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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G-30, ‘하나된 열정’ 평창을 가다 

“올림픽 경기 준비? 당장 내일부터라도 OK!”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글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경기장 체험 선수들 “세계 최고 수준” 한목소리…개·폐회식은 유례없는 지상 최대 이색 비주얼 쇼 예정

평창겨울올림픽이 1월 10일로 G(game)-30을 맞았다. 2011년 3수 끝에 개최지로 선정됐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한때는 성공 개최에 대한 먹구름이 드리우기도 했다. 그러나 개회식을 코앞에 둔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하나된 열정’이라는 대회 슬로건처럼 열풍이 한겨울 추위를 녹였다. 월간중앙이 1박2일 동안 평창올림픽 막바지 준비 현장을 둘러보았다.


▎1월 11일 ‘제48회 대한스키협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평창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질주하고 있다.
"다리 들어서 찍어야지, 더더!”

1월 11일 아침 알펜시아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제48회 대한스키협회장배 전국스키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30초 간격으로 출발선을 떠났다. 선수들은 폴대로 땅을 짚고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곧바로 오르막길이 이어지면서 선수들 움직임이 둔해지자, 길목에 있던 코치들이 자세를 다잡으라고 목청을 높였다. 소리치는 코치들의 콧수염 위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스키 크로스컨트리 선수는 짧게는 10㎞에서 길게는 50㎞ 코스를 주파해야 한다. 전체 코스 가운데 3분의 1이 오르막이어서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크로스컨트리가 ‘설상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이유다.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이채원(37·평창군청)은 “설질(雪質)이 좋아야 스키가 잘 미끄러져 나아가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다”고 귀띔했다.

평창올림픽은 준비기간 내내 ‘적자 올림픽’ ‘부실 준비’ 논란에 시달렸다. 비용을 아끼려다 준비가 늦어지는 악순환이었다. 개회식을 30일 앞둔 현재, 우려는 현실이 됐을까? 강릉과 평창에서 만난 선수들은 “설질과 빙질(氷質) 모두 최고”라고 평가했다.

호주인 부부, 처음 본 설경에 황홀


▎호주 퀸즐랜드에서 온 그비디 부부가 강릉역 앞 오륜기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이틀 전 티켓을 예약하려니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강릉행 KTX 좌석은 이미 매진됐다. 다행히 하루 전날 예약 취소된 티켓을 구해 기차를 탔다. 경강선이 개통됐다는 소식을 듣고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리를 채웠다. 경기도 포천에서 왔다는 박근발(65)씨는 “십수 년 전에는 무궁화호를 타고 여섯 시간 걸려 강릉에 갔었다”며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박씨는 “예전에 아내와 신혼여행을 간 경포해변부터 들러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2시간 만에 강릉역에 내린 관광객들은 역사 1층에 위치한 평창올림픽 스토어로 향했다. 한 관광객은 평창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 인형부터 스노볼·후드티 등 기념품을 13만원어치나 구입했다. 이곳을 관리하는 한정석(35)씨는 “평일에도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엔 20여 명씩 몰려온다”며 “올림픽 개막이 가까워진 것이 실감 난다”고 말했다.

강릉역 앞에는 올림픽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호주 퀸즐랜드에서 온 카일리와 위즈덤 그비디 부부가 조형물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인 1월 11일 평창역에서 서울로 돌아간 그들에게 전화로 소감을 물었다. 부부는 “호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설경(雪景) 덕분에 즐거웠다”며 “숙소인 ‘휘닉스 평창’에서 평창역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운영해 편하게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신기록 내는 경기장이 목표”


