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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同行-고령사회로 가는 길’(2)] 최고의 노인복지는 일자리 

“행복한 꽈배기나라로 나도 출근합니다”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꽈배기나라’ ‘바둑학원’ 등 수익 창출 가능한 시장형 일자리 대폭 확대가 관건…노인 일자리 친화형 기업에 인센티브 도입 검토해야

▎서울 은평구 녹번역 인근 골목에 자리 잡은 시장형 노인일자리 사업장인 ‘꽈배기나라’에서 일하는 어르신들. 2013년에 처음 문을 연 꽈배기나라 1호점은 60세 이상 노인 7명의 일터로 연매출 8000만원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 녹번역에서 은평구청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오른쪽에 S편의점 골목이 나타난다. 골목 안으로 50m쯤 들어가면 줄무늬 차양막이 눈에 띄는 작은 가게가 보인다. ‘꽈배기나라’라는 간판을 단 이 가게는 이름 그대로 꽈배기를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매장이다. 가게 입구 창문에는 ‘세 번 숙성’이라는 광고 문구도 붙어 있다. 겉으로만 보면 여느 분식 가게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가게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꽈배기를 구워내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60세 이상의 할머니, 할아버지다. 꽈배기 재료를 매일 반죽해 만들어 팔고, 배달까지 전담하는 모든 일을 어르신들이 직접 하고 있다.

꽈배기나라가 처음 생긴 것은 2013년 8월이다. 은평구 관내에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을 전담하고 있는 사회복지법인인 은평시니어클럽이 ‘시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가게를 만들고 여기에 노인들을 고용하면서 시작됐다. 5년째인 지금은 은평구뿐 아니라 인근 지역, 멀리는 경기도에까지 입소문이 퍼져 이곳을 찾는 단골 손님도 꽤 많아졌다. 꽈배기나라 1호점이 성공리에 자리를 잡자 은평구 응암동에 2호점(2014년 10월 말 개점)까지 생겼다. 꽈배기나라는 매장 규모가 16㎡(5평 남짓)로 작지만 연매출 8000만원 상당의 적지 않은 판매 실적을 올리고 있다. 은평시니어클럽이 지역 특색과 상권에 맞는 일자리 아이템을 치밀하게 사전 분석한데다 어르신들의 부지런함과 정성, 그리고 손맛이 이 사업을 성공시킨 요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꽈배기나라 1, 2호점에서 일하는 어르신은 총 13명. 은퇴 전만 해도 이들은 모두 제빵과는 거리가 먼 일을 했다. 일반 회사에 다니다 정년퇴직을 하거나 개인 사업을 하던 경험이 있을 뿐이다. 어르신들은 꽈배기나라에 참여하면서 레시피를 익히는 등 처음으로 제빵 기술교육을 받았다. 일하는 여건도 어르신들의 연세에 걸맞게 체력적으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2인 1조가 한 팀으로 오전반, 오후반으로 조를 짜서 출근한다. 오전반의 경우 보통 아침 8시30분에 가게에 출근해 준비를 하고 9시부터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어르신 한 분이 하루 일하는 시간은 평균 4시간 30분 정도로 일주일에 나흘 정도(한 달 16일) 출근한다. 매달 가게 매출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평균 6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지난 1월 12일 가게에서 만난 조홍삼(82)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일한 지 벌써 4년 가까이 됐다고 했다. 조씨는 취재진에게 자신이 손수 만든 꽈배기를 건네며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꽈배기”라며 웃는다. 조씨는 “맛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경기도 안산처럼 먼데서 일부러 가게를 찾아 꽈배기를 사가는 손님도 있다”며 “내가 만든 꽈배기가 맛있다며 한번 찾은 손님이 다시 우리 가게를 찾을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그는 젊었을 때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회사에서 화이트칼라로 20년 넘게 일했다. 정년퇴직 후에는 17년여를 무직자로 집에서 지냈다. 하지만 7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사는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밖에 나가 뭐라도 일을 하고 싶었지만 자신과 같이 고령자가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은평구에서 하는 다른 공공형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꽈배기나라를 알게 되면서 “이만한 직장이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그에게 꽈배기나라는 단순히 용돈을 버는 직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 시작하면서 감기 한 번 안 걸렸지”


