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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철학자 신기율이 쓰는 현대인의 풍수] 공간의 유통기한 다루는 법 

마음이 멀어지면 집도 상한다 

신기율 기율다원(己律茶院) 운영
현대건축은 바깥세계로부터 격리되는 데만 골몰…‘5분 묵상’ ‘사계절 인테리어’로 에너지 충전해야

사람이 집안에서 소비하는 것은 산소만이 아니다. 공간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도 끌어다 쓴다. 때문에 쓴 만큼 충전되지 않으면 에너지가 고갈된다. ‘계약의 유통기한’을 지키는 데도 버거운 도시인들에게 ‘공간의 유통기한’은 더욱 생소할 수밖에 없다.


▎아파트의 미덕은 방음과 단열이다. 그러나 자연으로부터 격리된 집은 ‘아름답게 박제된’ 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의식마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까닭이다.
몇 년 전, A씨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오래된 집을 허물고 새 집을 지었다. 집의 이름은 효은재(孝恩齋). 평생 고생하며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었다. 집은 그리 크지 않지만 이름만큼이나 단아한 멋이 있었다. 목조지붕 밑에서 마시는 차도 제법 운치가 있어 계절에 한 번씩은 그 집을 찾곤 한다. 이번에 효은재를 찾은 것은 거의 6개월 만이었다. 부부만 사는 단출한 집이라 달라진 것은 없어 보였다. 거실에 둔 책장도, 작은 다탁(茶卓)도, 좁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주방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분명 뭔가 달라져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가. 그리고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확실히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들어 집이 답답하고 불편해졌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긴 했어요. 워낙 집이 작다 보니 그런가 보다 했지만요.”

“5년 넘게 잘 살던 집이 갑자기 그렇게 느껴지는 건 이유가 있어서예요. 집의 ‘유통기한’이 다 된 겁니다.”

“유통기한이요? 다시 지은 지 5년밖에 안됐는데요?”

A씨가 놀랍다는 듯이 되물었다.

“집 자체는 물리적으로 아무 문제도 없고 멀쩡해요. 보이지 않는 공간의 에너지가 문제입니다. 집이 갖고 있던 에너지가 거의 다 바닥난 상태예요.”

그와 얘기하다 보니 한 가지 짚이는 것이 있었다. 1년 전 그의 아버지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마저 몇 달 전 쓰러졌다. 맏아들인데다 가까이 사는 그가 병수발은 물론, 장례까지 도맡아 치렀다. A씨는 지금도 매일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을 찾고 있었다. A씨가 겪은 상실감. 그 힘겨웠던 마음이 잔상으로 남아 집 구석구석에 묻어있었다.

건강한 의식이 공간을 살린다


▎자연은 변한다. 그래서 자연을 받아들인 집도 자연과 함께 생동한다. 전남 구례군에 위치한 고택인 곡전재(穀田齋) 모습.
영성가인 데이비드 호킨스(David R. Hawkins)는 저서 [의식혁명]에서 인간의 의식 수준을 20에서 1000까지의 상태로 분류했다. 가장 낮은 레벨 20은 수치심에 차있는 상태다. 이 단계의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 모욕과 멸시를 견디며 죽지 못해 살아간다. 반면 1000에 가까운 인간일수록 자신을 초월해 영적인 구원에 다가간다. 의식의 각 단계는 레벨에 맞는 ‘에너지 장’을 만들고 레벨이 높을수록 긍정적이고 강한 에너지 장을 갖게 된다.

의식의 에너지 장은 우리가 사는 공간에도 반영된다. 굴욕과 비난, 절망 같이 저급한 감정에 휩싸여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약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주위의 에너지를 끌어들인다. 부정적인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 점점 힘이 빠지고 지치는 이유다. 말 그대로 ‘기가 빨린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저급한 감정이 머무는 곳은 빠르게 생명력을 잃는다. 반면, 기쁨이 충만한 사람은 주변 사람 역시 밝게 만든다. 오래된 성당이나 사찰 같은 수행처는 내면에 잠들어 있던 영성을 깨워주기도 한다. 요컨대 고결한 의식이 공간의 유통기한을 넉넉하게 만든다.

