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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1)] 청와대 586 참모들의 ‘통일인식’ 논란 

30년 전 ‘청년학도’들 고민에 빠지다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남북한 단일팀 구성과 북한, 통일에 대한 인식 등에서 세대격차 실감…일방통행식 통일지상주의는 역풍 불러, 국민과 함께 가는 정책 요구돼

평창올림픽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빅카드로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올림픽 열기는 고조되지 않으면서 올림픽을 통한 평화 무드로 국민통합을 이뤄보겠다는 문재인 청와대의 목표는 절반의 성공에 그칠 전망이다. 고민에 빠진 청와대 586참모들의 복잡한 속내를 들여다봤다.


▎평창올림픽 열기가 고조되지 않아 고민에 빠진 청와대 참모들. 실리적 사고보다 진정성과 명분에 집착하는 586참모들의 태도는 그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국민 전체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사진:연합뉴스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김여정 특사’였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스포츠 이벤트보다 ‘정치’가 더 부각됐다는 것이다. 청와대로서는 내심 바라던 바이기도 했다. 남북관계 개선의 중요한 기회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리셉션 환영사에서 “우리의 미래 세대가 오늘을 기억하고 ‘평화가 시작된 겨울올림픽’이라고 특별하게 기록해주시길 바랍니다”고 발언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평창겨울올림픽조직위는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통해 북한 체육계와 접촉, 북한의 겨울올림픽 참가를 이끌어냈고 이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통일부 채널이 가동되면서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과 북한 응원단, 삼지연관현악단 연주회 등이 일사천리로 결정됐다. 청와대는 평창올림픽이 평화 모멘텀이 되고 북미대화의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북한의 축하사절로 고위급 방문을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결국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 부장의 역사적인 방남(訪南)을 성사시켰다. 이후 김여정 특사가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전하고 돌아가면서 남북관계는 또 한 번의 극적인 전기를 맞게 됐다. 정가 소식통에 따르면 이 같은 과정에는 청와대 586참모와 국가안보실, 국정원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영향력을 미쳤다.

주목할 만한 장면 하나가 있다. 김여정 특사 일행의 2박3일 방남 일정 마지막 날인 2월 11일, 비공식 환송만찬 장면이다. 이날 오후 5시30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한국 대표단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서울 남산 자락에 자리 잡은 반얀트리 호텔에서 이른 저녁을 함께했다. 전해진 그날의 정경 자체가 화기애애하다.

임종석 실장과 김여정 특사의 만남


▎비트코인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젊은 세대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그만큼 요즘 2030은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이다 / 사진:연합뉴스
평소 소탈하고 활달한 성격에 붙임성 좋은 임종석 실장이 먼저 양복 재킷을 벗으며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인데, 오늘은 정말 편하게 밥 먹는 자리다. 정말 편하게 한 끼 드시고 가시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임 실장은 김여정 특사에게 건배사를 제안했고 김 특사는 웃으며 “감사하다”고 사의(謝意)를 표했다. 김 특사는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한다.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리라 생각 못 했다. (남과 북이) 생소하고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비슷하고 같은 것도 많더라”며 화답했다. 2박3일 일정에 만족한다는 메시지였다. 김 특사는 이어 “하나 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건배사를 했다. 김여정 특사로서는 저녁 7시에 바로 맞은편 국립국장에서 진행되는 삼지연관현악단의 공연만 관람하고 나면 전용기를 타고 평양으로 가는 일정이니 긴장이 풀어질 만도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가자 김영남(90)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임종석 실장에게 “어제 아이스하키 경기에서 ‘우리는 하나다’란 구호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임 실장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김영남 의장은 방남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세 차례나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민족애를 나타냈다. 이에 김여정 특사도 김 의장 말에 맞장구를 치며 “우리 응원단의 응원 동작에 맞춰 남쪽 분들이 함께 응원해줘 참 좋았습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임 실장은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게 바로 저희였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참석자 모두가 그 말에 웃으며 유쾌해 했다고 한다.

