지존이다. 그러나 그는 개인 무공은 뛰어났지만, 장군이나 지도자로는 많이 모자랐다. 성격이 즉흥적이고 포악했다. ‘마초(macho)’의 대명사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장기적인 전략도 서툴다. 본인의 무공만 믿고 무모하게 덤비다 낭패를 보곤 한다. ‘무부(武夫)의 용(勇)’은 개인전에서는 강점이지만, 장군으로서는 ‘실패의 원인’이 될 때가 많다. 개인기에 능한 무부는 ‘일당백(一當百), 일당천(一當千)’으로 싸우다가 적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휘하의 군사들은 죽거나 포로가 되곤 한다. 여포도 결국 그렇게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넓은 서주(徐州) 땅을 하루아침에 잃고, 조조에게 사로잡혀 사형을 당한다. 측근의 배신이 주요 패인이 됐었다. 무골호인 유비가 조조에게 그의 처형을 강권하기도 했다. 그렇게 천하의 용장이고 무공의 절정 고수는 하릴없이 쓰러졌다. 긴 안목과 인화(人和)가 지도자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여권의 이이제이, 야권의 합종책


▎지난해 5월 대선에 출마한 5명의 주요 정당 후보 중 홍준표·안철수·유승민 후보는 대선 후 각 당의 대표로 복귀했다.
홍준표는 현대 한국 정치판의 여포다. 그는 지략을 개발하기엔 무공과 개인기가 너무 강했다. 개인 전술을 재미있어 하고 더욱 잘하게 됐을 것이다. ‘저격수’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그는 정치권의 스타가 됐다. 특히 토론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상대 토론자뿐 아니라 진행자에 대해서도 무공을 숨기지 않는다. 권투선수라기보다 격투기 선수에 가깝다. 홍준표발 인적청산과 당 장악도 가속화했다. 당협위원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본격적으로 홍준표당을 만들었다. 탄핵 사태 이후 억지로 부탁해 당협위원장에 앉혀 놓은 인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겉으로는 ‘보수 재건’을 외치지만, 안으로는 홍준표 사당(私黨)을 만든다는 비판을 들을 만하다. 게다가 스스로 말을 뒤집고, 유일하게 인물이 풍부한 대구지역에서 당협위원장이 되겠다고 했다. 목표지향성에서 역시 승부사답다.

보수 맹주 쟁탈전에서 홍준표에겐 강력한 경쟁자가 있다. 바른정당 대표 유승민이다. 적어도 현재는 유일한 적수다. 상대적으로 세가 약한 유승민은 안철수를 우군으로 삼고 홍준표에게 대적한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조조에 앞서 여포를 첫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각종 여론조사 지지도에서 ‘통합신당’이 자유한국당을 밀치고 2등을 달리고 있다. 한국당이 보수진영과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지 못하면 야권의 주도권은 ‘통합신당’으로 넘어가고 말 것이고, 홍준표의 미래도 안개 속에 놓이게 될 것이다. 여포는 ‘독고다이’여서 주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측근의 배신까지 당했다. 홍 대표는 여포를 교훈 삼아야 한다. 긴 전략과 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여당에 대항하는 야권의 대표선수가 되기 위한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험하고 길게만 보인다.

현재 여권을 조조의 위나라로 상정했다. 여권은 야당에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고 있다. ‘이이제이’는 조조가 천하를 제패한 대표적인 전략이다. 조조는 황제의 옥새를 활용했고, 현재 여당은 대통령의 봉황문장과 직인이 있다.

야당을 적벽대전에서 위나라에 맞서 연대한 오나라와 촉나라로 상정했다. 여당과 제1야당에 치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대로 가면 자연스럽게 여야 거대 양당에 흡수될 운명이다. 그래서 대선후보들이 대표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합종책(合縱策)’을 모색한다. 약자들이 서로 힘을 합해 강적에 대항하는 전형적인 전략이다. 전국시대 때 진(秦)나라의 천하통일 과정에서 ‘연횡책’과 함께 등장했다. 삼국지의 오와 촉도 합종책으로 위나라에 대항했다.

여당과 제1야당은 느긋하다. ‘적대적 공생’으로 수십 년을 이어왔고 큰 변화가 없으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여당에 비해 제1야당은 상대적으로 불안하다. 국민에게 다른 대안이 생기면 낭패다. 그 대안을 막는 것이 사활을 건 과제인 것이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의 예선전이다. 야당 간엔 ‘미래의 권력’을 위해 투쟁이고, 존립기반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야당엔 본선 이상의 치열한 예선이 될 것이다.

문제는 민심이다. 민심을 어떤 야당이 정확히 읽고 대응하느냐가 지방선거뿐 아니라 미래권력도 좌우하게 될 것이다.

- 김우석 미래전략개발연구소 부소장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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