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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슈] ‘금융계 낙하산’ 논란 

셀프 연임 vs 관치(官治) 금융 신구 금융권력의 물밑전쟁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금융당국, 하나금융지주 김정태 회장 3연임 ‘비토’ 노골화…KB금융은 없는 부회장 자리 신설해 ‘친정부 인사’ 모시기?

지난해 정치권력 교체 이후 신구 금융 권력 간 물밑전쟁이 격해지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거세다. 특히 하나금융그룹이 금융당국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금융가 물밑에서 벌어진 전쟁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셀프 연임’ 논란을 부른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3연임에 도전하는 김정태 회장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 사진:일간스포츠
새해 벽두, 금융권의 최대 관심사는 ‘황제경영’을 굳히려는 금융계 회장들과 개혁을 명분으로 금융 권력을 교체하려는 금융당국과의 팽팽한 신경전이다. 5년을 주기로 되풀이되는 관치(官治) 논란에 금융계가 뒤숭숭하다. 엎치락뒤치락하며 물밑전쟁이 한창인 하나금융그룹이 대표적이다.

장면 하나. 지난 1월 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8년 범금융 신년인사회’ 현장. 전국은행연합회 등 금융 관련 협회들이 연례적으로 갖는 행사이지만 금융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김정태(65)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쏠렸다. 하나금융이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이른바 ‘셀프(Self) 연임’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정태 회장의 3연임 도전 여부가 금융계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기자들의 끈질긴 질문에도 “노코멘트”라며 조용히 행사장을 먼저 빠져나갔다. 하나은행 측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하건 오해가 될 수 있어 회장이 대답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침묵은 대개 부정보다는 긍정인 경우가 많다.

기자들은 김 회장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3선 도전 가능성을 높게 봤다. 김 회장은 이미 “조직에 기여할 일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며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임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기 때문이다.

김정태 회장은 지난 6년간 하나금융그룹을 이끌어오면서 리더십을 발휘해왔다는 평을 받는다. 조직 장악력도 뛰어나 3연임에 도전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금융가의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선례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실세로 통했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이다. 그는 2005년 3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세 차례나 회장직을 연임했다. 그런데 김정태 회장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3연임 도전 여부를 공식화하지 못한 것이다.

3연임 질문에 입 닫은 김정태 회장


▎1월 15일 하나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선임 중단을 요구하며 ‘적폐청산’을 주장한 최종구 금융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사연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 금융당국 수장들이 지난 연말부터 셀프 연임은 안 된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스타트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끊었다. 지난해 11월 29일, 최 위원장은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금융회사 CEO(최고경영자)들이 경쟁이 될 2인자를 키우지 않고 있다는 ‘작심 발언’으로 3연임 제동을 위한 여론 조성에 나섰다. 최 위원장은 “금융사 회장들이 자신들과 가까운 분들로 CEO 선임권을 가진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짠다는 논란이 있다. 내부에 유력한 승계 경쟁 후보가 없는 것도 논란”이라며 “만약 금융사 최고경영자들이 자기와 경쟁할 사람을 인사 조치해 대안이 없게 만들고, 자기 혼자 (연임을) 할 수밖에 없게 분위기를 조성한 게 사실이면 CEO의 중대한 책무를 안 한 것”이라고 금융회사 회장들을 비판했다. 지난해 연말 금융가의 유행어가 됐던 셀프 연임이 나온 배경이다.

금융시장은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다. “정부가 금융황제들을 손보기로 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금융권 사정에 밝은 인사는 기자에게 “금융당국이 하나금융을 겨냥했다. 그런데 타이밍이 기막혔다”고 말했다. 지금 하나금융이 ‘셀프 연임’ 논란을 제기했을 때 딱 먹혀들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하나금융은 회장 후보를 선정하고 평가하는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 후보 중 한 명인 현직 회장이 직접 참여하도록 돼 있다. 이 때문에 현재처럼 김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한 상태에서 회장 선임권을 갖는 ‘회장추천위원회’가 가동되면 셀프 연임이 가능한 구조다. 그의 전망처럼 최 위원장 발언 이후 금융 CEO들의 셀프 연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대두됐다.