효은재도 나름의 밸런스를 갖추고 있었다. A씨 부부는 나름대로 마음공부도 하고 차도 마시면서 소모한 만큼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 넣곤 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일로 A씨가 깊은 슬픔과 무력감을 느끼면서 효은재의 공간 에너지도 함께 마이너스가 돼버렸다.

옛날에는 이렇게 부족한 에너지를 자연이 채워줬다. 과거 공들여 지은 집들은 요즘처럼 20~30년이 아니라 200~300년을 내다보고 지은 집이었다. 집은 한 세대가 아닌 대대손손 이어가야 할 가문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유통기한이 긴 집을 지을 때 선조들은 ‘차경(借景)’, 즉 자연의 풍경을 빌려오는 일을 중히 여겼다. 보이는 풍경을 넘어, 풍경에 담긴 자연의 에너지까지 집으로 들이는 게 ‘차경’의 참뜻이다.

툇마루에 앉으면 산이 보였고 바람소리, 물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닫아도 냄새와 소리가 전해졌고, 부엌이나 화장실로 가려면 실외를 통해야 했다. 움직일 때마다 저절로 환기가 된 셈이다. 이렇게 자연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집 안 곳곳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건축의 핵심은 순환이 아니라 밀폐다. 바깥 공기를 잘 막아야 좋은 집이다. 벽은 두껍게, 유리는 이중창으로, 그마저도 반만 열리도록 만든다. 부자가 될수록 담장도 높아진다. 그리고 그 밀폐된 공간 안에 공기를 순환시키고 청정시키는 기능을 도입한다.

음식은 밀폐가 돼야 유통기한이 늘어난다. 그러나 살아있는 생명은 밀폐된 상태로 놓으면 안 된다. 외부에서 생명력을 끌어와 순환시켜줘야 한다. 그래야 공간의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워진 현대인들은 공간의 유통기한이라는 숙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됐다.

사멸하는 공간이 내뱉는 경고음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자의식이 무형의 ‘에너지 장’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호킨스 박사가 2009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저서 [의식혁명]을 설명하고 있다.
공간의 유통기한을 알아보는 법은 어렵지 않다. 명을 다해가는 사람에게서 병증이 나타나듯, 죽어가는 공간도 징후를 보인다. 공간을 이루는 건축물들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고, 무질서가 창궐한다. 대표적인 예가 종로의 세운상가다.

1960년대 종로에는 판자촌과 무허가 건물들이 모여 거대한 빈민가가 형성돼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판자촌들을 밀어내고 북악산과 남산을 잇는 녹지를 조성하려 했다. 하지만 1966년 서울시장으로 부임한 김현옥은 이곳에 거대한 주상복합단지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세운상가 프로젝트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큰 반대에 부딪혔다. 흉물스럽다는 이유였다. 1㎞가 넘는 세운상가가 마치 기차처럼 종묘를 향해 돌진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도시화의 열망을 타고 세운상가는 이듬해 완공됐다.

이 첨단의 건물은 자연에 대한 경외와 존중, 풍수사상 같은 오래된 질서가 더 이상 권력자들을 매혹하지 못한다고 웅변했다. 옛 질서를 상징했던 종로가 유통기한을 지났다는 신호였다. 이후 종로는 정치와 문화를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갖춰갔다. 한때 종로의 상징이었던 부(富)와 성장의 헤게모니는 강남으로 옮겨 가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꽃피워 갔다.

최근 강남에 건설된 555m의 롯데타워나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569m의 현대 신사옥은 옛 세운상가를 떠올리게 한다. 두 바벨탑은 주변 건물과의 균형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은밀한 유행처럼 조금씩 번져갈 기세를 보인다. 강남으로 상징되는 익숙한 질서의 유통기한이 끝나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과시하며 외부와 단절된 자신만의 세상을 즐기는 새로운 질서가 서서히 잉태되고 있다.