▎“강릉고등학교 동창끼리 오랜만에 고향으로 놀러 왔다”고 밝힌 관광객들이 올림픽 개최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있다.
강릉역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강릉 올림픽파크로 갔다. 이곳에는 빙상 경기장이 모여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강릉 아이스 아레나에서는 피겨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가 열린다. 아이스 아레나는 VIP 라운지 내부 공사와 제빙 작업만 남겨놓고 있었다. 보안 문제로 VIP 라운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경기장을 안내한 평창올림픽조직위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피겨스케이팅 일반석을 구입했다”고 귀띔했다. 일반인들과 함께 관전을 즐기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이하 ‘강릉 오벌’)은 제빙 작업까지 마친 상태였다. 경기장 네 곳 가운데 준비 속도가 가장 빠르다. 2년여 전만 해도 ‘미운 오리새끼’ 취급을 받았다. 사업비를 줄이기 위해 설계를 완전히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유지비 걱정에 올림픽 이후 수산물 냉동창고로 쓰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논란이 끊이지 않아 2015년 중반에서야 착공할 수 있었다.

이곳이 ‘백조’로 재탄생한 것은 2017년 2월 열린 ‘2017 ISU 세계종목별선수권대회’ 때다. 본인 최고기록을 깬 선수들이 속출했다. 당시 한국을 찾은 ‘남자 빙속 장거리의 황제’ 스벤 크라머(33·네덜란드)는 “빙질이 정말 좋아서 기록이 잘 나왔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경기장에서 만난 여수연 스피드스케이팅 종목 담당관은 아이스메이커(정빙 책임자)인 마크 메서를 일등공신으로 꼽았다. 빙상장을 올림픽 수준으로 관리하려면 습도와 온도뿐 아니라 수질까지 통제해야 한다. 여 담당관은 “일반 식수로 만든 얼음은 미네랄 성분 때문에 경기장 바닥에 제대로 압착되지 않는다”며 “마크 메서가 온 뒤에야 별도 정수시설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고 회고했다.

메서는 1988년 캐나다에서 열린 캘거리 겨울올림픽 때부터 아이스메이커로 활동해왔다. 당시 그가 만든 ‘캘거리 오벌’은 여전히 선수들 사이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빙상장’으로 꼽힌다. “강릉 오벌이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계신기록이 쏟아진 경기장으로 남길 바란다”고 답했다. 그에게 “내일이라도 경기를 치를 수 있느냐”고 묻자 “이틀 후”라고 말했다. 자신은 준비됐지만, 경기를 취재할 기자들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일본 선수에게는 “간바레” 응원 쏟아져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고속열차가 강릉역에 닿기까지는 두 시간이 걸렸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굽이굽이 6시간 걸려 가던 때에 비하면 상전벽해다.
한파가 몰아닥친 1월 11일 평창 알펜시아에 위치한 설상 경기장을 찾았다. 크로스컨트리와 바이애슬론, 스키점프, 봅슬레이 등 슬라이딩 종목이 이곳에서 열린다. 이날은 대한스키협회에서 주관하는 크로스컨트리 경기가 열려 경기장 주변이 북적거렸다. 여자 5㎞ 클래식에 30명, 남자 10㎞ 클래식에 47명이 참가했다. ‘클래식’은 크로스컨트리 스키 주법(走法)의 일종이다.

선수들은 강추위를 뚫고 나아가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날 경기에 참가한 일본 선수 5명의 모습도 힘들어 보였다. 한 일본 선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을 달리는 사이, 코스 양옆에서 “간바레!”라는 응원 목소리가 쏟아졌다. 한국인 코치들의 격려였다. 홍순철 크로스컨트리 경기위원장은 “극기(克己)가 필요한 종목이기 때문에 ‘내 선수’ ‘네 선수’ 따지지 않는다”며 “크로스컨트리엔 국적뿐만 아니라 학연도, 지연도 없다”며 뿌듯해 했다.

크로스컨트리 국가대표 선수들 모습도 보였다. 일본 삿포로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사흘 전 평창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국가대표 ‘왕언니’ 이채원이 여성 5㎞ 클래식에서 16분02초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2위를 기록한 호주의 에이미 왓슨을 12초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렸다. 다른 국가대표 선수 8명은 남녀 종목에서 10위권에 안착했다.

