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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로펌 변호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클라이언트에겐 한없이 약한 그대 이름은 변호사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대등한 비즈니스 관계에서 갑을 관계로 변화…변리사·세무사에 치이고 공인중개사 일감 넘볼 정도로 설 자리 좁아져

변호사들의 설 자리가 갈수록 줄어든다. 대형로펌 변호사들은 기업을 고객으로 모시기에 안달이고, 개업 변호사들은 변리사와 공인회계사, 세무사들과 영역 다툼에 시달린다. 로스쿨을 졸업한 젊은 변호사들은 취업난과 저임금에 허덕인다. 2018년 삭풍에 흔들리는 변호사들의 초상을 들여다봤다.


지난해 말,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열린 송년모임. 중견 기업체 CEO들과 공기업 임원, 대형로펌의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10여 명이 모였다. 대부분 자신의 영역에서 인정 받고 있는 40~50대 중·장년이었다. 저녁식사와 반주를 겸한 이날의 대화 주제는 북한 핵 문제와 강남 부동산 재개발, 코스피 지수 등 재테크 얘기로 이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그 즈음 한창 사회를 떠들썩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3남 김동선씨의 이른바 ‘변호사 폭행·욕설 사건’이 화제에 올랐다.

김동선씨 사건은 지난해 9월 말 서울 종로구의 한 술집에서 열린 김앤장 신입 변호사 10여 명의 친목모임에 지인 소개로 중간에 합류했다가 신입 변호사들에게 “고객님이라고 부르라”며 막말을 했던 사실이 알려져 ‘갑질 논란’이 불거졌던 사건이다. 김씨는 당시 만취한 자신을 부축하던 한 남자 변호사의 뺨을 때렸고,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기도 했다. 한 신문이 대서특필하면서 대한변협(회장 김현)은 수모를 안긴 피해 변호사들을 대신하겠다며 김씨를 고발하는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김동선 사건, 변호사들이 고소 포기해 종결

하지만 정작 피해를 당한 변호사들은 김씨를 처벌해달라는 고소를 하지 않았다. 변호사들이 소속된 로펌도 침묵을 지켰다. 폭행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김동선씨 사건은 피해 변호사들이 고소를 포기하면서 그렇게 소리 없이 무혐의로 종결됐다. 당연히 김씨의 행위도 묻혀졌다.

당시 대한변협의 고발에 따라 김동선씨 사건을 조사한 경찰에 따르면, 피해를 당한 변호사들은 김씨가 로펌의 주요 고객이기 때문에 김씨를 고소하지 않았다는 세간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김씨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만취해 자신들에게 실수한 것을 지각하지 못할 정도였고, 사건이 진정된 후 김씨 측이 사과해왔기 때문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갑질’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고객님’ 발언도 당시 자리가 신입 변호사들의 모임이라서 서로를 “변호사님”이라고 부르며 대화하는 자리였기에 별다른 직함이 없던 김씨가 “저는 그냥 고객님이라고 불러달라”고 해서 나온 말이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같은 수사 결과는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로펌 변호사, 기업고객 리스크까지 관리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기업고객에게 약해지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법률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사진:연합뉴스
송년모임에 참석한 몇몇 사람도 속사정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중소기업 임원이 변호사에게 대뜸 “잘나가는 변호사들도 대기업 고객들에게는 그렇게 약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자도 호기심이 일었다. 이날 송년회 자리에 참석한 변호사는 3명이었다. 기업소송 전문 변호사 A씨, 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다 대형로펌으로 옮긴 파트너 변호사 B씨, 판사 출신 변호사 C씨였다. 업계 얘기는 불편하다는 표정으로 잠깐 머뭇거리던 A씨가 입을 열었다.

