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하영삼의 한자 키워드로 읽는 동양문화(2)] 문(文): 음성 중심주의와 문자 중심주의 

단순한 음역(音譯)보단 ‘황금색 문(門)’이 좋아 

하영삼 경성대 중국학과교수
맥도날드, 마이당라오에서 진공먼으로 명칭 변경…중국 전통 반영해 로컬화 확고히 하려는 의도인 듯

▎중국 후난성 창사의 KFC 매장 앞에서 시민들이 ‘KFC(肯德基)와 맥도날드는 중국을 떠나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웨이보
1. 맥도날드(McDonard)와 골든 아치(Golden Arches)


▎2017년 10월 새로 바뀐 맥도날드 간판 진공먼.
2017년 10월 맥도날드 중국 본부는 맥도날드의 중국 명칭을 ‘마이당라오(麥當勞, màidāngláo, )’에서 ‘진공먼(金拱門, jīng ngmén, 金拱)’으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중국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여졌다. 전자는 완전하진 않지만 그래도 ‘McDonard’와 발음이 비슷했다. 그러나 새로 바뀐 뒤의 이름은 맥도날드라는 발음과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름엔 회사의 명운이 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맥도날드’하면 패스트푸드의 상징이자 전 세계 곳곳에 가장 깊이 침투한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더구나 중국에서도 승승장구하던 최고 기업 중의 하나 아니던가? 그런데 왜 갑자기 익숙한 이름을 버리고 생소한 명칭으로 바꾼 것일까?

‘금공문(金拱門)’의 금(金)은 황금색을, 공문(拱門)은 아치를 뜻한다. 그래서 번역하면 ‘황금색 아치’ 정도다. ‘금공문’은 의미와 상관없이 소리만 비슷하게 옮긴 ‘마이당라오(麥當勞)’와 달리 맥도날드의 로고인 ‘Golden Arches’의 의 미를 살린 번역이다. ‘황금색’이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이고, ‘무지개 문’이라고도 불리는 ‘아치’도 중국에서 오래된 전통의 건축 양식임을 고려하면 ‘금공문’은 중국의 문화적 전통을 상당히 배려한 이름이다. 게다가 ‘맥도날드’의 M자 비슷한 노란색 로고를 그대로 연상시킨다.

그러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생뚱맞다’, ‘촌스럽다’, ‘암흑가를 연상시킨다’는 등 혹평이 많다. 혹자는 내친김에 태극문양이 든 ‘펩시콜라’는 ‘태극(太極) 콜라’로,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를 그린 ‘스타벅스 커피’는 ‘백모녀(白毛女: 흰 머리 여성) 커피’로, 빨간 모자가 들어간 ‘피자헛’은 ‘홍모자(紅冒子: 붉은 모자) 식당’으로 고치자고 하고, 심지어 중국의 최대 포털사이트인 ‘바이두(百度, Baidu)’는 로고 모양이 곰 발자국 같다고 해서 ‘곰 발자국(熊掌) 검색엔진’으로 고치라고 비꼬기도 한다.

그렇다면 맥도날드가 위험을 무릅쓰고 브랜드명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음성 중심의 서구 전통이 아니라 문자 중심의 중국 전통을 반영해 맥도날드의 로컬(local)화를 확고하게 하려는 야심찬 의도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중국의 문자 중심주의 전통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에서 그는 서구의 철학적 전통을 로고스 중심주의 또는 음성 중심주의라고 규정하면서 말이 문자보다 우위에 선다는 견해를 비판했다.
중국은 한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문명이다. 한자는 이 세상에서 사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표의문자다. 즉 의미 중심의 문자로 글자 속에 뜻을 담고 있다.

