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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조명] ‘철학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무대에서 니체를 읽다 

“니가 디자인한 시간 속에 존재해~♬” 

차민주 미술학 박사, 'BTS를 철학하다' 저자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 하루키와 헤세의 문학과 맞닿은 BTS의 가사…멤버들의 진심 담긴 메시지가 글로벌 젊은이들을 열광시킨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들. 방탄소년단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음악의 아름다운 멜로디뿐 아니라 진심이 담긴 철학적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 사진:일간스포츠
TV에서 고급 의상인 오트 쿠튀르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옷과 그리스신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로 춤을 추는 매력적인 가수를 보고 반해 그의 사생활까지 궁금해졌는데, 만약 그 가수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철학자라면? 방탄소년단(BTS)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 폭발이다. 그 성공방정식을 찾는 경영학적 분석과 기사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다.

BTS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음악의 아름다운 멜로디뿐 아니라 진심이 담긴 철학적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멤버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 진정성이 전 세계적 청춘의 심장을 진동시켜 지금의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냈다. 언론이 흔히 성공 요인으로 분석하는 SNS 소통 같은 것들은 그 수단에 불과하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진심이 없다면 SNS는 한낱 광고 매체일 뿐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철학자가 어렵게 얘기해야만 가치 있는 철학이 아니다. BTS라는 아이돌 그룹이 청춘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도 철학자의 그것만큼이나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쉽고 진실해서 많은 이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은 원초적 본능이다. 철학자 헤겔은 아름다움을 외적 미학과 내적 미학으로 나누었다. 아이돌이라는 아름다운 외모에 얹힌 춤과 노래의 외적 미학,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힘든 청춘을 부축하고자 하는 선한 의도라는 내적 미학이 합쳐진 유기적 화학물이 바로 BTS다.

단순한 가수가 아닌 ‘철학적 멘토’


▎BTS에 열광하는 해외 청소년 팬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퍼스타도 나와 같이 처절하게 밑바닥을 느낀 적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청춘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다. / 사진:트위터, 유튜브
BTS가 그동안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전한 철학적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다. 나를 찾아내고 내 꿈을 위해 노력하라는 것, 절망과 어려움에 빠진 청춘에 대한 용기와 위로,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각성의 메시지가 그것이다.

인문학이 입시 수단으로 전락한 대한민국에서 누가 시험에 나오지 않는 철학 교육을 하는가? 강렬한 음악과 춤에 얹은 ‘나’를 찾으라는 메시지는 공부라는 책임 외에 성장기의 불안과 갈등, 혼돈으로 마음 둘 곳 없는 청소년과 시스템에 따라 살다 사회에 나왔지만 아직 나를 찾지 못한 청춘들에게 크나큰 진동으로 심장에 가 닿았다.

BTS는 노래를 통해 지금 당장 꿈을 찾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고 내 인생을 살라고 끊임없이 얘기한다. 어찌 보면 부모님들의 잔소리 주제와 겹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청춘을 치열하게 살아낸 그들의 살아 있는 얘기라는 것, 시스템 안에서 공부만 하는 수동적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스스로 발견한 나를 ‘살아내라’는 점에서 차별된다. 단순한 가수가 아닌 철학적 멘토 같은 역할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너의 길을 가라고
단 하루를 살아도
뭐라도 하라고”(‘No More Dream’ 가사 중에서)


세상의 사건에 따라 휘둘리며 자아로부터 도피한 채 겨우 살아가는 것은 제대로 된 청춘의 모습이 아니다. BTS는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바라보고 사유할 것을, 내가 주인인 삶을 강조한다.

“니 꿈을 따라가 Like Breaker
부서진대도 Oh Better
니 꿈을 따라가 Like Breaker
무너진대도 OH 뒤로 달아나지마
NEVER”
(‘TOMORROW’ 중에서)


끊임없이 나를 사유하고 내가 원하는 삶을, 내가 정한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는 시행착오를 거쳐서라도 다시 일어나 이뤄내는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청춘들에게는 지금의 시스템에서 학과보다는 대학이 중요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보다는 ‘그 일에 전망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지만 그 전망이란 것도 영원하지 않다. 세상에서 무한히 각광받을 직업이란 없다. 그래서 BTS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실행하는 것을 강조한다. 꿈을 세웠다면 다음은 실행과 노력이다.