최 위원장은 자신을 얻었는지 한발 더 나갔다. 12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는 “금융지주회사 회장이 재벌 총수처럼 돼 간다는 비판이 있다”며 시중의 대형 금융지주 회장들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금융회사는 대주주가 없다 보니 현직이 계속 연임할 수 있게 하는 여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며 경영진이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연임을 도우면서 서로 유착돼 가는 현재의 제도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가 봐도 올해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연임이 예상되는 김정태 회장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금융감독원의 ‘금융감독·검사제재 프로세스 혁신 태스크포스(TF)’가 하루 뒤인 12월 12일, 실행파일을 내놓았다. 금감원이 다수의 금융소비자에게 부당한 피해를 유발하는 영업행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고 금융지주회사 CEO 연임 과정에 대한 전면적 검사에 나설 것을 권고한 것이다.

다음 날인 12월 13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최 위원장의 발언에 힘을 보탰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의 통제를 받는다. 최 금감원장은 이날 언론사의 경제·금융부장들을 초청한 간담회 자리에서 “현직 회장이 연임할 예정일 경우 회추위에서 배제돼야 하는데 어느 지주사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면서 “CEO승계 프로그램도 형식적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회사 내부에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 후계자에게 충분한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회장 후보로 본인만 남는다”며 “금감원이 CEO 승계 프로그램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검사를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수장이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손보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금융감독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문재인 청와대의 구상이나 의지가 실릴 수 있다.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금융계 두 수장이 입을 맞춘 듯 같은 메시지를 던지며 지배구조의 변화를 요구하자 당장 금융계에서는 ‘관치’ ‘낙하산’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자 금융당국의 민간 자문단인 금융행정혁신위가 금융당국을 거들고 나섰다. 윤석헌 금융행정혁신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은 “인사추천위원회에 CEO가 들어가고, 그 사람이 이사를 선임하면 그 이사가 다시 같은 CEO를 추천해 재선임하는 방식으로 셀프 연임이 되는 것은 내부에서 ‘참호’를 구축하는 인사 행위로 국민 입장에서 보면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않는 일이다.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치라고 할 수 없다”며 금융당국에 힘을 실어줬다.

금감원장도 손사래를 쳤다. 최 금감원장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내가 그렇게 얄팍해 보이나? CEO 연임 얘기는 특정인을 노려서 한 것이 아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전반적인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점검하는 것은 통상 감독기관이 해야 할 의무”라고 낙하산 논란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금융계는 여전히 숨은 의도를 찾기에 골몰했다.

하나금융 안팎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두 금융 수장의 메시지가 전해지기 전부터 하나금융에 다양한 경로로 ‘압박’이 왔다고 한다. 우선 하나은행 노조를 통해 ‘아이카이스트’ 부실대출 건 등 비리 의혹 규명 요구가 줄기차게 제기됐다. 금감원은 비리 의혹 규명 과정에서 하나금융그룹 모 사외이사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의 개인정보와 함께 이들이 하나금융과 거래한 내역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부담을 느낀 사외이사 P씨는 지난해 연말 결국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 12월 12일, 하나금융은 금감원으로부터 행정지도 성격의 ‘경영유의’ 조치를 7건이나 받았다. 앞서 현직 회장이 회추위에 참여하도록 돼 있는 CEO승계 프로그램 등 지배구조 개선을 문제 삼았다.

금감원 권고 수용한 하나금융의 반격


▎관치금융 논란을 불러온 최흥식 금융감독원장. /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의 전방위 공격에 하나금융이 백기를 들었다. 12월 22일,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김정태 회장을 제외한 사외이사 7명 전원으로 회추위를 재구성하겠다고 밝혔다. 회추위원 본인이 회장 후보에 오르면 의결권을 제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예 현직 회장을 위원에서 제외한 것이다. 하나금융은 금감원의 권고대로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도 내실화하기로 했다. 해외 유명 비즈니스스쿨과 연계한 ‘하나 리더스 아카데미 글로벌 과정’을 활성화하고 후계 양성 프로그램을 별도로 마련해 그 운영 결과를 회추위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겠다고 했다. 내부 ‘리스크관리위원회’도 개선하기로 했다. 리스크 관리 기능의 독립성을 높이고 이해 상충의 우려 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사내이사인 김병호 하나금융 부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을 제외했다.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이날 이 같은 지배구조 개선안을 의결했다.