인간의 의사를 표현해내는 방법에는 크게 말과 문자가 있다. 말은 청각 체계이고, 문자는 시각 체계이다. 문자는 다시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음가(音價)만 가지는 문자와 의미를 담은 문자가 그것이다. 전자의 대표가 우리 한글과 영어의 알파벳이고, 후자의 대표가 한자다. 물론 알파벳 이전의 메소포타미아 설형문자나 이집트 문자도 처음에는 의미를 표시했으나 이후 의미 표시 기능을 상실하고 음가만 표시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구체적 형상과 추상적 의미의 결합을 통해 해당 개념을 직접 나타내는 한자를 줄곧 사용해온 중국인들은 한자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그들은 한자를 사용함으로써 논리적이 아니라 직관적이고, 추상적이 아니라 구상적이며, 분석적이 아니라 총체적이며, 직선적이 아니라 순환론적인 사유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다시 단절이 아닌 연속적 문명을 형성해왔다.


▎[그림 1]
예컨대 고대 중국인들은 발을 직접 그린 [그림 1]을 보면서 직관적으로 이것이 ‘발’임을 인식하고, 멈춰선 ‘발’의 모습을 통해 ‘멈추다, 그치다’는 의미를, 또 그 멈춰선 ‘발’을 통해 멈춰서기 전과 이후로의 내딛게 될 이동을 연상해 ‘가다’는 뜻을 인식했다. ‘가다’와 ‘서다’가 대칭적인 개념으로 서로 모순될 듯도 하지만 그들은 서로 연결된 총체적 개념으로 봐 모순되지 않는, 심지어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했다. 이러한 사유는 ‘실이 헝클린 모습’을 그린 ‘난(亂)’을 보면서 ‘다스림’을 생각하고, 낙엽이 ‘떨어지다’는 뜻의 ‘락(落)’을 보면서 ‘새로운 시작’을 연상하게 했던 것이다. 이처럼 직관적이고 구상적이며 총체적이고 순환적인 중국인들의 사유는 한자의 사용에 크게 힘입었다.

그래서 한자는 중국과 중국 문명을 이해하는 근원이자 핵심 요소다. 그들은 한자를 근간으로 문명을 구축해왔고, 주변의 한국이나 일본, 심지어 베트남도 한자를 빌려 문자 생활을 함으로써 중국 문명과 비슷한 문화체계를 형성했다.

한자의 이러한 속성과 역할 때문에 중국인들은 줄곧 그들의 관심을 ‘말’이 아닌 ‘문자(文字)’에 두고 그 본질과 기능 및 관련 특성들을 연구해왔다. 심지어 문자만이 진실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왔으며, 문자가 말에 우선한다는 생각을 가져왔다. ‘말’이 ‘문자’보다 더 진실하고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서구의 전통을 ‘음성 중심주의(logos-centrism)’라 칭했던 데리다(Jacques Derrida)의 개념과 견줘본다면 우리는 이를 ‘문자 중심주의’라 부를 수 있다.

3. 서구의 음성 중심주의


▎1. 제작비만 1억 위안 (한화 약 173억원)이 들어간 광둥성 선전의 마오쩌둥 황금 좌상. / 2. 2017년 여름 대전시 비봉서당에서 열린 충효교실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한자 공부에 몰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서구는 출발부터 문자보다는 말이 중요하다고 인식해왔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나니…”라고 한 성경의 첫 구절처럼 ‘말씀’은 진리를 전달하는 유일한 매체였다. 플라톤도 음성으로 표현된 말이 글로 된 문자보다도 언어적 진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자는 추방돼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대면해 직접 발화(發話)되는 말은 거짓이 있을 수 없지만, 문자는 기록되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위조되고 변형될 수 있기에 추방의 대상이었다. 말이 진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로고스(logos)’는 ‘음성’을 뜻하기도 하고, ‘진리’를 뜻하기도 한다. 또 ‘이성(理性)’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영혼을 담은 ‘말’을 ‘진리’로 봤고, 그것이 바로 ‘이성적 사유’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문자에 대해 언제나 우위적인 특권을 점유했던 말, 이러한 음성중심주의 전통은 근대에 들어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면서 우열 논리로 발전한다. 루소는 “낱말과 명제를 기호로 표시하는 일은 미개한 민족에게 적합하고, 알파벳 문자는 개화된 민족에게 적합하다”고 했다.