만찬 전날인 2월 10일, 강릉 아이스하키 경기장 풍경은 이러했다. 경기 전부터 입장한 100여 명의 북한 응원단이 빨간색 상하의 체육복을 입고 절도 있는 군무를 펼치며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그런지 관객들이 따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아이스하키 경기장을 채운 관람객 3600여 명 중 절반 정도가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며 북한 응원단에 함께 호응해줬다. 북한 응원단은 탬버린을 두드리며 절도 있는 동작으로 예의 ‘칼군무’를 펼쳤고, 이에 관람석의 우리 응원단도 동작을 따라 해주며 분위기를 맞춰줬다고 한다. 바로 그 현장에 임종석 실장이 참석해 분위기를 맞춰주고 호응해주는 분위기를 유도했던 것이다. 북한 특사단에 대한 임 실장의 특별한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날 비공식 환송만찬은 1시간30분 동안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김여정 특사는 임 실장에게 “평양에서 다시 보기를 바란다”며 호의를 보였다고 한다. 임 실장도 남북 단일팀 급조 논란, 한반도기 입장 논란 등 그동안의 속앓이에서 벗어나 김 특사 일행과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김여정(30) 특사 입장에서 보면 임종석(51) 실장은 어린 시절 말로만 들었던, 전설적 인물이다. 29년 전인 1989년 6월 30일, 한국외국어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임수경씨를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방북시킨 당사자가 바로 임종석 실장이다. 당시 한양대 총학생회장으로 제3기 전대협 의장이었던 임 실장은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면서도 전대협의 주요 집회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는 신출귀몰한 행보로 학생들 사이에서 ‘임길동’으로 불렸다. 키가 크고 준수한 용모에다 사자후 같은 웅변으로 ‘청년학도’들을 열광 시켰던 ‘운동권 스타’였다.

임종석 의장이 파견한 임수경씨는 당시 노태우 정부를 발칵 뒤집어놓았지만 북한 당국과 주민들로부터는 ‘통일의 꽃 임수경’으로 불리며 다니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다. 임수경 씨는 46일 동안 북한에 머무르면서 임수경 신드롬을 일으킨 뒤 판문점으로 귀환했다. 이른바 ‘백두혈통’인 김여정 특사 입장에서는 이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인 임종석 실장은 협상 상대로서 신뢰할 만한 남측 파트너일 수밖에 없다. 이런 기류 속에서 임종석 실장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김 특사를 존중하며 최대한의 배려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석 실장은 이른바 ‘전대협 세대’로 청와대 586을 대표하는 참모다. 지금도 네이버로 ‘임종석’을 검색해보면 임종석 주사파, 임종석 비트코인이 연동된다. 연관 검색어는 임수경, 조국, 우상호, 비서실장, 북한 순으로 나타난다.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북한에 관대하고 민족자주, 민주, 평화, 통일을 지향하는 태도는 전대협 세대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들은 외세,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민족해방을 강조했다. 30년 전,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치며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통일운동을 펼쳤다. “구국의 강철대오 전대협” “백만학도 대동단결 미국놈들 몰아내자”가 집회에서 외치던 단골 구호였다. 80년대 사고에 갇혀 있는 일부 전대협 세대의 경우 지금도 미국을 ‘한반도의 전쟁위험을 고조시키는 악이자 적폐세력’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청와대의 ‘전대협 세대’와 586참모들


▎여자아이스하키 북한 응원단. 빨간색 상·하의 체육복을 입고 절도 있는 군무를 펼치며 ‘우리는 하나다’를 외쳤다.
30년의 세월이 지나 그 전대협 세대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참모가 돼 나라의 키를 쥐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을 비롯해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국민대), 송인배 제1부속실장(부산대), 유송화 제2부속실장(이화여대), 한병도 정무수석(원광대), 진성준 정무기획비사관(전북대),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전북대), 권혁기 춘추관장(국민대)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학생회장 출신이다. 백원우 민정비서관은 전대협 연대사업국장, 신동호 연설비서관은 전대협 문화국장을 지냈다. 매년 연말이면 전대협동우회가 개최되는데, 임종석 실장도 송년모임의 단골멤버였다. 전대협 세대인 이들은 1990년대에는 386세대(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로 회자됐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586이 됐다.

