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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리포트] ‘일대일로’ 중국 경제 이끌어갈 신권력자 류허, 궈수칭 인물연구 

2기 시진핑 정부 산업과 금융 사령탑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경제 담당 부총리, 중국인민은행장에 기용 유력…경제 분야 시진핑의 유일무이한 책사(류허), 중국 금융 개혁의 총책(궈수칭)

▎시진핑 집권 2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체대표대회가 지난해 10월 18일 공산당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사진:연합뉴스
2018년의 중국 경제는 두 명의 중요 인물 양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은 3월 5일부터 시작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회기는 10일 정도)에서 중국인민은행장(중앙은행 총재) 취임이 유력한 궈수칭(郭樹) 중국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61세), 다른 한 사람은 역시 3월 경제담당 부총리 임명이 유력한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66세)이다.

지금부터 꼭 1년 전인 지난해 2월 23일 밤,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산둥성 성장 궈수칭은 성도인 지난(濟南)에서부터 고속철을 타고 급히 베이징으로 향했다. 지난 역에서 베이징 남역까지 오는 약 1시간40분 동안 궈수칭 성장은 복잡한 심경으로 창밖에 펼쳐진 황량한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4년을 허비했다”고 까지는 말할 수 없어도, 그에게 산둥성에서의 4년은 청천벽력 같은 좌천 인사를 견뎌낸 시간이었음이 틀림없다.

2013년 3월 국제 금융계에서 ‘미스터 위안화’라는 닉네임을 가진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인민은행장은 원래 은퇴할 예정이었다. 당시는 이례적으로 취임 후 10년을 넘긴 총재였으며, 장관급의 퇴임 연령인 65세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당시 ‘포스트 저우샤오촨’ 주자 중 한 명이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을 지냈던 궈수칭이었다.

궈수칭은 1956년 8월 내몽골 자치구인 한촌에서 태어났다. 저우언라이 총리의 모교인 톈진의 난카이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는 베이징 중국사회과학원에서 마르크스주의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덩샤오핑이 주창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이론 구축에 참여하고자 국가계획위원회로 이동했다.

거기에서 궈수칭은 경제 관료로 변신했다. 그리고 당시 중국에서는 보기 드문 존재였던 경제 전문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국유기업 개혁에서 실력을 발휘, 주룽지 총리의 천거로 중국인민은행의 부행장에 발탁됐다. 아직 44세의 나이의 젊은 나이임에도, 중국인민은행에서 ‘미니 주룽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어 후진타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6년 반 동안 중국건설은행 회장을 맡아, 중국건설은행을 중국 4대 국유 상업은행의 하나로 끌어올렸다. 그 공적을 인정받아 2011년 10월 장관급인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 주석에 오른 것이었다. 그곳에서도 궈수칭은 중국 주식 및 증권업계의 도약을 견인했다.

하지만 2013년 3월, 중국인민은행장이라는 요직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았던 저우샤오촨은 ‘강한 수완’을 발휘했다. 당시의 중국 정계의 2대 실력자였던 장쩌민·후진타오 전 주석을 설득한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하기 어렵다”는 여론을 조성, 자신의 유임을 유도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궈수칭을 멀리 산둥성으로 날려 보낸 것이다. 더구나 준비한 자리는 성 권력순위 1위 당서기도 2인자인 성장도 아닌, 그 밑의 부성장 자리였다. 이때 국가주석에 오른 시진핑 총서기는 불과 3개월 후에 궈수칭을 성장으로 진급시켰다.

“오늘부터 금융 리스크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은행장 교체를 앞둔 중국 금융의 심장 중국인민은행 전경.
산둥성에 내려온 궈수칭은 그곳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금융에 무지한 사람은 간부가 될 자격이 없다”며 과거의 약 20명에 이르는 자신의 수하를 산둥성에 불러들여 각 도시의 부시장으로 삼았다. 그리고 산둥성을 광둥성과 장쑤성에 버금가는 경제발전성으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2015년 여름, 중국의 주가가 3주 만에 34%나 하락한 것을 계기로 중국 발 금융위기가 제기됐다. ‘소방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궈수칭 대망론이 베이징에서 피어올랐다.