나아가 현대 언어학의 대부 소쉬르에게도 이러한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문자를 언어의 내적 조직과 무관한 것으로 여겨 언어학의 대상을 ‘말’에 한정하고 문자는 배제했다. 또 문자를 말을 기록하기 위한 부차적 수단으로 정의했다.

과학적이고 논리적 사유를 통해 체계적으로 구성된 소쉬르의 이론은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의 지식인에게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노신(魯迅)이나 전현동(錢玄同) 같은 학자까지도 ‘미개하기 그지없는’ 한자의 폐기를 들고나왔을 정도다. “중국의 몰락을 막는 근본적인 방법은 (…) 한자를 폐기하는 것이다”, “한자는 표음문자가 아닌 상형문자의 말류로서 인식하기에 불편하며 쓰기에도 불편하다. (…) 이러한 문자는 자연히 그 ‘명줄(命)’을 끊어버려야 한다”라는 그들의 주장은 당시 진보적 지식계를 대표했다.

1949년 들어선 중화인민공화국은 이를 기반으로 곧 한자를 폐기하고 알파벳으로 가려는 대담한 시도가 펼쳤다. 정부 수립 직후 문자개혁 위원회를 발족시킨 뒤 한자의 필획을 대대적으로 줄인 제1차 간화(簡化)방안, 제2차 간화방안을 반포하는 동시에 한자를 대신할 알파벳 표기법인 ‘한어병음방안’을 공표해 병기하도록 했다.

한자는 폐기해야 할 대상인가? 알파벳이 한자를 대신할 수 있는가? 알파벳과 한자는 동일선상에 놓일 동등한 개념인가? 제국주의의 침략에 수천 년을 지탱해온 중국이 한순간에 무너진 뒤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마르크스 이념을 지도 사상으로 삼아 들어선 혁명정부에서는 적어도 그런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마오쩌둥 정부에서는 이를 강력하게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한 1986년, 이러한 움직임은 멈췄다. 그리고 21세기, 새롭게 굴기(屈起)한 중국은 한자를 세계 최고의 문자로 만들고자 한다. 가장 미래적인 문자가 한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그토록 없애고자 했던 공자의 화려한 부활과 함께. 한자라는 것이, 전통이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4. 문(文)이 ‘문자’?


▎문(文)의 갑골문 자형(곽말약, [복사통찬]).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도록 시신에 낸 칼집으로, 피 흘림 의식의 상징이다.
‘문(文)’을 보통 서구에서 말한 ‘문자’라고 생각하고, ‘언(言)’을 ‘말’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인식한다. 과연 그럴까?

문(文)은 중국에서 그 어떤 개념보다 중요한 글자이다. 그래서 인문(人文)·천문(天文)·문학(文學)·문화(文化)·문명(文明)·문예(文藝) 등 중요한 어휘를 수도 없이 만들어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숭고한 개념을 만들게 됐을까?

문(文)을 최초의 어원사전인 [설문해자]에서는 “획을 교차 시킨다는 뜻이며, 교차한 무늬를 형상했다”라고 해 획을 교차 시킨 것이 ‘문(文)’의 원래 뜻이라고 했다. 하지만 갑골문에 근거해보면 ‘문신’이 원래 뜻이다. 바깥의 테두리는 사람의 모습이고, 중간의 여러가지 모양은 가슴팍에 새겨진 무늬이다. 그래서 사람의 몸에 새긴 무늬, 즉 문신이 처음의 뜻임은 분명하다.

