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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초대석] 등단 50년 여성문학의 대모(代母) 소설가 오정희 

“자기 내면의 고통까지 드러낸 글이라야 독자가 감동” 

글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na.kwonil@joongang.co.kr / 사진 원동연 객원기자
문단 데뷔 반세기 기념하는 ‘오정희 컬렉션’ 출간…사유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생명의 물’이란 호평받아

한국 여성 작가들을 대표하던 박경리와 박완서 작가가 떠난 지금, 작가 오정희(71)는 여성 문학인의 대모(代母)다. 등단 50년을 맞아 문학적 열정을 불태우는 오 작가를 만나 위기에 빠진 우리 문학계의 현실을 살펴보고 젊은 작가들이 귀담을 만한 고언을 들었다.

오정희는 한국 현대 여성소설의 원류이자 ‘작가들의 작가’로 불린다. 오정희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주체적으로 응시하는 위치에서 타인과 자신을 들여다본다. 문학평론가 심진경이 “1980년대 이후 한국 여성문학의 테마와 방법 대부분은 오정희의 작품을 근간으로 형성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했다. 그만큼 국내 유명 여성작가들과 페미니즘 소설들에 영감을 주었다. 어릴 적부터 삶의 진실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허무를 간파한 오정희는 1968년, 스물한 살에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완구점 여인’으로 당선됐다. 올해로 등단 50년이다. 지난 1월 23일 서울 종로의 영풍문고에서 작가를 만나기로 했다. 문학 인생 반세기를 기념해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오정희 컬렉션’ 특별판매대가 눈에 띄었다. 그의 데뷔작 ‘완구점 여인’의 한 대목을 펼쳤다.

동생의 죽음을 겪으며 세상에 대한 거부와 적의를 품은 소녀는 어두운 교실의 복도에서 “먼지 한 알 없이 청결해 보여서 위축감”으로 “뻣뻣한 스커트를 허리께까지 훌쩍 걷어 올리고 그대로 선 채 오줌을 누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뒤틀린 자아를 가진 소녀의 시선으로 쓴 글이긴 하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읽어도 도발적이다. 오정희는 이처럼 우리 내면의 뒤틀린 욕망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묘사와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놀랍도록 표현해내는 작가다.

책갈피에서 잠시 머물렀던 생각을 거둔 사이 고희를 넘긴 소담한 느낌의 오정희 작가가 서점에 들어섰다. 날이 차서 목도리를 했는데, 얼굴이 발그레했다. 글과 문장은 이렇듯 선명하고 도발적인데, 외모는 순하다 못해 여리고, 얼굴은 인자하고 평온했다. 이 작가의 내면엔 도대체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사진 몇 컷을 촬영하는 사이 긴장을 풀기 위해 몇 마디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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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호 (2018.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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