586세대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비극과 투쟁담을 귀로 듣고 가슴으로 받아들인 세대다. 87년 6월항쟁 시기에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겪은 영웅담 하나씩을 가슴에 지니고 있다. 민주화·평화·통일이 최고의 가치였다. 자녀의 이름을 백두나 한라, 민주·자주·통일로 지은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시대적 정서를 공유한다. 영화 [1987]에 등장하기도 했지만 삼양화학이 생산한 최루탄 가스를 맡았고, 지랄탄이 날아올 때의 공포를 몸으로 아는 세대다. [1987]의 피날레를 장식한 ‘그날이 오면’ 노래를 그냥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주먹을 불끈 쥐고 따라 부를 정도로 끈끈한 정서적 연대가 있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다. 문재인 청와대 안에는 이런 586이 많다. 오죽하면 “문재인 청와대는 80년대 운동권 동문회관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들의 장점은 진정성과 집체학습, 동일한 시대를 관통해 온 동질감을 바탕으로 한 동지적 의식, 그리고 결정된 뒤의 일사불란한 추진력이다. 청와대 586참모들은 그들의 이런 장점을 발휘해 이번 평창의 평화올림픽, 통일올림픽의 콘셉트를 밀어붙였다.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 행사에서는 하나된 민족을 보여주는 장면이 특히 많았는데, 삼지연관혁악단 음악회 피날레에서 걸그룹 ‘소녀시대’의 서현을 깜짝 출연시켜 현송월 단장과 ‘우리의 소원’을 합창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위적이고 의도적으로 보일지라도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586참모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한다.

2030세대로부터 ‘공정’ 시비를 불러온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도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 대회에서 현정화 선수와 북한 이분희 선수가 이끈 남북 단일팀이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했던 성공사례만 생각해 급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9일 리셉션에서 당시 탁구 단일팀을 언급하며 “2.7g의 작은 공이 평화의 씨앗이 됐다. 지금은 사상 최초의 남북 단일팀인 여자아이스하키팀이 출전을 준비하고 있다. 2.7g의 탁구공이 27년 후 170g의 퍽으로 커졌다”며 감성적인 어휘를 사용한 것이 그 사례다. “스틱을 마주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선수들의 가슴에 휴전선은 없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작은 눈덩이를 손에 쥐었다. 우리가 마음을 모으면 눈 뭉치는 점점 더 커져 평화의 눈사람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은 감동적이었지만 당장 경제난에 지친 힘든 서민들의 피부에는 와 닿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 청원에 당혹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선수들을 격려하는 문재인 대통령.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은 1991년 남북탁구 단일팀이 여자단체전에서 우승했던 성공사례만 생각해 급조했다는 말이 나온다.
평창올림픽과 관련해 실리적 사고보다 진정성과 명분에 집착하는 586참모들의 태도는 그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국민 전체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한 결과를 가져왔다. 북한의 백두혈통인 김여정이 특사로 한국을 찾아왔고, 북한의 삼지연관현악단이 남한 노래를 합창하며, 북한의 미녀 응원단이 출동해 화려한 응원을 벌였지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와 같은 북한 열풍도, 신드롬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평창 이후 북미 관계의 경색을 걱정하는 신중한 분위기가 엿보인다.

지난 1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의 댓글에 “정치에 스포츠를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을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586 인사들도 있다. 그 정도로 격앙된 말이 나올 줄 몰랐다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기업체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A씨는 “성질이 같은 동류 집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 보면 새로운 발상이 들어올 틈이 없어 결국 조직 혁신을 저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 참모들도 운동권 선후배끼리 똘똘 뭉치다 보면 배타적 장막을 치게 돼 외부의 건전한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실제 올해 초부터 청와대 게시판에는 높은 집값과 치솟는 물가, 불경기를 탓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실제 지표상으로도 국내 경기 여건은 좋지 않다. 지난해 12월 청년 실업률은 9.9%를 기록했다. 지난해 국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1.9%로 외환위기 이후 20년여 만에 가장 나쁜 실적이다. 지금 젊은이들의 최고 관심사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 비트코인처럼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까지 이어질 이슈다. 평화올림픽, 통일, 북한, 북핵은 더 이상 이들의 관심을 끄는 이슈가 아닐지도 모른다.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온 이후 586참모들 사이에서도 시대변화에 둔감했다는 뒤늦은 탄식이 나왔다.