“그거야 비즈니스니까….(웃음) 우리 로펌 변호사들이 김동선씨 같은 사례를 겪었다고 해도 우리도 똑같이 할 겁니다. 고객사가 실수한 것을 두고 소송까지 간다는 것은 (업계)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죠.”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김씨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면서 “변호사가 아무런 잘못 없이 의뢰인에게 뺨을 맞고 머리채를 잡혔다는 보도를 접하고 분노를 느꼈다. 변호사한테 이럴진대 힘없는 국민들에게는 얼마나 함부로 할까”라며 분개했지만 실제 로펌이 처한 현실과 변호사들의 생각은 달랐다는 얘기다. 그는 김동선씨 사건은 “클라이언트와 로펌 간 비즈니스 관계에서 발생한 일이라서 그렇게(무혐의) 되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클라이언트인 고객사의 ‘실수’를 감싸거나 리스크를 관리해주는 편이 낫지 굳이 그 문제를 외부에 알려 사건화시킬 이유가 없다고 했다. 듣고 있던 몇몇이 A씨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폭행당한 신입 변호사들이 김씨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만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야기가 진지해지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변호사 B씨도 대화에 합류했다. 대기업 법무팀에서 일하다 몇 년 전 대형 로펌으로 옮긴 변호사였다. 그는 “변호사들이 상해진단서가 나올 정도로 심하게 맞았으면 모를까 사건 자체로도 김 씨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변호사 입장에서도 클라이언트의 갑질을 문제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로펌 입장에서 고객과 다투는 모습을 굳이 외부에 보여줄 필요가 있겠느냐”며 로펌에 속한 변호사들이 당시 상황을 겪었다면 대부분 고객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그런 해결 방식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했다.

김동선씨 사건과 관련해 당시 김앤장 로펌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A씨의 의견처럼 해당 사건이 단순한 폭행 사건이 아니라 고객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내부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형로펌의 변호사들 중에는 자신을 소개할 때 ‘법 기술자’ ‘법 전문가’를 자처하며 변호사 업무보다 ‘비즈니스’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와 계약을 맺고 처음에는 대등하게 시작하지만 기업고객은 일감을 맡기고 변호사는 대가를 받는다는 점에서 숙명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겐 약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조용히 듣고 있던 변호사 C씨가 속내를 털어놨다.

“로펌 변호사들에게 ‘왜 그렇게 클라이언트에게 당하고 사느냐’고 물으면 변호사들이라면 누구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얘기한다. 변호사니까(자존심상)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로펌 입장에서 기업고객에 대해 나쁘게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 기업이 ‘갑’이고 로펌이 ‘을’이다. 국민들은 왜 변호사들이 기업에 고개를 숙이냐고 비난하지만 변호사들이 처해 있는 현실의 벽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한때는 억대 연봉에 부러워하는 직업이었던 대형로펌 변호사들이 기업고객에게 약해지고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법률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등록된 변호사만 현재 2만4000명. 2014년에 2만 명을 넘어섰다. 변호사 1만 명 시대(2006년)가 열리는 데 100년이 걸린 반면 2만 명은 단 8년 만에 이뤄졌다. 특히 2009년 로스쿨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 지난해 마지막 사법시험이 치러지면서 이제는 판검사 지망생도 모두 로스쿨을 거쳐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우스갯소리로 길을 가다 ‘김 변호사!’하고 불렀을 때 서너 명은 뒤돌아본다는 동네가 서초동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사는 동네일 수도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매년 1500명 이상씩 배출되는 시대에 변호사라고 다 변호사가 아니다. 국내 6대 대형로펌은 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율촌·화우다. 이들 로펌에 소속된 변호사도 연봉에서부터 사무실 크기와 비서 배치 등 대우, 맡은 업무 등이 천차만별이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형로펌들은 법원과 검찰청에서 판검사를 지낸 전관이나 고위직 관료, 국세청·경찰 출신 간부를 고문으로 모셔 억대 연봉을 지급하기도 한다. 한정된 일감을 따내기 위해 대형로 펌 간에 인재 빼오기 경쟁이 일어나는 것도 부지기수다. 로펌들마다 기업고객 유치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기업고객이 ‘갑’인 것은 고액 수임료 때문”