이채원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을 시작으로 빠짐없이 올림픽 무대에 나섰다. 평창올림픽까지 다섯 번째 출전이다. 평창 횡계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스키부에 가입해 크로스컨트리를 시작했다. 그만큼 지켜보는 선·후배들이 많다. 부담도 많고,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있다.” 그는 “평창올림픽 크로스컨트리 여자 10㎞ 프리에서 20위권에 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올림픽 스타디움이 위치한 평창 횡계리는 황태로 유명하다. 스타디움이 세워진 장소가 원래 명태를 말리는 황태덕장이었다. 그만큼 살을 에는 듯한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곳이다. 이 때문에 평창올림픽조직위는 한때 강릉종합운동장을 개회식장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을 정도다.

올림픽 스타디움을 찾은 이날은 체감온도가 영하 23도까지 내려갔다. 챙겨 간 방한 장구가 무용지물로 느껴질 정도로 추웠다. 스타디움이 내다보이는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안채영(21·여)씨는 “나도 횡계리 사람이지만 이런 날씨는 손꼽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날 추위를 견디다 못한 한 남성 기자는 여성용 스타킹을 구입해 갔다고 한다.

올림픽 스타디움에 피어오른 ‘연밥’


▎빙상 종목이 열리는 강릉 올림픽파크 뒤로 경포호가 보인다. 왼쪽부터 강릉 아이스 아레나와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 강릉 하키센터.
‘스타디움에 들어서자 개·폐회식 연출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들이 눈에 띄었다. 연밥처럼 생긴 LED전등이 모든 좌석에 설치돼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 응원팀이 선보였던 카드섹션을 연상케 했다. 성화대 앞에 설치된 100m 길이의 슬라이딩 구조물도 낯설었다. 스타디움을 안내한 평창조직위 관계자는 “연출 내용은 극비라 나도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성화를 점화한 뒤 스키로 활강하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겠느냐”며 기대했다.

‘난타’로 유명한 송승환(61) 총감독이 2015년 7월부터 평창올림픽 개·폐회식 준비를 진두지휘해 왔다. 1월 15일부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진행할 예정이다. 송 감독은 연초 언론 인터뷰에서 “서울올림픽 ‘굴렁쇠 소년’ 이상의 장면을 기대해도 좋다”고 밝혔다.

“적은 예산과 추운 날씨에도 개·폐회식을 잘 치렀다는 반응을 얻고 싶어요.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경기가 열리지 않는 스타디움에서 개·폐회식이 진행되는 만큼 과거에 본 적 없는 색다른 비주얼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송 감독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평창올림픽 스토어 담당자가 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반다비 인형을 정돈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스피드스케이팅 빙판은 두께가 2.5㎝에 불과하다. 물을 살짝 뿌려서 얼리고 그 위에 다시 물을 뿌리는 과정을 20여 차례 반복해 빙판을 만든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오벌에서 막바지 제빙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1. 아이스 메이커인 마크 메서가 정빙기에 올라 빙판을 다듬고 있다. 메서는 1988년 캘거리겨울올림픽부터 줄곧 빙판을 만들어온 베테랑이다. / 2. 평창 알펜시아는 막바지 조경작업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크로스컨트리 경기장 맞은편에 오륜기 조형물이 설치되고 있는 모습. / 3. 강릉 올림픽파크에 설치된 대형 스케이트 조형물. 조형물 앞 표지석에는 “강릉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세계로 뻗어나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적혀 있다.



▎1.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은 개·폐회식 전용으로 지어진 게 특징이다. 송승환 총감독은 “수백 명이 지하 3m에서 동시에 무대로 뛰어오를 것”이라고 귀띔했다. / 2. 조선 백자를 연상케 하는 성화대 앞으로 용도를 알 수 없는 슬라이딩 구조물이 눈에 띈다. / 3. 개회식의 밤을 화려하게 빛낼 LED전등이 전 좌석에 촘촘하게 설치돼 있다.



▎이른 아침 경포해변을 찾은 관광객들이 살을 에는 듯한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 사진 전민규 월간중앙 기자 jun.minkyu@joongang.co.kr 글 문상덕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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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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