이듬해인 2016년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산둥성의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가 뜬금없이 “어떻게 하면 주가 하락을 멈출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궈수칭은 파안대소하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모든 사람들 중 그 문제에 답하는 데 가장 적당치 않은 사람이 접니다. 만약 배추(산둥성의 특산품) 가격을 묻는다면 저는 아주 자세하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옥수수 가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둘 다 작년보다 값이 크게 떨어졌지만 국제가격보다는 높습니다. 우리 성은 아주 바쁩니다. 무엇보다(다른 성처럼 실업자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 손이 부족해서 고민이니까요.”

보통의 중국 정치가들은 공식 석상에 딱딱한 상투적인 말밖에 하지 않지만, 항상 자신만의 언어로 의사를 표현해온 궈수칭으로서는 최고의 비아냥거림을 담은 말이었다.

그런 궈수칭 성장을, 모두에서 쓴 것처럼, 시진핑 주석이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직전 베이징으로 불러들였다.

2017년 가을은 5년에 한 번 열리는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있었지만, 중국 경제의 경착륙 리스크가 커지고 있었다. 2016년 말 시점에서 거시경제의 레버리지 비율(채무비율)은 247%로 껑충 뛰어 있었다. 기업 부문의 레버리지율도 165%나 됐다. 때문에 중국 전역의 832개 은행(이중 민영은행은 8곳)에서 최대 문제로 부상한 부실채권 처리는 긴급을 요하는 사안이었지만 지지부진한 상태이었다. 그런 와중에, 시진핑 국가주석은 궈수칭에게 기대를 품은 것이다.

지난해 2월 24일 새벽, 궈수칭은 드디어 베이징 서성구의 금융 거리로 돌아왔다. 중국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금융가 15호의 진마오따샤( 茂大厦)에 들어 있다. 궈수칭 신임 주석은 급히 간부들을 불러 모아 “오늘부터 금융 리스크와의 전쟁을 시작한다!”고 선포했다. 3월 2일에는 첫 기자 회견을 열었다.

“지금의 금융업계를 한번 들여다봅시다. 복잡한 금융 상품이 시장에 넘쳐나고, 거기에 흘러 들어간 자산과 화폐의 종착역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치 외양간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일을 하고 있는 격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금융 감독체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금융 감독 체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은행은 향후 반드시 심각한 문제에 부딪칠 것입니다.”

그리고 3월 28일부터 4월 12일까지 중국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총 7차례의 공문을 내 은행 업계를 긴장시켰다.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3월 28일 ‘은행업의 위법, 위규, 위장 행위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통지에 관해서’(제45호 문건)

2. 3월 29일 ‘은행업의 재정거래(arbitrage) 관리감독, 재정거래 공회전, 재정거래 위반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활동 전개에 관해서’(제46호 문건)

3. 4월 6일 ‘은행업의 부당 신설, 부당 교역, 부당 격려, 부당 징수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활동 전개에 관해서’(제53호 문건)

4. 4월 7일 ‘은행업의 서비스를 실물경제에 맞게 인상하기 위한 지도에 관해서’(제4호 문건)

5. 4월 7일 ‘은행업의 시장 혼란을 집중적으로 정리하는 활동 전개에 관해서’(제5호 문건)

6. 4월 10일 ‘은행업의 위험방지활동의 지도에 관해서‘(제6호 문건)

7. 4월 12일 ‘감독관리의 허점을 제대로 보충하고 승화시키는 통지에 관해서’(제7호 문건)

이상은 ‘3개의 위반, 3개 재정 거래, 4개의 부당, 10의 혼란 현상’을 정리·정돈하는 것으로 이른바 ‘삼삼사십(3, 3, 4, 10) 행동’으로 불렸다.

시진핑의 초인적인 예견력과 심오한 통찰력?


▎1. 중국 경제의 사령탑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 2. 중국인민은행장으로 유력시되는 궈수칭 중국은행감독관리위원회 주석.
4월 21일 은행감독관리위원회는 제1분기 경제·금융 정세 분석회의를 열었다. 궈 주석은 다음과 같은 결의를 표명했다.