▎지난 12월 22일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세무사법 개정 규탄 및 법조유사직역 정비 촉구대회’ 장면. 세무사법 개정이 로스쿨 제도에 반한다며 변호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앞서 송년회에 참석한 C씨 역시 중견로펌의 변호사다. 50대 초반으로 판사 출신인 그는 폭탄주를 즐긴다. 모르는 이들은 그를 검사 출신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에 따르면 판사 출신과 검사 출신은 스타일이 다르다. 판사들의 문화는 좋게 말해 점잖고 안 좋게 말하면 심심하고 재미가 없다. 칼을 휘두르는 검사에 비해 판사는 전투력이 부족하다. 성격도 세심하다. 개업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검사 출신 전관(前官)은 굵직한 형사사건을 긁어 모아 1~2년 내에 적게는 수억 원에서 십수억 원을 벌어들인다. 짧고 굵게 승부를 낸다. 검찰 총장을 지낸 C 변호사가 강남 도곡동에 개업한 로펌에 요즘 사건이 몰린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하지만 판사 출신들은 길고 가늘게 간다고 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조금씩 벌어들인 수임료로 먹고 산다. 그는 “검사 출신은 인맥과 연고를 활용해 1~2년 내 확 벌어서 놀고, 판사 출신은 인맥이 없어도 꾸준히만 하면 60세까지는 벌어먹고 살 수 있다”고 했다.

웃는 얼굴에 인맥이 넓고 자기 관리를 잘한다는 말을 듣는 그도 “변호사라는 직업이 처한 현실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결국 앞으로 로펌들은 기업고객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 “기업은 법률상담과 소송비용을 경비로 처리할 수 있어서 큰 부담이 없다. 하지만 일반 개인들은 고액의 소송비용을 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고액의 수임료가 성공확률을 높이기 마련이다. 로펌 변호사들이 기업고객을 ‘갑’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는 토로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변호사는 크게 각광받는 직업이었다. 성공신화도 수두룩하다. 국내 유명 K로펌의 Y 변호사. 올해 52세인 그는 적수공권으로 상경해 오직 자신의 노력만으로 수억 원대 연봉을 받는 변호사가 됐다. 지방의 가난한 농부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미국에 건너가 석사학위를 받느라 동기들보다 늦은 2004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판검사를 지망하지 않고 곧바로 특허사무소에 취업해 돈을 벌었다. 10여 년 전, 국내에서 손꼽히는 K로펌에 스카우트된 뒤 글로벌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지식재산권 소송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기업의 특허 관련 소송, 영업비밀, 상표 등에 관한 기업자문과 소송 업무가 그의 주된 업무다. 굵직한 글로벌 기업의 특허 소송을 맡아 승소해 큰 보람을 얻기도 했다. 1남1녀의 자녀를 둔 그는 도심권에 있는 주상복합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 고향에서 지금도 성공신화로 통한다. 변호사와 변리사, 세무사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업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프로인 Y씨는 요즘도 자기 계발에 시간과 돈을 많이 쏟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으로 로펌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그가 소속된 로펌도 법률 수요가 늘고 있는 일본에 사무실을 두게 됐다. Y씨는 올겨울에도 한 달 동안 일본에 머물며 현지 일본어를 익히는 데 시간을 투자했다.

낮은 연차 변호사들에겐 대형로펌도 3D업종


▎김현 대한변협회장 등 간부들이 세무사법 개정안 통과에 항의하며 지난해 12월 8일 삭발투쟁을 벌었다. 갈수록 기득권을 빼앗기고 있는 변호사 직업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대형로펌의 중견 변호사가 이럴진대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전공 분야 석사·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제2외국어까지 능숙해야 로펌에서 대우를 받는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로펌을 원한다면 10여 곳에서 퇴짜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어렵게 입사했더라도 몇 년 동안은 대기업에 입사한 신입사원처럼 월화수목금금금 야근을 각오해야 한다. 로펌에서는 오전 9시께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게 보통이다. 고시공부 할 때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구두로 임금을 합의하는 곳도 상당수다. 연장·야근 근로 등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3D업종 못지않다.