공간의 유통기한이 다됐음을 알리는 증상은 개인의 공간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난다. 가장 흔한 증상은 내가 사는 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물건들이 낯선 건축물처럼 집안을 채워간다는 것이다.

한 지인은 아담한 안방에 고가의 트윈모션 침대를 들여놨다. 편한 자세로 누울 수 있도록 매트리스가 움직이는 최첨단 침대였다. 그러나 안방에 들이기엔 너무나 컸다. 침대 탓에 책장과 서랍장을 안방에서 거실로 옮겼지만 어색했다. 결정적으로 두 개로 분리된 매트리스는 이불 하나로 덮고 자던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확실한 구획이 돼 버렸다. 침대를 들여놓은 이후 부부는 오히려 각방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지인은 거실의 벽지나 가구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색 암막 커튼을 치고, 쓰는 사람이 30년은 늙어 보이는 키 큰 파티션을 구입해 집안을 가리고 분할했다. 예전에 방문했을 때 느꼈던 심플함과 시원함은 사라지고 집안에는 어둡고 그늘진 느낌이 짙게 배어있었다. 지인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야 하는 직업상 집에서도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인테리어라고 말했지만 정작 요즘 그는 집이 아닌 근처의 카페를 전전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집에서는 이상하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시도들은 집의 유통기한이 다 돼 간다는 전조증상이다. 직관이 발달한 사람들은 뭔가 달라진 느낌을 받는다. 집에 오기 전까지 산뜻하던 기분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무거워진다. 편하게 쉬지 못하고 신경이 더욱 곤두선다. 가구는 낡아 보이고,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거실의 불빛마저 짜증이 난다. 이런 집에 살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한다. 마치 헤어지기 전의 연인들처럼 처음 내가 이 집을 고르고 꾸몄던 장점은 보이지 않고 단점만 극대화돼서 보이게 된다.

‘낭송’과 ‘묵상’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라


▎종로를 경계로 종묘와 세운상가가 마주보고 있다. 유교 전통과 근대정신이 한 공간 안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형국이다.
또 한 가지 증상은 집에 대한 그리움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면 집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하루 이틀 여행을 하다 보면 처음의 흥분은 가라앉고 집보다 편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반대인 경우가 있다. 집에만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고 싶고 여행에서 도착한 그날부터 또 다른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여행가방은 늘 대기 중이고 SNS에는 낯선 곳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 차 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는 유목민처럼 자신의 집을 텐트 정도로 여기는 셈이다.

이런 증상은 지금의 공간이 더 이상 내면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게 됐다는 걸 의미하게 된다. 개인적 공간의 유통기한이 다 된 것이다.

이럴 때 우리의 선택은 두 가지다. 과감하게 다른 집으로 떠나거나, 아니면 공간의 부족한 에너지를 채워 유통기한을 늘리는 것이다. 공간 에너지가 다시 채우기 힘들만큼 너무 떨어졌다면, 사실 더 나은 곳을 찾는 게 최선책이다. 그러나 이사는 당장 계약문제나 돈, 자녀교육 등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와 직결돼 있기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 그럴 때는 적극적으로 유통기한을 늘리는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이 건강한 몸을 위해 꼭 챙겨야 할 것이 있다. 좋은 음식과 일정한 운동이다. 공간 역시 건강한 양분과 적당한 순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항상 그곳,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공간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양분은 무엇일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건강한 의식’이다. 밝고 건강한 생각과 감정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있는 공간까지 빛나고 건강하게 만든다.