금감원 권고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나금융 내부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았다고 한다. 김정태 회장의 입김이 미치는 하나금융지주 이사회의 반대가 특히 컸다. 윤종남 하나금융 이사회 의장은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 “하나금융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은행이 아니라 민간은행이다. 금융당국의 지나친 개입은 관치 논란을 낳는다”며 금융당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법조인 출신인 그는 “금융사의 경영 문제가 아닌 경영권에 관한 사안에 정부 감독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크다”며 쓴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이때만 해도 금융당국과의 정면충돌은 피했다. 윤종남 의장은 이사회 회의에서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사항을 모두 반영해 객관성·투명성·공정성을 강화한 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고 이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며 예정된 절차에 따라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정태 회장은 금감원 권고 수용을 계기로 3연임 도전을 공식화하는 행보를 보였다. 이를 두고 금융계에서는 금융당국의 권고대로 바꾸더라도 김정태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할 자신이 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금융가에서는 “역시 김정태”라는 말이 나왔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3연임을 둘러싸고 금융감독원의 공세가 커질 전망이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상황은 하나금융 이사회나 김정태 회장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힘이 실린 노동계가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금융그룹 계열사 노조 등이 주축이 된 하나금융지주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12월 18일 금감원에 채용비리 및 부실대출 건으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비리 의혹을 조사해 달라는 요청서를 제출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도 “김정태 회장이 3연임을 준비하던 시기에 KEB하나은행의 광고비 지출이 13배 이상 증가했다. 은행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죄·배임증재죄가 성립할 수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노동계의 공격에도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는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속도를 냈다. 이사회의 회추위는 예정대로 1월 4일 첫 회의를 갖고 1차 후보군(롱리스트) 27명을 선정했다. “대표이사 회장 경영승계계획 및 후보추천절차를 근거로 차기 회장 후보 선임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유효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1월 9일에는 차기 회장 후보를 압축한 2차 리스트를 발표했다. 16명으로 압축된 후보 명단에는 김정태 회장과 김병호 하나금융 부회장, 함영주 KEB하나은행장, 윤규선 하나캐피탈 사장 등 내부 인사가 4명, 외부 인사가 12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 회장 선출 중단 요구한 금감원


▎최종구 금융위원장. 하나금융의 반발에 곤혹스러워졌다. / 사진:연합뉴스
김정태 회장이 3연임 도전을 포기하지 않을 태세를 보이자 금융당국이 다시 칼을 빼 들었다. 금융감독원은 1월 12일 “금감원이 검사하고 있는 의혹이 해소될때까지 쇼트리스트(최종 후보군) 발표를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며 후보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잠정 중단해줄 것을 회추위에 요청했다. 사퇴를 ‘압박’하는 금융당국의 신호에도 별다른 입장 변화가 없자 강경책을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하나금융 회추위도 물러서지 않았다. 예정된 일정을 강행하겠다며 금감원의 요구를 거부했다. 회추위가 금감원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1월 22일 심층 인터뷰를 거쳐 후보를 확정하기로 예정됐던 일정이 상당 기간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하나금융이 예정대로 일정을 진행하면 앞으로 더 강력한 수위로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하나금융 안팎에서는 최종 후보군에 김정태 회장이 포함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이번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한 중단 조치는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판단한 금감원이 무리수가 되더라도 직접 ‘행동’에 나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금감원은 하나금융지주가 2015년 회장 선임 때보다 회추위 일정을 서두르는 것도 문제 삼았다고 한다. 김정태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2015년에는 2월 23일에야 최종 후보군이 발표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 중인 하나금융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2015년의 일정보다 한 달 앞당길 특별한 사유가 없다”며 불쾌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이 표면적으로 하나금융지주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중단시킨 이유는 지난해 하나금융 노동조합이 제기한 KEB하나은행의 아이카이스트 부실대출 건, 중국 투자 건, 채용비리 건 등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가 제기한 의혹들이 김정태 회장 등 현 경영진과 연결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회장 선임 절차를 2주 정도 기다려달라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금감원의 고위 관계자가 하나금융 측에 “의혹을 해소하고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해도 늦지 않다. CEO 리스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것 자체가 다소 무리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언급에 대해 하나금융 안팎에서는 사실상 김정태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비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관치금융 논란은 하나금융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KB금융지주의 권력 ‘눈치 보기’가 화제다. 윤종규(62)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셀프 연임’ 논란이 격화되기 직전인 11월 20일,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타격도 컸다. 금감원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따라 윤 회장은 올해부터 열리는 상시지배구조위원회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자연히 계열사 인사에 대한 영향력이 줄어들게 됐다.