대형로펌에서는 다른 조직 같으면 이해할 수 없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대한변협의 청년변호사특별위원회가 청년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로펌에 고용된 저연차 변호사들[보통 어쏘(associate attorney) 변호사라고 한다]은 사법연수원 기수를 내세운 로펌 내 ‘갑질 문화’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전관 출신이 많은 로펌이 특히 기수를 엄격히 따진다. A로펌의 경우 로스쿨 출신 저연차 변호사가 입사하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수에 따라 서는 위치가 그려진 문서를 주면서 타고 내리는 순서까지 교육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외국 변호사가 타면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고 한다. 외국 변호사는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지만 기존 원칙인 기수를 생각해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귀찮은 상황을 피하고 싶은 젊은 변호사들은 계단을 뛰어다니기도 한다. 외국에서 자격을 딴 변호사들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대형로펌에 입사하지 못한 일반 변호사들은 더 어려운 환경을 각오해야 한다. 로스쿨 출신으로 중소규모 로펌에 입사했다가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월 200만원도 못 받는 경우도 있다.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국제기구 취업도 쉽지 않다. 일반 기업체에 입사하면 대리 직급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뜻이 맞는 몇 명이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린다고 해도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으면 한 달에 400만~500만원을 벌기가 힘들다. 판검사 출신 전관이라고 해도 그리 사정은 좋지 않다. 과거처럼 번듯한 사무실에 사무장과 여직원을 두고 개업하는 변호사는 극소수다.

일반 사건의 수임료도 마지노선이라는 300만원 이하로 내려간 지 오래다. 사건 수임을 연고(緣故)에 주로 의존하는 지방 도시의 변호사들은 200만원을 받고 수임하기도 한다. 그래서 착수금을 최대한 적게 받고 성공 보수는 높이 책정 받아 보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변협에 따르면 수입이 적어서 변호사 회비를 내지 못하는 변호사도 수십 명이다. 자존심을 버리고 유능한 사무장을 찾아가 스스로 ‘월급 받는 변호사’가 되기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변호사의 위상 추락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12월 8일 김현 회장 등 대한변협 간부 4명은 국회 앞에서 삭발을 감행했다. 국내 최강의 이익단체라는 대한변협의 현직 회장이 삭발에 나선 것은 처음이었다.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세무사 자격이 부여되는 것을 폐지하는 내용의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항의 차원의 시위였다고 했다. 그동안 세무사들은 변호사들이 자동으로 취득하게 돼 있는 세무사 자격 폐지를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지만 율사 출신 의원들에게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이날 세무사법 개정안이 찬성 215표, 반대 9표, 기권 23표로 가결돼 세무사들은 50여 년의 맺힌 한을 풀었다. 대한변협 간부들이 삭발을 하던 그 시각,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방청석에 모인 세무사들이 환호하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극명하게 갈리는 두 개의 장면은 전문가 집단을 대표했던 변호사 직역의 추락을 상징한다. 변호사들이 그동안 누리고 있던 기득권을 하나씩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현 회장은 “변호사 영역 침탈은 곧바로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것이고, 변호사들의 어려움은 국민들의 불이익으로 귀결될 것”이라며 거세게 저항했지만 세무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막지 못했다. “폭풍을 뚫고 나가는 심정으로 지난 한 해를 보냈다.” 김현 회장이 대한변협신문 신년사에 쓴 말이다. 변호사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했다는 얘기다.