정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월 2일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KSOI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가 결정타가 됐다. 평화 올림픽, 통일올림픽 콘셉트에 치중했던 586참모들의 현실 인식이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증명했기 때문이다.

이 조사 결과, 국민 절반 이상(53.3%)이 이번 평창 겨울올림픽이 남북관계 개선에 특별한 기여를 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도 전체의 50.3%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우리 선수 중 일부가 출전하지 못해서(43.3%), 단일팀 자체 반대(28.4%), 선수단과 소통 부족(22.6%)을 그 이유로 꼽았다.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63.9%가 통일보다 평화공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답했다. 운동권 출신들은 ‘평화공존’을 ‘분단 상태의 지속’으로 받아들인다. 젊은 시절 통일이 지상최고의 가치였던 운동권 출신 참모들에게는 낯선 결과다.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전체의 58.4%가 만족한다고 했고, 불만족 응답률은 37.0%로 나타났다. 여당의 싱크탱크가 여론조사한 결과다. 문재인 청와대가 대북정책에 있어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자료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586참모들에게도 충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료가 당·청에 공유된 뒤 발언 수위가 조절되는 기류가 감지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막식 리셉션에서 “지난겨울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위해 촛불을 들었고, 이번 겨울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공정함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됐다”며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에 관해 사실상 반성문을 쓴 것도 그런 이유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실제 그 전까지 김수현 사회수석, 김홍수 교육문화비서관 등으로 꾸려진 청와대 평창겨울올림픽 태스크포스(TF)가 가장 노심초사했던 고민은 개막식 당일 추운 날씨와 문재인 대통령의 건강이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사전 공연과 개막식 행사까지 꼬박 3시간 이상 자리를 지켜야 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올림픽 스타디움에 지붕을 덮거나 개폐식 장치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600억~1000억원에 이르는 예산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결국 판초우의·무릎담요 등 방한 6종 세트와 두꺼운 담요 한 개를 준비했는데, 다행히 영하 2도를 기록해 걱정을 덜었다고 한다.

시대변화에 둔감하고 선민의식 여전


▎청와대 586참모진을 대표하는 임종석 비서실장(가운데)과 조국 민정수석(오른쪽), 김의겸 대변인(왼쪽). 생각이 같은 사람들만 모여 있다 보면 새로운 발상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참모들 중에서는 지난 1월 아이스하키 단일팀 반대 청원을 계기로 뒤늦게나마 젊은이들과 세대 격차를 실감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50대 비서관 L씨는 “최근에 휴가 나온 아들과 시국 문제를 얘기하다 깜짝 놀랐다. 아들은 불리할 때는 평화공세를 펴는 북한의 통일전선전술을 진지하게 설명하면서 북한을 한민족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을 귀찮게 하는 불량국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더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에는 당연했던 우리 세대의 통일관이 지금은 낭만적 민족주의나 감성적 통일운동으로 비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물론 586세대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생각도 변하고 기성세대에 편입되면서 보수화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애국의 길, 민주화에 헌신했다는 선민의식은 여전하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장면이 있다. 지난해 11월 6일 국회 운영위의 청와대 국정감사 자리에서 전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사파와 전대협이 장악한 청와대의 면면을 봤다”며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판하자 “그게 (국회의원이 할만한) 질문이냐?”며 “의원님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박했던 임종석 실장의 태도다. 당시 야당 의원들의 혀를 내두르게 만든 임 실장의 발언은 청와대 586, 특히 전대협 세대의 자긍심을 반영하고 있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해 옥살이를 했던 ‘투사’들의 경우 지금도 자신의 투쟁 경력에 강한 자긍심을 갖는다고 한다. 그 자부심으로 선출직 공직자가 되고 임명직 공무원이 된 이들도 있다. 이들은 공직을 탐하는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한 봉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말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젊은이가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권리다. 부패하고 타락한 늙은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젊은이가 청년 시절의 기개를 잊지 않고 맑고 깨끗하게 늙어가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진보진영의 철학자 황광우가 지난해 7월 펴낸 [촛불철학]에 썼던 한 대목이다.

