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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뇌를 닮은 호두 두뇌 발달에도 도움? 

기침 치료, 해독용 약재로 쓰이고 변비 없애는 데 효험… 시초로 알려진 천안 광덕사(廣德寺) 호두나무는 천연기념물 지정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피부병 치료와 강장 효과로도 유명한 호두.
호두(추자)는 견과류(nut)의 대명사로 우리나라에서도 그야말로 특별 대접을 받고 있다. 우리가 많이 먹는 미국산 호두의 99%가 바로 ‘페르시아호두’로 캘리포니아에서 난 것이다. 호두는 세계적으로 21종이 있고, 온 세계에 널리 재배되고 있으며, 비교적 추위에 약한지라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남에서만 재배된다. 현재 우리나라 주생산지는 충북의 보은·영동과 충남의 천안·청양·공주 등지라 한다.

우리나라 호두나무(Juglans sinensis)는 1290년 고려 말(충렬왕 16년)에 유청신(柳淸臣)이 원나라 사신으로 갔다 오면서 가져와 천안시 광덕면의 광덕사(廣德寺)에 파종한 것이 시초라 전해지고, 천연기념물 제 39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천안 호두과자’가 이름났던 것.

원산지는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로 추정되고, 거기서 이탈리아·독일·프랑스·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지방에까지 이르렀고, 또 동남아시아를 지나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와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여긴다. 나무 하나도 이렇게 긴긴 세월에 걸쳐 조금씩, 거듭 자리를 넓혀갔다.

호두나무는 가래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 호도나무라고도 하고, 한자어로는 호도수(胡桃樹)·당추자(唐楸子)·핵도(核桃)라고 한다. 키가 커서 10~40m에 달하고, 수관(樹冠)이 넓게 퍼지며, 굵은 가지는 사방으로 성글게 퍼지고, 수피(樹皮)는 회백색으로 밋밋하지만 자라면서 점차 깊게 갈라진다.

잎은 5∼7개의 소엽(잔잎, leaflet)으로 된 겹잎(복엽)으로 어긋나고, 소엽은 타원형에 위쪽의 것일수록 크고,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뚜렷하지 않은 톱니가 있다. 겹잎 길이는 7~20㎝에 너비 5~10㎝이고, 잎자루는 25㎝에 달한다.

꽃은 4∼5월에 피고, 암·수꽃이 같은 그루에 피는 자웅동주(암수한그루)로 수꽃엔 6∼30개의 수술이 있고, 암꽃은 1∼3개가 달린다. 열매는 둥글고, 매우 딱딱한 핵과(核果)이다.

다시 말하면 호두열매는 난원형이고, 녹색인 겉껍질(외과피, husk)은 물렁한 육질로 잉크나 물감, 염료를 만들며, 로마 때는 머리 물들이는데 썼다고 한다. 그 안에 있는 내과피(shell)는 매우 단단한 골질로 잘 깨지지 않고, 황갈색으로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며, 보드랍게 가루 내어 유리나 플라스틱에 난 실금을 말끔하게 지우는데 쓴다 한다. 내과피 안에 있는, 우리가 먹는 씨앗종자(kernel/meat)는 구형에 가까우나 심하게 골(주름)져 있고, 백색 또는 담황색을 띠며, 그 겉면은 막질의 흑갈색 씨껍질(종피)이 둘러싸고 있다.

호두나무 목재는 목질이 치밀할 뿐더러 가볍고 연하여 충격을 잘 흡수하고, 비틀림이 적어서 건축재, 가구재, 공예 재료, 운동 기구, 고급 치장무늬목 등으로 쓰인다. 나무껍질은 약용·염색·타닌 원료 따위로 시용한다.

늦가을에 딴 호두열매를 거적으로 덮어 외과피를 살짝 썩혀 벗겨내고, 물로 깨끗이 씻은 다음 1주일 정도 햇볕에 말린다. 그리고 건조시킨 과실을 가마니에 담아 통풍이 잘되는 창고나 저온 저장고에 보관하여 오랫동안 과실의 신선도를 유지시킨다. 물기 적은 호두(씨)에는 물 4%, 탄수화물 14%, 단백질 15%, 지방 65%로 지방이 주를 이루고, 식이섬유(dietary fiber), 여러 종류의 비타민 B, 식이무기염류(dietary mineral)가 들었다. 또 리놀렌산(linoleic acid), 팔미트산(palmitic acid) 같은 필수지방산(essential fatty acid)과 불포화지방의 일종인 오메가-3(리놀렌산)이 많이 함유돼 있다.

경쟁자를 제압하는 타감작용


▎고려말 파종한 것으로 알려진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호두열매는 생으로 먹기도 하고, 과자·술안주·요리·신선로 등에도 이용하며, 호두 기름은 식용 외에도 화장품이나 향료를 제조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또 호두는 흔히 두뇌 발달에 도움을 주기에 자라나는 아이들이 먹으면 아주 좋다는데 호두종자 모양이 사람의 뇌를 빼어 닮아서 하는 말이 아닐까.

나무 잎사귀는 나비나 나방이의 유충들이 먹잇감이 되고, 열매는 들쥐나 다람쥐가 먹는다. 그리고 통상 까마귀의 영리함을 설명할 때 드는 예이지만, 캘리포니아와 스위스에서 까마귀가 호두를 물고 높은 공중에 올라가 땅바닥에 패대기쳐서 깨진 속알맹이를 발라내어 먹는 것은 관찰했다고 한다.

호두나무의 잎이나 뿌리에서는 다른 식물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독성 화학물질을 만드는데 특히 사과나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고 한다. 약육강식은 동물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식물들도 자리(공간 영역)와 먹이를 넓고, 많이 차지해 종족 번식을 늘리려고 독이 있는 해로운 화합물을 분비해 다른 푸나무의 생장을 억제한다. 이를 타감작용(allelopathy)이라 하고, 그런 화학물질을 타감물질(allelochemicals)라 한다.

맛이 고소한 호두열매의 씨(속살)를 먹으면 머리털이 검어지고, 강장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한방에서 변비나 기침 치료, 해독용 약재로 쓸뿐더러 변비를 없애는 데 효험이 있고, 호두 기름은 모든 피부병을 고치는 데 쓴다. 또 외국 문헌에 “한국에서는 성적 흥분과는 상관없이 요도로부터 정액이 나오는 정액루(精液漏)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소변을 보게 되는 요실금(尿失禁) 같은 병치레에 쓰고, 정월 대보름 날에 귀신을 쫓는 부럼으로 쓴다”고 소개되고 있다.

호두나무와 같은 가래나무과의 낙엽활엽교목인 가래나무(J. mandshurica)가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지방의 비교적 서늘한 산기슭이나 계곡 주변에서 잘 자라는데 세계적으로는 시베리아·만주·중국에도 분포하는 나무다.

노인들이 혈액순환을 높이느라 호두보다 길쭉하고, 주름이 더 많은 가래 둘을 손아귀에 쥐고 딸그락딸그락, 뽀드득 뽀드득 야무지게 굴리면서 문지르거나 비비는 것을 자주 본다. 물론 가래 말고도 호두도 쓰는데 하도 굴려 반질반질한 손때기름이 한가득 묻었다!

※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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