▎서울 은평구 역촌동에는 아마 5단 이상의 할아버지 고수들이 초등학생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학원이 있다. 3년째 아이들에게 바둑 강의를 하고 있는 이장희씨는 “돈 버는 일도 즐겁지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활력소가 된다”고 말한다.
“은퇴 후 집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심심하고 짜증도 자주 나더라. 매일 꽈배기나라에 출근하면서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재미,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는 재미가 생겼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아졌다. 전에는 철마다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일을 시작하면서는 감기 한 번 걸린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활동량도 줄고 주로 집에만 있다 보니 다리도 가늘어지고 힘이 없는데 나는 종아리에 제법 근육도 있고 튼튼하다. 일하는 시간도 적당해서 퇴근 후 집에 가도 별로 피곤하지 않다.”

조씨가 꽈배기나라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자녀 중 일부가 탐탁잖게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 모두가 조씨의 출근을 응원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오전반 일을 마친 조씨가 퇴근 준비를 할 무렵 오후반에 속한 김경화(68) 할머니가 출근했다. 김 할머니 고향은 대구다. 평생 대구에서 일을 하며 자녀를 키웠다. 이후 집안 사정이 생겨 남편은 대구에 남고 김 할머니는 자녀와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평일에는 서울에서 살고 주말에 가끔 남편을 보러 대구에 내려가는 식이었다. 하지만 몇 년 전 고향에서 살던 남편이 세상을 뜨자 김 할머니는 서울에 정착을 하게 됐다. 넉넉지 않은 살림에 김 할머니는 일자리를 찾아나섰다고 한다.

“처음에는 은평구에서 하는 꽃나무 심는 일에 신청해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간도 길지 않고 안정적이지 못한 일이었다. 주변에서 꽈배기나라를 소개해준 덕에 나도 직장이 생겼다.”

김 할머니를 이곳 꽈배기나라로 이끈 사람은 1호점 점장인 안국희(75)씨다. 안씨는 서울 인사동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하다 은퇴한 이력이 있다. 꽈배기나라가 생겼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는 안씨는 김 할머니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그를 이곳에 소개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 역시 출근 만족도는 높다고 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매달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재미가 있는데다 손자들에게 가끔 용돈도 줄 수 있어 자존감도 생겼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추레해지기 마련인데 일을 시작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나 스스로를 관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작은 가게지만 매일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머리 모양도 더 신경 쓰게 되고, 옷차림새 하나까지도 깔끔하고 단정하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돈 때문에 자식들 눈치 보는 일도 없어졌다. 전에는 외출할 때 용돈이 필요한데 돈 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참 어렵더라. 자식들 앞에서 주춤거리게 되고. 이제는 내가 벌어서 쓰니 그런 스트레스도 없다. 건강도 더 좋아졌다. 나뿐만 아니라 여기서 일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의자에 앉아 있는 법이 없다. 가게 내에 정해진 규칙은 아닌데 손님이 없을 때도 편하게 앉아서 쉬는 사람은 없다.”

취재진이 둘러본 가게는 기름 튄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노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위생적이지 못하다거나 지저분하지 않겠느냐는 일부의 편견은 말 그대로 편견일 뿐이었다. 김 할머니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위생 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가게) 화장실에서 밥을 먹어도 될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하자는 것이 내 생활신조”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꽈배기를 만들거나 손님을 받는 일이 없을 때도 쉬지 않고 닦고, 치우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고 한다. 지방에서 올라온 김 할머니에게 ‘출근’은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대구에서만 평생을 살다 와서 그런지 서울에 친구가 없었다. 일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냈다면 아마 쓸쓸하게 노년을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꽈배기나라에서 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이 생긴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동네 단골이 하나 둘 늘면서 얼굴을 익히게 되는 일도 내겐 큰 즐거움이다.”