의식의 수준을 높여 긍정적인 공간의 에너지 장을 만들기 위해 내가 자주 권하는 방법은 ‘낭송’이다.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동서양의 고전이나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 혹은 성경이나 불경 같은 종교적인 책도 좋다. 수행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만트라를 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것을 읽던 내 마음을 감동시키고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했던 책이나 글이라면 무엇이든 괜찮다. 하루에 5분이라도 일정한 공간에서 소리 내서 읽거나 외우면 그 파장이 내 몸은 물론, 집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다.

낭송이 일상화됐다면 다음 단계는 ‘묵상’이다. 하루에 딱 5분만 집에서 고요함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에너지 레벨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아이들을 재운 밤 시간, 혹은 잠자기 전 시간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다. 언제나 붙잡고 있던 전화를 잠시 내려놓고 온 몸의 긴장을 풀면서 조용히 눈을 감아보는 것이다. 이왕이면 정좌를 하는 것이 좋지만 편안한 의자에 앉아도 누워도 괜찮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온갖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럴 때 굳이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생각도, 고요해져야겠다고 의식할 필요도 없다. 생각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할수록 생각은 더 많아지고 고요함을 의식할수록 오히려 더 시끄러워진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려하지 말고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5분 묵상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드디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힘을 주고 있던 미간과, 나도 모르게 올라가 있던 어깨, 상처를 피해 굳게 닫힌 마음들이 느껴진다. 평소에 전혀 모르고 있던 내 몸의 경직된 부분을 느낄 때, 그 곳이 비로소 풀리고 이완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치 샤워를 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명쾌하고 선명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런 침묵의 에너지는 그대로 내 주위의 공간과 공명하며 힘 없이 정체되고 긴장돼 있던 공간 역시 풀어주고 해독해준다.

단순히 말을 안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복잡한 머릿속의 볼륨까지 잠시 꺼두고 마음까지 침묵할 때, 역설적으로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다. 마치 사랑하던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그의 소중함을 더 진하게 느끼는 것처럼. 고요히 자신에게 의식을 집중시킬 때 나도, 공간도 충만해지고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나에게 가장 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말없이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자연스럽고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말없는 시간, 고요한 침묵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나만의 작은 공간을 만들어 보자. 그 곳이야말로 나에게 둘도 없는 치유의 공간이자 집안의 강력한 에너지 충전소가 돼 줄 것이다.

자연이 있는 집에 활력이 깃든다


▎솔방울은 물을 머금으면 오므렸다가 습기가 빠져나가면 쫙 벌어진다. 겨울을 만끽할 수 있는 소품이자, 훌륭한 천연 가습기로 쓸 수 있다.
두 번째로, 공간의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키워드가 ‘순환’이다. 사람처럼 직접 발로 뛰며 운동을 할 수 없는 공간. 이 공간을 움직이게 하고 순환하게 하려면 말 그대로 적당한 삶의 ‘마디’마다 공간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

나는 중요한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면 반드시 서재의 배치를 바꾼다. 3평밖에 안 되는 작은 방이지만 책상의 방향을 바꾼다든가, 작은 보조 책장을 들인다. 하다못해 벽에 걸린 그림이라도 바꾼다. 그저 단순한 징크스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치 유통기한을 넘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병들고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서재라는 작은 방에서 글을 쓰느라 온갖 에너지를 다 끌어다 쓴 탓에 공간 에너지가 쇠해 버린 것이다. 똑같은 땅에 너무 오랫동안 작물을 키워 지력이 쇠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럴 때는 순환농법처럼 공간의 용도를 바꿔주는 것이 좋다.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고 일하는 공간으로 썼다면 그곳을 잠시 쉬는 휴식의 공간으로 바꿔주고, 고요했던 공간을 시끄러운 공간으로 써보는 것이다. 또한 같은 공간이라도 가구의 배치를 바꾸고 소품에 변화를 줘서 공간에 새로운 기류와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화합물의 분자구조가 달라졌을 때 전혀 다른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방안에 크고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다른 공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새로운 에너지가 다시 세팅될 수 있다. 때문에 직장인이라면 힘든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학생이라면 중요한 시험이 끝났을 때, 주부라면 계절이 바뀔 때, 삶의 중요한 마디마다 공간을 조금만 바꿔주면 그곳에 사는 사람도, 공간도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인테리어를 바꿀 때는 이왕이면 자연을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이 좋다. 집안을 리모델링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인공의 재료보다는 그 자체로 에너지를 품고 있는 천연재료를 써볼 것을 권하고 싶다. 흙, 나무, 돌 등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재료를 쓸 때 집안의 유통기한은 더 늘어난다. 물론 자연을 끌어들일수록 집은 불편하고 손봐야 할 곳이 많아진다. 그러나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몸을 쓰게 만드는 그 과정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발전기 역할을 할 수 있다.