“만약 은행에 대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면 나는 주석직을 물러나겠습니다. 그것은 리더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한 각종 은행의 혼탁한 현상에 대해서 깨끗하게 처리하고 책임자를 철저하게 문책하겠습니다.”

이렇게, 이후에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결과 2017년 1월부터 9월까지 금융 부문의 레버리지율은 0.8% 하락, 정부 부문의 총 레버리지율도 0.7% 떨어졌다.

제19차 중국 공산당 대회 2라운드인 10월 19일에는 궈 주석은 중앙 금융계통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은행업의 장래는 멋질 것이고, 리스크는 해소되고 모순은 해결할 것이지만 그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기업 고객, 시민 등 각 방면의 협력도 필요합니다.”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금융 리스크 방지, 빈곤 탈출, 대기오염 방지를 조속히 임해야 할 ‘3대 공격전’이라고 불렀다.

결국 2017년 은행감독관리위원회 및 산하 금융 당국은 총 2838번이나 벌칙을 부과했다. 중국개발은행의 ‘교흥국채’에 대해서는 사상 최고가인 7억2200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2018년에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19개의 항목을 정했는데, 그 톱이 ‘금융 리스크 방지’이었다. 곽 주석의 뜻을 반영한 것이었다.

해가 바뀐 1월 17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런민일보]는 궈수칭 주석의 장문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기자_ 공산당대회에서도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도 금융 리스크 방지가 톱 항목이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궈수칭_ (2012년) 제18차 공산당 대회 이후, 시진핑 주석은 금융 문제에 관해서 일련의 지시를 내렸는데, 그것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의 특색 있는 사회주의 경제 사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시 주석은 초인적인 예견력과 심오한 통찰력을 갖고 금융 위험을 예방하는 중요성을 일찍부터 중요시해온 것이다.

2017년 우리 금융 관리 부문은 동업·이재·표외(장부외) 업무의 세 분야에 대해서 많은 조치를 시도했다. 그 덕분에 100개 이상의 은행에서 레버리지율이 저하됐다. 지난해 한해 은행의 대출 금액은 12.6% 늘어났지만, 은행 총 자산 증가는 8.7%에 그쳤다. 이는 그 전년보다 7.1%, 16조 위안 정도 감소한 규모다. 은행 부채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경감됐고, 이재 상품(금융투자상품)은 연초에 비해 5조 위안 이상 줄었다. 은행의 ‘특수한 목적’에 대한 투자도 약 10조 위안이 줄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은행 부실의 폭발 압력이 크고, 은행이 안고 있는 섀도뱅킹(그림자 금융: 은행권 밖에서 이뤄지는 신용거래)의 양도 여전히 많다. 금융 혼란은 한번 발생하면 사회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올해 추진하는 사항 중에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가져온 것이다.

하버드대 유학파 경제 담당 부총리의 탄생?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현장 시찰에 배석한 류허(맨 왼쪽)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
기자_ 은행업이 금융 리스크 회피를 위해서 실시할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궈_ 거시경제의 레버리지 비율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과 실물경제, 금융과 부동산, 금융 시스템 내부의 3부문에서 선순환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물론 섀도뱅킹을 제거하고, 부동산 버블을 억제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숨겨진 부채를 정리할 것이다. 2017년에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는 3452건의 처벌을 결정했다.

기자_ 은행업감독관리위원회는 은행업이 실물 경제를 뒷받침하는 질과 효과를 어떻게 향상시킬 것인가?

궈_ 실물경제를 뒷받침하는 것은 금융의 천직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은행 대출 금액은 13조9800억 위안으로 늘어, 2016년보다 1조2000억 위안 증가했다. 정부의 의사를 반영해 중소기업 대출 15.1%,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주택 건설 관련 대출 42.3%, 농업 관계 대출 9.6%, 인프라 정비에 대한 대출이 15.7% 증가했다.

기자_ 은행업 개혁의 다음 수순은 무엇인가?