무엇을 위한 문신이었을까? 여러 문헌과 인류학적 자료를 종합할 때, 이 문신은 자연사한 사람의 시신에 새긴, 피 흘림 의식을 위한 문신으로 보인다. 즉 고대인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피 흘림을 통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원시 수렵시절, 당시에는 사고나 야수의 습격 등으로 피를 흘려 죽은 사고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자연사한 경우에는 피 흘림 의식을 상징하는 문신을 인위적으로 새겨 죽은 사람의 영혼이 육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게 한 조처의 하나였다. 어떤 때는 붉은 염료를 몸에 칠하거나 염료를 발라 뭉친 흙을 시신 주위에 뿌리기도 했다. 갑골문 사(死)의 이체자(異體字)에도 그 흔적이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문(文)’의 출발은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한 피 흘림 의식을 상징하는 ‘칼집(문신)’이다. 이러한 칼집으로부터 ‘무늬’라는 뜻이 생겼고, 이후 문자(文字), 문자로 구성된 문장(文章)·문학(文學)·인문(人文) 등의 뜻이 나왔고, 근대 이후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이라는 뜻까지 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원래의 ‘무늬’는 비단을 뜻하는 멱(糸)을 더해 문(紋)으로 분화했다. 비단으로 베를 짤 때의 무늬가 가장 대표적인 ‘무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文)은 영혼이 빠져나갈 수 있는 일종의 문(門)이었고, 이 때문에 출발부터 ‘인간의 영혼’과 관련돼 있다. 문(文)은 단순히 무늬나 글자가 아니다. ‘문(文)’은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교량이며, 인간 정신의 흔적이다.

그래서 인문(人文)은 인류의 모든 정신을 포함하는 문화라는 뜻이며, 문학(文學)은 ‘인간학’이었지 ‘literature’의 번역 의미인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 행위’가 아니었고, 문인(文人)은 문학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문화(文化)도 ‘civilization’이라는 의미 이전에는 ‘인문정신으로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다’는 뜻이었다. 이 때문에 문(文)은 중국에서 문장(文章)’이나 문식(文飾)을 넘어서 ‘문심(文心)’에 해당하는 ‘정신’ 그 자체이며, 인문(人文)이 그 근원적 의미이다.

5. ‘말’이 언(言)?


▎‘언(言)’의 갑골문 자형(곽말약, [복사통찬]). 대로 만든 퉁소를 그렸으며, 아랫부분은 악기의 입(reed)을 상징했다.
마찬가지로 서구에서 말한 ‘말’이 한자에서 언(言)일까? 언(言)은 무엇을 그렸으며, 어떤 상징일까?

안타깝게도 ‘언(言)’이 ‘음(音)’과 ‘설(舌)’ 등과 자형이나 의미상으로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상용한자로서 매우 중요함에도, 이의 어원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그림 2]
[설문해자]에서는 “그저 말하는 것을 언(言)이라 하고 논란을 벌여 변론하는 것을 어(語)라 한다. 구(口)가 의미부이고, 건(그림 2 참조)이 소리부이다”라고만 했을 뿐 ‘언(言)’의 구체적인 어원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후, 송나라 때의 정초(鄭樵)는 사람의 ‘혀’를 그렸다고 했으며, 갑골문이 발견된 이후 곽말약(郭沫若)과 서중서(徐中舒) 등은 퉁소·생황·나팔·종 등 악기를 그렸다고 했다. 또 일본의 시라카와 시즈카(白川靜)는 신에 대한 맹세 때 위약에 대한 처벌의 상징으로서의 형벌 칼과 그것을 넣어 두는 그릇을 그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형으로 볼 때 언(그림 2 참조)은 ‘건(그림 2 참조)’이나 ‘신(그림 2 참조)’과 ‘구(口)’로 구성됐다. 건(그림 2 참조)이나 신(辛)은 대나무를 깎아 만든 피리인데, 그 위쪽은 확음통(擴音筒)을 그렸으며, 맨 아래쪽의 구(口)는 피리나 퉁소 등 악기의 입(reed)을 상징했다. 그리고 간혹 양쪽에 든 두 획은 대의 잔가지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言)은 대로 만든 ‘퉁소’가 원래 뜻이고, 이후 사람의 소리까지 뜻하게 되자, 원래 뜻은 죽(竹)을 더해 언(큰 퉁소)으로 분화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언(言)은 그 출발이 사람의 소리가 아닌 악기의 ‘소리’다. 즉 사물의 소리, 사람과는 관계없는, 인간의 영혼과 연계되지 않은 단순한 ‘소리’일 뿐이었다.