집안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또 다른 방법은 ‘계절을 느끼는 것’이다. 시를 쓰는 내 친구 하나는 도시에 살면서도 봄에는 민들레를 따와서 말리고 가을에는 고추를 말리고, 대봉을 가져와 홍시로 만들어 먹는다. 작은 소금항아리를 집안에 놓고 창가에는 풍경을 달아 바람소리를 들으며 계절마다 피는 꽃을 말려 차로 마신다. 건조해지면 솔방울에 물을 뿌려 천연 가습기로 쓰기도 한다. 이처럼 철마다 자연의 소리와 냄새, 맛, 향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덕분에 그의 집은 갈 때마다 늘 새로워 보이고 숲 속 오두막인양 청량한 기운을 뿜어낸다. 자연을 쫓는 그의 부지런함이 집을 늘 충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월세 계약 따라 유랑하는 도시인


▎‘사계절 인테리어’는 집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줄이어 선 대봉감과 노릇한 호박, 빨갛게 익은 오미자가 가을 향기를 물씬 풍긴다. / 사진:신기율
마지막으로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도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방법 중 하나다. 이왕이면 뜻이 맞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들이 집안의 에너지도 좋게 바꿔줄 수 있다. 때로는 존경할만한 선배나 스승, 눈 맑은 성직자를 모셔서 대접하는 것도 좋다. 에너지 레벨이 높은 사람들은 다녀간 자리도 맑고 청정하게 만들어준다. 귀한 분을 모시기 전에는 자연히 집안의 묵은 때를 벗기고 정성을 들이게 되니 공간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더없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가끔은 설레는 긴장감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큰 도시의 유통기한은 그 곳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반영하기에 쉽게 늘어나거나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의 유통기한을 억지로 변화시키기보다 시대의 요구를 읽고 새로운 질서에 대응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반면 개인의 공간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가 반영되는 곳이기에 현실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대다수의 가정이나 가게는 1~2년 단위로 갱신해야 하는 전세나 월세 계약에 매어 있다. 세입자뿐만이 아니라 세대주 역시 큰돈이 오고 가는 이 주기를 중심으로 자신의 공간을 다룬다.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살았느냐로 공간의 유통기한이 정해지는 것이다. 이럴 때 공간의 내력(來歷)은 사라지고 계산 가능한 공간의 이력(利歷)만 남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공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공간의 유통기한을 알아야 한다.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 우리가 삶을 다루는 기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자의든 타의든 짧은 공간의 유통기한을 갖는다는 건 내가 맺는 관계의 유통기한 역시 그만큼 짧아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짧은 기한에 맞춰 소비되는 삶이란 얕고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실을 압박하는 물리적 제한을 넘어 내 리듬에 맞는 자신만의 유통기한을 만들고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 공간의 생명이 다해가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혜안과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방법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공간을 다룰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중자강(自重自强)하는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다.

※ 신기율 - 과학·종교·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횡단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 대학 졸업 후 약 15년간 철학자로서의 세상과 사람의 깊은 본질을 마주해 국내 최초로 ‘직관’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직관과 마음 치유 그리고 차(茶)를 결합한 기율다원(己律茶院)을 운영한다. 저서로는 2015년 베스트셀러 [직관하면 보인다]가 있다.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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