궈_ 중국 은행 주식의 다원화는 기본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국유은행의 혼합 소유제는 이미 높은 수준에 와 있다. 5대 상업은행은 모두 주식을 상장시켰으며, 주식은 국외에도 상장돼 있다(현재 상장된 은행은 25곳). 전국 은행 주식에서 민간자본 비율은 43%, 시중은행에서 55%, 농촌부의 농상은행·농신사(농업신용회사)에서 86%에 달했다.

많이 축약했지만, 이 인터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궈수칭이 실력을 발휘해 전력으로 금융 개혁을 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런민일보]에서 시진핑 주석에 대한 절대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3월 중국인민은행 은행장 취임을 확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궈수칭을 발탁한 것은 시진핑 주석 본인이 아니다. 시 주석은 자신이 가장 취약한 경제 분야에서는, 과거 5년 동안 중요 방침을 한 명의 친구에게 ‘일임’해 왔다. 그 인물은 베이징 ‘101중학’ 동창인 류허다. 그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이 시진핑 주석에게 궈수칭을 추천해 베이징으로 불러 올린 것이다.

류허는 1952년 1월 베이징 근교의 허베이성 창리에서 태어났다. 베이징 ‘101중학’에서는 시진핑의 유일무이한 친구였다. 그 뒤 중국 인민대학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1987년부터 국가계획위원회에 근무했다. 이때 함께한 동료가 궈수칭이다.

1994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미 하버드대에 유학했고, 1998년부터는 국가정보센터에 근무했다. 그리고 후진타오 정권이 들어선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중앙재경영도소조 부주임을 맡았다.

장쩌민·후진타오 시대의 류허는 양지가 아닌 음지를 전전한 경제·관료였다.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13년 3월에 정식으로 시진핑 정부가 출범하면서 중앙재경영도소조 주임에 취임했을 때다.

중국에서는 국가의 중요사항은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회(공산당 톱 7)에서 결정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이 톱 7이 장쩌민과 후진타오라는 2대 원로의 타협 하에 인선되는 바람에, 시진핑은 상무위원회의 결정을 꺼려했다. 대신 경제분야의 사령탑으로 떠오른 조직이 중앙재경영도소조였다.

다보스 포럼에서 트럼프보다 더 주목받은 류허

시진핑 정부 이후 류허는 시진핑·오바마, 시진핑·푸틴과의 정상 회담 등 주요 회담에 모두 지켜보게 됐다. 또 ‘일대일로’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등도 류허 주임이 산파역을 했다.

2015년 주가 폭락을 발단으로 경제 리스크가 높아지면서 2016년부터 류허가 주도하는 형태로 공급 측 구조개혁 작업이 시작됐다. 중국은 전처럼 수출·투자·소비라고 하는 삼두마차가 이끄는 고도 경제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앞으로 수요 측이 아닌 공급 측의 구조개혁으로 고속(高速)에서 고질(高質)의 경제 발전으로 전환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중국의 ‘신상태(新狀態)’라 부른다. 중국 경제는 악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상적인 상태로 이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공급 측 구조개혁은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삼거일강일보(三去一降一補)’, 즉 세 가지를 없애고, 한 가지를 절감하고, 한 가지는 보충한다는 정책이다. 철강, 석탄 과잉 생산, 아파트 공급 과잉을 규제하고, 금융 긴축을 통해 금융 리스크를 제거하는 게 목표다. 또 감세를 지렛대로 한 생산비 절감, 취약 계층의 강화도 주요 사업에 속한다.

2017년 10월 제19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류허를 중앙 정치국 위원(공산당 톱 25)에 발탁했다. 이로서 류허는 중국 공산당 서열 10위로 부상했으며, 명실공히 중국 경제의 사령탑이 된 것이다.