“밤새 일했지 everyday
네가 클럽에서 놀 때”(‘쩔어’ 중에서)
“Oh! 나만치 해 봤다면 돌을 던져”
(‘We Are Bulletproof PT.2’ 중에서)


어떤 사람이 나만큼 해 봤다면 돌을 던지라고 말할 수 있을까? BTS는 스스로 타 그룹과 차별되는 점을 ‘열심히 하기’라고 했다. 얼마나 열심히 하기에 열심히 하기가 차별점이 될 수 있을까. BTS는 설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청춘들에게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에게 물어봐 네 꿈의 profile
억압만 받던 인생 네 삶의 주어가 되어봐”
(‘No More Dream’ 중에서)


하이데거는 내 의지가 만든 홀로그램으로 존재하는 것이 ‘존재(existence)’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양심의 부름(내 양심에 물었을 때 내가 살기 바라는 모습)’을 위해 ‘책임을 질 각오하고’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라고 말했다.

한나 아렌트도 “세상의 틀에 기대지 말고 전통의 후광에서 벗어나 스스로 전권을 가지고 세상에 출석해 현재를 실현하라”고 말했다. 이런 철학자들의 사유는 BTS가 전하고자 하는 것과 일치한다. 세상에 둥둥 떠서 그냥 흘러가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이름표를 달고 내 의지가 원하는 무대에 출석해서 내가 정의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현재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
그렇게 살아내다가 언젠간 사라지는 것
멍 때리다간 너, 쓸려가”(‘TOMORROW’ 중에서)


시스템 안에 그냥 있지 말고 내가 정교히 정의하고 디자인한 시간에서 ‘존재’하라. 이것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 BTS의 공통된 메시지다. Not ‘Just be’, Be exist!

위로의 매직 키워드 “나도 그래”


▎BTS의 멤버. 왼쪽부터 RM, 슈가, 진, 제이홉, 지민, 뷔, 정국. BTS는 청춘들에게 세상 속에 던져진 나를 바라보고 사유할 것을, 내가 주인인 삶을 강조한다. / 사진:방탄소년단 공식홈페이지
둘째 주제는 절망과 슬픔, 어려움에 빠진 청춘들에게 보내는 위로와 용기다.

“BTS가 내 인생을 바꿨어요.” “절망의 밑바닥에서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을 때 BTS의 음악 하나로 버텼어요.” “차마 마주 보기 힘들었던 제 모습을 똑바로 보게 되었고 이제는 사랑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져도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마웠어요.” “노래가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많은 사람이 BTS를 알고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해주었어요.”

BTS 팬들이 숨김없이 고백한 글들이다. BTS의 선한 영향력, 삶에 대한 위로와 용기가 팬들에게 잘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BTS 소속사 대표인 방시혁 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처음에 그룹을 기획할 때 고민했던 것에 대해 말하면서 “지금 세대 젊은이들이 원하는 영웅은 과연 무엇일까. 위에서 교조적으로 설파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 말 안 해도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영웅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BTS는 책임과 경쟁과 장애물이 빼곡한 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그들이 겪었던 절망과 불안을 털어놓으며 위로해주고 마음 둘 안식처가 되어준 것이다.

“이 순간은 영원할 듯하지만 해 지는 밤이
다시 찾아오면 좀먹는 현실
정신을 차리면 또 겁먹은 병신
같은 내 모습에 자꾸만 또 겁이 나
덮쳐 오는 현실감
남들은 앞서 달려가는데 왜 난 아직 여기 있나”
(‘Intro. 화양연화’ 중에서)


“그렇게 살면 안 돼”는 위로가 될 수 없다. “힘들겠다”도 상투적인 공감일 뿐, 가장 큰 위로의 매직 키워드는 “나도 그래”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퍼스타도 나와 같이 처절하게 밑바닥을 느낀 적이 있었다는 것이 바로 청춘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다. 청춘들에게 다가가는 위로와 공감과 격려야말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의 원동력이다.

“내가 너무 미울 때 난 뚝섬에 와
그냥 서 있어, 익숙한 어둠과…
I wish I could love myself”(‘Reflection’ 중에서)


세계적인 수퍼스타도 자신을 사랑하고 싶어 한다니…. 청춘들은 멀리 있는 별처럼 느끼지 않고 적어도 마음속에선 가 닿을 수 있는 친근한 친구처럼 그들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는다.

“길을 잃는단 건
그 길을 찾는 방법”(‘Lost’ 중에서)


내비게이션도 아닌데 한번에 길을 찾아갈 수는 없다. 길 잃은 청춘이 받아야 할 것은 비난이 아니라 다시 일어날 격려와 용기이고, BTS는 그것을 신세대의 언어로 아름답게 전하고 있다.

헤겔은 이념들을 미학적으로 아름답게 만들기 전에는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고 했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지루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고도 했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주인공 짜라투스트라는 산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대중을 깨우치려 내려왔는데 장터에서 사람들은 그를 무시하고 익살스러운 말을 하며 외줄 타는 광대에게 더 주목하고 집중했다. 그런데 만일 그 광대가 줄을 타며 익살스러운 말로 철학을 전파했다면 어떠했을까?