꽈배기나라 운영에 행정적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편석용 은평시니어클럽 팀장은 “꽈배기나라처럼 수익을 창출하는 ‘시장형’ 일자리 사업에는 이미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나 국민건강보험 직장가입자를 제외하고 60세 이상의 모든 노인이 참여할 수 있다”며 “안정적인 수입과 지속가능한 일자리 아이템이라는 측면에서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편 팀장은 이어 “꽈배기나라는 엄연한 직장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모두 퇴직보험에 가입돼 있고, 일정기간 근무 후 일을 그만두면 퇴직금도 받게 된다”고 했다.

아마 5단 이상 고수로 구성된 노인 사범들


꽈배기나라에 이어 성공적인 일자리사업으로 평가받는 곳이 은평구 역촌동 바둑학원이다. 은평시니어클럽에서 주도한 시장형 일자리사업 중 바둑학원은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간 경우다.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노인일자리 아이템 공모전에서 바둑학원이 선정돼 정부예산 4000만원을 지원받았다. 또 은평구 예산 3800만원도 투입됐다. 은평시니어클럽의 자체 사업예산 2000여 만원까지 더해 1억원 가까운 돈이 학원 임대보증금, 인테리어 공사비, 내부 기자재 구입비에 들어갔다. 이후 강사모집 등 준비과정을 거쳐 2016년 3월 바둑학원이 문을 열었다.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강사선생님 7명 역시 모두 60세를 훌쩍 넘은 어르신들이다. 아마 5단 이상의 바둑 실력자들인 이들은 은퇴 전 교사·회사원·사업가 등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7명의 선생님 중 4명은 학원에 등록한 학생들을 전담으로 가르친다. 나머지 3명은 유치원 등 외부로 방문을 나가 바둑을 가르친다. 대상이 주로 초등학교 1~4학년이다 보니 이들이 학교를 끝마치는 오후 2시부터 바둑수업이 시작된다. 수업은 50분씩 진행되는데 오후 6시까지 모두 다섯 타임으로 돼 있다. 현재 학원에 등록된 초등학생들은 50명 정도다. 일반 바둑학원이 월 10만원 안팎의 수강료를 받는데 비해 이곳은 4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이 학원의 지난해 매출은 5000만원 가까이 됐다. 수강료가 워낙 싸다 보니 큰 매출을 올리지는 못하지만 학원을 유지하는 데는 부족하지 않다.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고 나머지는 모두 강사 월급으로 지출된다. 일반학원과 똑같이 운영되지만 어르신 강사 외에는 학원 수입을 가져갈 원장이나 사장이 없어서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 은평시니어클럽 관계자의 전언이다.

3년째 이곳에서 바둑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장희(70)씨는 예전에 섬유 관련 회사를 경영한 기업인 출신이다. 한때 사업이 번창해 큰돈을 벌 때도 있었지만 차츰 섬유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사업을 정리하고 현업에서 은퇴했다. 취미로 두던 그의 바둑실력은 아마 5단이다. 다른 사람을 정식으로 가르쳐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 바둑교사 일을 시작하면서 부담이 많았다고 한다. 이씨는 유투브 동영상 등 인터넷에 있는 각종 바둑 정보 사이트를 통해 쉽고 재미있게 바둑을 가르치는 법을 익혔다. 지금은 학원 내에서 가장 학생 수가 많고 실력 있는 인기 교사가 됐다. 이씨는 “바둑을 취미로만 두는 것과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며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흥미를 많이 가질 수 있도록 가르치느냐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하루 5시간씩 주 4일(2017년 기준)을 바둑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보통 수업 시작 30분 전인 오후 1시 30분까지 출근한다. 학생 수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평균 월 80만원을 받았다. 학생이 많을 때는 100만원까지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올해는 교사가 충원돼 주 3일로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 자연스레 월급은 70만원 선으로 줄었지만 받는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일하는 즐거움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했다.