올 1월 하순 류허는 시진핑 주석의 대리인로 다보스포럼에 참석했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시진핑 주석이 다보스포럼 개막식에 참석, 기조연설을 했다. 당시 시 주석은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인 메시지를 발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을 내걸고 멕시코와의 사이에 장벽을 쌓거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 등의 국제협정 개정을 강조했다. 이에 비해 시 주석이 강조한 것은 글로벌리즘과 자유무역 확대, 각 국과의 공조강화였다. 미·중 두 정상의 비교되는 연설을 접한 세계인들은 2017년 이후 분명히 다른 시대가 도래했음을 감지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월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다보스에 참석했지만, ‘막후 주역’은 ‘시진핑의 대리’로 참석했던 류허 주임이었다. 류허는 1월 24일 오전, 다보스포럼의 주 회의장에서 ‘고질의 발전을 추진하고 세계 경제의 번영과 안정을 공동으로 촉진한다’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지난해 이맘때, 시진핑 주석이 이 자리에서 ‘시대의 책임을 함께 지며 세계의 발전을 함께 촉구한다’란 제목의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경제 세계화를 굳게 지지하고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제창한 사항을 적극 이행했으며, 각종 보호주의에 반대하며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공정한 경쟁을 촉진해 왔습니다. 또한 금융업의 시장진입을 넓히고 수입을 주도적으로 확대했으며, 적극적으로 ‘일대일로’건설을 추진하면서 실질적인 행동으로 ‘경제의 세계화’의 진전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는 중국이 제19차 공산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중앙지도체제를 확립하고, 2020년까지 소강사회(그럭저럭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어 2050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을 만든다는 목표를 정했음을 강조했다. 또 최근 중국 경제의 주요 키워드를 나열했다. 예컨대 ‘한 개의 종합적 요구’, ‘한 개의 주선(主線)’, ‘3대 공격전’ 등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즉 ‘한 개의 종합적 요구’는 고도 성장에서 ‘고질(高質, 고품질)의 성장을 뜻하며, ‘하나의 주선’이란 공급 구조개혁을 의미한다. 류허는 또 중국이 중대 위험 방지, 빈곤 탈출, 오염 방지 등 ‘3대 공격전’에 경제 정책의 방점을 찍고 있음을 강조했다.

여전히 불안한 세계 경제의 기관차

류허는 다음과 같이 연설을 이어나갔다.

“이상의 목표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개혁·개방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해는 개혁·개방 40주년에 해당합니다. 개방적이고 포용성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경제 성장의 필수조건입니다. 수출입을 함께 늘리고 동시에 개방적인 세계 경제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4억 명 안팎의 중산층을 가진 개방된 중국의 시장은 세계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할 것입니다. ‘일대일로’을 주창한 것은 중국이지만 ‘일대일로’ 건설의 기회와 성과는 세계가 함께 누릴 것입니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은 일관되게 세계 평화의 건설자이고, 세계 발전의 공헌자이며, 국제 질서의 유지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발전도상국이지만 국제사회와 함께 다각적인 무역 체제를 지지하고 함께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다보스포럼의 주회의장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하나는 자리를 가득 메운 전 세계 VIP가 류허를 ‘시진핑의 대리인’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세계 자유무역에 반대 의견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중국에 대한 찬사였다.

첫머리에 말했듯이 오는 3월 5일부터 시작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류허 주임은 경제 담당 부총리에 취임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시진핑의 책사’직에 투철했던 류 주임이 드디어 권력의 무대 전면에 나서는 것이다.

또 중국 금융계의 실권도 15년 넘게 군림한 저우샤오촨 총재에서 궈수칭 주석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류허와 궈수칭은 2기 시진핑 정부의 경제와 금융을 지탱하는 두 명의 간판스타가 되는 것이다.

지난 1월 18일 정례 기자회견에 임한 닝지저(寧吉喆) 국가통계국장은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2017년 중국의 GDP는 82조7122억 위안, 증가율은 6.9%였다. 구체적으로는 제1차 산업이 6조5468억 위안으로 3.9% 성장, 제2차산업이 33조4623억 위안으로 6.1% 성장, 제3차 산업이 42조7032억 위안으로 8.0% 성장이다.” 얼마 뒤 텐진시와 내몽고 자치구에서 ‘GDP 부풀리기’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이처럼 중국 경제는 확실히 세계 경제의 견인차다. 하지만 잠재적인 문제 또한 엄청나다. 그래서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동향을 더욱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특별편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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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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