KB금융은 친정부 인사 영입으로 방어막?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셀프 연임’ 논란이 격화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연임에 성공했다. / 사진:연합뉴스
윤 회장은 금융당국의 입김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묘수’를 내놨다. 지난해 12월 26일, KB금융지주는 “비은행 부문 강화 등을 위한 자문 역할을 위해 KB부동산신탁에 부회장직 신설을 검토 중”이라며 김정민 전 KB부동산신탁 사장을 부회장으로 내정했다. 김 내정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문이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당장 윤 회장이 친정부 인사를 영입해 금융당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금융당국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낼 묘수라는 것이다. 하지만 윤 회장의 의도와 달리 김 부회장 내정자의 금융그룹 내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상당하다. 김 부회장 내정자는 윤종규 회장 연임을 앞두고 KB금융 안팎에서 회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됐다. 이에 따라 KB금융 안팎에서는 ‘김정민 부회장’에게 힘이 실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2인자들이 ‘실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사정에 밝은 인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현재 K랜드 사장보다 부사장이 더 실세로 회자된다. 방송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는 모 위원회도 위원장보다는 K 상임위원이 밑그림을 다 그린다. 금융계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고 말했다. 권력이 작동하는 실세들을 2인자의 자리에 포진시키는 것은 성장(省長)보다는 부성장이, 대도시의 시장보다는 시 당서기가 실세로 불리는 중국의 권력 작동 방식과 비슷하다.

친정부 인사의 영입을 우려하는 KB금융 안팎의 목소리가 커지자 윤종규 회장은 다시 장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은 12월 27일 임원 인사와 조직개편을 단행했는데, 예상됐던 김정민 부회장 인사는 일단 명단에서 빠졌다. KB금융 측 인사에 따르면 친정부 인사의 영입이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우려 때문에 윤 회장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KB금융 측 인사는 이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에 벌어졌던 ‘트라우마’를 거론했다. 당시 서로 다른 낙하산 줄을 타고 내려온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간에 권력다툼이 벌어지면서 내부 갈등을 겪었던 사건이다. 윤종규 회장은 당시처럼 ‘제2의 KB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KB금융은 민간금융사이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매번 관치금융과 ‘낙하산’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2009년에는 황영기 KB금융회장이 금융당국에 ‘찍혀’ 물러났다. 이후 회장 공모를 거쳐 강정원 부회장을 회장으로 최종 선임했는데, 선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당시 김병기·이철휘 두 후보가 면접을 앞두고 돌연 사퇴했다. 그러자 강정원 후보를 탐탁지 않게 여긴 금융당국이 회장 공모 일정을 늦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흘리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일었다. 지금의 하나금융 흐름과도 일견 닮은꼴이다. 우여곡절 끝에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이 KB금융 회장에 내정됐다. 하지만 강정원 내정자도 금감원 검사에서 중징계를 받으면서 내정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던 어윤대 회장이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꿰찼다.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 정부 금융당국도 김정태 회장의 3연임에 반대하는 논리로 당시 KB금융 사태를 거론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KB금융 CEO들의 연이은 사퇴로 KB금융의 신뢰도와 기업가치가 추락했는데, 그때처럼 하나금융도 지금의 의혹을 규명하지 않은 채 회장 선임을 강행할 경우 KB금융 사태 재연이 우려된다는 게 이유다. 어찌 됐건 현재 KB금융 측은 일단 김 부회장 내정자 건과 관련해 “영입을 검토 중인 단계로 무산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윤 회장의 장고가 길어질수록 악수가 될 수도 있다.