“돈을 버는 것 자체보다도 매일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손자뻘 아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삶의 활력이 된다. 하나같이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라 가르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바둑을 통해 실력뿐 아니라 아이들의 인성이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일이 보람 있다. 2년 전 초등학교 2학년 때 이곳에 와 처음 바둑을 배운 한 학생이 있다. 이 아이는 처음에는 산만하고 장난질이 심해 다른 아이들의 수업에까지 방해를 하곤 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 순간 침착해지고 인내심 있는 모습으로 바뀌더라. 또 바둑판 자체가 하나의 우주나 다름없지 않나. 수백 판을 둘 때마다 다 다르다. 아이들의 창의력에도 도움이 된다. 학부모들의 반응도 꽤 좋다고 들었다.”

이씨는 80세가 될 때까지 계속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일자리가 없었다면 집에서 하루 종일 TV를 보거나 취미 바둑을 두며 무료한 날을 보냈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이씨는 “내가 가진 재능을 썩히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돼 개인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자리라고 생각한다”며 “주변에도 내 나이 또래 중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를 활용할 일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은평구다. ‘2016 서울통계연보’를 보면 은평구 전체 인구 50만2578명 중 65세 이상 노인만 7만1457명(14%)에 달한다. 은평구는 노령인구가 많은 지역적 특성에 따라 그동안 다양한 노인일자리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왔다. 은평시니어클럽으로 대표되는 사회복지법인 측의 아이템 개발 노력과 행정기관인 구청과 서울시의 지원이 잘 맞물린 덕분에 전국 지자체에서 하는 노인 일자리 창출 부분에서 가장 모범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은평구는 노인 일자리 사업 5년 연속 우수 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범기 은평시니어클럽 관장은 “지역별 특성, 학력 수준 등 다양한 요소를 치밀하게 분석해 성공 가능성이 큰 노인 일자리 아이템을 선정하는 사전 작업이 중요하다”며 “단순 노동을 넘어 자립과 사회적 소속감을 양질의 일자리를 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살펴본 두 현장이 보여주는 노인 일자리 사업 사례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진행해온 노인 일자리 사업이 너무 한쪽 방향으로 편중돼 있거나 획일화돼 있지는 않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사업의 양적 성장에만 매달려 질적인 부분은 간과하지 않았는지도 중요한 부분이다. 결국 이 문제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들이 그동안 얼마나 높은 만족감과 자존감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와 연결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익형에 편중된 노인 일자리 사업