국회 앞에서 삭발까지 한 대한변협 회장


▎국회 본회에서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기뻐하는 세무사 대표들. 변호사와 세무사 간 영역침탈이 벌어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변호사들이 맡고 있는 일도 힘들지만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Y변호사처럼 변호사 자격 취득과 동시에 자동으로 따라오던 변리사, 세무사 자격증도 바랄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2월, 세무사법 개정안 반대 시위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출신 변호사들이 적극 참여한 데는 이처럼 변호사 시장이 많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로스쿨 출신 변호사 합격률은 겨우 50% 선에 그치고 있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재수, 삼수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세무사들만 변호사를 위협하는 게 아니다. 변리사들도 변리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변리사법 역시 1961년 제정 당시부터 변호사에게 자동으로 변리사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됐으니 변리사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변리사들은 올해 변호사만 할 수 있는 특허침해소송을 변리사도 대리하도록 해달라며 변리사법 개정안을 발의해 변호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연봉도 변리사가 변호사를 추월한 지 오래다. 변호사 자격 시험보다 변리사 자격 시험이 더 어려워지면서 변리사들이 오히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사례가 더 늘고 있다. 변호사들로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변호사 수 증가와 시장 악화로 변호사들은 세무사나 변리사, 관세사 등 법조 인접 직역 종사자와 ‘무한경쟁’을 벌여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공인중개사, 노무사, 법무사, 행정사 업무 영역에서 다툼이 치열해졌다. 이들은 노동·행정 등 해당 법령과 관련된 사건 소송 대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변호사의 영역을 일부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한변협은 ‘소송 대리는 변호사의 고유한 법적 권한’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직역 간에 둑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다.

부동산 중개업에서 활로 찾는 변호사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일찍부터 유사 직역 진출을 준비한 변호사들도 있다. 특히 공인중개사 분야에 뛰어드는 변호사들이 부쩍 늘었다. 공승배 변호사(트러스트라이프스타일 대표)가 그 분야의 선구자다. 1999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법무법인 광장·화우에서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던 공 변호사는 2016년 1월 ‘거래금액과 상관없이 수수료 최대 99만원’을 내걸고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다. 그 해 4월 그가 첫 부동산 거래 계약을 성사시키자 공인중개사협회는 “공인중개사가 아닌데 중개 행위를 했다”며 공인중개사법 위반 혐의로 공 대표를 고발했다. 법원은 1심에선 무죄를 선고했지만 지난해 12월 2심 재판에선 벌금 5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공 변호사는 대법원에 상고하는 대신 부동산 중개법인 ‘트러스트부동산중개’를 출범시켜 변호사·공인중개사가 협업하는 구조로 중개 서비스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공 변호사는 “중개수수료는 최대 99만원이다. 99만원의 보수에는 중개수수료와 변호사의 법률 자문비가 모두 포함됐다. 소비자에게 누가 더 이익이 되는지를 놓고 공인중개사들과 경쟁하겠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협회 측은 “현행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중개하려는 또 다른 형태의 ‘꼼수’”라며 반발했지만 앞으로 공 변호사처럼 공인중개사 영역으로 시장을 넓히는 변호사들이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블루오션의 개척이지만 ‘따뜻한 시절’을 보냈던 원로 변호사들에게는 격세지감을 느낄 장면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 변호사들은 인공지능(AI)에도 밀릴 수 있다. 일본에서는 벌써 기업의 계약서 작성을 변호사 대신 인공지능이 파격적으로 싼 수수료를 받고 대행해주는 서비스가 등장했다. 대한변협은 힘들어지는 시장 여건에도 “변호사는 인권옹호와 정의실현의 최일선에 서 있는 존재”라며 변호사들에게 자긍심을 잃지 말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변호사들이 겪고 있는 2018년의 현실은 몰아치는 삭풍과 겨울 하늘을 뒤덮은 미세먼지만큼이나 어두워지고 있다.

다시 기사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난해 말 송년회 장면이다. 모임이 끝난 중식당을 나와 변호사 C씨와 인사를 나누며 다음에 만나면 꼭 폭탄주를 마시기로 한 뒤 그에게 물었다. “우리 시대 변호사는 무엇으로 삽니까?” 약간 취기가 오른 그가 말했다. “우리 같은 변호사들이야 고객만족을 위해 살지요. 하하.”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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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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