KB금융은 정권교체 때마다 ‘관치’ 논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매번 관치금융과 ‘낙하산’ 소용돌이에 휩싸인 KB금융. 지난해 KB금융노조는 지배구조 개편과 윤종규 회장 연임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들어 ‘관치’와 ‘낙하산’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는 부산 경남은행 지주사인 BNK금융지주 성세환 회장이 부산 해운대 엘시티 특혜대출 의혹에 연루돼 사법 처리되고 김지완 전 하나금융 부회장이 선출되는 과정에서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김지완 회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캠프의 경제고문을 지냈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낙하산 출신은 자신을 내려보낸 세력을 의식하기 마련이다. 임기 내내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하기 때문에 실제 조직의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광주 우리은행장도 민영화 1기 행장으로 선출된 지 1년도 안 돼 이른바 ‘직원 채용 비리’ 의혹으로 사퇴했다. 새로 취임한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취임과 동시에 임원 22명 중 17명을 교체하는 물갈이를 단행했다. 대규모 쇄신으로 조직 기강을 다잡고 경영혁신을 내걸고 있지만 애초 지주체제 전환 등을 통해 완전 민영화로 가려던 우리은행의 비전에 제동이 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금융위원장 인선 과정에서도 관치 논란이 불거졌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월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낸 김석동 전 위원장을 금융위원장에 기용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했다가 여당인 민주당과 노동계의 반대 여론에 밀려 철회하고 지금의 최종구 금융위원장으로 선회했다.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도 CEO 교체 때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때는 ‘4대 천황(강만수·이팔성·어윤대·김승유)’이라는 말이 금융계에서 회자됐다. 금융권을 장악한 이들 4명이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른 데서 나온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모피아라 불리는 옛 재무부 관료들이 주요 금융지주사와 금융 유관기관장으로 대거 내려오면서 관치금융과 낙하산 논란이 빚어졌다. 모피아는 퇴진한 이명박 정부 때의 4대 천황을 비롯해 주요 금융기관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당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행정고시 20회로 재무부 관료 출신이었다.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행정고시 24회로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을 맡아 모피아로 분류됐다. 그 무렵 “정부가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다”며 관치금융을 강하게 비판했던 김상조 교수는 지금 공정거래위원장이 돼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금융당국은 정부가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BS금융지주의 이장호 회장에게 특정한 사유 없이 사퇴를 종용해 관치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무리한 사퇴 종용의 배경에는 STX그룹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채권은행들에 당국의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금융계의 한 원로 인사는 BS금융지주 사례를 최근의 하나금융 관치 논란과 비교하면서 “권력교체기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관치 파동이다. 기시감(旣視感)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이후 이처럼 관치 논란을 거치면서 금융가와 여의도 정치권 주변에서는 다양한 말이 돌았다. 하나금융 안팎에서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의 이름을 거론하는 이가 많았다고 한다. 김정태 회장이 연임에 실패할 경우 과거 3연임에 성공했던 김 전 회장과 가까운 인맥들이 대안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관측으로 보인다.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김승유 전 회장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하성 실장과 최흥식 금감원장도 고려대를 졸업했다. 이른바 고대 인맥이다. 금융기자들 사이에서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장하성 라인’으로 보기도 한다.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정태 회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비토 이유에 대해 김 회장이 박근혜 정부 때 중용된 인사인 만큼 특정 인맥과의 친소 관계보다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과거 청산’이나 ‘적폐 청산’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긴 김정태 회장은 사적으로는 부산 출신에 경남고 25회로 문재인 대통령과 고교 동기다. 이번 관치 논란의 배경을 인적 네트워크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는 셈이다.