▎민간 기업의 노인친화적 일자리 사업이 활기를 띨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대표적 사업인 CJ대한통운의 ‘실버 택배’는 2013년 부산에서 처음 시작된 이래 5년 만인 지난해 12월 누적 배송 2000만 상자를 돌파했다.
정부나 지자체, 사회복지법인 등이 관여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은 보통 공익형과 시장형으로 구분된다. 사실 꽈배기나라나 바둑학원처럼 은평구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시장형 노인 일자리 부문은 국내 전체 노인 일자리 사업에 비춰봤을 때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각각 5232억원과 5063억원 등 총 1조 295억원을 투입했다. 노인일자리 사업 규모는 모두 46만 7000개로 그 가운데 공익형이 33만 7000개로 72.2%를 차지했다. 노인 일자리 사업 10개 가운데 7개가 공익형인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공익형 활동 참여자에게 22만원을 지급해오다 현 정부 출범 후 5만원을 올린 27만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공익형 수당을 40만원까지 인상할 방침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해 실시한 노인일자리 사업 중장기 재정 추계에 따르면 소득 중하위층 노인의 사업 수요를 완전히 충족시키고 모든 노인일자리 지원 단가를 두 배로 인상할 경우 5년 뒤인 2022년에는 3조 3704억원, 10년 뒤인 2027년에는 4조 2923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노인 중에서도 경제적 생활 수준이 상당히 낮고 노동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익형 사업이 적정 수준으로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또 그동안 공익형 일자리가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역할을 상당부분 해온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노인 일자리를 이야기할 때 단순히 먹고 살기 힘든 나이든 고령자를 ‘구제’하는 1차원적 지원에만 집중하거나 매몰돼서는 안 되는 시기가 왔다는 점이다. 노인일자리 규모나 지급 활동비가 아주 낮은 수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사실 양적 확대만 놓고 보면 노인 일자리 사업은 역대 정부가 추진해 온 사업 중 꽤 성공한 축에 든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4년 2만 5000개로 시작한 노인일자리 사업 규모는 지난해까지 연평균 24.6%씩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질을 놓고 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당부분이 노인들에게 용돈 나눠주기 식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현행 일자리 사업의 문제점은 노인들의 능력과 기존 경험을 활용할 만한 자리는 극히 일부에 그치고 대부분 단순노동직이라는 것이다. 노인 일자리의 양적 증가에만 치중한 나머지 질적인 부분은 상대적으로 도외시한 측면이 많았다는 지적이다.

최근 각 지자체가 이런 단순노동형 일자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의 일자리 창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규모 면에서 상당히 미흡하다. 예를 들어 어린이나 청소년 등에게 전래동화·한자·예절·전통놀이 등을 가르치거나 문화재 해설, 외국어 특기자 통·번역 등을 하는 교육형 일자리는 노인들의 경험과 능력을 살릴 수 있지만 실제 고용인원은 많지 않다. 그리고 이런 사업 역시 수익사업이 아니라 정부 재정을 일방적으로 투입하는 일자리이기 때문에 예산 확충이 전제되지 않고는 인원을 대폭 늘리기도 어려운 한계가 있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불만이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는 관련 사업을 분석한 결과 사업 물량이 공공분야에 치중돼 있어 노인들의 니즈와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노인 일자리를 최대한 민간 영역으로 확대하는 방식의 대안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지원과 지자체 자체 예산, 사회복지법인의 후원금 예산 등을 토대로 각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시장형 일자리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공공 예산이 들어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민간 일자리 범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일방적 재정 투입 사업이 아닌 민간시장 영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낸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앞서 현장을 둘러본 은평구의 두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사업 노하우가 쌓여 수익이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고용할 수 있는 노인 일자리를 늘리거나 혹은 임금 수준을 올릴 수도 있다.