이 때문에 한자에서 언(言)으로 구성된 글자들, 예컨대 와( )나 와(訛)는 ‘거짓’을, 변(變)은 ‘변함’을, 유(誘)는 ‘꼬드김’을, 사(詐)는 ‘속임’을, 황( )은 ‘황당함’을, 유(諛)는 ‘아첨’을, 과(誇)는 ‘과장함’을, 저(詛)는 ‘저주함’을, 비(誹)는 ‘헐뜻음’을 말하는 등 부정적 의미 일색이다.

이처럼 어원적으로 살펴본 ‘언(言)’은 서양의 랑그(langue) 개념과는 달리 인간 이성의 궁극적인 표상으로서 로고스의 역할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면서 계속 변화되는 것이며, 공간이 달라졌을 때 원래 기능을 유지할 수 없는 가변적인 것으로 인식됐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한자에서 ‘언(言)’은 영혼의 본성에 대해 통찰하도록 하는 특징을 지닌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성음(소리)’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러한 ‘언(言)’은 영혼 안의 지식을 전달하지 못 하고, 발성기관의 소리에만 의존하는 것으로서 오히려 지혜의 실체를 망각하는 매개로서 생각됐던 것으로 보인다.

6. 한자와 미래


그렇다면, 서구에서 인간 이성의 궁극적인 표상으로서 로고스로 삼았던 ‘말’은 언(言)이 아니라 ‘문(文)’에 해당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계속 변화하고 공간이 달라졌을 때 원래 기능을 유지할 수 없는 가변적인 것으로 인식됐던 ‘문자’는 문(文)이 아니라 ‘언(言)’에 해당한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서구에서 말, 즉 로고스(logos)가 진리라면, 중국에서는 문자, 즉 문(文)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영혼과 관련돼 있고, 영혼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문명의 핵심이 됐다. 그렇다면 ‘로고스 중심주의’나 ‘문자 중심주의’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는 같다.

이름만 다를 뿐 실체가 같다면 이에 우열이 존재할 수 없고, 문명과 야만의 구분이 존재할 수 없다. 서구의 알파벳이 ‘음성’을 중시하면서 걸어온 길이나, 한자가 의미나 뜻을 중시하면서 걸어온 길은 같다. 그래서 알파벳이 낫고, 한자가 못 한 것이 아니다. 문명의 차이이고 그것이 자라온 환경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20세기 내내 단순한 논리에 오도(誤導) 돼 한자를 없애고 알파벳으로 가려 했다. 가장 중국적인 것을 버리고, 인류 최고의 전통을 끊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큰 착각이자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20세기 말부터 오류를 바로 잡아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는 특수한 문자 환경에 살고 있다. 한자와 한글이 공존하는 문자 환경이 그것이다. 표의 체계인 한자를 빌려 쓰다가, 15세기 표음문자인 한글을 발명했고, 20세기 이후로는 한글 중심의 문자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기반은 여전히 한자다. 그런데도 한자를 외래의 것으로, 버려야 할 대상이라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에게 한자가 과연 버려야 할 유산인가, 아니면 활용할 재산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두 가지 체계를 함께 사용해온 우리의 전통이 어쩌면 알파벳과 한자로 대표되는 동서양 사유의 장점을 함께 갖춘 미래형 민족을 만들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잘나가는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가 더욱 중국화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음역에서 의역으로 바꾼 ‘변신’과 ‘진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하영삼 - 경성대 중국학과교수, 한국한자연구소 소장, (사)세계한자학회 상임이사. 부산대를 졸업하고, 대만 정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한자 어원과 이에 반영된 문화 특징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에 [한자어원사전] [한자와 에크리튀르] [한자야 미안해](부수편, 어휘편) [연상 한자] [한자의 세계] 등이 있고, 역서에 [중국 청동기시대] [허신과 설문해자] [갑골학 일백 년], [한어문자학사] 등이 있고, [한국역대한자자전총서](16책) 등을 주편(主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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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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