주목받는 ‘장하성 라인’과 고대 인맥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주요 내빈들이 지난해 7월, 하나금융그룹 통합데이터센터에서 열린 준공식에서 준공을 축하하는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김정태 회장의 3연임을 둘러싼 금융당국과의 갈등으로 관치 논란에 휩싸여 있다.
정치권력은 왜 금융 권력의 장악에 집착할까? 현재 하나금융지주나 KB금융지주 등 금융지주 회사들은 대주주가 없다. 최대주주라고 해봐야 국민연금공단이다. 지분도 9%대에 그친다. 이사회 중심으로 운영되지만 사실상 회장의 영향력에 좌우되는 구조다. 금융지주 회사들은 CEO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어서 회장이 마음만 먹으면 전횡을 휘두를 수 있다. 회장 자리가 주는 매력이 상당한 셈이다. 금융 권력의 정점인 회장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심을 정치권력이 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금융계가 새 정부 들어서도 관치 논란을 불러온 데는 금융회사들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동안 금융사 CEO들이 회장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고 황제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일이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장기 집권할 욕심에 2인자를 키우지 않고 과속 질주하다가 황제경영이라는 오명 속에 금감원의 개입을 불렀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3선 도전이 논란을 불러오듯이 금융사 회장의 3선 도전이 그냥 쉽게 이뤄질 수만은 없다는 해석이기도 하다.

현재 금감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신한금융·KB금융·하나금융·NH농협금융 등 4대 지주사 및 그 산하 은행과 우리은행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대형은행(D-SIB)’으로 지정해 집중적으로 모니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하나금융지주·KB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들의 경영권 승계 절차, 회추위 구성·운영 등을 면밀히 검사하고 있다.

현행법상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에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금융권 황제경영의 폐단을 막기 위해 2013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이 법 14조에 “최고경영자의 자격과 경영 승계 원칙 등에 관한 구체적인 원칙과 절차(지배구조 내부 규범)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문제 삼고 나선 건 법률과 시행령 제정으로 제도는 완비됐지만 실제 운영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지금처럼 관치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공정한 규칙을 보장하는 심판의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 금융계의 대체적인 목소리다. 하나금융의 사례처럼 특정인을 배제하거나 지지하는 식으로 비쳐지면 관치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배구조나 기업 문화에 대한 개입이 일상화하면 금융회사가 당국의 눈치를 보고 경영 효율이 떨어지는 관치 문화가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사기업 인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밝힌 바 있다. 민간기업, 특히 삼성그룹과 롯데그룹 등에 대한 청와대의 직권 남용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를 부른 배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하나은행은 민간 금융회사다. 이 때문에 하나금융 김정태 회장에게 집중된 관치 논란을 두고 ‘금융계 칼잡이’가 민간은행에 세련되지 못하게 칼을 들이대면서 모양새만 구겼다는 해석도 있다.

‘사외이사의 정상화’가 대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금융회사 CEO가 사외이사를 추천하고 또 거꾸로 사외이사가 CEO를 선임하는 현재 금융지주 회사들의 구조에서는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입맛에 맞추기 쉬워 경영진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에 소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혁신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외이사 후보군을 독립적 제3의 기관에서 추천하는 방식을 도입하면 임원후보 추천위원회가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금융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모르쇠 눈감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금융지주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외이사 추천 절차를 개선하기로 했다. 사외이사 선임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주주와 외부 자문기관의 추천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그동안은 추천인을 ‘사외이사추천위원회’라고만 공시해 누가 추천했는지 구체적인 경로를 알 수 없어 투명하지 못하다는 지적이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올해부터는 연차보고서에 사외이사 추천 경로를 공시하기로 했다.

‘사외이사의 정상화’ 대안 거론


▎장하성 정책실장과 최종구 금융위원장(왼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 위원장은 장하성 정책실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연합뉴스
어찌 됐건 민간 금융회사 CEO 선임 문제가 금융당국의 입김에 휘둘리면서 하나금융그룹은 원하건 원치 않건 관치금융 논란의 한복판에 서게 됐다. “의혹에 대한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주가량 회추위를 중단해달라”는 금감원의 요구에 하나금융이 예정대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강행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정면 대결로 치닫는 분위기다.

하나금융이 반발하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1월 15일 서울정부청사에서 “담보대출 위주의 전당포식 영업,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황제연봉,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지배구조, 불완전 금융상품 판매 등 금융소비자 피해, 일련의 채용비리” 등을 거론하고 하나금융의 행태를 ‘적폐’로 규정했다.

금융가에서는 지금이 문재인 정부 출범 만 1년이 채 안 되는 정권 초기임을 감안할 때 금융당국의 강력한 공세를 이기지 못해 김정태 회장이 후보를 자진 사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과거 정부의 사례들을 복기해볼 때 그렇다. 하지만 아직은 지켜볼 일이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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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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