민간기업의 노인 일자리 친화사업에도 주목해야


▎지난해 6월 29일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부산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2017 60+시니어 일자리 한마당’ 행사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나 지자체 재정이 대거 투입되는 이 같은 일자리사업에 대한 문제점은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꾸준히 제기돼 온 바 있다. 지난해 7월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는 ‘문재인 정부 노인 일자리 창출 활성화 방향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지정토론에 나선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고령자 고용정책의 정책 목표가 노인 고용률이 되어서는 안 되며 질이 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은 반드시 제어돼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이인재 한신대 휴먼서비스대학 교수는 고령자에 대한 일자리사업도 좀 더 세분화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공익형 사업은 70세 이상을 중심으로 재편하고, 60대는 시장형 사업에 배치하는 등 대상에 따른 전략적인 맞춤형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간 기업들이 노인 친화형 일자리를 적극 만들어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몇몇 기업의 시도는 눈여겨볼 만하다. CJ대한통운은 ‘실버택배’를 운영하고 있다. 실버택배란 택배차량이 아파트 단지까지 물량을 싣고 오면 노인들이 친환경 전통 카트를 이용해 각 가정까지 배달해주는 사업모델이다. 이 사업이 처음 시작된 것은 2013년이다. 당시 CJ대한통운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실버종합물류란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부산 연제구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택배 거점 4곳, 직원은 41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거점이 전국 160곳, 직원은 1300명으로 늘었다. 실버 직원들이 배송한 택배도 첫해엔 연간 70만 상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엔 연간 800만 상자 수준으로까지 꾸준히 늘었다. 누적으로는 2017년 12월까지 2000만 상자를 돌파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어르신 배송원들은 배송 거점을 기준으로 반경 1~2㎞ 이내 배송만 하는 것이 원칙이다. 1명당 하루 평균 배송량도 40~50건이다. 근무시간으로 치면 하루 3~4시간 정도다. 고령 배송원들에게 체력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SK텔레콤은 ‘SK나이츠 실버 챌린저’를 운영하고 있다. SK나이츠 실버 챌린저기는 SK나이츠 홈 경기장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입장권 검수 및 좌석 안내 도우미 역할을 한다. SK텔레콤은 송파구청과 함께 이 지역 노인 일자리 전담 기관 송파시니어클럽을 통해 지난해 8~9월 두 달 동안 만 60~70세 실버 세대를 대상으로 SK나이츠 실버 챌린저 1기를 모집했다. 당시 지원율은 약 4대 1이었다.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쳐 선발된 SK나이츠 실버 챌린저 1기 10명은 남성 6명, 여성 4명으로 이뤄졌다. 평균 나이는 만 65.4세다. 과거 직장인, 교사, 자영업자 등으로 왕성히 일했던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선발된 1기 실버챌린저는 지난해 10월 14일 개막한 2017-2018 프로농구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했다. SK텔레콤의 이 사업은 미국프로농구(NBA)의 샌안토니오 스퍼스, 피닉스 선스 등이 홈 경기장에서 지역사회 실버 세대에게 입장권 검수나 좌석 안내 등 자원봉사 기회를 주고 있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아동안전지킴이’로 일자리 창출 시동건 대한노인회


▎대한노인회도 노인일자리 창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1월 5일 이중근 대한노인회 회장(사진 왼쪽)과 간부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노인 일자리 문제를 꼼꼼히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간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과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석균 중앙대 경영대 교수는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의 경우 노인들이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곳에서 일하고, 기업들이 이런 노인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정부의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일본은 2004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정년 연령이 65세 미만인 기업은 ‘65세까지 정년 연장’, ‘계속 고용제도 도입’, ‘정년제 폐지’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하도록 해 2006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또 ‘고령자 고용 촉진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제정해 모든 민간 기업들은 55세 이상의 고령자를 전체 종업원 수의 6.0% 범위 내에서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노인일자리 문제에 대한 관련 사회단체의 지속적 관심과 적극적 활동도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노인회는 그동안 각 시도지회를 중심으로 해당 지자체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시니어 취업 지원사업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적극적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에도 대한노인회 취업본부는 노인 2만 70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소개하는 등 나름의 역할을 한 바 있다. 대한노인회는 정부의 노인일자리 정책에도 적극 호응해 참여할 예정이다.

이중근 대한노인회장은 “노인복지 정책의 최고는 바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어 “대한노인회는 올해 ‘아동안전지킴이’ 위탁사업을 새롭게 진행한다”며 “이를 통해 9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미래 세대의 주역인 아이들의 안전문제에 대한 사회적 기여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5일 이 회장과 대한노인회 관계자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노인 일자리 문제는 화두였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노인 일자리 창출 등 노인복지와 관련한 사항들을 꼼꼼히 챙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700만 명을 돌파했다. 10년 뒤면 1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가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와 달리 고학력 출신의 고령 인구가 갈수록 늘어가는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노인 일자리 해법을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때다.

- 글 고성표 월간중앙 기자 muzes@joongang.co.kr / 사진 원동현 객원기자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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