어려운 말로 이야기해야만 철학이 아니다. 진짜 철학은 본인이 사유하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은 아름다운 주목으로 청춘들이 스스로 사유할 수 있게 해주었기에 이토록 큰 반향을 가져온 것이다.

사회 비판과 각성의 메시지


▎BTS의 인기비결을 집중 조명한 영국 BBC방송의 보도. BTS는 스스로가 신화가 되는 일 외에도 사회를 위한 가치도 계속 나눠왔다. / 사진:BBC방송 캡처
BTS가 주는 셋째 주제는 사회 비판과 각성의 메시지다. BTS는 사회 전반의 굴곡진 부분, 시대 현상들을 조명해 언급함으로써 재조명하거나 비뚤어진 편견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해왔다. 비틀스처럼 반전(反戰) 같은 거대 이슈가 아니더라도 사회나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같은 세대인 청춘들에게도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지라고 말한다.

“수십짜리 신발에 또 수백짜리 패딩
수십짜리 시계에 또 으스대지 괜히…
떼를 쓰고 애를 써서 얻어냈지, 찔리지?…
니가 바로 등골 브레이커
부모님의 등골 브레이커”
(‘등골 브레이커’ 중에서)


100만원에 가까운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했을 때 청소년들이 부모님을 졸라 무리해서 그 패딩을 사는 바람에 노스페이스 패딩은 ‘등골 브레이커’로 불렸다. BTS는 그들도 청소년일 때 부모님께 부담 지우며 철없이 물신주의를 쫓는 청소년 문화를 꼬집었다. 청소년들의 소비 문화에 대한 일침뿐 아니라 2017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키워드였던 ‘욜로(YOLO·You Only Live Once)’를 언급하며 소비에 열광하는 문화도 재조명한다.

“돈은 없지만 떠나고 싶어 멀리로
난 돈은 없지만서도 풀고 싶어 피로
돈 없지만 먹고 싶어 오노 지로
열일 해서 번 나의 pay
전부 다 내 배에
티끌 모아 티끌 탕진잼 다 지불해
내버려둬 과소비 해버려도
내일 아침 내가 미친놈처럼 내 적금을 깨버려도”
(‘고민보다 GO’ 중에서)


계급으로 분류될 수 없는 인간의 가치


▎BTS의 공연 무대. BTS는 앨범을 만들 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 등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고 말했다. / 사진:방탄소년단 페이스북
‘탕진잼’에서 ‘잼’이란 ‘재미’를 줄인 말이다. 탕진하는 재미가 있다는 말이다. 명절이 끝나면 홈쇼핑 매출이 상승하고 수능이 끝나면 ‘수능특수’가 오는 것을 산업계에서 긍정하듯이 낭비에는 힐링적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만 있는 것처럼 낭비하는 문화를 비난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소비를 통한 힐링도 일면 긍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대주의의 근면적 사고로 바라보자면 소비는 자제돼야 하고 효율적으로 지출돼야 하지만 건축이나 예술, 다른 산업적 관점에서 보자면 불필요한 추가적 소비야말로 아름다움의 생산을 위한 원동력일 수도 있다.

“그 말 하는 넌 뭔 수저길래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불타오르네’ 중에서)


현대사회에는 계급제도가 없지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는 존재한다. 흙수저와 금수저로 분류되는 신 카스트제도의 수저론에서 흙수저는 잘못된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는 타고난 재산의 유무로 차별받는다는 뜻도 포함한다. 인종과 종교, 성(性)과 언어 같은 것으로 차별받는 것과 똑같은 것인데, BTS는 끊임없이 이 수저론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계급으로 분류될 수 없는 인간의 가치를 강조해왔다.

“Yeah 누가 내 수저 더럽대
I don’t care 마이크 잡음 금수저 여럿 패”
(‘MIC Drop’ 중에서)


위 가사처럼 출신과 관계없이 실력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BTS의 메시지는 더 큰 힘을 가진다.

BTS는 이처럼 스스로 신화가 되는 일 외에도 사회를 위한 가치도 계속 나눠왔다. 2017년 말, 방탄소년단은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 5억원을 기부하고 향후 2년간 앨범 수익금의 3%를 기부하는 협약을 맺었으며, 아동 및 청소년 폭력 근절을 위한 ‘엔드 바이올런스(#ENDviolence)’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BTS가 그냥 반짝하고 사라지는 ‘현상’이 아니라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이토록 오래, 점점 더 커지는 지지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는 감탄을 넘어 숭고를 자아내는 춤과 노래뿐 아니라 스스로 부딪쳐 깨우친 세상에 대한 깊은 사유와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 그리고 세상에 빛을 보태고자 하는 선한 의도들이 최신 미디어를 타고 세계 방방곡곡까지 잘 전해졌기 때문이다.

- 차민주 미술학 박사, 'BTS를 철학하다' 저자

201802호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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