지난해 8월 [문재인 포퓰리즘]이라는 책을 펴낸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정책이란 얼마나 정교한 수단을 갖느냐가 생명인데, 문재인 정권의 정책에는 목표만 있고 수단이 부재하다. 수단이라고는 권력의 힘(국가의 강권력)일 뿐이다. 그들은 ‘선한 일’ 자체가 개혁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개혁이란 선한 일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하느냐’인데, 문재인 정권은 모든 것을 오로지 권력으로만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문재인 정권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586참모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586참모들이 평화와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할 뿐, 어떻게 평화와 통일로 가게 만들 것이냐를 설명하는 데는 약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야당 일각에서는 실리보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586참모들의 태도를 아쉬워하기도 한다. 북한 고위 당국자와 만나는 자리라면 감상적인 민족이나 통일에 대한 얘기보다 무얼 주고 무얼 받을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쉽다는 지적이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문 대통령은 김여정을 네 차례나 만나면서 북핵 얘기는 한마디도 못 꺼냈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와 압박, 그리고 올림픽 직후 한미 연합 훈련을 하면서 미국이 제한적 타격과 같은 군사옵션을 쓰지 못하도록 설득하는 것”이라며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남북정상회담을 할 바에는 안 하는 것이 안보에 더 도움이 된다”고 지적했다. 지나친 비판 같기도 하지만 실리를 얻지 못한다면 이용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 기울일 만하다.

남북관계 획기적 변화 주도할 수도


▎여의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이 성사돼 사전조율을 위해 김여정(맨 오른쪽)이 이선권과 2대 2 회담에 나선다면 우리 측에서는 임종석(맨 왼쪽)과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나설 수도 있다고 본다. / 사진:청와대 사진기자단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서 앞서 임종석 실장과 김여정 일행의 만찬회동이다. 이날 북측에서는 김여정 특사를 비롯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휘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이택건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김창선 보장성원이 참석했다. 김창선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한때 김 위원장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우리 측에서는 임종석 실장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등이 참석했다.

우리 측에서 대북 문제를 책임지는 외교안보 라인의 고위 인사들이 포함되고, 북한 역시 대남 핵심라인이 참석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할 예비모임 성격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상회담이 성사돼 사전조율을 위해 김여정이 이선권과 2대 2 회담에 나선다면 우리 측에서는 임종석 실장과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임종석 실장은 현재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대북특사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 특사로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온 선례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9일 한국을 방문한 칼둔 행정청장에게 “임종석 실장 이야기는 바로 제 뜻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며 임 실장에게 신뢰를 보인 바 있다.

최근 들어 청와대 정책실은 공식적인 공보라인인 국민소통수석실이나 최고책임자인 장하성 정책실장을 통해 정제된 메시지가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침묵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에다 강남 부동산가격 급등, 가상화폐 문제, 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등 민감한 정책 이슈들이 터지면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출렁거린 탓이다. 반면 임종석 비서실장 등 이번 김여정 특사의 방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사들은 공식적인 자리 외에도 물밑에서 움직일 일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남북 단일팀 반대 청원 등으로 속앓이를 했던 만큼 평균적인 일반 국민의 정서를 고려해가며 신중하고 정교한 행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사정과 통일에 관심이 많은 이들 586참모가 앞으로 남북관계의 획기적 변화를 주도할 수도 있다.

30년 전 민주화 시위를 주도하고 통일운동을 벌였던 ‘청년학도’들이 지금은 정부와 여당의 리더가 되어 있을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국민들이 이들에게 낡은 통일관이나 낭만적인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정치적 호불호가 아니라 이들의 정책 결정이 나라의 운명, 국민의 안전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더라도 주변 4강과의 외교가 흩뜨려져서는 안 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남과 북이 주도하는 일방통행식 통일지상주의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이 때문에 더디 가더라도 소통하며 국민과 함께 가는 정책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기대가 큰 만큼 586참모들의 고민도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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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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